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chell

05

유서

아버님께.

동봉한 나머지 한 장은 제 휘하의 마물 토벌대 제3부대의 후임자 문제와 하임 영지 및 재산 처리에 관해 부탁드리는 내용입니다. 경계초소 건립 진행 상황과 토벌대에서 진행하던 계획들은 토벌대 내에 후임자가 정해져 있으니 그들에게 맡기시면 가장 믿음직하리라 생각합니다. 이 편지가 도달할 즈음에 하늘섬 추락이 완전히 멈추었다면 무용한 계획일지도 모르나, 마력석 유통청 설립과 왕실 정규 토벌대의 운영은 장기적으로도 아소르에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부디 살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금부터는 당신의 막내아들이 남기는 말입니다.

토벌대로 아소르를 떠돌 적에는 언제나 유서와 사후 대비를 해두었는데 막상 아누 조사대에 오면서는 이를 완전히 잊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돌아가리라 생각했거든요. 이는 재난이나 재앙은 아니니 혹여 섬이 떨어지는 것을 막지 못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위해 돌아가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게 출궁을 허락하셨으니 아버님께서도 같은 생각을 하셨겠지요. 또는 제가 재앙을 타파하고 돌아온 최초의 마법사의 후예로 드높을 것을 기대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분명 누님의 빈자리를 적절히 대체할 수 있었겠지요.

어느 것 하나 이뤄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버님께 편지를 남기는 이 시점에서는 아직 제 몸으로 마력의 원천을 적절히 대체할 수 있을지, 얼마나 지탱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편지가 아버님의 손에 당도했다면 피치 못할 사고가 있었거나, 또는 새 편지를 쓸 여유를 갖지 못했으나 제가 숙고하여 내린 결과입니다. 부디 용서를 구합니다. 또 이해와 자비를 구합니다. 왕자를 잃은 슬픔을 엄한 곳으로 돌리셔서는 안 됩니다. 

7년 전 우리 아소르는 재난을 유예하는 선택을 내렸습니다. 이닐리엣으로 당도한 의견서에 아소르의 국새가 찍힌 것을 보았을 때 제가 무엇을 느꼈겠습니까? 저는 차라리 조사대의 일원이 아니었다면 무언가 달라졌을지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궁성으로 돌아갔고 감히 왕가에도 귀족에게도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제가 믿음직스러워 보이지 않고, 고깝게 보였다는 것도 압니다. 누님과 형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면서 이상만 높았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저 또한 아소르이고 아소르를 떠받칠 기둥이며, 대륙의 한 축을 지탱할 수 있는 이입니다.

비로소 선택할 수 있게 된 지금 저는 더 이상 무력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언제나 공명정대한 태도를 가질 것, 스스로에게 정직할 것, 낮은 이를 긍휼히 여기는 것. 모두 아버님께 배운 것입니다. 아버님도 누님도 형님도 제가 아누 조사대나 토벌대와 어울리며 헛바람이 들었다 여기셨지만, 사실 저는 원래 이런 인간이었습니다. 진실로 이 선택은 온전히 저 스스로가 내린 선택이므로 다른 이를 탓할 생각 말아 주십시오. 무엇보다 저희는 아소르가 아닙니까. 제국의 계보가 유실되고 최초의 마법사의 핏줄을 알 수 없게 되었다 한들 저는 제국을 잇는 후손입니다. 조상의 고통을 대속하는 자리에 마땅히 후손이 임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에게 그 책무를 지울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니 다만 저를 연민하고 기억해 주십시오.

빛의 왕자, 제3토벌대의 대장, 마법사가 된 왕자와 같은 이름이 아니라 제가 어떤 이였는지 기억해 주세요. 저는 아버님이 주신 선물은 모두 좋았습니다. 열일곱 생일에 주신 백마를 토벌대까지 데리고 다닌 것이 단순히 빛의 왕자 소리를 들으려고 한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셨겠지요? 누님의 예전복과 꼭 같은 색으로 맞춰주신 예복도 좋았고, 트리하우스 대신 정원에 심어주신 너도밤나무도 좋아했습니다. 조사대에 들어가게 해달라 청한 날 다 큰 아들을 쓰다듬어주셔서 좋았고, 말단 병사가 되겠다고 한 날 혼나면서도… 절 험지로 보내고 싶지 않으신 마음을 알아서 좋았습니다. (참, 이제야 고백하는 건데 제게 사랑을 약속한 평민 같은 건 없습니다. 절 도와준 친구 알렉스는 벌하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아버님, 저를 성에서 내쫓고 누님에게 더 기회를 주실 때에는 그만한 사정과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한 번도 아버지로서의 당신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 저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아버지께서도 제 사랑을 의심치 마시고, 제가 아소르를 사랑했다는 사실만 기억해 주세요.

저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이 땅에서 일어난 기적과 신성에 대해서는 모두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마법사가 아닌 이에게는 납득이 가지 않을 설명일 뿐만 아니라, 저는 이곳에서 일어난 일이 후세에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간신히 얻은 평화를 조금이라도 더 연장할 방법이며, 평화를 위해 투신한 자들에게 지켜야 하는 예의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우리는 오로지 연민의 방식으로 평화를 얻어냈습니다.

그러니 저는 이제 이 연민이 거짓이 아님을, 또한 우리가 타인의 연민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나아갑니다.

연민이 기적의 또 다른 이름임을 증명하고 오겠습니다.

미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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