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잊혀진 자 (1)
Lupinus Paradisus | Chapter 1. 녹음의 기적
* 앤컾의 원작 서사가 보고 싶어서 쓰는 글.
* 친세대의 시온 포레스트가, 헤이즐 포스터와 해리 포터가 있는 현세대로 트립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룹니다.
* 원작 소설의 흐름을 따라가되, 헤즐시온(앤컾)의 서사에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원작 파괴…)
* 하오니 스토리 흐름에 따른, 원작 스포일러에 주의하세요.
* 원작 파괴 주의. 캐붕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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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pinus Paradisus
늑대의 낙원
Chapter 1. 녹음의 기적
4. 잊혀진 자 (1)
ⓒ유엘쓰(@Scarlet_Express)
시온은 고민했다. 알버스 덤블도어를 찾아가는 게 좋은 일 일까? 시온 포레스트는 알버스 덤블도어를 믿지 않는다. 그것은 덤블도어 본인도 잘 아는 일이라 그도 시온이 찾아올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사안이 사안인지라 그를 아예 만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저 그것이 오늘인가 다음인가의 차이일 뿐. 그렇다면 가능한 다음으로 미루는 것이 시온의 성정이었다. 그 양반 얼굴 보고 싶지도 않고. 싫은 것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시온 다운 결정이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해리가 있을 땐 해리를 안심시키기 위해 부정적으로 파고들 여유가 없었다. 해리가 호그와트에 가고 없는 지금, 안타깝게도 시온의 생각이 부정적으로 튀는 것을 막아줄 것도, 사람도 없다. 시온 포레스트라는 인간은 태생적으로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사랑을 믿는 법을 잃어버린 채 태어난 아이는 그것을 다른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었다. 그러다 채우는 것조차 귀찮아질 즈음이면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이 튀었다─클라우스 토닉은 그것이 시온의 나쁜 버릇이라며 웃곤 했다. 대체 어디가 웃음 포인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 클라우스.
시온의─쓸데없이 뛰어나게 선명한─기억 속에서 클라우스 토닉을 찾아내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이야 포레스트라는 성을 달고 있지만 시온의 진짜 성은 토닉이었으니. 그러니까 클라우스 토닉은, 시온의 사촌이었다. 시온과 같은 피가 흐르는, 진짜 가족―그렇다고 시온이 지금의 포레스트를 가짜 가족이라 생각한다는 것은 아니다―이었다.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몰라도 먼저 아는 채 한 것은 클라우스였다. 그걸 보고 무슨 생각을 했더라. 불필요한 것은 의외로 잘 잊는 덕분에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뭐, 나중에 펜시브라도 들여다본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몸에 습관처럼 벤 걸음으로 집까지 알아서 돌아왔던 시온은 고민 끝에 그대로 몸을 돌려 다시 길을 나섰다. 시온의 머리가 빠르게 자넷이 전해주었던 정보를 떠올렸다. 시온의 인간관계를 살펴보면 의외로 사람이 많았다. 마냥 좁지도, 그렇다고 넓지도 않은 인간관계 안에서 시온이 마음을 털어놓는 사이는 손에 꼽는 편이었다. 비관적인 본인의 성격을 아는 탓이었다. 이걸 감당 가능한 인간이 몇 이나 될 것 같은가. 성인이 되다 못해 이제는 주름까지 생겼을 지금이면 몰라도, 또래 학생─게다가 호그와트에 입학할 수 있는 나이는 최소 11살이다─에게 그런 게 가능하겠는가? 그리하여 시온은 정말 극소수의 아이들에게만 제 우울의 일부를 드러내보였고 그 심사를 통과한 몇몇은 그대로 시온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자넷이 건내준 정보는 그 몇몇 안되는 친구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시온의 친가에 대한 것도 포함해서.
아무튼 각설하고. 잠시 마법세계의 상식에 대해 얘기하자면.
순수 혈통, 그 중에서 유별난 집착을 선보이는 블랙 가문은 그리몰드 광장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들의 행보가 우습게도 정착한 곳은 머글세계였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유명한 말포이는 윌트셔 지방에 뿌리를 내렸고 말이다. 그리고 이들만큼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그의 포레스트 가는 몬트로즈 지방에 자리잡고 있다.
이 얘기를 왜 하느냐면, 토닉 가는 이제 그 저택이 없기 때문이다. 아, 정정하겠다. 한 때는 있었다. 시온이 기억하기로는 시온이 마법세계를 떠나던 1975년의 여름까지만 하더라도 에버펠디 지방에 있었다. 그러나 자넷이 전해준 정보에 의하면 그 이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저택이 뜨거운 불꽃에 휩싸여 잿더미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그만한 저택이 사라지려거든 방화 말고는 설명이 안되나 아무리 마법을 써도 불이 꺼지지 않더라, 라는 보고를 보아 악마의 불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악마의 불로 저택이 불타면서 가주의 탕진으로 재산이 얼마 남지 않았던 토닉 가는 사실 상 멸문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고 점차 사람들에게서 잊혀졌다고 한다. 실로 토닉 다운 말미末尾 라고 할 수 있겠다.
시온은 거기까지 떠올리고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토닉의 내부 사정을 아는 그로써는 전말이 훤히 보였으나 굳이 짚고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에 남아있던 토닉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였고 자넷은 눈치 좋게도 그걸 다 정리해놓았다. 자넷의 자료에서 리스트를 쭉 훑어내리던 시온은 맨 마지막에 기재된 정보를 보고 피식 웃었다. 전부 다 ABC 순서로 정리했으면서 그것만 순서에 맞지 않게 맨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사이가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디까지나 일방적으로 자넷이 상대를 싫어하는 것이다. 시온도 그걸 알고 있다.
맨 마지막에 기재된 것은 클라우스에 대한 정보였다. 토닉의 몰락을 누구보다 반겼을 클라우스는 여전히 마법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사실 의외였던 것은 그가 힐러가 되었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던 이가 무언가를 시작했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있는 일임이 분명치 않은가. 그러니 클라우스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보통 힐러는 갈 수 있는 길이 두 가지 뿐이다. 흔히 알려져 있 듯이 성 뭉고 병원에 취직하거나 마법부에 취직하거나. 전자는 다 아는 상식이니 재쳐두고 마법부에 취직한 힐러는 대부분 오러들과 페어를 맺어 현장에 나간다. 클라우스는 후자였다. 힐러가 된 것으로 모자라 마법부에 취직했다니. 시온은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여 잠시 걸음을 멈췄다.
이런저런 면에서 클라우스는 시온과 평행선을 걷는 사이였다. 언제든 죽어버릴 것 같던 시온과 달리 클라우스는 살아가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었다. 비관적인 시온 옆에서도 희망이라거나 행복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자신의 가문을 싫어하면서도 대놓고 저주하지는 못했다. 미움받는 걸 두려워하면서 상처받는 건 개의치 않았다. 시온은 그 반대였고.
늘 그랬으니 이번에도 그런 것일 텐데. 시온은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늘어날 때 마다 역시 자신이 틀렸구나, 생각하게 된다. 본인이 맘을 털어놓지 않기에 남의 맘을 묻지도 않는다. 그것이 때때로 독이 된다는 걸 시온도 알고 있다. 알면서도 고치지 못한다. 그리고 반복된다. 이런 면에선 참 학습 능력이 없다고 할 수 있겠지. 알려고 노력하지 않으면서 알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모순적이니까.
눈 앞에 쓸데없이 굳건한 마법부가 보이자, 시온은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비관적인 상념에서 벗어났다. 사족은 이만하면 되었을 것이다. 아니, 하고 싶어도 못한다. 스스로 마법부에 발을 들인다는 사실에 얼굴이 구겨진 시온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킹스 크로스 역이 불편한 곳이라면 마법부는 싫어하는 곳이었다. 시끄럽다거나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 무능해서. 기관의 시스템을 싫어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의 장관은 특히나 더 무능한 사람이라 더더욱 오고 싶지 않았는데.
그런 그를 여기까지 온 이유는 단순히 클라우스 때문이었다. 더 정확히는 가족인 그도 시온을 기억하지 못하는 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시온은 그간 자신이 여기에 오면서 있던 일을 회상했다. 포레스트 가문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포레스트라는 성만 듣고도 그를 출입시켜 줬으니까. 그러나 ‘시온 포레스트’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포레스트에 이런 사람이 있었어? 라는 반응이었다. 큰 충격이 되지는 않았다. 예상했던 일이었으니. 다만 정말 모든 사람이 자신을 잊었을 줄은.
한 때 모두가 자신을 잊어주길 바란 적이 있다. 그렇다고 이 일이 과거, 자신이 바란 것 때문에 벌어졌다기엔 석연치 않다. 아무리 시온이라도 세상 모두의 기억을 지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솔직히 말하자면 그 세상 모두에는 가족들, 즉 포레스트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더더욱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오러 사무국을 찾던 시온은 자신을 힐끔 거리며 바라보는 사람들 턱에 고민을 앓았다. 다짜고짜 클라우스를 찾아갈 수 없으니 오러 사무국을 차는 것이었으나 시선이 너무 신경쓰였기 때문이다. 역시 머리색이 눈에 띄나. 흔한 색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투명 마법을 쓰기엔 여기는 마법부였다. 금방 들킬 것이 뻔하고 이유를 물으면 뭐라 대답하기 곤란하기도 했다. 차라리 그냥 시선을 감내하는 것이 더 이로울 것이다. 아니면 기억을 지워야 하는데 그건 너무 번거로웠다.
시온이 걸음을 멈췄다. 오러 사무국임을 알리는 푯말이 보였다. 자, 그럼. 이제 또 어쩐담. 상담할 게 있는 척 말을 걸어야 하나? 허위 신고를 할 수 없으니 신중히 결정해야 했다.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자고 일에 혼란을 줘서는 안되니까. 한쪽 구석에 기대서서 고민하고 있는데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토닉 가 특유의 창백한 피부에 낯빛 만큼이나 창백한 은발과 라벤더를 연상시키는 보랏빛 눈동자. 그러나 시온이 기억하는 과거보다 더 생기 있어 보이는 얼굴이. 페어로 보이는 오러와 얘기하는 클라우스는 건강해보였다. 그 얼굴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그 순간. 시온의 예민한 신경이 제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을 잡아냈다. 시온이 표정을 굳히며 돌아보자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누군가의 옷자락이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순간이동 …은 눈에 너무 뛰니까 제외하고 포트키인가? 포트키라면 경보까지 울리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 왜? 포트키까지 써서 도망칠 이유가 뭐지? 죽먹자였다면 마법부가 진즉에 소란스러워졌을 테니 오러든 힐러든, 마법부 사람일진데.
시온의 머리가 정체를 추측하느라 바쁘게 돌아가던 순간. 무심코 시온은 다시 클라우스 쪽을 바라보았다. 아. 언젠가 시온이 칭찬했던 보랏빛 눈동자가 이쪽을 바라본다. 눈이 마주치자 시온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지었다. 클라우스는 의외로 유머 감각이 뛰어났기에 그와 있으면 웃는 일이 많았던 탓이다. 척 보아도 누군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가 고개짓으로 인사했다. 다른 이와 대화 중이라 시온에게 다가오지 못하는 듯 했다. 물론 시온 입장에선 그게 더 좋았다. 기억을 못한다면, 시온에게 누구냐 물었을 때 대답하기 곤란하니까.
순식간에 감정의 파도가 밀려왔다. 이렇게, 이런 곳에서 울고 싶지 않아. 시온이 애써 표정을 갈무리하며 도망치 듯이 그 자리를 벗어났다. 확실한 것은 클라우스 토닉은 시온 포레스트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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