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벨라
첫 번째 답장은 큼직한 소포와 함께 도착했다. 소포에 든 건 벨라가 두 팔을 펼친 것보다도 길고 큰 천체망원경이었다. 동봉된 안내서에는 마력석을 아낌없이 사용하여 특별히 제작하였으며, 일반적인 관측소의 망원경만큼이나 멀리, 밝게 보인다고 적혀 있었다. 편지의 말미에는 짤막한 추신이 붙어 있었다. 왕자는 시답잖은 농담을 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p.s. 미리 주는 결혼 선물이야.”
새해에 도착한 편지는 유독 짧았다. 해가 바뀌고 얼마 되지 않아 도착했으니 전년의 말에 보낸 것일 터였다. “한동안 답장을 보내도 받지 못할 거야. 왕성에 없을 거거든. 옮겨가는 곳에서도 편지할게. 건강히 지내, 벨라.” 아소르의 마법사 왕자가 뮤타로 유학을 갔다는 소식은 이그레튼의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파다했는데―아마 왕자가 유학처로 고르지 않았다는 소식이 일부의 자존심을 건드린 탓도 있었을 것이다― 정작 왕자는 편지에 뮤타라는 말은 한마디도 써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디로 향하는지, 왜 왕성을 떠나는지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다음 편지는 네 달이나 지나고서 도착했다.
소인이 찍힌 곳은 아소르 변경의 소도시였다. 아소르의 지도를 펼치고 눈을 가늘게 뜨고 보아야 겨우 찾을 수 있는 그런 도시였지만,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그런대로 인지도가 있는 지명이었다. 인근의 계곡에 마물이 빈번하게 출현하여 마물의 부산물을 거래할 수 있는 도시로 알려져 있던 탓이다. 도착한 편지의 봉투에는 ‘티온’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고, 편지를 열면 인쇄한 것처럼 반듯한 필체가 싸구려 종이에 적혀 있었다.
“이 동네에는 빵처럼 두꺼운 만두를 쪄먹는 전통음식이 있어. 그냥 먹기도 하고 뜨겁고 매운 수프에 적셔서 먹기도 하는데, 맵지만 엄청 맛있었어. 나중에 집에 돌아가면 또 생각날 것 같아. 못 먹어본 음식도 먹어보고, 못 보던 풍경도 직접 보니까 집을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거기에는 왜 갔다는 건지, 뭘 하고 있다는 건지, 누구랑 있다는 건지. 그런 말은 하나도 적혀 있지 않고 그저 잘 먹고 잘 돌아다닌 이야기밖에 없어서 누군가 본다면 유랑 여행 중인 사람이 보낸 편지로 보일 지경이었다. 심지어 편지 안에도 보내는 이의 이름은 없고 M이라는 이니셜만이 편지 끝에 남아 있었다.
그런 편지가 서너 달에 한 번씩 도착했다. 소인이 찍힌 도시의 이름이 하나같이 마물의 출몰지에서 멀지 않았다.
“네가 떠난 뒤로 전투 중에 흠칫 놀랄 때가 있어. 시야 구석에 하얀 게 스치면 사람일까봐 깜짝 놀라는 거야. 사실은 소리에 놀라 달아나는 새나 동료가 검 손잡이에 묶어놓은 천인데. 나도 모르게 그쪽을 지키려고 몸을 틀었다가, 순식간에 아차 하는 거지. …그렇다고 집중을 놓쳤다거나 다친 건 아니니까 걱정하진 말고. 그냥, 그때는 그만큼 놀랐다는 소리야. 이미 여러 번 한 말이지만, 다음에는 꼭 호위라도 고용해서 같이 다니도록 해. 정말 위험하다니까.
부대와 다니면서 별 읽는 법을 많이 배웠어. 이제 밤하늘을 보고 북쪽만 찾는 게 아니라, 네가 있을 방향도 제법 정확하게 찾을 수 있게 됐지. 오늘은 날이 맑아서 별이 아주 잘 보여. 이런 날에는 네가 해준 말들이 더 생각나.
이그레튼의 학교 앞 거리를 보고 싶다는 욕심은 아직도 그대로인데 기회를 만들기가 쉽지 않네. 이러다 네가 먼저 졸업해 버리겠어. 듣기로는 졸업하고도 계속 학교에 남는 과정이 있다던데, 그런 건 예정에 없어? 내가 놀러 갈 때까진 네가 이그레튼에 있으면 좋겠다. 바로 그 수석 입학생이 내 친구라고 자랑도 하게.”
답장을 필요로 하지 않는 편지는 계속해서 드문드문 도착했다.
편지는 안부를 알리는 인사이기도 하지만,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약속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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