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속의 개

5회차, 소란 님

B에게 by H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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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데리고 다니지 않는 산책을 한 적이 있는가 한적한 오후 개는 나가지 않겠다고 그림자 속이 아늑하고 시원하다고 그 밖으로 갈 수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야 너 참 고집이 세구나 결국 산책은 숨을 그림자 없는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것 나는 산책을 나왔다가 비어 있는 의자 무리와 마주친다 꽃가루가 의자 위에 소복하다 의자에 앉아도 될런지 허락을 받으려고 하는데 지나가던 누군가 질문도 없이 의자를 거꾸로 돌려 앉는다 불현듯이 돌아선 마음이 든다 그가 밉다! 나는 그에게 달려들어 귀를 문다 눈을 세게 꾹 누른다 입술을 잡아당긴다 한참 구타 당하던 그는 별안간 비명처럼 당신의 그림자에서 개를 봤어 하고 소리지른다 개가 나를 따라나온 것이다 온도를 보는 뱀의 눈처럼 그림자 속 개의 눈은 나를 하나하나 분해하여 선명하게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당황하여 그를 놓아주고 만다 그는 술에 취한 삐에로처럼 허겁지겁 달아나고 돌아선 의자만 덩그러니 남는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 내게도 충분히 아늑하고 시원한 그림자가 있었던가? 발끝을 툭툭 털고 뒤를 돈다 바닥을 본다 없다 아무 것도 들일 자리가 없다 개의 자리가 없다



실수로 이번 주는 시제가 동일하다는 걸 잊고 시를 제출했습니다. 5회 차의 공동 시제는 6회 차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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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댓글 4


  • 즐거운 새우

    사람의 그림자에 숨을 수 있는 개가 그림자가 시원하단 핑계로 산책을 나가지 않았다는 것부터가 복선이었네요 화자에겐 산책을 나가기 이전부터 시원한 그림자가 없었나 봐요 지켜 줘야 하는 존재에게 무례에 무례로 보답하는 자신의 밑바닥을 보여 준 것 같아 굉장히 낯짝이 화끈했을 것 같은데 사실 그건 도망가기 위한 핑계였나 봐요 분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마음에 여유가 없는 자신의 모습에 더 허망함을 느낀 것 같아 어째 기분이 이상합니다 저 같은 경우도 스무스하게 넘길 만한 일에 유달스럽게 화를 내고 있으면 갑자기 지금 내가 불안정한가? 하며 자아성찰하는 타임을 종종 갖곤 하거든요 그리고 그로 인해 불편해했을 주변인에게도 덩달아 미안하고요 그러니 화자도 같이 산책 나오지 못한 개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너무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_ _)

  • 토닥이는 앵무새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 내게도 충분히 아늑하고 시원한 그림자가 있었던가' 이 지점이 정말 좋았습니다! 저는 아주 논리적인 것들보다는... 개연성이 드문 생각을 이어가다 불현듯 무언가 아주 이성적인 통찰이 툭 튀어나오고 거기에서 괴로움을 얻는 사람 사랑 그 여타 모든 것을 애정하는 편입니다. 이 얘기가 왜 나오냐고요? 이 시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속에서는 앞에서 제시했던 일련의 과정들이 일반적이지는 않은, 분열된, 그런 사고들로부터 툭툭 불거져나온 것 같아서 너무 좋습니다. 원래 주제였던 시를 쓰신다면 어떤 글이 나올지도 무척 기대됩니다. 사실 이 주차의 주제와 소란 님의 시가 일정 부분 일치하고 있었기에 저는 주차에 맞는 시를 내셨다고 착각했거든요! '당신의 그림자에서 개를 봤어!', '개의 자리가 없다', ……정말 좋았습니다. 기차 속에서 시를 읽고 멍해진 제가 우스꽝스러워질 정도로 강한 희열을 느끼는 시입니다. . . 감사합니다.

  • 수집하는 나비

    '결국 산책은 숨을 그림자 없는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것' 이 문장이 제 마음에 깊게 들어와요…… 정말정말 좋은 문장이에요…… 화자가 개인지 개가 화자인지 알 수 없는 시의 구성은 의도하신 건지 궁금했답니다 아무래도 개는 화자가 품어야 하는 무언가 그러나 의지를 가진 것처럼 느껴지는 어떠한 감정? 사건? 트라우마? 잘 정의할 수는 없지만 그런 무언가들이 떠오르네요 결말에서 개와 화자가 결국 이어지지 않는데 묘사되지 않은 먼 미래에는 그들이 함께 산책할 날이 올지 아니면 이대로가 엔딩일지 궁금해지는 시예요 잘 읽었습니다!

  • HBD 창작자

    개! (반응함) 저는 시어로 나오는 개를 정말 좋아한답니다. 아니 사랑한답니다. 그래서 소란 님께서 시를 전달해 주셨을 때 전문을 읽기 전부터 무척 기대하고 있었어요. 쭉 이어지는 글은 뭐라고 할까요, 통상적인 시, 보다는 꿈의 내용을 옮겨적은 것처럼 느껴졌답니다. 이게 시가 아니라는 비난을 하겠다는 게 절대 아니고요, 아침에 비몽사몽 일어나서 무슨 꿈을 꾸었는지 마구 휘갈기는 그런 느낌이 들었거든요. 어어 이렇게까지 때린다고? 괜찮은 거야?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읽었네요. 전 다른 것보다 마지막 구절이 참 좋았습니다. 아무 것도 들일 자리가 없고 개의 자리가 없다는 것은 화자의 마음에 여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렇게 쉽게 타인을 구타할 수 있던 게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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