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토
언약을 지키는 일
혼자 잠자리에 든 지 나흘째다.
보리스도, 제미니도, 코코도 모두 뮤토의 침실로 가버렸으므로 미첼은 정말이지 오랜만에 혼자서 커다란 쿠션을 끌어안고 잠을 청해야 했다. 매끄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천의 겉면은 차갑기만 해서 미첼은 얕은 잠을 자며 여러 번 새벽에 깼다.
깰 때마다 뮤토의 방으로 찾아가려는 충동을 억누르는 일이 무척 어려웠다. 시간을 줘야 해. 다급하게, 너를 상처입혔다는 불안에 덜컥 겁에 질려 고백해 버린 날의 너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워 보였으므로. 감정을 받아들일 시간을 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결론이 어느 방향으로 나더라도...
물론 미첼 아소르를 손에 꽉 쥔다는 선택을 해준다면 가장 좋겠지만.
미첼은 베개만큼 커다란 쿠션에 머리를 박으며 몸을 둥글게 말았다. 커다랗고 넓은 침대는 한동안 세 마리의 개와 두 명의 사람이 함께 쓰느라 넓은 줄도 몰랐는데, 홀로 남게 되니 터무니없이 넓게만 느껴져 외로움이 더 사무쳤다. 왕궁의 시종들은 부지런히 침구를 세탁하고 교체했으므로 고작 나흘 만에 이불에서는 숲이끼를 닮은 네 냄새가 나지 않았다. 청승이야, 미첼 히스티온 타라넥 아소르. 혹여라도 뮤토가 같은 마음이 아니더라도, 뮤토는 언약을 어기고 나를 떠날 사람이 아니잖아. 스스로에게 아무리 되뇌어봐도 한 번 겉으로 드러난 욕심은 사그라들 줄을 몰랐다.
‘나한테 결혼 축하한다고 말해주는 뮤토라니. 우와, 상상만 해도 비참해.’
쿠션에 머리를 꿍 박았다. 한 번 더 꿍. 예전에 누님은 사람이 사랑을 할수록 마음이 넓어지는 거라 하셨는데. 아니요, 누님. 저는 점점 더 옹졸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만 같습니다. 꿍. 오늘 잠자기는 완전히 글렀다 생각할 즈음,
“뭐 하는 거야?”
가장 듣고 싶었던 목소리다. 미첼이 번쩍 고개를 든 곳에 창문을 등지고 그를 내려다보는 인영이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도 없던 걸 보면 워프를 썼나 보지. 달빛을 등져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어둠 속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미첼은 황급히 일어나 앉아 안고 있던 쿠션부터 멀리 치워버렸다.
“무, 무슨 일이야 뮤토. 개들은 어쩌고.”
“...무슨 일이라니.”
어둠에 시야가 익숙해지자 차츰 네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침실의 한 면을 다 차지한 통창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연노랑색의 머리카락을 희미하게 비추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네가 입어준 연분홍색의 파자마와, 그 아래 드러난 흉터 가득한 손발도.
화가 나고 억울한 듯한 표정은 가장 나중에야 눈에 들어왔다.
“약속을 안 지킨 건 너잖아.”
“...뮤토?”
“매일 사탕을 주기로 했으면서. 사흘이나 빼먹었어. 오늘로 나흘 째야!”
아. 멍청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마 지금 엄청나게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겠지. 변명의 말을 입에 담기도 전에 멱살이 잡혀 몸이 뒤로 넘어갔다. 이불 위로 겹쳐진 몸이 쓰러지는 소리는 낙엽이 날리는 소리보다도 가벼웠다.
“약속도 안 지키면서, 어떻게 불안하지 않게 해준다는 거야? 매일 사탕 하나조차 안 주면서, 나보고 뭘 욕심내라고 하는 거야?”
“아니, 뮤토. 오해야. 나는...”
“나는 기다렸는데!”
침묵. 이마 위로 입술이 와 닿았다. 굿나잇 키스라기엔 지나치게 난폭해서 입술로 하는 박치기처럼 느껴질 정도다.
미첼은 두 번 생각하지 않았다. 두 팔을 뻗어 목을 안고 끌어당겼다. 온전히 무게를 싣도록. 빈틈없이 맞닿도록. 쏟아진 머리카락에서 온통 그리워하던 내음이 나서, 꼭 숲의 한가운데에 누워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미안해. 잊고 있었던 거 아니야. 네가 날 보고 싶어 하지 않을 줄 알았어.”
“...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나는 약속 지켰어.”
“맞아. 내가 잘못 생각했어. 만회할 기회를 주지 않을래?”
두 팔이 단단히 마른 몸을 끌어안았다. 고작 사흘 품이 비어 있었을 뿐인데.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은 듯한 안도감이 가득 차올랐다. 거봐, 네가 나를 길들이게 될 거라고 했지.
“나는 네가 나와 다른 의미로 날 욕심 내도 괜찮다고 생각했어, 뮤토.”
“연인으로 지내고 결혼을 생각하는, 그런 자리에 날 앉혀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지만 너한텐 거짓말하지 않기로 약속했으니까. 아니야, 뮤토. 나는 네가 다 욕심냈으면 좋겠어. 내 전부를 가졌으면 좋겠어. 네 친구로서도, 연인으로서도, 단 하나뿐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한 존재가 나였으면 좋겠어...”
네가 밀어 올린 나는 지고의 자리에 앉을 이가 되겠지. 이 대륙에 감히 나를 가졌다 말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로지 너를 제외하고는.
“사람이 빛과 어둠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나는 네게 내 빛도 어둠도 모두 주고 싶어. 받아주지 않을래, 뮤토?”
모두에게 언제나 다정한 이의 사랑이란 특별할 수밖에 없어서.
미첼 아소르의 고백은 이토록 이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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