연성

[리온톨비] 팔라라의 광휘가 이방인에게로 내리쬐던 순간

특) 둘이 안 사귐

드림용 by Garn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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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사테리온. 일명 리온이라는 밀레시안이 아발론 게이트에 방문할 때면, 그곳에 배치된 기사들은 아닌 척 그를 힐끔거리곤 했다.

이 행위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째 이유는 아발론 게이트라는 장소의 특수성이었다.

아발론 게이트는 아튼 시미니를 믿는 종교인들로 구성된 비밀단체, 알반 기사단에서 관리하던 고대 유적으로 알반 기사단원 외의 외부인은 드나들 수 없는 장소이기도 했다.

즉, 리온은 비밀단체가 자기들만 드나들게 관리하던 곳에 난데없이 드나들게 된 외부인이다.

두 번째 -이자 가장 큰- 이유는 리온이라는 존재의 특수성이다.

그가 에린의 대중에게 알려진 계기는 에레원 국왕이 왕위를 되찾도록 도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알반 기사단에서 특정 직급 이상이라면 리온이 여러 번 세상을 구한 영웅쯤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가 해낸 일들로 인해 기사단 내에 리온을 은밀하게 흠모하는 기사도 있을 정도였다.

거기다 리온은 긴 백금발에 여름 나뭇잎 같은 녹안을 지닌 미청년-비록, 평소에는 작은 소년의 모습으로 다니지만-이다.

한 마디로, 외부인이 없다시피 한 곳에 드나드는 외부인이 하필 그 조직 내부에서는 유명인인 데다가 잘생기기까지 했다는 뜻이다.

이런 기사들의 시선이 불편한 건지, 아니면 엉겁결에 맡게 된 특별조장이란 직위에 관심이 없는 건지 리온은 아발론 게이트에 자주 방문하는 편은 아니었고, 방문한다고 해도 특별조의 훈련이나 임무 정도만 챙겨보고 쏜살같이 사라지곤 했다.

그러므로 여느 때처럼 아무것에도 관심 없어 보이던 리온이 갑자기 기사단원 한 명을 붙잡곤 빤히 보고 있는 일은 사실 보이는 것 이상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키조차 훤칠한 미청년이 말없이 빤히 보고 있으니 어쩔 줄 몰라 하던 기사단원이 조심스레 물었다.

“뭔가… 용건이라도 있으신가요…?”

그제야 제가 상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단 걸 깨달은 리온은 말했다.

“아, 미안. 네가 예뻐서 그랬어.”

그리 말하고 평소처럼 게이트를 나서려던 리온을 멈춰 세운 것은 리온 이상으로 알반의 기사들에게 흠모받는 이의 목소리였다.

“아아, 리온님. 특별조의 조장 자리를 부탁드렸더니 신성한 아발론 게이트에서 기사단원을 유혹하고 계시면 어떡합니까?”

“…톨비쉬.”

웃는 낯으로 다가오는 존재를 본 리온의 표정이 나빠진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웃는 낯으로 다가온 톨비쉬가 기사단원과 리온 사이에 섰다. 그것을 마음에 들지 않는단 기색으로 보던 리온이 한숨 쉬듯 말했다.

“…유혹이라니.”

“아무리 리온님이 ‘아무에게나’ ‘아무 흑심 없이’ 그런 말들을 하신다고 해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다르지 않겠습니까.”

리온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과 상관없이 넉살 좋게 단원에게 리온 대신 사과까지 남긴 톨비쉬가 리온에게 조금 더 다가섰다.

“스스로가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자각이 부족한 건 여전하시군요.”

여전히 넉살 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톨비쉬를 무시한 리온이 조금 전까지 대화를 나누던 단원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들렸다면 미안해. 널 유혹하려던 게 아니라 단순한 사실 적시….”

“하하. 리온님은 유혹의 귀재시군요.”

하던 말이 끊겨 기분이 상한 리온이 저를 쏘아보는 것을 무시하며 이 자리에 붙잡혀있던 가여운 기사단원을 현장에서 빼내 준 톨비쉬가 리온을 보고 웃었다.

“외모 칭찬이라니, 고전적인 유혹 방식입니다. 하하, 그래도 리온님과는 꽤 어울리는군요.”

기사단원들이 있는 곳을 등져서 리온의 시야에서 가린 톨비쉬를 보며 눈을 가늘게 뜨던 리온이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아발론 게이트의 출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칭찬으로 들을게.”

리온의 긴 다리가 쭉쭉 뻗어 걸어가는 것을 금세 따라잡은 톨비쉬가 리온에게 말을 걸었다.

“마지막까지 제가 함께하겠다고 약속드리지 않았습니까. 단순한 조언이었습니다.”

“…하?”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리온은 몸을 돌렸다.

훈련을 위해 설치되어있던 나무로 된 구조물에 손을 뻗어 구조물과 자신 사이에 톨비쉬를 가둔 리온이 톨비쉬를 내려다보았다.

리온의 흰 피부가 목재 구조물이 만든 그늘로 어두워지고 녹색 눈은 상대를 노려보느라 가늘어졌다.

그럼에도, 모두에게 평등한 팔라라의 광휘가 리온의 머리카락에도 쏟아졌고, 리온의 백금발이 그 빛을 반사하며 아름답게 반짝였다.

리온이 고개를 숙인 탓에 평소보다 조금 더 길게 내려온 머리카락이 톨비쉬의 목을 간질였고, 톨비쉬는 가만히 굳어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애초에 네가 멋대로 내뱉은 그 약속부터 뜬금없었는데, 단순한 조언? 우리가 언제부터 그런 사이였지?”

톨비쉬가 입을 열기도 전에 허리를 조금 더 기울여 톨비쉬와 눈높이를 맞춘 리온이 으르렁거렸다.

“나를 꽤 싫어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가 하는 일마다 ‘조언’하면서.”

“…전에도 말했지만 저는 리온님이 좋….”

나긋하게 말하던 톨비쉬의 턱에 손을 얹어 입을 다물게 하고 그 상태로 손을 살짝 들어 톨비쉬가 저를 올려다보는 모양새를 만든 리온이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떼려던 순간, 하려던 말이 끊겼던 톨비쉬가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보십시오. 리온님은 지금도 남들에게 보이는 걸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고 계시잖습니까. 어떻게 조언을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린 선지자와 함께 싸운 동료이지 않습니까.”

그제야 알반 기사단의 시설에서 거기 소속된 기사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 리온의 표정이 완전히 난처함으로 물들기도 전에 톨비쉬는 말했다.

“이렇게 얼굴이 가까우니 남들이 보면 저희가 입이라도 맞추는 줄 알 겁니다.”

“…우리가?”

잔뜩 찌푸려진 얼굴로 제게서 멀어지려는 리온의 턱을 양손으로 잡아 다시 제게 가까이 오게 한 톨비쉬가 속삭였다.

“네, 우리가.”

“알반 기사단은 눈이 발바닥에 달렸나봐? 사이가 나쁜 줄 뻔히 알면서.”

어렵지 않게 톨비쉬의 손길을 뿌리친 리온이 투덜대자 톨비쉬가 평소처럼 넉살 좋게 웃었다.

“…연애 감정만큼 앞날을 알기 어려운 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전 리온님이 좋습니다.”

웃는 얼굴에 침 뱉는 성격은 못 되는 리온이 톨비쉬의 시선을 피하며 괜히 제 옷을 터는 시늉을 했다.

“…마지막까지 함께하겠다는 약속. 진심입니다.”

리온의 시선이 다시 제게 향하는 것을 본 톨비쉬가 웃었다.

“그러니 조언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늘 취하시던 어린아이의 모습보다는 지금의 모습이 연애와 관련한 오해를 받기 쉬워진다고. 리온님이 어떻게 굴든 금세 잊는 바깥의 이들과 달리 기사단원들은 밀레시안을 잊지 않습니다. 조심하셔야죠.”

“똑같은 얼굴에 키만 커진 정도잖아. 연애 관련 오해라니 과장이 심하네.”

한쪽 눈썹은 원래의 위치보다 조금 올라가 있고, 녹색 눈은 호의적인 대상을 볼 때의 따스한 색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리온의 백금발은 여전히 팔라라의 빛을 받아 아름답게 반짝이고 자신보다 작은 톨비쉬를 보느라 내리깐 눈에는 긴 속눈썹이 팔랑였다.

잠시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본 톨비쉬가 말했다.

“외양은 아름다우십니다.”

“외양‘은’? 말을 해도 꼭….”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톨비쉬에게서 한걸음 멀어진 리온이 옷을 툭툭 털며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톨비쉬를 돌아보았다.

“뭐, 그래도 네 말을 들어서 손해 본 적은 없으니까. 기억해 둘게. 19포 마셨을 때는 연애 관련으로 오해받지 않게 행동을 조심하란 얘기.”

순순히 수긍의 말을 내뱉고는 돌아가려는 듯 출구 방향을 향했던 리온의 몸이 문득 톨비쉬에게로 돌려지고, 얼음과 음료가 담긴 차가운 컵이 톨비쉬의 이마에 닿았다.

“그나저나 알반 엘베드라고는 해도 갑옷 입고 뛰어다니기는 덥나 봐? 얼굴이 새빨갛네.”

어딘지 멍해 보이는 톨비쉬의 손에 음료를 쥐여준 리온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시원한 거 마셔가면서 해. 일사병으로 쓰러졌단 소식 듣게 하지 말고. 이제 진짜 간다.”

망설임 없이 아발론 게이트를 나서서 걸어가는 리온에게는 팔라라의 빛이 화사하게 내리쬐고 있었고, 그런 리온의 뒷모습을 목재 구조물의 그늘에서 보던 톨비쉬는 리온에게 받은 음료를 조심스레 쥐었다.

“…은붕어도 조언을 들으면 이것보단 길게 기억하겠습니다.”

그 한마디만을 남기고 톨비쉬는 아발론 게이트로 돌아갔다.

서로를 등지고 걷는 두 사람은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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