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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 그 계절을 회고하며

231201, K가 여기서도 나온다(a다.) 미완성임

씹덕짓 by 일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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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A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a에게 시간이 좀 더 많았을 때 우리는 처음 만났다. 정확히 어떤 상황에서 a와 나의 인연이 시작되었는지, 나중 가서는 둘 다 까먹긴 했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이상할 만큼 잘 어울렸다. 관계를 오래 이어가는 데에는 필수적이라는 어떠한 주저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시답잖은 우정 말고도 신경 쓸 곳이 너무 많아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의 우리는 지속 가능한 관계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그렇게 a와 나는 급진적으로 가까워져 안정적인 친구 사이가 되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어느 날 a가 동거를 제안해 왔다. 우리 둘 다 돈이 궁한 청춘이기도 했었고 성향도 그럭저럭 잘 맞아떨어졌기에ㅡ라기에는 그 모든 것을 셈할 만큼의 시간도 없이 찬성하긴 했지만ㅡ우리는 한지붕 아래서 각자의 이상을 늘어놓는 사이가 되었다.

내가 우리의 기묘한 관계성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점은 a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잡다한 고찰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볼 때마다 철저히 묵살되었다. 벌레의 사체는 텅 빈 찬장 안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었다. 벌레가 판치는 바깥세상을 우리는 또 한 번 모른체했다. 더듬이와 날개, 다리와 이빨이 부대끼는 소음은 그리하여 철저히 차단되었다.

대신 나와 a는 이루어지지 않은 세상을 논했다. 이 기이한 담론의 시작은 어느 새벽이었다. 면전에서는 묵살하는 것이 많다지만 어쨌든 그때의 우리는, 나는 너무 어렸다. 젊은이의 치기 어린 이상과 그에 뒤따르는 괴리감도. 겪지 못한 일이 너무나도 많았고 그것들은 수시로 버겁기만 했다. 해가 뜰 때는 한결 수월하게 웃어 보였지만 밤이 되고 불이 꺼지면 우리는 각자의 침상 위에 누워 거짓으로 이루어진 허물을 벗었다. 어둠 속에 침잠되어 바로 앞조차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야 나는 가장 진실할 수 있었다. 한 겹 한 겹 파고들다 보면 근본은 결국 자기 자신이었고-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어느 날의 나는 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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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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