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pinus Paradisus

1. 해리 포터 (1)

Lupinus Paradisus | Chapter 1. 녹음의 기적

* 앤컾의 원작 서사가 보고 싶어서 쓰는 글.

* 친세대의 시온 포레스트가, 헤이즐 포스터와 해리 포터가 있는 현세대로 트립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룹니다.

* 원작 소설의 흐름을 따라가되, 헤즐시온(앤컾)의 서사에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원작 파괴…)

* 하오니 스토리 흐름에 따른, 원작 스포일러에 주의하세요.

* 원작 파괴 주의. 캐붕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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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편 | https://glph.to/qxnskn

Lupinus Paradisus

늑대의 낙원

Chapter 1. 녹음의 기적

1. 해리 포터 (1)

ⓒ유엘쓰(@Scarlet_Express)

어김없이 그를 깨운 것은 에이치의 짖는 소리였다.

에이치, 그만 깨워.

어차피 우린… 어차피…

어라?

그는 눈을 뜨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어딘지 모를 고통이 느껴졌으나 차마 그를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사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에이치였기 때문에 다른 걸 신경쓸 겨를이 있을 리가 만무했기에, 그가 제일 처음 한 것은 에이치를 살피는 것이었다.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에 안도하기도 잠시, 그는 큰 위화감을 느꼈다.

‘분명 저주를 맞지 않았나? 왜 살아있는 거지?’

그가 살아있다고 생각한 것은 그가 있는 곳이 지옥이나 천국같은 곳이 아니라, 머글세계였기 때문이다. 혹자는 편견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지옥이었다면 새까맸을 테요, 천국이었다면 새하얬을 테니까. 그럼, 왜 마법세계도 아니고 머글세계라고 확신했느냐면.

마법세계에는 머글세계에나 있을 법한 놀이터라던가, 큰 간판이라던가, 길가에 나뒹구는 쓰레기통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 덥디 더운 긴 로브나 우스꽝스러운 고깔 모자가 보이지 않았으니 확실한 것이다.

남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저주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전혀 없는데. 머글세계인 것은 알아도 머글세계의 어디인지 짐작가는 바가 없어, 그가 어색하게 머리를 긁었다. 근처 표지판을 보아도 거리명이 적혀있었지, 도시명이 적혀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프리빗 가 4번지.

…물론 표지판을 본다고 어딘지 알아낼 만큼 지리에 빠삭한 게 아니라서 어딘지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 순간이동이, 상대가 노린 것인지 아니면 우연인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이곳에 가만히 있는 것은 그에게 도움되지 않는 일이었다. …알고는 있지만 알고 있는 것과 그걸 실행하는 것은 다른 일인지라, 너무 당황한 탓인지 그는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니 아이를 만나게 된 것은 지극히 우연이었다고, 그는 회상하며 단언했다. 애초에 도망치 듯 나온 마법세계였다. 그 이후로 소식이란 소식은 거의 단절하다시피 살았기에 아이가 여기 산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사실… 알았다 하더라도 그닥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다.

벤치에 앉아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이상했던 건지, 수상했던 건지―아마 둘 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아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저기… 아저씨? 아니면… 형? 여기서 뭐하세요?”

“나? 나는… 길을 잃었어.”

거짓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표지판을 읽어도 어딘지 모르는데 무작정 움직여봤자 길을 잃었을 게 뻔했으므로. 그렇게 생각하며 무심코 대답한 순간. 그 어린 목소리에 고개가 돌아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아이의 얼굴을 본 그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아이의 곱슬머리가 지나치게 익숙했다. 거기엔 둥근 안경도 한 몫 했다. 곱슬머리에 둥근 안경이 희귀한 것도 아닌데도 무시하지 못한 이유는, 제 학창시절의 절반을 흑역사로 보내게 만든 장본인과 닮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설마. 사촌 동생이라 하더라도 그 녀석 사촌이 이런 머글 마을에서 살고 있겠어?

“그러는 넌 여기서 뭐하는데?”

“저요? 그게 왜 궁금하세요?”

웃긴 놈일세.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말하는 것도 제임스 그 놈을 쏙 빼닮았네.”

“저희 아빠를 알아요?”

“저희 아빠라니… 네 아빠가 누군데.”

“제임스 포터요.”

“…네가 제임스 포터 아들이라고?”

이게 뭔 소리야. …말도 안돼.

왜 말이 안돼요?

아이의 물음에도 그는 쉬이 대답할 수 없었다. 그가 기억하는 제임스 포터의 마지막은 릴리 에반스와 결혼했다는 소식이 전부였다. 그 마저도 여동생이 전해준 소식이었기 때문에 알고 있는 거지, 그게 아니었으면 몰랐을 것이다. 아빠를 아시냐는, 아이의 물음은 새까맣게 잊은 채였다.

“…네가 몇 살인데?”

“11살이요.”

아니, 닮았다고 생각은 했다만 사촌일 줄 알았지. 아들이라곤 생각도 안 해봤다. 11살이라니. 아무리 결혼하자 마자 임신하였다 해도, 이제 겨우 1살이 되었을 텐데. 11살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때문에 그는 아이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의 머릿속을 스친 생각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지금 몇 년도야?”

“1991년이요.”

“…1980년이 아니라?”

“네? 지금은 1991년이에요.”

1991년. 그가 살던 시기는 1980년이었는데. 지금이 1991년이란다. 솔직히 말이 안되는 얘기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가 믿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러면 모든게 말이 되기 때문이었다. 제임스 포터의 아들이라 주장하는 저 아이가 11살이라는 사실이.

그럼, 진짜 11년이나 지났다고? 그냥 순간이동이 아니라, 시간까지 뛰어넘었다고?

그는 자신이 11년의 세월을 뛰어넘어왔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런 마법은 듣도보도 못했고 이런 일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는 것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그가 한동안 말이 없자 아이는 조금 걱정이 됐는지 그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과 아이의 눈동자로부터 릴리 에반스를 본 그는 제가 처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아이는 분명 제임스 포터와 판박이였지만, 그 눈동자만큼은 릴리 에반스와 똑같은 녹색 눈동자였기 때문이었다.

“아가…가 맞나? 아무튼. 이름이 뭐니.”

“해리요. 해리 포터. 아저…, 아니, 형은요?”

“됐어, 아저씨면 돼. 난 시온… 포레스트란다.”

아이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을 깨닫고 뒤늦게 아이의 이름을 물어본 그는, 해리 포터의 되물음에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시온 포레스트. 실로 오랜만에 입 밖으로 꺼내보는 이름이었다. 머글세계로 내려온 이후, 그는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았으므로 자연스레 이름을 말하는 일도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해리. 넌 여기서 뭐하고 있니? 네 아빠나 엄마는 어쩌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 아이가, 해리 포터가 제임스 포터와 릴리 에반스의 아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왜 두 사람의 아이가 머글세계에 있는가? 제임스 포터는 몰라도, 릴리 에반스가 제 아이를 혼자 내버려둘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거기에 해리가 조금 남루한 차림이라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무슨 얘기를 하…… 시온 형, 혹시 몰라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 형이, 시온 포레스트가 제 아버지와 아는 사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부터. 지금이 몇 년도냐고 묻지를 않나, 자기를 보고 놀라지를 않나. 게다가 아버지를 성까지 붙여서 부르는 건 둘째 치더라도, 마치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듯이 말하는 것이.

시온의 물음을 들었을 때, 해리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이 사람, 시온 포레스트는 제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걸 모르고 있다고. 마치 한동안 소식을 끊고 산 사람처럼.

“………”

“해리? 왜 그래? 혹시 부모님하고 싸웠어? 그래서 집을 나온 거야?”

“…시온 형. 우리 부모님은, …돌아가셨어요.”

“…뭐?”

해리의 말은 시온에게 큰 충격을 선사했는데, 더 충격적었던 것은 세심하지 못해서 그 사실을 아들인 해리 입으로 말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순간 너무 놀란 시온이 급히 바닦에 무릎을 앉아 해리와 눈을 마주보며 사과했다.

“해리, 미안해. 정말 미안해.”

“…왜 형이 사과해요?”

“그걸 네 입으로 말하게 해서 미안해.”

설마 소식을 단절하고 산 대가가 이렇게 돌아올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시온은 제 사정을 설명하는 대신 해리를 끌어안고 그 등을 토닥여주었다. 시온이 끌어안자 놀라던 해리는, 이내 따뜻한 품을 느끼며 처음으로 어른의 품에서 울었다. 제 품 안에서 우는 아이를 토닥이며 시온이 속으로 울음을 삼켰다.

해리의 말을 시온은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로 두 사람이 죽었다는 걸. 그렇지 않고서야 해리 혼자 머글세계에 있는 것이 설명되지 않았다. 살아있었다면 해리가 머글세계에 있지 않았을 것이고, 애초에 해리가 이렇게 남루한 차림이 되도록 내버려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때 한동안 조용히 있던 에이치가 해리의 다리에 제 몸을 부비며 해리를 위로하 듯이 낑낑 거렸다. 그제서야 에이치의 존재를 떠올린 시온이 미안하다며 에이치를 쓰다듬었다. 마찬가지로 에이치의 존재를 깨달은 해리도 울음을 멈추고 에이치를 바라보았다.

“…에이치야.”

“쓰다듬어봐도 돼요?”

“응. 대신 조심해서 살살 쓰다듬어야 해.”

예전부터 영특한 아이였던 에이치는 이번에도 눈치있게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린 모양이었다. 해리의 쓰다듬을 받으며 꼬리를 흔드는 에이치와 웃으며 에이치를 쓰다듬는 해리를 바라보던 시온의 표정이 희미하게 굳었다.

해리가 머글세계에 있다는 건, 포터 가문에도 무슨이 생겼다는 뜻이겠지. 그럼, 릴리 에반스의 언니라던 사람이 맡고 있는 건가? 릴리에게 들었던 얘기들을 떠올리며 시온이 미간을 찡그렸다. 대체 뭘하면 아이가 이 꼴이 되게 내버려둔단 말인가? 이쯤되면 무관심을 넘어, 학대였다. 학대라면 넌덜머리가 날 정도로 싫어하는 그이기에 절대 좋은 말을 골라낼 수가 없었다.

이름 밖에 듣지 못한, 릴리의 언니를 떠올리며 시온이 속으로 이를 갈았다. 당장이라도 찾아가서 일을 칠 기세였던 시온을 막은 것은 해리의 목소리였다. 에이치를 쓰다듬던 해리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희 아빠랑… 친구였어요?”

“…그을쎄? 친하긴… 친했을 걸?”

“…그러면, 시온 형도 마법사에요?”

“…응. 마법사지.”

한동안 마법과 거리를 두고 살았다보니 스스로 마법사라고 말하기가 조금 양심에 찔렸으나 틀린 말은 아니니까 당당해지기로 했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했지만 시온은 생각 이상으로 뻔뻔한 편이었다. 해리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알 수 없어, 시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어진 해리의 말은 간신히 제정신을 차렸던 시온에게 두 번째, 세 번째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더즐리 부부의 학대부터 리틀 더즐리의 만행과 자신이 마법사라는 걸 몰랐던 것이며, 얼마 전에 해그리드가 찾아와 입학 편지를 전달해준 것까지.

이야기를 듣는 시온의 표정 변화가 제법 볼 만 했다. 미간이 일그러지더니 화를 참는 듯이 이를 악물었고 사실을 숨긴 부분에서 주먹을 쥐었다. 입학 편지를 전달받았다는 부분에선 안도했고 그걸 전달해준 것이 해그리드라는 말에는 놀랐다. 해그리드, 아직 호그와트에 있구나. 그리고 해리가 왜 이 이야기를 꺼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해리. 나랑 같이 갈래?”

“…네?”

아, 실수했다. 무심코 튀어나온 얘기에 시온이 아차하며 입을 다물었다. 머글세계에서 살던 곳으로 찾아가자니, 시간을 11년이나 건너와서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퍽이나 찾아가겠구나 싶었다. 이런데 잘도 애를 책임지겠다. 그러나 특유의 포커페이스로 티내지는 않을 수 있었는데, 그 덕분인지 해리의 눈이 반짝였다.

“정말요? 정말 같이 가도 돼요?”

“…당연히 되지.”

이제 와 안되겠다고 말할 수 있으랴. 해리의 눈이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찬 것이 꼭 어릴 적의 자신을 떠올리게 만들어서, 차라리 마법세계로 돌아가 책임지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시온의 대답에 해리는 미소지었다. 왜인지 시온은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뒤늦게 아차 싶었던 것은, 이 일을 더즐리 부부에게 어떻게 설명하는가 였다. 해리로부터 그 걱정을 들은 시온은 처음으로 미소지었는데 해리를 안심시키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본인의 속마음을 숨기기 위한 것도 있었다.

“괜찮아, 해리. 얘기하면 되지. 대화는 모든 걸 해결하는 법이야.”

“그래도 될까요?”

“응.”

안 그래도 그 면상 어떻게 생겼나, 보고 싶었거든. 물론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괜히 해리에게 나쁜 말을 가르칠 이유가 없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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