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박전대] 소문
할로윈에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찾아온다지.
* 샌박전대 2차 창작
* 12화 이후 시점으로 샌박전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0월 31일, 전대 내부는 주황빛으로 가득 찼다. 사령관실 문 앞도 예외는 아니었다. 거대한 사령관실 문 위쪽에 직접 만든 것처럼 보이는 HAPPY HALLOWEEN 가랜드가 눈에 띄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창문에 붙은 야광 박쥐 스티커 몇 개가 보였고, 완전히 돌아 사령관실 문을 등지고 서면 복도 끝에 호박 모형이 여러 개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실이나 흰색 테이프로 구석구석 거미줄을 만들어 꾸며 놓은 것도 있었다.
이 모든 건 전부 서포터즈가 기획하고 준비했단다. 전대 안 어디에도 꾸며지지 않은 곳이 없어 휴지 국장에게 물었더니 밤을 꼬박 새운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아침에 일찍 출근한 히어로도 몇 명 도와줬다고. 서포터즈도 사건을 수습하는 문제로 바쁘지 않았나? 그래서 더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계속 처진 분위기도 있을 수는 없다면서 말이죠. 그러다 보니 점점 규모가 커져서...
메가구는 다시 몸을 돌려 문 위에 매달린 가랜드를 만지작거렸다. 코팅된 종이를 노끈에 매달아 만든, 그야말로 별거 아닌 장식에 불과했지만 메가구는 장식 덕에 지나간 시간을 체감했다.
"벌써 10월의 마지막 날인가."
그는 딱히 기념일을 챙기는 편이 아니었다. 할로윈 역시 10월 31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저 흘러가는 1년 중의 하루 일뿐. 애초에 그런 날을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직업과 직급이 아니기도 하고, 검은세계 문제로 이미 쌓인 일이 많아 할로윈이란 글자는 머릿속에서 밀려난 지 오래였다. 심지어 오늘도 전대에 얼굴 한 번 비추지 못하고 새벽부터 쳐들어온 괴수 단체를 잡으러 갔다가 하늘이 어두워진 지금에야 복귀-출근이라 하는 편이 조금 더 적당해 보이지만-한 참이었다.
"할로윈에 죽은 사람이 돌아온다는 얘기 알아?"
"메가구, 만약 우리 둘 중 한 명이 먼저 죽게 된다면... 서로의 앞에 나타나기로 할까?"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히어로잖아."
툭. 생각이 길어지려는 찰나, 한쪽 테이프가 떨어졌다. 메가구가 손에서 장식을 놓아주자 의지할 곳을 잃은 장식은 몇 번 좌우로 흔들리다가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본인도 모르게 손에 힘을 준 모양이었다. 구겨지진 않아 다시 붙이기만 한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어라, 사령관님, 출근하셨네요?"
"무슨 일이지?"
정적을 깬 건 서류 뭉치와 파일들을 양손 가득 들고 온 서포터즈 직원이었다. 본부 인원이 부족해지면서 서포터즈에서 일부가 차출되어 넘어왔다더니, 그중 한 명인 모양이었다. 눈 밑에 다크써클이 짙게 보이는 걸 봐선 아무래도 꽤나 고생하고 있는 듯 싶다.
"동부지부에서 복구 현황 보고서가 올라와서요. 겸사겸사 승인받을 다른 서류들도... 어, 그거 떨어졌네요."
메가구에게 서류 몇 장을 넘겨주던 직원의 눈이 바닥으로 향했다. 서류뭉치를 품에 한가득 안고 낑낑대며 겨우 내려가는 서포터즈 직원을 보고 메가구가 재빨리 서류들을 넘겨받았다. 서포터즈 직원은 짧게 감사 인사를 하고 떨어진 장식을 주워 망가진 부분은 없는지 확인했다.
"어라, 그러고 보니 사령관님 대표색도 주황이라 할로윈에 딱이네요."
"하하, 그런가? 장식을 망가뜨린 건 사과하지."
"그냥 장식일 뿐인데요, 뭐. 바쁘실 데 이건 제가 다시 매달게요. 어서 들어가 보세요."
"고맙군. 수고하게."
메가구는 웃는 얼굴의 직원을 뒤로하고 사령관실의 문을 열었다. 우선 동부지부 건이 제일 급할 테니 우선적으로 처리하고 서류들을 분류한 뒤, 아차. 더 늦어지기 전에 각 지부장들 회의 일정도 잡아야겠군. 서포터즈도 매거진 발행이 중단되었으니... 메가구의 눈이 서류들을 훑고, 머릿속에는 빠르게 일의 계획이 세워졌다. 출근이 늦은 만큼 해야 할 일도 늘어나 있었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쉬려면 이동하는 와중에도 손을 움직여야 했다.
그래야 했을 터였다.
"메가구."
빠르게 종이를 넘기던 손이 멈춘다. 익숙한 목소리. 메가구는 이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너무나도 사랑하는 그 사람의 목소리. 다시는 듣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목소리가 자신의 이름을 속삭였다. 할로윈이라 귀신이라도 온 건가. 피곤해서 환청이라도 들은 건가. 고개를 들기가 무서웠다. 와르도와 싸우는 도중 정말 죽을 뻔했을 때도 이렇게 무섭진 않았는데.
"메가구."
그 상냥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이름을 속삭인다.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고 천천히 고개를 들자, 익숙한 노란색의 머플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바닥에 아슬아슬하게 끌리지 않을 길이의 노란 머플러, 히어로 복장, 그리고 그녀만의 연한 갈색의 긴 머리카락.
메가구는 들고 있던 파일과 서류들을 떨어뜨렸다. 종이가 발밑에 어지러이 흩어져 바닥을 하얗게 덮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서류를 떨어뜨렸다는 자각도 하지 못한 듯, 그대로 흩어진 종이들을 밟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던 그가 떨고 있었다.
그 소문이 진짜였나? 아니면 너무 피곤한 나머지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인가. 아무렴 상관없었다. 적어도 확실한 것은, 이 순간을 놓치면 평생을 후회할 것 같다는 거다.
"기억해? 할로윈에 죽은 사람이 돌아온다는 소문."
"먼저 죽은 사람이 앞에 나타나 주기로 했잖아."
"나 왔어, 메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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