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chell

06

영원히 그리울 시간

미첼의 침실, 볕이 들지 않는 구석 자리에는 장식장이 하나 놓여 있다. 속의 물건을 보이기 위한 일반적인 장식장과 달리 이 캐비닛은 유리로 된 창마다 덧문을 달아놓아 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왕자는 장식장을 하나 들여놓으라 명하며 햇볕이 닿으면 상하기 쉬운 귀한 물건을 넣어둘 것이라 말했으나, 실제로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 그만큼 귀한 물건인지 사용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높으신 분들의 속내란 원래 알기 어려운 것이라지. 하지만 낡아빠진 새 인형들과 시들지 않는 여름 데이지 몇 송이가 들여다보지도 않을 만큼 귀한 까닭을 그들은 알 수 없었다.




왕자가 태자가 되고, 태자가 국왕으로 즉위하기까지. 

성급한 일부의 무리는 그가 아소르 역사상 가장 어진 왕이 될 거라 평했다. 가장 신중한 이조차 그에게는 마땅히 왕의 자질이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악의를 가진 이라도 그가 마법사이자 왕족으로서 일궈낸 업적을 없던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이 자리를 준비하고 기다려온 사람처럼 모든 일을 자연스럽게, 거뜬히 해냈다. 한때 태자는커녕 주목받지도 못한 왕자였던 시절은 어진 이가 가진 겸손이라는 덕목으로 포장되었다. 왕이 되기 위해 태어난 자라는 칭송을 들으며 미첼은 내심 조소했다. 그야 왕이 아닌 자신을 모두 내버렸다면 당연히 왕이 되기에 적합한 면만 남지 않겠는가. 제가 아닌 누구더라도 이처럼 살았다면 비슷하게 해냈을 거라는 자조는 오로지 자신만 알았다.

누구라도 비슷하게 할 수 있었겠지. 그러나 반드시 제가 해내야 하는 것은 그걸 바란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생을 제물로 바쳐가면서까지.




미첼을 오래 모신 시종은 여름이 다가오면 그의 주인이 부쩍 예민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예민하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나 그보다 적당한 말도 찾을 수 없었다. 해가 길어지고 공기에서 더운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그의 주인은 다른 생각에 잠긴 것처럼 멍하니 있을 때가 잦았다. 식사 중에, 회랑과 안뜰을 가로지를 때에, 창틀에 내려앉은 새를 보면서. 그것은 아주 찰나였고 오래 그를 지켜봐 온 사람이 아니라면 알 수 없을 작은 변화였으나, 해를 거듭하고 반복되는 일은 그에게 확신을 주었다. 

그의 주인은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장마가 지난 어느 날인가에는 꼭 하루, 예외적으로 긴 늦잠을 자고 방에 사람을 들이지 않는다. 그날이 지나면 서서히 원래의 전하로 돌아온다. 아랫것에게 자상하고 온유하면서도 이성적인 주인으로.

침묵은 시종의 미덕이므로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왜 궁 안에 여름 데이지를 심지 말라 명하셨느냐고 묻는 것은 시종에게 허락되지 않는 일이다. 여름에는 항상 테라스 창을 조금 열어놓으라 하셨다면, 그저 행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그의 주인에게 달리 속을 털어놓을 가까운 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러니 아소르의 지고하신 분의 속내를 아는 이 역시 아무도 없으리란 것을 그는 안다.




9년, 8개월하고도 7일째. 녹음이 이성을 마비시켰다.

의무와 책무로만 남은 이. 홀에 걸린 초상화로 요약되는 삶. 그것이 네가 바란 것이었으므로 나는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결심했을 뿐인데. 여름마다 새가 물어오는 흰 데이지꽃은 이미 죽였다고 생각한 저를 기어코 끌어올려서 묻는다. 정말 보고 싶지 않느냐고.

눈물은 설움도 후회도 분노도 아니었다. 문밖으로 새어 나갈까 소리 없이 오열했던 시간은 모두 그리움이었다. 왕이 아닌 자신이 네게 가질 건 그리움밖에 없었다. 보고 싶다는 말을 소리내어 뱉을 수 없어서 대신 울음을 토해야만 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깊은 숲. 이끼와 들꽃 위에 너는 유적처럼 굳어간다. 

“진짜 딱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 …”

짐승들의 애도를 받는 석상은 그 자체로 숲의 파수꾼이 되겠지. 네가 베푼 마력이 이 숲을 살리는 양분이 될 것이고 내가 쌓아 올린 영광이 모든 인간으로부터 이 숲을 지킬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고마워.”

“나는…”

내게 마력은 뺨을 어루만지는 햇살과 같으므로 나는 한낮의 볕을 받을 때마다 너를 떠올릴 것이다. 해가 뜨면 네가 곁에 있다 느끼고 밤이면 다시 낮이 찾아오기만을 바라며 잠에 들겠지. 이제 여름 데이지를 보내줄 사람은 없는데도 여름의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흰 새만을 눈으로 좇을 테고.

나는 네가 없는 세상을 살고 싶지 않아. 그래서 네가 바란 ‘미첼’을 죽이고 또 죽여왔는데.

“잘 지내, 미첼.”

죽인다고 죽일 수 있는 것이 아닌 게 애정임을 뒤늦게 깨달아서. 

후회는 또다시 눈물이 된다. 처음 마주한 환한 웃음인데 그 앞에서 미소를 돌려줄 수가 없다. 죽은 자의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네게서 불리는 순간 그가 끝내 살아있었음을 알게 된다. 왕이 아닌 저를 모두 죽이지 못했으므로 남은 생은 외로움과의 투쟁일 것이다. 지고하고 존귀한 존재로서 모두의 사랑을 받겠으나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할 것이다. 

9년, 8개월하고도 7일째. 죽은 네 친우가 되살아나 고백한다.

“가지 마, 뮤토…” 


카테고리
#기타

해당 포스트는 댓글이 허용되어 있지 않아요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