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박전대] 책임

메가구가 사라진 뒤, 아지라이더의 이야기

* 샌박전대 2차 창작

* 12화(마지막화) 이후 시점으로, 샌박전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포스타입에 게재되었던 <책임>의 리메이크로, 원본은 비공개 처리했습니다.


사회가 떠들썩했던 검은세계와의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된 후, 메가구는 아지라이더에게 고생했다며 일주일의 휴가를 주었다. 이번 일이 아니었더라도 그동안 강도 높은 훈련과 임무에 고생했다며 반강제적으로 쥐여준 휴가였다. 물론 싸움의 후유증도 있고, 상태가 좋지 않은 양노을도 있으니 어디 멀리 가진 못하고 그저 무료하게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그리고 그 휴가는 3일째 아침, 한 통의 편지로 깨지게 된다.

"오랜만이네요, 아지라이더 님."

"죄송해요! 지금 제가 좀 급해서!"

아지라이더가 사복 차림으로 중앙 지부에 뛰어 들어왔다. 꽤 빠른 속도였지만, 그녀의 상징과도 같은 강아지 귀와 꼬리를 본 직원이 밝게 인사를 건넸다. 그 덕에 급하게 브레이크를 건 아지라이더가 제 속도를 이기지 못해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지만, 겨우 중심을 잡았다. 웃는 얼굴로 대충 인사를 받은 아지라이더는 소리치며 다시 엘리베이터 쪽으로 달려갔다.

타다닥, 소리가 나도록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아지라이더는 엘리베이터가 오는 기다림 속에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불안한 기색을 비다. 옆에서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다른 직원은 덩달아 자신도 불안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직원은 불안함에서 멀어지기 위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먼저 올라가라는 뜻이었다. 그 직원이 들고 있는 짐이 꽤 많았지만, 아지라이더는 양보를 거절하지 않았다.

불안함이 가득한 손으로 사령관실이 위치한 층을 누르고 닫힘 버튼을 빠르게 연타했다. 반대쪽 손에는 종이가 한 장 들려있었다. 종이가 담긴 봉투도 함께 들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오면서 떨어뜨린 모양이다. 종이는 어느새 긴장해 주먹 쥔 아지라이더의 손에 처참히 구겨진 채였다.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보고 아지라이더는 들고 있던 종이를 다시 확인했다.

[ 메가구 실종. - 킹블루 ]

아지라이더가 휴가도 내팽개치고 사복으로 달려올 정도의 소식, 메가구의 실종이었다. 사실 사직서도 제출했고 떠날 거란 언질도 있었기에 실종보다는 퇴사라고 보는 게 더 정확했다. 메가구의 그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고 어디에도 모습을 비추지 않는다는 점만 빼면. 메가구가 사라진 지 정확히 3일. 그러니까 아지라이더에게 휴가를 내준 당일, 메가구는 사직서를 제출한 뒤 잠적했다.

사령관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서 아지라이더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떠돌았다. 스승님은 간혹 장난이 지나치신 분이니 전대 소식에 느린 제자를 놀라게 하기 위한 장난일 것이다. 그러나 이건 스승님의 필체가 아니다. 아니, 워낙 심각한 사건이었으니 긴장한 제자를 장난으로 풀어주시려는 거겠지. 다른 사람의 필체까지 빌려서. 하지만 고작 5글자 적힌 편지 한 통이라니, 평소 스승님이 쳐온 장난보다 규모가 작은 수준이 아닌가. 이런 것보다는 납치라도 당한 척 꾸며놓고 놀래키는 게 오히려 스승님답지 않나? 자신이 없는 사이 위험한 일이 생길까 휴가 한 번 제대로 가져본 적 없으신 분인데. 삶의 반 이상을 전대에서 히어로로 살아오신 분인데, 그런 사람이 사라져? 그래, 이건 늘 있었던 스승님의 과한 장난이다.

결론에 도달함과 동시에, 띠링- 도착음과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조금 전까지의 빠른 생각의 흐름으로 어느 정도 진정된 아지라이더는 사령관실로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진짜 장난이라면 이번에야말로 스승이고 뭐고 화를 내야겠다고 다짐하며. 그러나 걸음이 점차 빨라지는 것은, 어디 한 구석에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올 줄 알았어, 아지 양."

안타깝게도 스승님의 장난일 것이라는 아지라이더의 예상은 빗나갔다. 호탕하게 웃으며 제자를 속여 즐거워할 메가구는 없고, 대신 책상에 걸터앉은 킹블루가 아지라이더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지라이더는 사령관실 문을 연 자세 그대로 빠르게 눈을 굴려 메가구를 찾았다. 아마 늘 그랬던 것처럼 어디 숨어있으리라 생각한 모양이다. 킹블루는 어깨를 으쓱이며 아지라이더가 현실을 받아들이게 내버려두었다.

복도까지 찾아보고 나서야 아지라이더의 눈에 몇 칸이 빈 책장이 들어왔다. 메가구가 즐겨있던 책들이 꽂혀있어야 할 칸들이 전부 비워져 있었다. 사령관실 내 유일한 그의 흔적이 없었다. 책장에는 임무 파일과 보고서 같은 공식적인 자료들뿐이었다. 이제 보니 서류가 쌓여있어야 할 책상도 아무것도 없이 깔끔했다. 메가구는 정말 사라진 것이다.

아지라이더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사령관이지 않은가. 총대장마저 실종 상태인 지금, 중앙지부 사령관도 뒤이어 실종이라니. 동부지부 역시 사령관을 잃고 흐트러진 체계가 아직 잡히지도 않았고, 남부지부도 검은세계로 인한 후유증이 크게 남아 복구에만 집중하고 있 상황이다. 한마디로 전대는 소위 '개판'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전대의 총책임자이자 대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중앙지부 사령관이 없다.

"...뭔가 알고 계신 거죠?"

아지라이더가 구겨진 편지를 킹블루 옆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지루하다는 듯이 하품하던 킹블루가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떠난다는 말은 있었지~"

"스승님, 지금 어디 계시나요."

답을 원하는 물음이었으나 문장의 끝이 내려가 있었다. 동시에 상당히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화를 억누르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메가구의 제자 중 그의 곁을 가장 오래 지킨 것은 자신이었기에. 그런 제자에게 얘기 하나 없었다니, 아지라이더는 몰려드는 스승에 대한 배신감과 서운함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깊은숨을 내뱉었다.

"중앙지부 사령관 메가구, 지금 어디 계시냐고요! 떠난다는 걸 들으셨다면 어디로 가셨는지도 들으셨-"

"아지 양."

킹블루가 화가 가득 찬 아지라이더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 무게감 있는 말투와 날카로운 시선에 아지라이더는 저도 모르게 뒤로 한 발짝 물러나며 입을 다물었다.

"아지 양은 감정을 좀 죽일 필요가 있겠어. 사령관이 이런 작은 일에 흔들리지는 말아야지."

"그게 지금 가능할 거라-... 잠깐, 네?"

"갑작스럽지만 중앙지부 사령관이 된 걸 축하해, 아지 양."

아지라이더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본인이 지금 제대로 들은 것이 맞냐는 듯한 표정에 킹블루가 책상에서 내려와 서류를 하나 내밀었다. 메가구의 날인이 찍힌, 아지라이더를 중앙지부 사령관으로 임명한다는 공식적인 문서였다. 아지라이더는 본인의 이름과 '중앙지부 사령관'이라는 글자가 나란히 적힌 서류를 읽고 또 읽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제, 내가 중앙지부 사령관이다? 아지라이더의 머릿속이 순식간에 새하얘졌다.

머리에서 이 엄청난 정보를 처리할 새도 없이 킹블루의 사령관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됐다. 사령관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줄줄 읊는데, 당연히 머리에 들어올 리가 없다. 아지라이더는 멍하게 킹블루의 말을 어느 카페의 배경음악처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해서, ...사령관?"

"..."

"아지 양?"

"네, 네?! 아니, 지금 정리가 하나도..."

"아직 수리되진 않았지만, 사직서까지 냈으니 사실상 퇴사에 가까워. 연락을 안 받아서 실종이라 했을 뿐이지. 뭐가 됐든 사직서가 수리되면 메가구는 공식적으로 전대와 관련 없는 인물이야. 그래도 다음 사령관을 추천하고는 갔으니~"

"그러니까 왜 제가... 이해할 수 없어요! 저보다 뛰어난 분들도 훨씬 많을 텐데...!"

"경력으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아지 양이면 충분하지~ 하긴, 전 사령관이 워낙 뛰어났으니..."

킹블루가 아지라이더를 눈으로 훑는다. 메가구와 비교하는 눈빛에 아지라이더가 살짝 움츠러든다. 현장은 수도 없이 뛰어다녔을 테니 걱정 없지만, 그만큼 사무 업무에는 무지할 테니. 게다가 심심할 때마다 사령관실에 늘어져 있던 본인과 달리 아지라이더는 훈련실을 더 자주 드나들었다. 걱정이 가득하던 메가구가 떠오른다. 오래 전대에 있었다고는 해도 직책을 가지는 건 또 다른 문제겠지. 알아서 잘하리라 생각하지만 스승으로서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군. 킹블루, 부탁 하나만 하지. 사령관이 아닌 친우로서의 그의 모습은 굉장히 오랜만이라 킹블루는 옆에서 지켜봐 달라는 메가구의 부탁을 흔쾌히 승낙했다. 아지라이더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도 결정에 한몫했다.

"옆에서 도와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구, 새로운 사령관."


한동안 서류에 파묻혀 지냈다. 휴가를 휴가로 보내지도 못하고 일만 배웠고, 휴가가 끝난 이후에는 메가구의 사직서가 수리되어 공식적으로 중앙지부 사령관 자리에 올랐다. 전대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취임식 같은 건 치르지 못했지만, 아지라이더는 더 이상 일개 히어로가 아니었다. 사령관이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밀려오는 서류들은 책상은 물론 바닥에도 가득히 쌓여 갑자기 생긴 직책에 대한 부담감을 느낄 새도 없게 했다. 잠깐 여유가 생기면 수많은 서류를 처리하면서 현장까지 뛰어다닌 스승님의 업무능력에 감탄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메가구가 급한 건이나 큰 건들을 처리하고 떠났다는 것이다. 덕분에 아지라이더에게 넘어온 일은 자잘한 것들이라 금방금방 끝낼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처리하고 넘어온 게 이 정도라니, 앞으로의 업무 생각에 눈앞이 아득해지는 기분이다. 큰 건이 들어오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막중한 책임감도 생긴다.

뻐근한 몸을 일으켜 간단히 스트레칭했다. 사무 업무에 밀려 현장은커녕 훈련실에도 가지 못한 게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즉 야근까지 하다가 퇴근해 그대로 침대에 뻗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출근하며 직원들의 인사를 받은 게 7일이 넘었다는 뜻이다. 매일같이 밖을 돌아다니며 몸을 움직이던 사람이 가만히 앉아 서류만 들여다보는 것은 생각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혹독한 나머지 버티는 사람이 얼마 없다던 스승님의 특훈이라도 받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벌써 끝낸 거야?"

킹블루가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아지라이더가 기지개를 켜다 말고 놀라 짧게 소리를 질렀다.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를 으쓱인 킹블루는 책상에 놓인 서류를 조금 옆으로 옮기고 커피를 올려놓았다. 아무리 선배라지만 적어도 노크는 하고 들어오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대신 내 돈으로 커피 사다 줬잖아, 사령관. 능청스럽게 대답한 킹블루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아지라이더가 처리한 서류들로 눈을 돌렸다.

"임무를 보는 시선도 객관적이고, 속도도 늘었네. 합격이야, 아지 양."

"서류만 계속 보고 있는데 안 늘면 이상한 거겠죠..."

"신참이 가져올 현장 보고서들만 확인하면 퇴근해도 좋아. 그 정도는 혼자 할 수 있겠지?"

킹블루가 사령관실을 나가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문이 닫히자 아지라이더가 책상에 엎어졌다.

정식으로 중앙지부 사령관이 된 날, 아지라이더는 킹블루에게 제대로 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메가구는 어디로 얼마나 떠나 있을 거란 말없이 그냥 자리를 비우게 될 거라고, 모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떠났단다. 사직서와 중앙지부 사령관 임명장도 미리 준비된 채였다고. 오직 킹블루에게만 그 사실을 알리고, 본인의 부재는 아지라이더 취임식과 동시에 알리란 말을 하고 조용히 사라졌단다. 원체 자신의 흔적을 잘 남기지 않는 사람이라지만 남기는 말조차 이리 간단해서야 자신의 스승답다. 틈만 나면 책임에 대해 얘기하던 사람이 책임감을 던져버리고 떠난 건 그답지 않았지만. 실종 편지를 받은 날 겨우 잠재웠던 원망이 다시 차올랐다. 그러나 갈 곳을 잃어 결국 킹블루를 향했다.

"붙잡지도 않으신 거예요?! 중앙지부 사령관이라고요, 총대장님을 대신할 수 있는! 지금 전대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심각하다는 걸 알고 계시잖아요! 동부지부는요, 남부지부는 또 어떤데요?! 이런 상황에 말도 없이 떠난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킹블루님도 최소한 전대가 안정된 다음에 떠나도록 붙잡으셨어야죠! 하다못해 언제 돌아오는지라도 확답을 받으셨어야죠!"

"아지 양, 메가구는 이미 전대를 떠났어. 지금은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는 게 아니라 다시 컵에 물을 채울 때야. 사소한 건 그 후에 해도 늦지 않아."

"사소하다니요!"

"전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아지 양은 감정을 좀 죽일 필요가 있다고. 뭐, 일단은 쌓인 일부터 해결하자고~"

"킹블루님!!!"

"한참 후배한테 큰 소리 듣는 건 또 처음인데."

"..."

"아지 양, 지금도 일은 계속해서 쌓이고 있어. 조금이라도 일찍 퇴근하고 싶다면 빠릿하게 움직이는 게 좋을 걸~ 이런 것부터 알려줘야 하는 사령관이라니, 그래도 아지 양에게는 조금 기대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그날의 대화를 곱씹으니 다시 화가 치민다. 떠난 스승에게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자신에게도. 차가운 커피를 빠르게 빨아들여 열을 식힌다. 섣불리 감정을 내세우지 않기 위해 터득한 방법 중 하나였다. 우선은 일을 할 때다. 킹블루의 말대로 이 자리에 익숙해지고 더 이상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모든 지부가 회복한다면, 그때 다시 스승님을 찾는 거다.

아지라이더는 언제까지고 메가구가 앞에서 저를 이끌어줄 줄 알았다. 아주 어린 시절, 그에게 구출되면서 본 그 모습. 태양 같던 그 모습이 대략 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기에. 이후로도 메가구를 통해 얻은 것이 많았다. 본인이 성장하며 나아갈수록 메가구도 그만큼 앞서 나가 있었다. 그렇기에 평생 메가구를 본받으며 살 것이라 무의식중에 생각했다.

"아지야, 네가 가진 힘에 책임을 져야 한다. 히어로는 스스로가 가진 힘으로 사람들을 구하고, 악을 처단하며, 우리 힘이 어디까지 영향이 미칠지 늘 생각해야 한다. 강해져라. 네 힘이 올바르게 쓰일 수 있도록."

그렇게 책임을 강조하던 사람이 훌쩍 떠난 이유가 뭔가요, 스승님. 스승님의 자리에서 보란 듯이 버티고 있을 테니 언젠가 반드시 돌아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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