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솔

금보다 귀한것을 잃은 자들의 휴일

제이솔 페어 헌정글

진실은 모함에 맞서는 최고의 반항이다.

“그, 형씨.”

믿음은 거짓보다 더 위험한 진실의 적이다.

“나는 괜찮아.”

“제가 안 괜찮습니다.”

뻥 뚫린 도로를 과격하게 달리는 차량은 교통경찰의 제지를 받기에 충분했지만,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제이슨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가짜일 거잖아? 그러니 진정하고…”

“그놈이 가짜인 걸 아는 사람은 지금 여기 둘 뿐입니다.”

첫 번째 이유는 차량 위에 붙은 긴급 사이렌 때문이었고.

“잡은 다음에는 그놈이 가짜인 걸 밝히기 위한 취조를 해야겠죠.”

두 번째 이유는 이 차를 몰고 있는 사람이 팬텀 블루 미스트의 호적수라 떠드는 이솔 경장이었으며,

“그다음에 처리해야 할 보고서는 누가 써야 하는데.”

세 번째 이유는 철저히 교통 법규를 준수하며 사건 현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양옆을 주시하며 신호가 바뀌자마자 액셀을 밟아 달려 나간 차량은 덜컹하며 과속방지턱을 밟아 날아올랐다. 제이슨은 솔의 격양된 목소리에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차 안의 분위기도 파악 못 한 라디오는 뉴스 속보를 떠들어댔다. 국립 미술관의 가장 오래된 금괴를 훔치겠다는 팬텀 블루 미스트의 예고장. 경찰은 이 예고장에 혼비백산이 되었다.

“거기다 20분 전에 사건 시작을 알리는 작자가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우편물을 뒤늦게 정리한 직원에 의해 3일 늦게 발견된 예고장은 약 20분의 시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예고장을 조사팀에 보내기는커녕 현장에 경찰을 보내는 것조차 힘든 시간. 진위를 파악하기도 전에 근처 경찰들을 모조리 출동시켜야 했다.

‘솔아! 너 인천 국립박물관 알지! 그 근처에 있으면 얼른 가봐라! 팬텀 블루 미스트가 그곳에 나타난다는 예고장이 지금 발견됐댄다!’

윤 반장님의 다급한 전화는 솔의 무표정한 표정을 더 무표정하게 만들었다. 때마침 날을 맞춰 근처 캠핑장에 가기로 했던 솔은 국립박물관과 제법 가까이에 있었고, 이는 제이슨에게 오늘의 일정을 언급한 지 3분 만에 유턴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 그러게 말이야. 그 녀석이 잘못했네! 응!”

‘아무리 봐도 직원이 늦게 발견한 게 잘못 아닌가?’라는 말을 삼킨 제이슨은 얌전히 안전벨트를 양손으로 쥐었다. 이보다 빠르고 위험한 패러글라이딩도 서슴지 않았지만, 도로를 질주하는 솔의 모습은 초보운전자의 엑셀보다 더 겁에 질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내비게이션조차 잘못된 길이라고 외치지만 솔의 운전대는 망설임이 없었다. 몇차례 지상을 달려야 한다는 본분을 잊은 자동차가 덜컹거리며 보험 요금의 인상을 외칠 때 쯤 차가 멈췄다. 물건들이 앞으로 한순간 쏠리며 눈을 깜박이자 깔끔히 갓길에 정차된 솔의 차량에 탑승한 자기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당신. 내립시다.”

“으, 응. 근데 나도… 가, 같이 가!”

미술관 앞은 요란법석이었다. 이제 막 도착한 경찰과 직원들이 손님들을 막고 있었고, 언제 도착한 건지 모를 기자와 유튜버가 그 모습을 방송하기에 바빴다.

- 팬텀 블루 미스트가 이곳에 예고장을 남겼다는데 사실입니까!

- 팬블미가 이곳에 왔다고? 빨리 캠 켜! 라이브만 켜도 돈이 들어온다니까!

- 촬영하시면 안 됩니다! 시설에 위험이 생겨서 퇴장을 요청하는 거라니까요!?

상황정리 하나 되지 않은 모습에 이번 괴도를 잡는 게 절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사칭범이 어떠한 유형인지 알 수 없겠지만 이런 야단법석이라면 손쉽게 사라질 최고의 여건이다.

“형씨. 나 따라와.”

뒤따라온 제이슨은 혼잡한 인파의 모습에 자연스레 솔에게 턱짓했다. 미술관의 건물을 뜀걸음으로 반바퀴 돌아 멈춘 곳은 매끈한 건물의 외벽과 차양만이 보일 뿐이었다. 이내 가볍게 발을 박차 차양 위로 몸을 날린 제이슨은 솔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기로 가면 2관 사무실 복도 쪽이거든.”

제이슨의 지식에 놀랄 틈도 없이 손을 맞잡은 솔은 차양 위로 몸을 올렸다. 이윽고 한 번 더 뛰어 차양이 흔들거리고 아무것도 없는 계단식 지붕을 밟아 2관 사무실 복도로 들어갔다. 솔은 놀란 직원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다가 경찰 증만 보여주곤 잰걸음으로 전시홀로 향했다.

“이번 녀석이 노린다는 게 가장 오래된 금괴라고 했지?”

“금 관련 예술품이 몇 전시되어 있는 건 압니다만, 보고 올라오는 것 중에 추린 건 백제의 황금 왕관이군요.”

“가장 오래된 건진 모르겠지만, 그건 아닐 거 같아.”

“감입니까?”

“감과 추론. 형씨가 더 잘 알잖아? 매번 내- 그러니까 팬블미의 사칭들은 뽐내는 녀석이 4할, 돈에 눈먼 놈이 4할, 나머지가 2할이라고.”

전시홀로 향하자 팬텀 블루 미스트를 잡기 위해 들어온 듯한 경찰과 직원, 그들을 피해 다니는 손님이었던 사람들이 보였다.

“다른 것보다 여긴 다른 게 제법 유명하거든.”

“다른 것?”

제이슨은 솔에게 손짓하며 직원용 계단의 문을 열었다. 드럼을 두드리듯 빠른 발소리가 통로에 울려 퍼졌다.

“전시용으로 부적합하지만, 관장이 제일 좋아하는 유물이 있는 거로.”

“설마 그냥 금입니까?”

“바로 맞추면 내가 할 말이 없는데?”

제이슨의 아깝다는 목소리에 솔은 시계를 확인했다. 바깥에서 소란이 울려 퍼져 들려왔다. 약속 시간이었다. 솔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꽝이었나 보군요.”

“진짜, 뽐내는 놈이었다고?”

놀랐다는 눈을 한 제이슨이 지하 보관실이라 적힌 문을 열며 말했다.

“그게 여기 미술관에는 춘추전국시대의 금자가 있거든.”

“금자?”

“응. 역사적 가치보다 그냥 비싸기만 해서 대부분 모르는 정보인데…”

제이슨이 발걸음을 멈췄다.

“형씨가 신경 써서 준비한 캠핑보다 싸구려인 금자가 이곳에 있거든.”

이중금고로 보이는 방의 문이 열려있었다. 

“아하, 그렇군요.”

솔은 담담히 수긍하며 허리춤에서 전기충격기를 꺼내 들었다.

“금은 전도체입니까?”

“찌릿할걸?”

“다행입니다.”

뚜벅뚜벅. 두 남성의 발소리가 금고 안으로 사라진다. 곧이어 한 남성의 비명과 두 남성의 휴일 잃은 분노가 들려왔음은 보고서에 적히지 않은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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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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