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웅대만] 명탐정 정대만의 사건수첩 샘플
* 표지는 말미잘님(@mijal1114)께서 도와주셨습니다.
* 전체 분량은 공백 포함 20600자로 공개된 샘플은 그중 2500자 입니다.
* 백호소연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화로웠던 일상에 그 사건이 들이닥친 건 막 가을로 들어서는 청량한 어느 날이었다. 지루했던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으나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도시락을 전부 해치웠으니 남은 선택지는 매점뿐이었다. 영걸이와 새로 나온 빵 이야기를 하며 막 교실을 나서려던 나의 순조로운 점심시간은 교실 앞문을 열고 우당탕탕 요란하게 들이닥친 송태섭 때문에 보기 좋게 무너졌다.
“정대만!”
2학년 주제에 3학년의 이름을 막 부르는 모습을 가만히 두고 볼 순 없었지만 저 자식에겐 빚이 있었으니 한번은 봐주기로 했다. 그렇게 봐준 것이 어림잡아 육백 번이 넘어가는 것이 문제이긴 했지만. 거기에 송태섭의 옆에는 이한나까지 붙어있었기에 나의 예리한 직감이 번뜩이며 위험 신호를 보냈다. 뭔가 사건이 터졌구나. 송태섭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본 영걸이마저 걱정스럽게 나를 응시했다. 대만아, 무슨 일 있어? 글쎄. 어깨를 까딱거리곤 영걸이를 먼저 매점으로 내려보냈다. 영걸이는 못내 아쉬운 듯 뒤를 돌아보며 교실을 나갔고 내 옆자리가 비자마자 달려온 송태섭과 이한나는 꽤 초조해 보였다.
“선배, 큰일 났어요!”
“왜, 무슨 일인데?”
어제는 정기 검진, 아침에는 담임 면담으로 농구부 연습에 불참했다. 내가 없었던 그 짧은 시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예상할 수 있는 사건은 몇 개 있었다. 강백호가 덩크 연습을 하다 골대를 부숴 먹었거나, 서태웅이 체육관 사용 시간을 넘길 때까지 개인 훈련을 해서 경비 아저씨께 혼났다거나, 병욱이나 중식이가 너무 열심히 연습을 한 나머지 근육통이 올라왔다는 등의 일들이었다. 그러나 그건 너무 일상이라 송태섭이 나를 찾아올만한 사건은 아니었다. 거기에 송태섭은 혼자가 아니라 이한나와 함께였다. 그러니까 이한나가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떨 일이 대체 뭐란 말인가.
“어제, 서태웅이….”
“서태웅? 서태웅이 왜.”
“아, 끊지 말고 내 말을 먼저 들어봐요!”
“그, 그래. 알았다, 알았어.”
송태섭은 눈앞에서 주먹을 빙빙 휘둘렀다. 나를 위협하려는 의도는 아니고 무의식중에 나온 몸짓인 듯했지만 나는 저 주먹의 위력을 익히 알고 있다. 그래서 침착하게 몸을 뒤로 물리고 네 말을 다 들어주겠노라 하며 송태섭을 진정시켰다.
“어제 서태웅이 농구부 연습을 하러 왔는데요, 아니, 오자마자….”
“소연이에게 다가가서 초콜릿을 줬어요.”
“엥?”
그렇게 뜸을 들이더니 중요한 말은 이한나에게 뺏긴 송태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식, 나한테는 주먹을 빙빙 휘두르더니 이한나한테는 얌전한 거 봐라. 아니, 잠깐! 뭐라고? 서태웅이 초콜릿을?
“서태웅이 채치수 동생한테 초콜릿을 줬다고?”
“아이, 선배. 아직까지 그렇게 부르고 있었어요? 어휴, 채치수 동생이 뭐예요.”
이한나의 핀잔에 멋쩍게 머리를 긁었다. 그러니까 채치수 동생 이름이 뭐였더라….
“아, 미안. 그러니까 서태웅이 채소연한테 초콜릿을?”
“네.”
그러니까 네가 알고 내가 아는 그 서태웅이? 친위대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면서도 눈길 한번 주지 않던 놈이 여자에게 초콜릿을 줬다고? 과연 상상이 어렵긴 했다. 그렇지만 채소연은 농구부를 위해 매일 열심히 도와주고 있었으니 초콜릿 정도야….
“지금 소연이한테 초콜릿 정도는 줄 수 있다고 생각했죠.”
“어, 어떻게 알았냐.”
“선배 생각이 뻔하죠, 뭐. 우리도 놀라긴 했지만 거기까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요. 하지만…!”
“그 장면을 강백호가 봤어요.”
이번에도 송태섭은 이한나에게 결정적인 순간을 뺏겼다. 얼굴이 풀어진 송태섭은 한나는 말도 잘해, 하며 헤헤 웃었다. 그건 그렇고 그 장면을 강백호가 봤다고? 그러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건 좀….”
“그 이후로 서태웅과 강백호가 눈만 마주쳐도 치고 박고 싸우느라 훈련이 전혀 되질 않았다구요!”
그렇지 않아도 걸핏하면 티격태격하며 유난인 두 녀석이었다. 거기에 채소연을 걸고 넘어진다면? 보지 않았지만 눈에 훤했다. 과연 송태섭과 이한나가 나를 찾아올 법한 심각한 문제였다. 어제 저녁에 이어 오늘 아침까지, 두 번의 훈련을 날린 송태섭은 보기 드물게 울상을 짓고 있었다.
“그러니까 대만 선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좀 알아봐 줘요.”
“그래. 송태섭, 잘 찾아왔다. 나보다 그 일에 적격인 사람은 없지. 이 정대만에게 맡겨라.”
자신 있다는 듯 주먹을 가볍게 쥐어 가슴을 툭툭 치면서 눈에 힘을 줬다. 송태섭은 눈썹을 치켜뜨고 이한나는 잘 부탁해요, 선배. 하며 웃고는 있었지만 둘 다 영 못 미더운 눈치였다. 이런 반응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그동안 농구부에서 내 이미지는 그야말로…, 이하생략. 어쨌든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만회할 기회가 온 것이다. 거기에 지금 농구부에 문제가 발생하면 윈터컵 준비에도 차질이 생긴다. 그러니 나의 성공적인 대학 추천을 위해서도 나는 농구부의 분위기를 바로잡을 책임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어릴 적부터 탐정 영화를 매우 좋아했다. 만약 농구를 하지 않았다면 나의 장래 희망은 탐정이 되었을 정도로 그들을 사랑했다. 어태 농구를 하느라 바빠 탐정으로 활약할 시간이 없었지만 드디어 때가 왔다. 그동안 내가 보았던 수십 편의 탐정 영화가 헛것이 아니란 걸 증명할 기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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