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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스터디 1주차

글터디 by 오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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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각성자’가 되기 시작한 것은 어느 날의 비극 때문이었다.

 

아주 평범하기 그지없던 어느 날, SF 영화나 액션 영화에 나올 법한 일이 현실에서 벌어졌다. 세계 각지에서 공중에서 거대한 공간‘이 찢기더니, 생전 처음 보는 생명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생명체들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큼의 지능은 없었으며, 무차별적으로 사람과 사람이 지금까지 쌓아올린 문명들을 공격했다. 탐욕스럽게 모든 걸 집어 삼키고 사냥했다.

 

시간이 좀 더 지나 ‘제 1차 대습격’ 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의 결과는 처참했다. 지금까지 인간이 가지고 있던 무기는 그 생명체들에게 전혀 듣지 않았다. 모두가 도망치기에 급급했으며,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시간이 지나 몬스터들이 자연 소멸, 혹은 다시금 ‘공간’으로 돌아가 1차 습격이 끝났을 무렵, 국가와 사회는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언제 다시 그 ‘공간’을 찢고 나올지 모르는 생명체들 덕분에 전 세계가 아노미 상태에 빠져 모두가 공포에 떨었다.

 

세계의 종말이며 신의 형벌이라는 사이비 종교가 팽배하고, 인간성을 잊은 약육강식의 세계가 지속되던 즈음, 2차 습격의 징조가 발견되었다.

 

다만 인류가 그렇게 멸망하라는 법은 없었는지, 2차 습격 직전, ‘각성자’들이 등장했다. 처음 등장한 각성자들은 불을 뿜거나, 사람을 감쪽같이 치료하거나, 거대한 물건을 손가락 하나로 옮기는 등, 정말로 초능력에 가까운 능력을 보였다.

 

그러나 이들의 능력은 불안정했다. 일정 기준 이상으로 능력을 사용하고 나면 부작용이 남았고, 그런 부작용마저 무시하며 능력을 사용할 경우 자신의 초능력을 주체하지 못하게 되어 큰 피해를 남기고 본인 역시 능력에 도리어 잡아먹히듯 사망하는 사례가 잦아진 것이다.

 

그제서야 새로운 유형의 ‘각성자’들이 발견되었다. 그들은 화려한 초능력 같은 기술은 사용하지 못했지만, 신체의 접촉으로 그들의 능력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간’에서 나오는 생명체들은 이러한 ‘각성자’의 힘에 의해서만 처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면서, 거의 스러져 가던 국제기구는 다시 모여 이들을 연구하고 육성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가 달라붙어 연구한 결과, 생명체들이 찢고 나오는 ‘공간’을 게이트, 게이트에서 나오는 생명체들을 ‘몬스터’, 처음 나타난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각성자’를 에스퍼, 그리고 그런 에스퍼들의 능력을 안정시키는 ‘각성자’를 가이드라 명명할 수 있게 되었다.

 

연구는 계속되었다. 인간은 이제 이러한 ‘각성자’에게는 각자의 파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가이드가 가이딩을 할 때에 이러한 파장의 매칭률이 높아야지만 효율이 좋은 가이딩을 할 수 있다는 것 역시 밝혀냈다.

 

또한 게이트를 진압하는 방법 역시 연구 되었다. ‘공간’이 찢어지기 직전의 징조, 즉 게이트가 활성화되었을 때에는 인간이 몬스터의 세계, 즉 ‘던전’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오기 전, 각성자가 게이트 안으로 이어진 세계의 몬스터들을 모두 죽이면 게이트는 자연스럽게 닫힌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각 나라의 정부들을 자국의 각성자를 게이트를 막기 위해 징집했다.

 

각 나라는 에스퍼와 가이드의 관리를 위해 각 나라들은 파장의 크기를 기반으로 각성자를 S급에서 F급으로 나누었고, D급 이상의 에스퍼와 가이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경우 국가의 소속이 되었다.

 

각성자들은 대중의 환호와 두려움을 동시에 사는 존재였다. 그들의 존재가 곧 국가의 국력이며 안보였으나,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휘두른다는 것은 비각성자들에게 있어 공포를 심어주기도 했다. 그들을 추앙하거나, 배제하려는 세력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각성자와 던전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활발히 진행 중이었고, 그 중심은 각성자 관리 중앙 본부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하얀 A4종이에 빼곡하게 적힌 글을 훑던 크리스토프가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금 보고서의 맨 첫 장으로 돌아왔다. “기밀문서” 도장과 가이드 본부장, 에스퍼 본부장 직인이 민망할 정도로 크게 찍혀 있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기본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모두 알 만한 보고서의 내용이 의아했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기울이며 다시금 읽던 곳으로 보고서의 페이지를 넘긴 크리스토프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아침, 갑자기 들이닥친 살인적인 양의 보고서에 출근 직후부터 지금까지 단 조금도 쉬지 못하고 보고서를 독파한 참이었다. 잠시 눈을 감고 뻐근한 눈가를 마사지 하면서, 크리스토프는 그 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고 경고했다.

 

“가만히 있어, 에밀. 손대지 마. 중요한 거야.”

 

그 경고에 보고서를 뒤집어보려는 하얀 손이 공중에서 멈추더니, 금방 그런 적 없는 척 뚝 시치미를 뗐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잔뜩 기울어졌던 앉은 자세가 흠 잡을 데 하나 없이 반듯해진 건 기본이고, 저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차가운 표정은 오늘 하루 종일 보고서를 읽는 제 주위를 얼쩡거리며 사고를 친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크리스토프는 결국 피곤한 눈을 뜨고 팔짱을 낀 채로 에밀을 빤히 바라봤다. 결국 잠시 크리스토프의 시선을 의식하는 듯한 에밀이 먼저 뻔뻔히 자리를 떴다. 크리스토프와 나란히 앉아있던 쇼파에서 일어나는 다리가 상당히 길었다.

 

크리스토프는 여전히 뻑뻑한 눈을 깜빡이며 통창 바로 앞에 서 괜히 딴청을 부리는 에밀을 계속 바라보았다. 결 좋은 흑발에 굵은 눈썹. 길게 뻗은 눈매와 뚜렷한 이목구비는 매우 잘생겼으나 무척이나 냉한 인상을 주었다. 항상 무뚝뚝한 표정도 물론 한 몫 했고. 에스퍼답게 탄탄한 몸과 긴 팔다리는 비율이 완벽해 보기 좋았다. 미를 위해 빚어낸 인조인간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을 정도로. 아마 각성하지 않았다면 연예계를 휘어잡았을 인물이었을 것이다.

 

심드렁하게 에밀의 외모를 훑던 크리스토프가 내려놓았던 보고서를 다시금 들어올렸다. 어쨌든 크리스토프는 각성자 관리 중앙 본부에서 근무하는 가이드였고, 에밀의 전담 가이드가 된 지금은 조금 상황이 바뀌었지만, 어쨌든 본부에서 월급을 받는 입장에선 상부가 내린 업무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각성자와 던전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활발히 진행 중이었고, 그 중심은 각성자 관리 중앙 본부였다. 각성자 관리 중앙 본부는 크게는 에스퍼 본부와 가이드 본부로 나뉘어 각성자에 대한 진리에 보다 파고들고자 했다.

 

그 결과, 각성자 관리 중앙 본부는 가이드와 에스퍼의 파장을 분석하여 가이딩의 효율을 숫자로 매길 수 있게 되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공공 가이드 제도 및 전담 가이드 제도를 입법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이 기록에서 다루는 것은 이보다 더 ‘에스퍼의 각성’이라는 현상의 본질에 집중하고자 한 우리들의 연구 과정이다.

 

어떤 사람이 에스퍼로 각성하게 되는지, 그리고 에스퍼로서 어떤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인지는 말그대로 각성을 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이트의 발생과 동시에 달라진 지구의 환경이 인간의 유전자에 영향을 주어 DNA 단계에서부터 변화가 생긴 것이라는 것 이외에는 모든 것이 불분명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능력의 제어와 폭주는 인간의 뇌와 관련이 있으리란 것이다.

 

즉, 이미 각성한 능력자의 뇌에 어떠한 조치를 취해 스스로가 비각성자라고 느낄 수 있게만 할 수 있다면, 충분히 또 다른 각성을 부를 수도 있을 터였다. 이른 바 다중 능력자를 만들 수도 있으리란 이론이다.」

 

“완전히 미쳤군…….”

“크리스, 크리스.”

 

한참 다시 자세를 잡고 보고서를 읽던 크리스토프가 충격저인 내용에 저도 모르게 탄식하자, 에밀이 크리스토프를 불렀다. 목소리조차 딱 듣기 좋을 정도로 잔잔한 것이, 크리스토프는 잠시 에밀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한 건 아닌지 의심하다가 그만두었다. 딱히 그런 짓을 해서 에밀에게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닐 테고.

 

“밖에 이상한 사람들이 있어요.”

“…각관본부에 낯선 사람들이 드나드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잖아. 아니면 국경 지대나 게이트 인접 구역에서 전출이라도 있나 보지.”

“……음.”

 

에밀은 별 것도 아닌 일로 크리스토프의 관심을 끌려다 실패한 모양이었다. 오전부터 꾸준하게 계속되던 시도들이었다. 아무래도 에밀은 자신이 이 보고서를 읽는 것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크리스토프는 작게 한숨을 쉬며 홀린 듯 보고서를 읽었다.

 

「저명한 뇌과학자와 에스퍼 전문가는 협력하여 기밀 실험의 토대를 쌓아나갔다. 정부의 허락 아래 인체 실험까지도 서슴치 않았다.

 

실험의 진행은 한 때 순조로웠다. 일찍이 아주 어린 나이에 각성한 한 아이를 몇 차례나 각성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일련의 실험의 총책임자 웨슬리 살베리는 기쁜 마음에 손수 아이의 뇌 일부분을 절제해주었다. 아이가 처음으로 각성한 능력인 심리 장악계 에스퍼들은 일찍이 정신이 붕괴하거나 자살하는 불상사가 자주 있었는데, 이를 막아주기 위함이었다.

 

다만 이 실험은 얼마 있지 않아 완벽하게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맨 처음, 실험에 성공한 한 아이를 제외한 모든 아이들은 여러 능력들을 완벽하게 제어하지 못하고 폭주하고 말았다. 막대한 손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프로젝트는 급하게 종료되었다.

 

유일하게 생존한 실험 대상자는 각성자 관리 중앙 본부에 소속되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뭔데.”

 

크리스토프가 여전히 충격적인 내용인 뿐인 보고서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로 심란히 대답했다. 이런 미친 보고서가 왜 자신에게까지 흘러들어왔는지, 가이드 본부장에게 직접 찾아가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혹시 지금이라도 도망칠 생각은 없나요?”

“뭐?”

“물론 지금 도망치지 않는다고 해도 크리스는 죽지 않을 테니까, 편하게 선택해줬으면 해요. 다만 고생은 좀 할지도 몰라요.”

 

여전히 창밖을 쳐다보며 침착하게 묻는 에밀의 말에 크리스는 그제서야 보고 있던 보고서에서 시선을 떼어 에밀을 바라봤다.

 

“그게 무슨,”

“시간이 없어요. 10초 남았어요.”

“설명을 제대로 해. 농담이면 그만두고.”

“알았어요.”

 

에밀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 긴 다리를 움직여 성큼성큼 문 쪽으로 다가갔다. 얼떨떨한 얼굴로 크리스토프가 그런 에밀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든 말든, 에밀은 문 옆에서 비스듬히 대기하며 옅게 웃었다. 아무런 표정도 없을 때에는 찬 바람이 쌩쌩부는 인상이지만, 가끔 저렇게 웃을 때에는 로맨스 영화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처럼 달큰하게 굴 수 있는 게 언제봐도 참 신기했다.

 

“마저 안 읽나요?”

“……보고서?”

“네. 재밌게 읽는 것 같길래.”

“재밌기는 무슨, 끔찍하기만 한, ……아, 잠시만. 기밀이었지.”

 

차마 전담 S급 에스퍼에게도 발설하지 못 할 보고서의 내용에 크리스토프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크리스토프의 모습을 지켜보던 에밀이 다시금 고개를 문 쪽으로 돌렸다.

 

“너무 놀라지는 마세요. 알겠죠?”

“널 만난 지 얼마 안 되긴 했는데, 그렇게 가끔씩 뜬 구름 잡는 것 같은 얘기는 그만 해라, 응?”

 

크리스토프가 투덜대면서 보고서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이었다.

 

쾅!! 쾅!! 쾅!!!

 

극심한 연속된 폭발음과 함께 건물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놀란 크리스토프가 즉시 뒤를 돌아보자, 그 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에밀이 크리스를 주워 짐짝처럼 제 어깨에 얹은 후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자신과 비슷한 신장의 남자를 들어올렸는데 숨조차도 흐트러지지 않은 에밀은 통창에 몸이 부딪히기 직전, 잠시 정신을 집중한 것만으로 두꺼운 통창을 깨고 뛰어내렸다.

 

지상 7층의 높이에서 떨어지기 시작하자마자, 에밀이 대기하고 있었던 문을 부수고 무장 단체가 방에 입장했다. 그들이 마구잡이로 난사한 총알이 제 뒷통수를 스친 것만 같아 크리스토프는 쭈뼛 소름이 돋았다. 애초에 거꾸러지는 시선으로는 아무것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꽉 쥐고 있었던 보고서의 종이가 여기저기에 흩날렸다.

 

「유일하게 생존한 실험 대상자는 각성자 관리 중앙 본부에 소속되었다.

 

그의 이름은 루소의 <교육론>에서 나오는 완벽하게 이상적인 아이의 이름을 따, 에밀이라고 명명되었다.」

 

폭발음 직전, 마지막으로 읽은 보고서의 마지막 문장이 계속해서 눈 앞에서 아른거렸다. 이런 젠장, 말도 안 되게 높은 월급부터, S급 에스퍼와 매칭률이 90%가 넘는다거나, 유독 부서 이동 직전 자신을 독대할 때 불편해보이던 가이드 본부장, 어색할 정도로 어벙한 S급 에스퍼까지, 어쩐지 모든 게 의심쩍더라니.

 

아주 단단히 이상한 일에 휘말려든 게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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