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5회차, 마멜 님
5월의 마지막 주제 <유령이 된 나는 어디로 가면 좋을까>
귀에 꼭 맞는 이어폰이 없어
자꾸 네 음성이 미끄러져 네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어
그 사실을 견딜 수 없어 도망쳤는데
너 없으니 언어도 세계도 육체도 없구나
없다는 건 너무 이기적이지 않아?
없어진다는 거?
아니 없다는 거 내 손에 쥘 수 있는 전부가 멀리멀리 있다는 게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거
넌 끝까지 이유를 말하지 않았고 나는 골똘해졌다 하지만 난 견딘다는 게 더욱 타인을 배제하는 행위 같다 오로지 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네 우쭐한 분위기에 올라타는 것이니까 그래서
모든 걸 독점하니까 내가 그를 없다고 선언하면 그것은 없음의 몫이 된다 얼마나 많은 자들이 그에게 내어주며 살아왔을까
내가 아닌 아이에게 궤변을 늘어놓는 너의 목을 조르고 싶다
그러나 나는 없음에게 이미 손과 발을 빼앗겼고
이 세계는 드넓어!
과시하며 외치는 입술을 통과해 꽉 막힌 벽돌담을 넘는다
보이는 건 10년 묵은 이웃집의 치정 소문 아이들의 하얀색 크레파스 누군가의 분노로 난도질 된 벽 사이를 흐르면 그 애의 낭창한 주장도 어쩐지 힘 있게 느껴진다
미치도록 자유하다
네 입술에 장단 맞추지 않고 영혼에 제약을 걸지 않는 건
너무 자유로워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져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자유가 ‘없다’ 하고 싶다는 것
수 천 번 귓가에서 굴러 떨어진 그의 말을 주워 삼키고 싶다는 것
지구를 등지고 의기양양한 얼굴을 견디는 건 나여야만 한다는 것
질린 숨소리를 다시 재생하려 돌아가는 나를
이 비상식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네가 새롭게 정의해준다면 얼마나 기쁠까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4
즐거운 새우
자유가 없다는 얘기는 아무래도 자유가 이기적이라는 얘기가 맞을까요? 화자는 이기적인 행동을 굉장히 싫어하는 것 같아요 (물론 모두가 그러하겠지만요) 적어도 너라는 사람에게만큼은 견뎌지고 싶지 않고, 배제당하고 싶지 않아서 목을 조르다가 결국 먼저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게 편할 것이라 간주해 죽은 것만 같아요 그래놓고 곁에서 존재하겠다 말하는 건 이기적으로 행동한 게 마음에 걸려서일까요? 아마 이런 것도 충분히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화자는 화자대로 청자는 청자대로 이 사실을 부인할 것만 같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그래서 결국 청자는 화자의 아이러니하지만 분명한 감정을 사랑이라고 정의해 주지 않겠죠 오히려 숨이 붙은 채로 둘의 관계를 정의했어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청자의 목숨이 전에 기쁨이 화자를 찾아올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토닥이는 앵무새
굉장히 미묘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노래를 틀고 처음 한 줄을 읽었을 때 너무 청명한 소년의 목소리와 레몬 냄새가 나서 좋았습니다. 저만... 저만 그런 걸 느낀 게 아닐 것 같아요!!! 없다는 건 너무 이기적이지 않아? 삐죽 솟은 입술. 되묻는 말에 덧붙이는 추가적인 답변은 꼭 처음 그가 가졌던 불퉁한 말투와 달리 약간은 주눅이 든, 이해받지 못할 것을 예견하고 말하는 듯한 산산함. 누구의 동의도 없이 투과하는 벽. 거기에서 다시 미치도록 자유하다고 막할 때는 의기양양해 어깨가 있다면 하늘로 올랐을 그것을, 그러나 금세 그 견딤이 혼자의 것이라 몸을 웅크리고 불안해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숨소리가 강하게 치고 나가는 시예요. 결국 그는 스스로 자유에 대한 불유쾌함을 정의했을까요. 소년인 채로 멎었다면 가능성은 희박하겠으나 이제 그는 자유하므로. 좋은 시를 읽게 해 주어 감사합니다. 즐거웠어요, 생생하고, 반짝거렸습니다!
수집하는 나비
안냐세요 멜입니다 전 사실 이번 시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어요 정말 솔직하게 풀어내고자 했는데도 풀리지 않는 답답함이 계속 있더라고요 사실 쓰면서 이번 주 주제가 가사로 등장하는 요루시카의 <구름과 유령>의 영향을 안 받았다고 하면 거짓말 같아요 ㅋㅋㅋㅋ 유령이 되었지만 '그'의 주변을 맴도는 화자 < 특히 이 부분이요 나머지는 시에서 느껴지는 대로 자유롭게 상상해주세요 ㅎㅎ 감사합니당
HBD 창작자
멜 님과는 뭐라고 할까요, 정말 같은 감정선을 공유하는 것 같습니다. 그냥… 분석이고 뭐고 그렇게 깊게 갈 것도 없이 그냥 제 취향이에요. 우리가 시집을 고를 땐 한 작품 한 작품 공들여 분석하고 의미를 찾아내서 사는 게 아니라 와닿는 제목, 와닿는 문장에 이끌려 홀린 듯 구매하게 되잖아요. 제게는 멜 님의 시가 그렇습니다. 본디 시는 논리로 전개되는 것이 아닙니다만, 그렇기 때문에라도 나와 너무 다른 감성을 가진 사람의 시는 쫓아가기가 벅찬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멜 님의 시를 무척이나 좋아한답니다. <보이는 건… 어쩐지 힘 있게 느껴진다> 이 문장 좋았어요. 저라도 이렇게 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거든요.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시라는 장르에서 이런 기시감을 느낄 수 있다니 정말 행운이 아니라면 뭘까 싶습니다. 맞아요, 없어진다는 건 이기적입니다. 그러니 멜 님께서도 오래오래 함께 써 주세요.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