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알도] 무제
뽀뽀하는 게 보고싶었던 글
* 전 글과 이어지지 않음.
* 말투나 묘사가 엉망이기 때문에 책임지지 않습니다.
* 투비컨티뉴드에서 옮겨왔습니다.
"야-쿠-모!"
"왜."
"대망의 러브러브~ 에 골인했는데 진전은 없나 해서!"
"내가 넌 줄 아냐..."
"어쨌든 아빠니까 모범을 보여야지. 그래서, 어때? 알도랑 분위기 좀 잡아봤어?"
"분위기 같은 소리 하네. 저리 가. 바빠."
"손은 잡아봤어? 포옹은? 뽀뽀는? 키스는?"
"저리 가라고 했지."
"헤헹, 한 번도 못해봤지? 이건 뭐 말로만 사귀는 거 아냐?"
지부장한테는 여자한테 말도 제대로 못 붙였다고 웃음보 터트릴 땐 언제고! 큐모스의 이죽거림에 짜증이 솟았지만 반박할 거리가 없었던 지라, 야쿠모는 입을 다물었다. 애초에 연애도 처음이고, 연애 대상으로 남자를 염두에 둔 것도, 그게 또 받아들여진 것도 처음이었다. 연애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건 지나치게 닭살이 돋아올라 그에게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다.
"큐모스, 넌 어떻게 생각하냐?"
"뭘?"
"..연애가 별다른 진전이 없는 거에 대해서."
"우리 야쿠모는 누구 닮아서 이렇게 패기가 없을까~! 그렇게 생각했으면 알도한테 딱 달려가서! 우리 사귄지도 꽤 됐는데 뽀뽀나 한 번 하자! 직구를 던져보라고!"
"....."
손도 잡고 싶고, 그 이상으로 가까워지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지만 조언자의 말을 따르기엔 무리가 있었다. 상상하는 그 순간 지독하게 속이 안 좋아진 야쿠모는 그 날 오후 알도가 일을 도우러 왔을 때도, 일이 끝날 때까지도 메슥거림을 참지 못하고 연신 등이며 얼굴에 꽂히는 시선을 피했다.
"야쿠모."
"왜?"
"내일 쉬는 날이지? 일정이 없다면 우리 마을에서 하루 쉬었다 가는 건 어때?"
"당연히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고? 사람들 돕느라 사서 고생하는 거면 됐네요. 피곤해."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고 안 도와줄 거라고 할 순 없지만..당장은 야쿠모한테도 바르오키를 보여주고 싶어서 그래."
야쿠모가 살아가는 미래의 지상은 오염된 지 오래였지만, 알도가 사는 시대의 지상은 아직 푸르렀다. 바르오키는 그 중에서도 자연 경관이 크게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어 있어 푸른 마을로도 불릴 정도니 가벼운 마음으로 가도 좋을 듯했다.
"좋아."
***
"..공기가, 엄청 맑네."
"그렇지? 카레크 슾지는 조금 탁한 편이지만 마을부터 누아르 평원까지는 대체로 날이 좋으면 공기도 맑은 편이야."
우물 있는 외길을 빠져나오면 드문드문 지어진 집들과, 사이사이에 심어진 꽃과 나무가 한눈에 보였다. 바르오키는 왕도 유니건처럼 번화한 거리의 시끌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마을 사람들도 알도와 야쿠모를 보고는 얼마만에 온 거냐, 얼굴 잊어버리겠다, 이쪽은 새로운 동료? 모처럼 왔으니 푹 쉬어라 등의 말을 붙이고는 대체로 담백하게 관심을 거두었다.
"다른 동료들하고도 자주 왔던 모양이지?"
"응. 동료들 중에는 과거나 미래를 궁금해하는 경우가 있어서 바르오키 뿐만 아니라 엘지온이며 라틀이며 여러 곳을 소개해 준 적도 있어."
"복장부터가 전혀 다른데 이상하게도 안 여기고."
"아, 그건..가끔 봐서 알겠지만 개성 있는 동료들이 많아서. 다들 처음에나 깜짝 놀랐지 지금은 그러려니 해. 익숙해진 거지."
바르오키의 길은 대체로 직선이었지만 아래에서 위로 굽이굽이 올라가는 구석이 있어서 마을의 끝에서 끝까지 둘러보며 길을 틀기도 했다.
"알도."
"응."
"..저 동상은 뭐냐?"
"아, 저거..."
야쿠모는 파들거리는 손끝으로 동상을 가리키며 물었다. 말하자면 길었지만 설명을 해줘야 납득할 것 같아서 알도는 처음 고대 파르지팔 왕조 시대로 떨어졌을 때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들려주었다.
"요는 매너리즘한 조각가 눈에 띄어서 모델이 되어줬는데, 그게 용케도 이 시대까지 전해져 내려왔다?"
"매너리즘...? 아무튼, 그래."
"마을 사람들은 저거 보고 아무 말도 안 해? 한눈에 봐도, 아니 거꾸로 봐도 너잖아."
"다른 사람들은 지극한 우연의 일치 정도로만 알고 있어. 말해도 안 믿을 걸."
굳이 저 동상 모델이 사실 나야! 라고 말하지 않는 알도나, 허허 우연의 일치로구나~ 하며 넘어가는 마을 사람들이나 정말 잘 어울리는 콤비였다. 그러니 이 마을에서 자란 알도도 사소한 것에 크게 개의치 않는 성격을 띤 거겠지. 이전이었으면 이도저도 아닌 것에 대한 짜증이나 분노를 내비쳤을지 모르나 이제는 한 번 크게 황당해하고 가볍게 넘어갈 수 있게 됐다. 야쿠모에 대해서 잘 아는 -이를테면 큐모스라거나- 누군가가 봤다면 예전에 비해서 성격이 죽었네 사람이 바뀌었네 어른 다 됐네 하며 깜짝 놀랄 만한 변화였다. 동상 앞에 계속 머물러 봐야 좋을 것 없다고 생각했는지 알도는 동상을 지나 안쪽 비탈길로 안내했다.
"이 길끝엔 호수가 있어."
"호수?"
"엄청나게 크진 않지만 낚시도 하고, 식수로 쓰기도 하고, 조용히 있고 싶을 때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지. 자, 저기."
마을에서 조금 외따로 떨어져 있을 뿐인데도 호숫가에 접어드니 눈에 띄게 조용했다. 마구잡이로 뒤섞여 자란 풀과 꽃냄새, 눈에 띄게 무성해 그늘을 자아내는 나무들, 햇빛을 머금고 반짝이는 물과 그 아래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 평생 볼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풍요롭고 아름다운 과거의 지상은 평생 부유 플레이트에서 휴양지 땅 한 번 밟아본 적 없는 야쿠모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거기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알도와 단 둘이 장시간 함께하는 것도 요 근래 처음이었다.
-손은 잡아봤어? 포옹은? 뽀뽀는?
야쿠모나 알도나 이제까지 연애 경험은 전무한지라 서툴고 자시고 간에 스킨십에 대해서 그리 크게 생각이 없었다. 정확히는 큐모스가 이죽거리기 전까지는 야쿠모도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기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지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알도."
"왜? 야쿠모."
직접 묻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도 없으나 스킨십으로 알도에게 반응을 이끌어내려면 직접 묻는 게 인내하는 시간보다는 확실히 빠를 것이다.
"넌..나랑 손을 잡고 싶다거나 뽀뽀를 하고 싶다는..그런 마음이 전혀 안 들어?"
갑작스러운 물음에 알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역시 생각도 안 해봤네 이 자식. 그런 생각이 야쿠모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갈 즈음 알도가 황급히 대답했다.
"그, 그렇네. 생각도 못 했네. 미안. 그냥, 누군가를 사귄다는 것 자체가 처음이고, 바쁘게 돌아다니기도 했고 그쪽으론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아."
"원래 그런 녀석인 건 알고 좋아한 거긴 한데..괜히 나만 안달복달하는 거 같아서 별로야. 그러니까..."
-우리 사귄지도 꽤 됐는데 뽀뽀나 한 번 하자! 직구를 던져보라고!
저로 인해 태어난 게 맞기는 한지, 큐모스의 조언은 때때로 적절했다.
야쿠모는 이제껏 한발짝 뒤에서 걸어온 게 무색하게 앞으로 나섰다.
"그러니까, 지금 한 번 뽀뽀해 보자."
"이, 이렇게 갑자기?"
"마침 사람도 없고 큐모스도 없어. 누가 올 낌새도 당장 없고."
"미안한데..야쿠모, 지금 이 상황 정말 부끄러운데. 나중으로 미루면 안 될까?"
"나중에 언제? 이런 말을 이렇게 해야 하는 나도 부끄러우니까, 눈이나 감아 보라고."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다.
단순히 부끄러워서라면, 야쿠모가 싫지 않다면 눈 딱 감아버리면 그만이었다. 뽀뽀하자고 말한 본인도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뿜어내는 수준인지라 알도는 그래, 눈을 감자! 하며 질끈 눈을 감았다. 누가 보면 억지로 하는 줄 알겠네. 아니, 반은 억지인가. 온갖 잡생각을 하며 알도의 어깨를 잡은 야쿠모가 제 얼굴을 기울였다.
키스라고 부를 만한 건 아니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느니, 이성이 날아갈 만큼 기분 좋다느니 하는 느낌도 아니었다. 하지만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게 소름돋을 만큼 생생하게 느껴지는 점이나 얼마 전까지 타인이었던 사람에게 뽀뽀하자며 밀어붙일 만큼 감정이 솟아나고 요동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니 가슴이 마구 뛰는 것을 느꼈다. 문제는 상대도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것인데. 눈을 질끈 감았던 알도가, 돌연 눈을 떴다. 제가 먼저 붙잡고 뽀뽀한 주제에 야쿠모는 화들짝 놀라 밀쳐냈다. 얼결에 호숫가에 미끄러질 뻔한 알도는 중심을 바로 잡으면서도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너, 너, 너..왜 갑자기 눈을 뜨고 그래? 깜짝 놀랐잖아!"
"그러는 야쿠모야말로 왜 갑자기 밀어버린 거야? 하마터면 호수에 빠질 뻔 했다고."
"갑자기 눈을 뜨니까 당황해서 그렇지!"
"당황스러운 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야쿠모도 눈 떴으니까 똑같은 거 아냐?"
"나는 그, 빗나갈까봐 안 감은 거야. 정 그러면 다음에는 내가 눈 감으면 되잖아."
"..그런 거야?"
"그래."
조악한 핑계인데도 알도는 금방 납득했다. 평소에도 사기 당하기 좋은 성격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상황에까지 핑계가 먹힌다는 점에서 야쿠모는 다른 의미로 눈앞이 깜깜했으나 그래도 싫다는 반응은 없어서 다행으로 여기기로 했다.
"그럼, 이제 밥 먹으러 갈까?"
알도도 아무렇지 않은 양 말은 했지만, 시선을 어디 두기 힘들다는 듯 딴청을 피웠다.
"얼마 안 되는 거리지만, 손 잡고 가자."
그러면서도 또 야쿠모가 했던 말은 빠뜨리지 않고 깊이 들었다는 듯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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