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알도] 무제

짝사랑

* 어나더 에덴

* 본 글은 외사 6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야쿠모가 알도를 짝사랑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급전개 주의.

* 투비컨티뉴드에서 옮겨왔습니다.

알도 녀석은 인기가 많다.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영웅상이어서 그런걸까? 반짝반짝 빛나보여서? 오지랖이 넓어서 누군가 곤경에 처하면 제일 먼저 나서서 도와주니까? 자칫하면 프라이버시 침해로 볼 수 있는 거 아냐? 끼어들 데, 안 끼어들 데 분간하지 못한다고는 생각 안 하는 건가? 아냐. 아니지. 알도가 때때로 섬세하지 못한 구석이 있을 지라도 타인을 살피는 데에는 조예가 있다. 숱한 사람들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기막히게 잘한다. 뜻밖의 고집도 있어서 한 번 마음 먹으면 누가 뭐라고 해도 포기 하지 않는 구석도 있다.

"...쿠모."

"......"

"야쿠모!"

"으악! 귀에다 소리지르지 말라고!"

"이 몸이 몇 번이나 불렀는데 통 대답이 없으니까 그렇지!"

"나도 혼자 생각이란 걸 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걸 좀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생각해봤자 뭐, 일 생각이나 했겠지. 아니면 내일 히멜 생방 챙길 수 있는지 없는지 아냐?"

"아니거든!"

"헤헹, 그럼 무슨 생각했는데? 이 형님한테 얼마든지 말해보라고."

"네가 왜 내 형님인데?"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얼른."

"......"

큐모스는 빙글빙글 허공을 돌며 대답을 기다렸다.

문득, 알도에 대해서 생각했다고 하면 100% 놀림받게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에는 알도의 귀에 직통으로 들어가게 될 거라는 사실도. 그건 싫었다. 진지하게 받아들이든, 우스갯소리로 받아들이든 어느 쪽이든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음을 읽는 재주가 없어서 다행이지. 귀찮게 구는 큐모스를 휘휘 쫓아내며 침대에 몸을 누였다.

***

알도 녀석은 인기가 많았다. 본인은 잘 모르지만. 동료가 된 뒤로 시대를 뛰어넘으며 어울렸는데, 종종 동행하는 일행이 달라졌다. 남녀노소에 종족을 가리지 않는 것도 놀라운데, 개중 몇몇은 알도에게 진한 애정을 품고 있는 게 연애라고는 평생 해 본 적도 없는 내 눈에도 훤히 보였다. 심지어 대부분 미인이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알도는 보는 사람이 어이 없을 정도로 일절 호응하지 않았다. 알고 저러는 거야, 모르고 저러는 거야? 눈이 삐기라도 한 거냐? 잠시 자리를 비웠을 즈음 함께 동행한 갈색 머리 여자 -이름이 셰이네라고 했던가- 에게 물었다.

"알도는 당신이 자길 좋아하는 거 알아?"

"무, 무, 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지금?"

"그러다 듣겠어. 궁금해서 그래. 모르는 내가 봐도 딱 알겠는데, 알도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나 싶어서."

"......."

..몰라, 알도는.

의문의 답은, 정말 모른다. 로 결론이 났다. 그 이후로도 다른 일행에게 물어봤지만 답은 일관되게 모른다, 였다. 어쩌면 나만큼이나 연애 세포란 것이 사멸한 녀석인 게 아닐까? 하면서도, 난 정말로 연애고 자시고 짬이 안 난 거고, 알도는 짬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무욕의 경지에 달한 게 아닌지 심각하게 염려될 정도였다. 그 날 이후 제 마음이 단박에 들켰기 때문인지, 셰이네 -짝사랑하는 걸 시원하게 들켰으니 그냥 편하게 부르란다- 와 동행하는 날이면 종종 그의 하소연을 들어줘야만 했다. 그 날도 그랬다. 알도의 등을 바라보며 제 머리를 비비 꼬던 그가 물었다.

"근데, 당신도..."

"...야쿠모."

"그래. 그럼 야쿠모도 알도를 좋아하는 거야?"

"뭐, 뭣?"

"아니, 그야...그런 걸 물어보면 보통은 연적인 게 당연하잖아."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야? 아니, 무엇보다 난 남자라고!"

"미래에서 왔다면서, 좋아하는 마음만 있으면 되는 거 아냐? 미래도 별 거 아니네."

사람으로선 좋아할지 모르지, 사람으로선! 전처럼 반짝반짝 빛나보이진 않더라도 어쨌든, 좋은 녀석이니까. 근데 이거랑 그거는 좀 다르다고! 셰이네는 알도가 돌아오기 전까지 계속해서 쿡쿡 웃기만 했다.

***

멋대로 알도를 좋아하네, 마네 하는 소릴 들어서일까. 꿈을 꿨다. 뿌리째로 날아가버린 건물, 크레이터 같이 남은 잔해, 출신이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발원지가 어딘지 확실하게 안다는 듯 어찌할 줄 모르고 날리는 먼지. 발 아래에는 알도와 노나가 있었다. 알도에게 당신이라고 불리는 건 기억에 없었다. 기억에 없는 일인데도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그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전부 되돌린 후에 사과하면...

-...뭐? 낙천적인 녀석들인 건 알았지만 정도가 심하군. 짜증나.

알도는 이전처럼 나를 말렸지만, 이 악몽이 어떻게 될 지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제3자처럼 모든 광경을 보고 있는데도, 저기 있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생생하게 전해져왔다.

-너도 전부 잃어 볼래?

-알도!!

"...허억!"

"음냐...뭐야? 뭐야? 천장이라도 무너졌어?"

큐모스가 평소보다 낮게 허공을 날았다.

의지를 바탕으로 움직인 능력은 거침없이 알도를 죽였다. 건물을 날려버린 건 간접적이기라도 했지, 능력을 써서 사람을 무참히 죽인 건 처음이었다. 비명을 내지르며 꿈에서 깬 나와 달리 꿈속의 나는 모든 풍경이 사라져버리기 전까지 그렇게 속이 시원할 수 없다며 한참을 웃었다. 물론, 알도는 살아있다. 어제도 더스트 시티에서 영업을 도왔고 별 문제 없이 헤어졌으니까. 영입 인력 재배치를 위해 내일도 올 것이다.

"..알도는 살아있어. 그렇지?"

"그럼 죽었게? 잠이 덜 깼나, 헛소리를 하네. 몰라! 난 잔다!"

"......"

큐모스는 성질을 내며 도로 픽 쓰러졌다.

그런 꿈을 꿨는데 잠이 올 리가 없었다.

***

"....안녕."

"야쿠모, 어젠 일도 일찍 끝났던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었던 거야? 눈 밑이 까만데."

"알도."

"응."

"묻고 싶은 게 있어. 큐모스, 넌 따라오지 마."

"듣는 큐모스 섭섭하게!"

"따라오지 말라고 했어. 부탁이다."

큐모스는 쳇, 하면서도 그 옛날 말을 걸었을 때처럼 책상에 앉았다. 더스트 시티에서 북적이는 곳은 한정되어 있었다. 분진회는 해산했지만 그들이 애용했던 으슥하고 음침한 장소는 아직 건재했다. 알도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앞장서는 대로 졸졸 따라왔다.

"......"

"야쿠모. 큐모스랑 싸우기라도 한 거야?"

"그런 건 아니야. 다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불렀어."

"묻고 싶은 거? 나한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확실하게 물어봐야할 것 같아서."

"그래. 말해봐. 나한테 뭘 묻고 싶은 거야?"

"...내가, 널 죽인 적 있었어?"

알도는 대체로 반응이 즉각적으로 돌아오는 타입이었다.

자길 죽인 적 있느냐는, 언뜻 허황된 물음에 무슨 소리야, 라는 반응조차 없었다. 아니라고 즉답하지 않았다.

부정하지 않았다. 외려 정말로 곤란한 일을 전해들었을 때처럼 얼굴에 곤혹스러움이 번졌다.

"..그건."

"사실이냐고 물었잖아. 아니지. 사실이구나? 정말로."

"야쿠모."

"꿈을 꿨거든. KMS 지부를 날려버리고 통쾌하게 웃는데 너랑 노나가 나타나서 날 이제까지처럼 말리더라고. 감정이 격해지나 싶더니, 내가 널 죽이는 걸로 꿈이 끝났어."

"야쿠모. 이미 지난 일이야. 없어진 일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나랑은 경우가 다르지. 그때의 너랑 난 아무 관계도 아니었잖아. 친구 내지 동료라고 부를 만한 사이도 아니었지. 그랬는데, 아무 감정도 안 들었다고?"

"여행을 계속하다 보면 얼마든지 위험에 처할 수 있어. 정말로 큰일이 날 뻔했던 적도 몇 번 있었고."

곤혹스러워하던 기색은 어느새 씻은 듯 사라져 있었다.

늘 보아왔던 얼굴은 저를 설득할 때처럼 진지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함께 있었던 동료들을 원망하진 않아. 야쿠모, 너도 마찬가지고. 야쿠모도 반복시공속에서 한 번 죽었었지만 지금 이렇게 마주 보고 있잖아? 나한테 자길 한 번 죽였다고 원망하거나 분노하지 않았잖아. 어떻게 기억해냈는지는 모르겠지만..난 괜찮아. 정말이야."

난 안 괜찮아.

알도 주변에서 골치를 썩이는 여자들의 심정도 (혹은 몇 남자들의 심정도!) 이제는 이해가 갔다. 알도는 타인을, 타인의 심정을 살피는 데 조예가 있다. 가끔은 미련할 정도로 투박하게 보여도 그 나름의 울림을 갖고 사람을 뒤흔든다. 뒤흔들리는 숱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본인은 외줄타기를 기막히게 잘한다. 머리가 아파왔다. 늘상 달고 다니는 만성적인 두통과는 달랐다. 계속해서 알도를 관찰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견을 구해보고, 기억에 없는 살해에 대해서 머리 끝까지 화가 났는지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그 삽질을 해서 지금 여기에 이르러 놓고 모르면 정말이지 바보 천치나 다름없었다.

"표정이 안 좋은데, 괜찮은 거야?"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잠깐만 내버려 둬."

"알았어.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릴게."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흩뜨리고 알도를 휙 노려보아도 달라지는 건 없다.

좋아해.

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

말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부끄럽다. 원인이고 이유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니 속이 이리저리 뒤틀렸다. 당장 입밖으로 내뱉어버리고 싶으면서도, 이야기하면 수치심으로 죽어버리는 최초의 인간이 될 것 같았다.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죽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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