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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델금랑] 챔피언 단델의 환상을 보는 금랑 (2020.06.07)

dnkb, 퇴고X

Snapdragon by 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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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있다면 말해도 좋아요."

"맞아, 요즘 너 배틀도 엉망이라며."

금랑의 반대편에서 술을 마셔주는 멤버는 두송이나 야청으로 정해져있다. 특별한 이유랄거까진 없고 주량이 그렇게 쎄지도 않은 주제에 술을 잔뜩 마신뒤 SNS를 하는 버릇이 있는 이 폭탄을 여차하면 가차없이 기절시켜버리는 이른바 폭탄처리반이라 할 수 있다. 어차피 2미터의 거구가 애매하게 취해서 난동이라도 부리면 귀찮아지므로 폭탄주를 말아서 그냥 재워버리기 때문에 폭탄처리반이 아니라 폭탄제조기라고 부르기도하지만 본인들은 이를 명예로이 여기지 않기 때문에 대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간 큰 이는 없었다.

"지금 나님 걱정해주는거야? 기쁘네! 뭐, 배틀은 슬럼프가 아닐까? 나님도 사람인데. 조만간 괜찮아지겠지."

금랑은 진심으로 그들의 호의가 기뻐보였지만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이정도쯤은 예상했는지 야청은 슬쩍 두송의 눈을 맞추고 신호를 보냈다. 야청은 일단 손에 쥔 맥주를 물처럼 시원하게 들이키고 쾅 소리가 날 정도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금랑이 조금 긴장한채로 야청을 쳐다보자 매서운 눈빛과 마주쳤다. 야청의 꿰뚫어보기. 우와, 이건 회피못한다. 금랑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 사이 두송은 자기 옆에 있는 술들을 종류별로 한 컵에 섞고 있었다.

"너는 관장이잖아. 관장이 트레이너들을 걱정시켜서 되겠어? 오죽하면 우리한테 이런 부탁까지 했겠냐고!"

"우리 애들이 그랬어? 알았어, 나님이 더 조심할게."

"대체 뭐가 문제야? 혹시 단델때문이야?"

금랑이 입을 다물었다. 명중률 백퍼센트의 공격. 입을 다무는 걸로 방어에 성공한거 같지만 지금 이 테이블은 야청과 두송vs금랑이라는 2:1의 매우 불리한 조건에서 싸우고 있다는걸 아직 눈치채지 못한거 같다. 두송은 반정도 비워진 금랑의 잔을 슬쩍 옆으로 치우고 아까 자신이 제조한 잔을 그 자리에 바꿔치기하는데 성공하며 야청에게 신호를 보냈다.

"좋아. 말하기 싫으면 그냥 마시고 잊자. 너도 애가 아니니 알아서 할 수 있겠지."

그렇게 세 사람은 짠하고 잔을 부딪혔다. 목울대가 울리면서 꿀꺽꿀꺽 시원한 소리가 났다. 컵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한잔 더 따라주었다. 금랑은 마시지 않으려고 했지만 자연스레 다시 잔이 부딪혔다. 금랑이 어질어질한 머리를 붙잡고 물 좀 마시겠다며 일어나려하자 두송이 금랑 앞에 이미 맑은 유리컵을 내려 놓았다. 

"냉수라도 마셔요."

평소의 금랑이라면 이게 물이 아니란걸 알아챘을텐데 그는 두송의 무심한 배려에 감사하며 물이라고 생각한 무언가를 쭉 들이켰다. 야청과 두송은 시크하게 한쪽손으로 술잔을 쥐고 반대쪽 손으로 서로의 손뼉을 마주치며 완벽한 호흡에 찬사의 말을 아꼈다.

어라? 아까보다 단숨에 열이 오른 금랑이 잔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새끼 취했다. 벌겋게 열이 달아오르기 시작한 금랑을 향해 다시 질문했다.

"자, 이제 대답해봐요. 당신, 요즘 고민이 있죠?"

있기는한데, 꼬부라진 혀로 말꼬리를 늘리던 금랑이 갑자기 실실 웃었다. 손가락 관절 굽혔다 펴며 손을 까딱였다. 가까이 오라는 손짓이다. 있잖아, 이거 비밀이다? 진짜 비밀이다? 몸을 앞으로 빼낸 둘의 귓가에 조곤조곤 속삭이는 목소리는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게했다. 오소소 소름이 돋는 팔을 야청이 거칠게 문질렀지만 몸을 빼내진 않았다.

"나님 요즘 단델이 보여. 목소리도 들려. 조만간 만질수도 있을까? 흐흐."

금랑은 그 말을 끝으로 이마를 테이블에 박고 알 수 없는 신음을 흘렸다. 울음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두송과 야청은 얼굴을 마주본채 눈만 깜빡였다. 

"야! 그게 무슨 헛소리야? 단델이 보이는게 뭐가 어쨌다고!"

야청이 테이블을 부술거처럼 두드리자 다른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던 다른 관장들의 시선이 몰렸다. 주인의 따가운 눈초리를 제일 먼저 눈치챈 아킬이 다가와 그녀를 진정시키는 사이 이미 이쪽의 상황을 파악한 멜론이 다가와 물었다.

"어머, 그게 왜 고민이니? 금랑군은 단델군을 좋아하잖아?"

발음은 비교적 멀쩡했으나 얼굴에 웃음기가 만연한채 달아오른 자신의 어머니를 보며 확실하게 취했다고 파악한 마쿠와도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근처로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 쥐고 있는 맥주잔을 조심스레 빼앗으려 했지만 뜻대로 안되는거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금랑은 여전히 엎어진채로 웅얼거렸다.

"단델이 챔피언 망토를 걸치고 나타나니까."

그 때 문이 열리며 손님이 왔다고 방울이 울려댔다. 망설임 없이 다가오던 가죽구두 소리가 금랑의 바로 옆에서 멈추었다.

"미안, 빨리 오고싶었는데 배틀타워 마지막 도전자가 워낙 강했거든."

단델이 답답한지 크라바트를 아래로 잡아당기며 엎어진 금랑 옆으로 자연스럽게 착석했다. 하하, 금랑은 벌써 쓰러진건가? 대답은 없다. 단델은 금랑이 마시다 남긴 잔을 자기쪽으로 끌어 마른 목을 축였다.

"다들 무슨 일 있어?"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단델이 갸웃거리며 물었지만 가게 안은 찬물 끼얹은듯 조용했다. 야청도 얌전히 자리에 착석한채 금랑을 노려보았다. 

이거 비밀이다? 단델한테는. 두송은 남은 잔을 마저 비웠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 * *

깨어난 금랑은 비틀거리며 화장실까지 기어가 변기를 붙잡고 뱃속부터 구역질을 해댔다. 와, 죽겠다. 그런 금랑을 단델이 비스듬히 문에 기대어 쳐다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하하, 금랑이 헛웃음을 지으며 내려다보는 단델과 눈을 맞췄다. 그래, 너는 언제나 나님을 내려다봤지. 끝없이 높은 곳에서 언제나 계속

기다려줄거라고 생각했어?

10년을 쫓았다. 챔피언 망토를 걸치고 있는 너를 끌어내리고 싶었다. 나님이 올라가지 못한다면 너를 끌어내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챔피언이 탄생하고 단델은 망토를 벗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채 앞으로 나아갔다. 금랑은 여전히 제자리였다. 최근 성적부진으로 안그래도 좋지않은 여론이 더 심해졌다. 새로 부임한 마리나 비트에게도 번번히 패배하고 있는 실정에 모두들 하나같이 금랑에게 남은건 내리막길뿐이라고 이야기해댔다. 닿지 않을 너를 따라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왔는데 내리막길이라고? 과연 그럴까?

금랑은 찬물로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머리가 아프고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지만 착실하게 포켓몬들의 식사부터 챙겨주고 어제 끊어진 필름을 다시 이어붙이기 위해서 SNS에 먼저 접속했다. 다행히 자신이 2차를 가기 전에 남긴 게시물이 마지막이었다. 오 아르세우스여, 감사합니다! 과한 동작은 머리를 울리므로 금랑은 최소한으로 기쁜티를 내듯 주먹만 살짝 말아쥐며 알림이 들어와있는 메시지창을 열었다.

- 금랑님 제가 키우는 식물을 좀 보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 시간 좀 내줄래?
- 일어나면 연락해! 당장!
- 당신 어제 했던 말 무슨 뜻입니까?
-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마세요.

차례로 아킬, 멜론씨, 야청, 두송, 마쿠와에게서 온 메시지를 읽으며 금랑은 양 손으로 얼굴을 묻었다. 오, 아르세우스여! 이거 비밀이다? 단델이 보여. 챔피언 망토를 걸치고 나타나니까. 자신의 목소리가 천천히 떠올랐다. 아아 차라리 죽게해줘. 챔피언 망토를 걸친 단델이 위로하듯 금랑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귓가에 무언가 중얼거렸다. 금랑은 한 손으로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린 뒤 간지러운 귓가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건 안들켰으니까 상관없나."

* * *

아킬은 미니화분 몇 개를 전해주며 로즈마리나 라벤더, 레몬밤 등 이름과 효능, 어떻게 돌봐야하는지 꼼꼼히 적힌 쪽지를 전해주며 심신안정에 도움을 줄거라며 위로해주었다. 멜론은 금랑을 안아주며 토닥여주었다. 함께 찾아온 마쿠와는 명함을 건네주었다. 키르쿠스 마을의 정신과 의사 명함이었다. 멜론은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며 걱정스레 말했다. 마쿠와도 입이 무거운 사람이라고 거들었다. 그들의 호의를 감사히 받고 배웅해주었다. 야청은 두송과 함께 왔다. 

"언제부터입니까."

"글쎄. 단델이 배틀타워 오너가 된 직후려나."

"너! 왜 말 안했어!"

야청이 속상한듯 소리쳤다. 너희가 이럴까봐. 자신에게 화내는게 아니란걸 알기 때문에 금랑은 어른스럽게 그 말을 홍차와 함께 삼켰다. 10년을 쫓아가던 라이벌이 사라졌다고 갑자기 그의 환영을 본다니. 그게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있었고 그래서 말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웃고 행동하고 말했지만 금랑의 배틀성적은 끊임없이 추락했고 그의 비난은 단델이 챔피언이던 시절보다 더 자극적으로 소비되었다. 이상하지? 단델은 여전히 존재하는데 어째서 나님의 목표는 사라져버린걸까? 포켓몬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트레이너들이 금랑의 상태를 모를리가 없었고 그들은 금랑과 제법 친하게 지내주는 짐리더들에게 부탁을 했더랬다. 숨기지 못하고 걱정시킨 나님탓이지 뭐. 

"단델도 알아?"

"그럴리가요."

"죽어도 말하지마. 나님이 죽어도 절대로 말하지마."

야청이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한숨을 쉬었다. 두송은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불만을 티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본 금랑은 눈빛을 풀고 사람들이 으레 후냐하다고 표현하는 미끄메라의 웃음을 지어보았다. 그렇게 무서운 얼굴 하지마. 

"안그래도 멜론님이랑 마쿠와가 다녀가면서 믿을만한 의사를 추천해줬어. 상담도 받고 치료도 받을거야. 그러니까 단델한테는 말하지마. 아, 우리 트레이너들한테도 비밀로 해줄꺼지?"

결국 두 사람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야청은 윗니로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금랑이 그녀의 눈 앞에 손가락을 튕기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야청, 넌 모델이잖아. 그녀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입을 뻐끔거렸고 금랑은 말해도 괜찮다고 했다.

"혹시 지금도 보여?"

"아니. 계속 보이는건 아냐. 가끔 나타나는 정도?"

그 말에 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두송은 한 손으로는 턱을 괸 삐딱한 자세로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 톡 느리게 두드렸다. 

"너, 목소리도 들린다고 했죠?"

"응."

"단델이 뭐라고 말하던가요?"

금랑은 최근 계속 같은 꿈을 꾼다.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공간에 거울이 하나 놓여져있다. 금랑이 거울 가까이 가면 울고있는 자신과 마추친다. 거울 속에 있어서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이미 같은 꿈을 몇 번이나 겪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대강 입모양으로 알아챌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꿈에서 깨어나 눈을 뜨면 침대 옆에서 다정한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단델이 있다. 그는 항상 금랑의 귓가에 같은 말을 속삭여준다. 금랑은 언제나 화내지도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단델의 환영에 손을 뻗어본다. 잡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실망스럽다고."

그날 밤 금랑은 또다시 거울 앞에 섰다. 여전히 서러운듯 울고있는 자신이 무언가 말하고 있었다. 금랑은 천천히 입모양을 따라해보았다. 거짓말쟁이. 

* * *

"요즘 단델씨랑은 어떤가요?"

금랑은 모로 고개를 기울며 의사에게 물었다. "어느쪽 단델이요?"

"위원장님이요." 

"요즘 안만난지 꽤..."

"피하는 건가요?" 

"나님이 피하는게 아니라…단델이 배틀타워라던가 새로운 챔피언에게 빠져서 그래요."

금랑은 일부러 과장되게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미소지었다. 그말대로 단델은 배틀타워 업무로 챔피언시절 못지않게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익숙하던 일이 아닌지라 조금 벅찬 스케줄을 소화해내고 있었지만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줄 일이다. 신챔피언은 단델 덕에 적절한 휴식을 보장받으며 가라르의 새로운 얼굴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고군분투중이다.

무리해서 만날 필요는 없지만 금랑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는 정신이 있는만큼 지금은 진짜 단델에 익숙해지는게 좋다는게 상담의 의견이었다. 

"챔피언 단델은 어때요?"

"멍 때리는 시간이 늘긴했지만 잘 안보이네요."

금랑은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서 달에 한두번 이상은 키르쿠스 마을에 있는 의사를 만났다. 다른 사람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약속을 잡고 멜론이나 마쿠와의 도움을 받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심리적인 검사부터 시작해 상담을 하는 시간을 가지고 그에 따른 약물치료도 병행하며 의사에게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정말로 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꾸준히 치료를 받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평소 기상시간은 칼같이 지키는 금랑이지만 수면제를 처방 받은 후로는 일어나기 힘든거 빼곤 괜찮았다(가끔 지각을 하는 바람에 트레이너들의 걱정을 사서 더 주의하고 있다). 일어나서도 가만히 멍을 때리긴 하지만 어쨌든 꿈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 건 좋았다. 덕분에 매일 아침 안쓰럽게 바라보던 단델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 저번에 처방받은 약 좀 바꿔주세요. 배틀할 때 반응이 느려져요."

금랑의 직업을 생각하면 배틀할 때 부작용을 주는 약물은 사용할 수 없어서 꽤 까다로웠다. 단 1초라도 금랑은 용납할 수 없었다. 의사는 안된단걸 알면서도 한동안은 쉬는게 좋겠다고 권유 했다. 당연히 거절했다.

* * *

"안색이 왜이래?" 야청은 쇼파에 멍하니 앉아있는 수석관장의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요즘 셀카를 안올리는 이유가 있었구나?" 다클써클이 내려오고 피부가 퍽퍽해진 금랑을 보며 혀를 찼다. "그나마 봐줄만한게 얼굴인데 말이지. 괜찮은거야?"

"그냥 가슴이 좀 답답해."

금랑이 갈비뼈 부근을 쓸어내리며 천천히 숨을 들이마쉬고 내쉬었다. 그런 호흡을 반복하면서도 통증을 느끼는지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원인은 뭐래?"

"스트레스."

야청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약의 부작용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일부러 하지않았다. 스트레스도 원인 중 하나인건 사실이니까. 살인적인 스케줄이라면 수석관장도 배틀타워 오너 못지 않겠지만 그보다 더 염려스러운건 악플이나 안티팬의 자극이다. 언론이나 기사도 심심할 때마다 금랑의 이야기를 가볍게 다루며 공격하는걸 가라르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었다.

"배틀타워엔 무슨 일인데?"

"제출할것도 있고 겸사겸사 단델 얼굴도 보고가려고 기다리고 있어."

"괜찮겠어?"

야청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안다. 상냥하네. 둘이 같이 있을때나 SNS에서 공격당할 때 마냥 웃고 있는 금랑 대신에 야청이 화를 낸적이 잦았다(물론 금랑한테도 화냈다). 걱정시키는건 미안하지만 위로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진심으로 대답할 수 있었다. 

"요즘엔 안보여."

그런거치곤 금랑의 상태가 많이 나빠보인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과도한 수석관장의 업무나 악플, 조회수를 노리는 악질적인 기사 때문이라고 여겼다. 하긴 괜찮을리가 없지. 그래도 보이지 않는다는 금랑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간파한 그녀는 더는 참견 않겠다며 작은 충고만 해주었다. 

"너 아직 휴가 안냈지? 좀 쉬는게 좋겠어."

금랑의 대답을 듣기전 타이밍 좋게 노크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대기실 문이 열리며 배틀타워 직원이 들어왔다. 

"방금 오너의 배틀이 끝났습니다. 금랑님,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야청은 알아서 잘 하라며 가볍게 손짓한 후 모델이 턴을 돌듯 우아한 발걸음으로 먼저 문 밖으로 빠져나왔다. 금랑은 그녀가 나가는 모습까지 지켜본 뒤에서야 느긋한 동작으로 쇼파에서 일어났다. 후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안내를 받아 집무실까지 다다랐다. 직원은 노크를 한 뒤 금랑이 안으로 들어가는걸 확인하고 문을 닫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금랑! 오랜만이네!"

단델은 만년필을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금랑을 반겼다. 방금 배틀을 끝냈다고 보기 어려울정도로 활기가 넘치는 모습엔 지친 기색따윈 찾아볼 수 없다. 금랑은 천천히 단델의 책상 앞까지 다가갔다. 너클짐에 있는 자기 책상과 맞먹을정도로 방대한 서류더미들이 단델의 머리 높이까지 쌓여있다. 

과연, 단델에게 도전자의 배틀은 오히려 적절한 해소법이 되줄터다. 배틀타워라니 정말이지 대단한 녀석이야. 오로지 단델만이 해낼 수 있는 발상이다. 금랑은 순순히 감탄했다. 

"네가 배틀타워에 도전하러 오지 않아서 서운했어."

다짜고짜 돌직구인것도 변함이 없네. 금랑은 입가를 가리고 웃으며 단델에게 서류 몇 개를 건넸다. 천천히 읽고 검토 부탁해요, 오너님. 단델은 얌전히 서류를 건네받고 책상에 올려두었다. 마치 왕좌처럼 보이는 붉은색 쿠션에 황금색 장신구가 달린 등받이 의자에 편안하게(어떻게 보면 거만하게) 등을 기댔다. 금랑. 오너의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일부러 피한거 아냐. 알다시피 이쪽도 수습할게 한두가지가 아닌걸. 최근 쉬지도 못하고 일하고 있으니까 봐달라구."

금랑이 어깨 힘을 빼며 축 늘어뜨렸다. 하긴. 단델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그 모습에 아주 작은 욕심이 일렁였다. 

"오히려 나님 너무 바빠서 다들 걱정한다구. 주변에서 쉬라고 다들 난리야."

거짓말은 아니다. 금랑을 봐주고 있는 정신과의사도 그랬고, 의사를 만나러 갈 때마다 멜론님을 만나 차 한 잔 얻어 마실때마다 쉬는게 좋겠다고 구박을 받았다. 너클짐 트레이너들도 제발 쉬면서 하라고 애원했다. 방금 만난 야청도 휴가라도 가는게 어떠냐고 걱정해주었다. 그러니 금랑이 단델에게 기대한건 아주 작은거였다. 힘들어보인다던가. 그래도 우리 같이 힘내보자던가. 안색이 나빠서 걱정된다던가 하는 그런 말들. 단델에게 들으면 어쩐지 위로가 될 것만 같았다.

"금랑. 엄살피울 때는 아니잖아?"

"어?"

그러니까 이런건 예상에 없었다.

"이제 곧 시즌이라 와일드 에리어에 신규 트레이너들이 많아질텐데 네가 빠지면 되겠어? 너클짐은 트레이너들이 잠시 봐주더라도 보물고는 어떻게 하려고?"

단델의 말은 일리가 있다. 이제 곧 챔피언컵이 열리면 챌린저 신청을 받을거다. 너클짐까지 도달하기는 어려우니 그럭저럭 여유가 있겠지만 와일드 에리어에서 야영하는 초보 트레이너들이 늘거고 그만큼 사고에 대비할 수 있게 금랑이 항시 준비해야한다. 게다가 보물고를 관리할 수 있는건 현재는 금랑뿐이다. 이 시기엔 관광객이 몰리기 때문에 빠질 수가 없다. 그러니 단델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안다. 

알고있지만. 

"당연히 농담이지. 나님이 진짜로 그럴리가 없잖아."

단델이 의자를 책상에 좀 더 당겨앉았다. 단델의 뒷편으로 슛시티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눈이 부시게 밝다.

"역시 금랑이야!"

금랑은 갑자기 저 유리창을 깨고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누가 내리막길이랬던가. 금랑이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발 아래는 절벽처럼 길이 끊어져있었다. 

* * *

일은 늘면 늘었지 전혀 줄지 않았다. 오늘도 무례한 기자들이 찾아왔고, SNS는 조롱으로 가득했다. 와일드 에리어 긴급 구조 협조에 나서고, 보물고를 관리하고, 기획안을 검토하고, 짐트레이너들을 트레이닝 시키고, 포켓몬들을 관리했다.

금랑은 포켓몬들을 회복시키고 몬스터볼로 돌려보냈다. 마지막에 로토무까지 챙기는걸 잊지않았다. 스마트폰을 충전시킨 후 침대 위로 올라왔다. 침대 옆 작은 조명등이 있는 탁자에 물잔을 올려두었다. 거기엔 금랑의 약통도 올려져있었다. 수면제였다. 최근엔 평소 먹는 수면제로도 잘 수가 없어어 좀 더 약이 강한걸 처방받았다. 의사는 약에 의존하는것이 아닌 조금씩 복용을 줄여야한다고 경고했다. 

금랑은 손바닥을 펴고 그 위에 약을 살살 흔들었다. 손바닥에 떨어진 약을 머금고 물을 마셔 목 뒤로 넘겼다. 다시 한 번 약통을 털어 손바닥에 올려진 약을 단숨에 삼켰다. 한번더 약을 먹었다. 다시 한번더. 그 행위는 몇 번이고 반복됐다. 약이 떨어질때까지.

어라? 약이 이거밖에 없었던가? 금랑이 약통을 좌우로 흔들었다. 빈 통에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저번에는 한꺼번에 억지로 먹으려다 전부 토했었지. 속이 전부 뒤집어져 고생꽤나 했던걸 떠올리며 금랑은 조명등을 끄고 베개에 누웠다. 오늘은 괜찮으려나. 

"내일은 쉬고싶다."

금랑은 눈을 감았다. 눈 앞이 깜깜해졌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금랑이 죽었대."

금랑이 죽은 이후 단델은 술만 마시면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해댔다. 원래도 일에 미쳐있었지만 금랑의 장례식 후엔  배틀타워에서 나오지 않을정도였다. 그런 단델을 끄집어낸건 두송이었다.

단델이 배틀타워에 처박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두송은  마이크로 단델의 머리를 부셔버릴지 사랑하는 기타로 아작낼지 고민하다가 둘 다 챙겨 배틀타워로 향했다. 기세좋게 배틀타워에 처들어갔지만 정작 단델은 금랑의 업무까지 도맡아 정말 잠도 안자고 일만 하고 있었다. 그건 마치 생각하기를 포기한 기계같은 움직임이었다.

"저새끼 마지막으로 퇴근, 아니 잠을 잔게 언제죠?"

"장례식 이후로 계속..."

끝말을 맺지 못하는 직원의 말 뜻을 헤아린 두송은 그 직원이 선글라스 너머로 피로해보인다는 걸 알아챘다. 위원장이 저런 상태인데 직원들이 갈려나가지 않을리 없었다. 두송은 마침 이 사람이 수면부족으로 제정신이 아니란걸 알아서 마이크를 건네주고, 본인은 기타를 들었다. 둘은 마지 천상의 호흡을 맞춘듯 동시에 단델의 머리를 후려쳐 병원에 입원시켜버렸다.

"두송, 듣고있어?"

그 이후 두송은 자처해서 가끔 단델을 끌고와 술을 먹였다. 이렇게라도 하지않으면 단델이 배틀타워 밖으로 나올 생각이 없어서 그랬다. 

"네네. 한잔 더 마셔요."

자기 옆에 놓인 술병을 새로 따 단델의 컵에 아낌없이 부어주었다. 안타깝게도 단델은 술 몇 잔으로 뻗어버리는 누군가와는 달라서 아예 곤죽을 만들어놔야했다. 이렇게 먹여도 단델은 다음날 멀쩡한 얼굴로 출근하는 독종이라 걱정따윈 날려버린지 오래다.

"자살 아닌데."

단델은 금랑의 시신을 확인하자마자 타살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금랑은 안티가 많았으니까. 상세히 보도되지는 않았으나 금랑이 우울증이 있었고 정신과약을 복용한 점, 집에 침입한 흔적이나 싸운 흔적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해 약물과다복용으로 인한 자살로 종결지었다. 

그의 기사는 끝없이 1면을 차지하고 징그러울 정도로 하이에나들이 달라붙었다. 금랑에 대한 악플은 지워졌다가 또 새로이 불타기를 반복했다. 금랑은 연고가 없었고 그의 장례는 단델과 짐리더들, 그리고 너클짐 트레이너들이 조용히 처리했다. 그의 생전 행보와는 다르게 조촐하게 이루어졌다. 

"그 말엔 저도 동의합니다."

망할 기자놈들. 망할 안티놈들. 두송은 빈 유리잔에 들어있는 얼음을 잘근잘근 깨부수며 이를 갈았다. 가라르는 금랑의 죽음을 슬퍼하는건지 재밌어하는건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너클짐도 보물고도 문을 닫았다. 언제 다시 열릴지 알 수 없었다.

"그치? 두송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다행이다. 금랑이 이렇게 옆에 있는데 자살일리가 없잖아?"

"네?"

아. 

단델의 안색이 파래졌다. 단델은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분명 말실수를 한거다. 지금 그는 꽤 취한 상태니까. 두송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었다. 술주정이니까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입이 멋대로 열렸다. 

"왜요? 너 금랑이 보이기라도 하나요."

말하고나서 두송은 후회했다. 나도 취했군. 이 잔을 마지막으로 슬슬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미안합니다. 방금건 못들은걸로..."

"맞아. 요즘 금랑이 보여. 목소리도 들려."

'나님 요즘 단델이 보여. 목소리도 들려.'

머릿속에서 적색 경보가 울렸다. 이건 위험하다. 말하지마. 말하지마. 말하지마. 두송은 자기 입이든 단델의 입이든 누구하나 틀어막아야한다고 생각했다. 그치만 그 어느것하나 실행에 옮기지 못한채 술에 젖은 혀가 먼저 내뱉었다.

"금랑이 뭐라고 하던가요?"

'단델이 뭐라고 하던가요?'

그 날, 그 질문을 했던 날을 두송은 기억한다. 금랑이 거짓말을 했다는걸. 금랑은 아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거짓말을 할때면 상대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그 때 시선을 피한채 대답한걸 두송은 굳이 캐묻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와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도 괜찮은걸까? 더이상 금랑은 없는데.

단델이 주먹을 쥐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리듯 입술을 떨었다. 

"내가 죽고 싶어할때마다 금랑이 나타나. 죽지말라고. 그래서 죽을 수가 없어."

죽지마. 죽지마. 죽지마. 죽지마. 죽지마. 단델은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 끝에는 흐느낌밖에 남지 않았다. 두송은 위로의 말조차 건네지 못하고 입술을 닫아야만했다.

'이거 비밀이다? 단델한테는.'

'죽어도 말하지마. 나님이 죽어도 절대로 말하지마.'

금랑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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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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