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작

D&L 리메이크

https://youtu.be/EI8RQw5u9EA

염병. 남자는 코를 찌르는 썩은 내에 구멍난 주머니를 더듬거렸다. 처음 맡는 것도 아닌데, 이놈의 현장은 익숙해질래야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구겨진 마스크를 쓰고 나서야 겨우 한 모금의 숨을 들이켰다. 하아. 그리고 몇 초만에 도로 내뱉었다. 저 멀리 누군가 뛰어온다.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청년이 앞을 가로막는 폴리스 라인을 훽 들었다. “야이씨, 신참을 왜.” 이제는 토악질 냄새까지 뒤섞였다. 환장할 노릇이다. 내가 이 나이를 먹고, 신참 새끼 점심까지 구경해야겠냐. 남자는 질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아침에 먹었던 브리또랑 밀크 쉐이크가 꿀렁거리는 위에서 춤을 췄다.

쿵! “아니, 선배님. 그러다 문짝 떨어집니다!” 텅……! 남자는 연이은 소음에 고개를 돌렸다. 얼씨구. 보기 어려운 얼굴이 현장을 두둥실 떠다녔다. 남자는 수첩을 쥔 손을 가볍게 들썩였다. 작달막한 여자는 수첩 너머의 얼굴부터 쳐다봤다.

“웬일. 이건 내 사건인데.”

“내 사건, 네 사건이 따로 있답니까.”

“있고 말고.”

“걱정마세요. 이새끼 워낙 더러워서 상대도 하기 싫지말입니다.”

“경찰이란 새끼가……. 쯧.”

“근데 저 분 말이 맞습니다. 선배님도 개새끼 때문에 개고생하고!” 운전수를 자청했던 어린 후배 놈이 입을 놀렸다.

“개새끼한테 너무한 소리하네.”

여자는 날선 눈으로 현장을 노려봤다. 간밤에 비가 쏟아진 게 문제였다. 유의미한 족적은 사라졌고, 마치 그 순간을 노린 것처럼 신원미상의 시체를 얕게 덮었던 흙이 밀려나갔다. 뭉개진 얼굴에, 손발끝은 전부 도려내져 지문 따윈 남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들개 놈들이 거한 한 상을 차린 터라 유해를 수습한다 쳐도 유가족이 받아줄지는……. 물론 신원이 먼저였다. 누가, 누구에게, 어떻게 살해 당했는지 알아야 한다.

“신원은 아직 파악 안됐답니다. 그래도 치아가 멀쩡해서 아예 안 나올 건 아니래요.”

“매번 똑같죠, 뭐. 인적 드문 곳에 얕은 무덤 하나 파두고, 굶주린 들개가 와서 파먹고 발견하고…….”

“이번 건도 우리가 맡는다.” 남자 둘은 서로 시선을 주고 받았다. ‘당한 게 많으셔서…….’ ‘알다말다.’

“예.”

여섯 번째다. 무고한, 아니. 출소한 범죄자가 ‘괴한’에게 살해당한 여섯 번째 살인 사건. 시민들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잘됐다” 혹은 “경찰은 뭘 하고 있느냐”. 언론은 경찰의 무능력함을 면전에 내세웠다.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내걸고, 하이에나처럼 공권력을 물어뜯었다. 그래, 마치 이 시체처럼. 여자는 눈가를 지그시 눌렀다. 수법은 바뀌지 않았다. 끈으로 사람 목을 졸라서 죽이고, 시체에 약품을 잔뜩 묻힌다. 고스란히 얕은 땅속으로 들어간 시체는 들개들에게 그 이상의 개념이 된다. 말 그대로 포식이다. 팔다리는 아우와 나눠먹고, 열린 뱃가죽은 아내와 나눠먹고, 일가족이 한 상을 치루면 게임 끝. 신원 파악이 단 번에 된 적이 없다. 개자식들……. 개는 맞지, 또. 짜증나게시리.

“렉신 선배.”

“왜.”

“이번 현장에도, 이게…….”

후배는 여자에게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을 슥, 내밀었다. ‘x.’ 여자는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왔다. 들개의 머리를 흉내내며 쥐새끼처럼 도망친 놈이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이걸로 확신할 수 있었다. 여자는, 렉신은, 렉스는.

저도 모르게 힘을 주어 사진을 구겼다.

사건에 대응하기 위한 전담반이 생겨난 건 두 번째 사건의 피해자 신원이 나온 직후였다. 그 이전부터 사건을 담당하고 있던 렉스는 자연스럽게 전담반을 이끌게 되었다. 거절할 수야 있었지만,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이새끼는 꼭 내가 잡고 만다. 그게 렉스의 포부였다. 상부에서 준 기간은 한 달. 한 달 내로 개같은 살인마를 붙잡고, 감옥에 처넣는다. 앞으로 피해자는 없어야 한다. 그게 원대한 꿈이었고, 꿈은 늘 이뤄지지 않는다.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꽁무니를 하나 잡지 못했다. 늘어난 건 시체의 발바닥에 새겨진 괴상한 알파벳. 세 번째 사건부터 발견됐으니 지금까지 네 장인 셈이다. 그리고 그건 차례대로 ‘L’ ‘e’ ‘x’ ‘x’ 였다. 이건 도발이었다. “난 널 알고 있지만, 넌 날 모르네.”를 대놓고 말하는 도발. 렉스는 머리털을 죄다 뽑을 것처럼 쥐었다가 손에서 힘을 뺐다. 후. 후. 두 번 짧게 심호흡 했다. 잡는다. 이새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새하얬던 보드판은 사진과 지도, 그리고 여러 사람이 쓴 글자들로 엉망이었다. 모두가 나가 떨어지고 있다. 그 순간에도 정신만 차리면 잡을 수 있다. 그건 집념이었다.


“렉신.”

“…….”

“잠은 자고 일하냐? 밥은.”

“아직이요.”

“야. 몸 좀 챙기면서 해라. 쓰러지면 너만 손해다.”

“이제 곧 그새끼 움직일 겁니다. 제 직감이 그렇다고요.”

“……됐다, 됐어. 서류 내놓고! 샌드위치나 하나 사 먹고 와. 당장!”

렉스는 손아귀에서 빠져나간 서류에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전담반도 전보다 크기가 줄어들어서 한 사람이 두 명의, 아니. 세 명의 몫을 해야 제대로 굴러갔다. 이게 다 경찰이란 것들이 실적, 실적 노래를 불러서다. 뭐든 승진과 돈이 문제였다. 의무감? 그런 건 이미 퇴색된 지 오래였다. 렉스는 휘하에 세 명의 부하가 있었다. 다 못 자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일한다. 이렇게 떼쓰듯 우기는 선배만 없었어도 렉스 자신도 그랬을 터. 결국 터덜터덜, 외투를 집어들고는 밖으로 나오게 됐다.

살을 애는 바람이 뺨을 스쳤다. 하얀 입김이 담배 연기처럼 휘날렸다. 춥네. 추워. 겨울은 이래서 싫었다. 하지만 여름보다 시체를 덜 부패하고, 족적은 깊숙한 곳에 스며드니까. 사건을 파헤쳐야할 경찰의 입장에서는 땡큐였다. 다음은 없어. 렉스는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새끼를 올 봄, 한 번 놓쳤다. 유령처럼 빠져나가는 바람에 손아귀에 쥔 것도 오리무중이 됐다. 그 뒤로는 소식도 없다. 살인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공백기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애간장이 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 정말 못 잡고 놓치고 만다. 꼬리잡기를 끝내야 하는데 영원토록 술래가 될 판이었다. 일 년을 넘는 시간을 허비했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누군가는 ‘충분히 고생했다’고 하지만, 유가족들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범죄를 저질렀던 이들이 피해자가 되는 건 한 순간이고, 그들도 나름 가족이랄 게 있었다. 하하…….

거의 다 잡았어. 괜찮아. 다음, 다음에는 꼭 잡는다. 누가 또 죽기 전에 잡는다. 이번에야말로…….

“아.”

“……죄송합니다.”

“아, 아뇨. 제가 앞을 안 보고 걸어서.”

렉스는 꿍, 부딪혔던 이마팍을 문질렀다. 키 크네. 한 180……. 그 정도 되려나. 그리고 되게 말랐군. 음침하게 생겼고. 렉스의 머릿속에는 남자의 인상이 물흐르듯 지나갔다. 새까만 옷을 입은, 새까만 남자. 까만 고양이 같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가 사라졌다. 커피라도 들고 있었으면 더 큰일이었겠다. 렉스는 카페에 가던 도중이었다는 것에 다행이라 느꼈다. 그럼 이만. 고개를 까딱하고는 그 옆을 지나쳤다.

“저.”

“음?”

“반가웠어요.”

“……?”

웃었다. 그래, 남자가 웃고 있었다. 저 소름끼치는 붉은 눈동자가 호선을 그렸다. 자신을 아는 사람? 렉스는 이질감에 선뜻 움직일 수 없었다. 별 이상한 놈이 다 있어. 샌드위치, 커피, 또……. 또. ‘반가웠어요.’ 렉스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반가웠어요.’ 아냐, 그 말로 끝나지 않았다. 분명 또 무어라 말했다. 바람 속에 파묻혀서 들리지 않은 게 있었다.

반가웠어요, 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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