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하라치
혼자 잠자리에 든 지 나흘째다. 보리스도, 제미니도, 코코도 모두 뮤토의 침실로 가버렸으므로 미첼은 정말이지 오랜만에 혼자서 커다란 쿠션을 끌어안고 잠을 청해야 했다. 매끄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천의 겉면은 차갑기만 해서 미첼은 얕은 잠을 자며 여러 번 새벽에 깼다. 깰 때마다 뮤토의 방으로 찾아가려는 충동을 억누르는 일이 무척 어려웠다. 시간을 줘야
미첼의 침실, 볕이 들지 않는 구석 자리에는 장식장이 하나 놓여 있다. 속의 물건을 보이기 위한 일반적인 장식장과 달리 이 캐비닛은 유리로 된 창마다 덧문을 달아놓아 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왕자는 장식장을 하나 들여놓으라 명하며 햇볕이 닿으면 상하기 쉬운 귀한 물건을 넣어둘 것이라 말했으나, 실제로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 그만큼 귀한 물건인지 사
아버님께. 동봉한 나머지 한 장은 제 휘하의 마물 토벌대 제3부대의 후임자 문제와 하임 영지 및 재산 처리에 관해 부탁드리는 내용입니다. 경계초소 건립 진행 상황과 토벌대에서 진행하던 계획들은 토벌대 내에 후임자가 정해져 있으니 그들에게 맡기시면 가장 믿음직하리라 생각합니다. 이 편지가 도달할 즈음에 하늘섬 추락이 완전히 멈추었다면 무용한 계획일지도
친애하는 이피. 잘 지내고 있니? 키르쿠스의 소식을 항상 받아보고 있는데, 근래에는 어떤 이야기에서도 네 이름이 빠지지 않더라. 답장이 어려울 정도로 바빴을 거란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니 괜찮아. 나 말고도 네 대답을 기다리는 결정과 지시를 기다리는 부하들이 줄을 서 있겠지. 나한테도 그런 시기가 있었고… 그저 내가 보내는 편지가 잠시나마 네게
어둠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두려움의 대상인가? 왕자는 빛을 가져왔으나 평화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아소르의 마물 토벌대는 아소르 왕실의 많지 않은 직속 군사 중 하나다. 각지의 영주들에게 자치권이 보장되어 있으므로 영지를 가진 귀족은 치안 유지를 위해 일정 정도의 사병을 가질 수 있었다. 특히나 마물은 사병의 수를 늘리는 데에
첫 번째 답장은 큼직한 소포와 함께 도착했다. 소포에 든 건 벨라가 두 팔을 펼친 것보다도 길고 큰 천체망원경이었다. 동봉된 안내서에는 마력석을 아낌없이 사용하여 특별히 제작하였으며, 일반적인 관측소의 망원경만큼이나 멀리, 밝게 보인다고 적혀 있었다. 편지의 말미에는 짤막한 추신이 붙어 있었다. 왕자는 시답잖은 농담을 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p
미첼의 정원에는 지금도 흰색 섞인 붉은 장미가 피어나 있다. 아주 오래전, 소녀가 소년보다 키가 컸을 때, 장미향이 나는 꽃차와 크림을 바른 딸기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라고 굳게 믿던 시기에 심긴 것이다. 미첼은 이 장미 묘목이 시들지 않도록 신경 써서 돌보았다. 이따금 정원에 공간이 부족에 몇 번 옮겨심기도 했지만, 결코 시들지는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