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pinus Paradisus

프롤로그

Lupinus Paradisus | 프롤로그

 

* 앤컾의 원작 서사가 보고 싶어서 쓰는 글.

* 친세대의 시온 포레스트가, 헤이즐 포스터와 해리 포터가 있는 현세대로 트립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룹니다.

* 원작 소설의 흐름을 따라가되, 헤즐시온(앤컾)의 서사에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원작 파괴…)

* 하오니 스토리 흐름에 따른, 원작 스포일러에 주의하세요.

* 원작 파괴 주의. 캐붕 주의.

* 다음 편 | https://glph.to/dxqg55

Lupinus Paradisus

늑대의 낙원

프롤로그

< 숲의 종말 >

ⓒ유엘쓰(@Scarlet_Express)

어두운 낙원에도 태양이 뜰까?

헥헥, 대는 숨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무게를 느낀 그가 힘겹게 눈을 떴다. 아직 비몽사몽한지 눈을 떴다기엔 시야가 좁았으나, 그 좁은 시야 너머로 밀색 털뭉치가 보였다. 그걸 본 순간, 저도 모르게 피식 미소지은 그가 손을 뻗었다.

제 몸 위로 반쯤 올라와있는 털뭉치를 조심스레 안아올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품에 안겨, 긴 꼬리를 살랑이는 밀색 털뭉치는 바로 그가 키우는 리트리버였다. 영특한 이 아이는 아침 8시가 넘어가면 달려와 제 주인을 깨웠다. 처음엔 이런 걸 어디서 배웠냐며 당황하던 그도 이제는 익숙하게 제 반려견을 맞이하고 잠에서 깨기 시작했다.

그가 반려견의 등을 토닥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결코 작지 않은 반려견의 무게가 더해지자 안 그래도 비몽사몽하여 느린 걸음이 더 느려졌다. 힘겹게 발걸음을 뗀 그는 거실로 나와 반려견을 제 발치에 내려놓고 나서야 비교적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에이치, 너, 운동 좀 해야 겠다.”

나도 좀 해야 겠고. 반려견, 에이치는 제 형의 중얼거림에 혓바닥을 내민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둥한 얼굴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잠시, 고개를 내저은 그가 간식을 줄이겠다고 통보하자 알아듣기라도 했는지 에이치가 끼잉, 울음소리를 내며 바짓춤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안돼. 진짜 안돼, 에이치. 알잖아. 너도 나도 운동해야 돼. 끼잉. 말대답이라도 하는지 울음소리가 들렸으나 그는 외면했다. 간단하게 세안을 하고 나온 그가 에이치의 밥그릇에 사료를 채워주곤 자신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원체 식사를 가볍게 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라 그런지 아침 식사는 정말 간단했다. 간밤에 미리 끓였다가 식혀둔 스프를 데우고 얼마 남지 않은 식빵을 챙겨 토스트기에 집어넣었다. 요리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다지 요리를 잘하는 것도 아니라서, 이럴 때면 자신이 소식가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간단한 아침 식사가 끝나자 옷을 갈아입고 거실 서랍장에서 목줄을 챙겼다. 목줄을 꺼내기 무섭게 에이치가 제게로 달려오자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산책이 그리 좋니. 왕! 에이치의 당찬 대답에 그가 목줄을 채워주며 헛웃음을 흘렸다. 산책 시켜줄 때마다 제 형이 지쳐가는 건 아는지 모르는지.

“자, 에이치. 가자.”

에이치는, 그가 머글세계로 내려와서 가장 처음 만난 존재였다. 도망치 듯 달려온 머글세계였지만 막상 도착해서는 이도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기만 했더랬다. 그때 골목에 버려진 상자 속에서 홀로 끼잉 거리는 어린 리트리버를 발견했다.

무슨 사정이 있건 버려졌다는 사실은 분명했고 그 사실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어린 강아지를 외면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그는 그 아이를 품에 안아들었다. 제가 버려졌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순둥한 얼굴의 어린 리트리버는 저를 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그 웃는 얼굴이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에이치는 알까? 아직 제 몸 건사하기도 바빴는데도 그는 강아지를 키워야 겠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네 이름은, 에이치(H)라고 하자. 누가 들으면 성의없는 작명이라고 욕할 이름이었으나, 그렇게 아직 적응도 못한 머글세계에서의 동반자가 생겼다.

덕분에 그는 머글세계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머글 세계에서의 생활은 솔직히,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 생활이 더 잘 맞았다는 게 더 옳을 것이다. 그는 마법사면서 마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같은 마법사는 물론이오, 마법 세계까지도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할 구석이 보이지 않았다기 보다는, 좋아할 맘이 들지 않았던 것이 더 가까울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에 조금―아니, 어쩌면 많이―모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마법 세계로부터, 마법으로부터 도망쳤다. 마법사는 물론이오, 마법 세계와 마법에 질려있었고 더이상 마주할 용기도 없었다. 그는 사자였지만 용기가 없었고 겁쟁이였다. 돌아갈 용기는 더욱 없었다.

그러니 그가 그곳으로 돌아가는 일은 영원히 없으리라.

그리 여겼다.

돌아갈 수 없게 될 가능성은 생각치도 못하고.

제일 먼저 인기척을 느낀 것은 에이치였다. 산책을 마치고 공원을 나설 때부터 누군가가 그들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에이치가 갑자기 조용해지자 이상하게 여긴 그는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가 수상한 그림자를 발견하고 다시 앞을 보았다.

지금이 중세도 아니고, 이 머글세계에서 로브를 입을 건 뭐람. 그렇게 생각이 들자 머리를 스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설마. 그러나 그는 만약을 대비해 집이 아닌, 근처 골목길로 들어섰다. 자신이 들켰다는 걸 아는지 수상한 그림자가 품에서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스투페파이. 작은 중얼거림이었으나 그것이 원하는 바는 명확했다. 그 일련의 과정을 에이치는 놓치지 않았다. 멍! 에이치는 망설임없이 제 형에게 몸을 던졌다. 미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그의 몸이 바닦으로 기울었다. 에이치의 무게를 못 이겨 엉덩방아를 찧었으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곧바로 몸을 일으킨 그가 길목을 막아선 그림자를 노려보며 걸음을 뒤로 물렸다. 누구냐고 묻는 것은 사치였다. 먼저, 그것도 마법으로 공격했다는 것은 상대가 그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증거였고 그는 마법세계에서의 적이 많지 않았다. 상대의 옷소매 틈새로 해골 문양이 보이자 짐작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저 하나 죽이자고 머글세계까지 쫓아온 집념을 칭찬해줘야 할지, 욕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제 발치에서 에이치가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제 품을 뒤적거렸다. 머지않아 그가 아, 하고 탄식을 내뱉으며 손을 멈췄다. 나 지팡이 안 들고 왔지? 그는 처음으로 지팡이를 챙기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아니, 이게 제 잘못인가? 여기가 마법세계도 아니고 머글세계인데. 어느 누가 머글세계에서 마법으로 습격을 한단 말인가. 머글에게 들키는 건 둘째치고 제일 먼저 마법부가 가만히 있지 않을텐데. 물론 안일하게 지팡이 없이 나온 건…… 제가 잘못한 게 맞았다.

아, 진짜. 왜 제 팔자는 이 모양인지. 신경질적이게 제 머리를 헝클인 그가 에이치를 등 뒤로 숨겼다. 여기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에이치만은 지키리라, 다짐하며. 그러나 지팡이도 없이 무엇을 할 수 있으랴. 그 모습을 비웃 듯 그림자가 그들을 향해 주문을 외웠다.

눈 앞에서 선명한 녹빛이 번뜩였다. 어두운 골목을 빛은 녹빛을 보며 그는 에이치를 품에 끌어안았다. 미안해, 에이치. 주인을 잘못 만나서 너까지 험한 일을 당하는 구나.

미안해.

숲이 눈을 감았다. 이윽고 종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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