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메시지

6화

꿈의 시작(6)

“응? 책을 찾으신다구요? [복수의 서]?”

“네. 혹시 들어보신 적 있나요?”

“그런 이름의 책은 없을 텐데…, 제가 웬만한 책들은 다 이름을 기억하거든요.”

나는 내가 가진 1권의 원서를 보여주었다. 아이라는 읽지 못할 언어로 써진 책을 의아하게 보다가 내가 마족의 언어로 쓰여진 것이라 덧붙이니 경악했다.

“세상에, 그런 책은 여기서는 당연히 안 판다고요. 요새 희한한 책을 다 찾으시네요, 솔라 씨.”

“그럼 마족의 책을 연구하는 분이면 아는 게 있을까요?”

“음…, 확답할 수는 없지만 모험가나 학자분이라면 알지도 모르죠. 한 번 수소문 해볼 테니 기다려주시겠어요?”

“얼마나 걸릴 것 같나요? 좀 급한 일이라서요….”

“죄송해서 어쩌죠. 서신이 오가는 데만 해도 적어도 사나흘은 걸릴 것 같아요.”

역시 한 술에 배부를 수는 없나. 나는 하는 수 없이 아이라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녀가 책에 대한 소식을 전해줄 때까지 나는 전투 스킬을 수련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앞으로를 생각하면 미리 가다듬어놓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때문이었다. 나는 한동안 벌목캠프나 티르 코네일 알비던전으로 가는 길목에 죽치고 생활했다.

이렇게 몰두하다보면 어느샌가 강해진다.

밀레시안이라고 남들과 특별히 다른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집요하게 파고들어 갈고닦으면 그 분야의 장인이 되기 마련인데, 밀레시안들은 집을 마련하고 생계를 벌 필요가 딱히 없으니 그만큼 남는 시간을 수련에 투자해 좀 더 나은 결과를 얻는 것 뿐. 게다가 삶의 시간도 다르니 오래 살다보면 별 걸 다 잘하게 된다.

나의 검은 이미 어엿한 달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검과는 전혀 다른 방향인 마법에 눈을 돌렸다. 마법은 초심자나 다름 없는 몸이다. 그러나 근접전이 불가할 때를 대비해 마법을 배워두면 어느정도 커버가 가능하지 않을까?

관련 서적을 구매해 가볍게 볼트마법을 습득했다. 책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대상을 향해 마법을 캐스팅하여 발동하는 등, 여러가지 방면으로 수련을 거듭했다.

내가 볼트마법을 그럭저럭 캐스팅할 수 있을 때 쯤에야 아이라에게서 부엉이가 날아왔다. 한달음에 던바튼으로 달려간 나는 아이라에게 두 번째 복수의 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전에 솔라 씨가 찾으셨던 티르 나 노이에 관련된 책 기억하시죠?”

“어…, [ 영원의 땅, 티르 나 노이 ] 말하는 거죠?”

“맞아요. 그 책의 저자인 레슬리 씨께서 연락을 주셨어요.”

…그러고보니 레슬리라는 이름은 다른 이유로도 익숙했다. 나는 잠깐 기억을 더듬은 끝에 내가 얼마 전에 읽은 볼트 마법에 관련된 책 중, 레슬리가 낸 책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스 볼트 마법을 습득하기 위한 기본적인 스킬 북였다. 정리가 잘 되어있어 도움이 꽤 되었다.

“키아 던전에서 그와 비슷한 책을 본 적이 있으시대요. 제가 드리는 이 메모지에 특수한 마법적 처리가 되어있는데, 이걸 던전에 바치면 책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을거라고 하네요.”

“수고해줘서 고마워요, 아이라. 아,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선 도와드릴게요.”

“어머나, 그럼 지금 바로 되나요? 호호, 제가 지금 바빠서…. 저 대신 스튜어트 오빠에게 이 빵을 가져다드릴 수 있나요?”

나는 알겠다고 끄덕이며 아이라에게 빵봉투를 받았다. 아무래도 스튜어트에게 호감이 있는 듯 아이라는 가끔씩 이렇게 선물 배달을 부탁하기도 했으니 익숙했다.

던바튼의 서점 옆에는 학교가 있다. 학교 앞에 펼쳐진 연무장에서는 아란웬이 학생을 지도 하고 있었다. 기사 학교 출신임을 알려주듯이 땋은 머리가 그녀가 움직일때마다 조금씩 흔들렸다. 아란웬에게 따로 지도를 받은 적은 없지만, 오며가며 눈인사를 하는 편이긴 하다.

하지만 지금은 바빠보이므로 그대로 지나쳤다. 계단과 울타리 너머로 떠돌이 상인이 언뜻 보였다. 저 사람은 던바튼에 올 때마다 이곳에 있네. 광장으로 가면 더 많이 팔 수 있을텐데….

나는 곧 딴 생각을 버렸다. 맡은 일이나 해야지.

마법 교실로 들어가면서 일부러 헛기침을 했다. 스튜어트 씨는 눈이 많이 좋지 않아 방문할 때는 나를 먼저 알려야 수월한 대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스튜어트 씨. 저예요, 솔라.”

“어라, 솔라 씨군요. 들고 있는 걸 보아하니…, 아이라가 부탁을 한 모양이군요?”

“네. 아이라에게 도움을 좀 받았거든요.”

손에 든 빵봉투를 그에게 건네자 스튜어트 씨가 내게 차를 대접해주었다. 이럴 시간 없는데…. 하지만 나는 거절하지 못하고 자리에 앉았다.

“하하, 늘 고마워요. 음? 그러고보니 허리춤에 원드를 차고 계셨네요? 주로 검을 쓰시지 않았나요?”

“이것저것 배울까해서…. 스튜어트 씨가 보기엔 좀 가볍게 보이려나요?”

“설마요. 배움이 넓을수록 견문도 넓어지는 법이랍니다.”

가볍게 잡담을 하다 나는 문득 책상에 놓여있는 낡은 로켓을 발견했다. 저런게 원래 있었던가? 외견이 오래된 것에 비해 소중히 손수건에 감싸져있는 걸 보니 스튜어트가 귀중하게 다루는 모양이었다.

내 기색을 먼저 알아챈 스튜어트가 설명했다.

“제 것은 아니고, 누군가의 유품이에요. 무려 사라진 세 전사 중 한 명인 타르라크의 로켓이지요. 관리를 위해서 매번 이렇게 꺼내는데…, 아! 사라진 세 전사에 대해서는 아시나요?”

“…네, 얼마전에 들을 일이 있어서요.”

스튜어트가 기꺼이 로켓에 있는 그림을 보여주었다. 조금 흐릿하지만, 타르라크의 어린 시절이 확실한 소년이 보였다.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이쪽은 나이로 보아 타르라크의 누나가 아닐까 짐작되네요.”

“아….”

“게다가 놀랍게도 이건, 메모리얼 아이템이라서 타르라크의 과거를 체험할 수도 있어요. 그가 가진 티르 나 노이에 대한 강한 염원과 기억이 이 유품에 새겨진 것이지요.”

나는 타르라크의 로켓을 바라보았다. 지금의 병색이 완연한 모습과는 달리, 앳된 티가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타르라크는 분명히 행복해보였다.

내가 아무 말 없이 로켓을 바라보고 있는걸 본 스튜어트 씨가 잠시 고민하다가 제안했다.

“음. 괜찮으시다면 이 물건을 솔라 씨가 맡아주시겠어요?”

“네, 네?”

“사실 아이라를 통해 들었어요. 솔라 씨가 티르 나 노이에 대해서 찾고 있는 듯 하다고요. 저는 이미 이 메모리얼 아이템에 깃든 기억을 충분히 본데다가 진짜로 따지자면 제 물건도 아닌 걸요.”

스튜어트의 제안에 혹한 나는 홀린 듯 그 로켓을 받아들였다. 이걸 타르라크에게 가져다 주면 좀 기뻐하지 않으려나? 그의 괴로운 생 속 따듯한 일부분이나 다름 없으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스튜어트는 말 없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도서관에서 나온 후 나는 로켓을 품에 넣었다. 나중에 시드 스넷타에 갈 일이 있다면 다시 꺼내겠지. 기분이 좀 이상했다.

그 후에는 예정대로 키아 던전으로 향했다. 아이라에게 받은 메모지를 던지고 들어간 던전에서 정말로 복수의 서 2권을 얻을 수 있었다. 그걸 크리스텔에게 번역을 의뢰하고 기다리면서 다시 아이라를 찾아갔다. 질릴 만도 하건만 미지의 책에 대한 열망으로 아이라는 선뜻 3권을 찾아주겠다고 했다.

붕 뜬 시간에 나 또한 3권에 대한 소문을 찾아보기로 했다. 내 기준으로 마족언어를 연구할 만한 사람이라면, 역시 마법사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스튜어트는 아이라가 먼저 물어봤을테고….

던바튼의 안면 있는 밀레시안에게도 물어봤지만 그들도 모른다고 고개를 저었다.

내가 성과없는 일을 할 동안 번역을 완료했다는 크리스텔의 전언이 날아왔다. 나는 성당으로 가 번역본을 받았다.

“여기 있어요…. 사실 전 아직도 이 안의 내용을 믿을 수가 없네요.”

“수고하셨어요.”

의례적인 말을 하면서 책을 받아들곤 크리스텔의 안색을 살폈다. 이 책이 그렇게 충격적인 내용이었을까? 내 의아한 기색에 그녀는 피곤한 낯으로 단지 직접 읽어보라 할 뿐이었다.

“….”

나는 책을 펼쳤다.

모이투라 전투에서 승리한 인간은 진실을 외면했다. 그 승리가 배신과 모략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그리고 인간은 망상하기 시작한다. 자신들이 신의 뜻을 대리한다고.

마족 스크롤이 생겨난 이유도 그들의 잘못된 생각이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유리하기 시작한 증거다.

그렇게 인간의 편을 떠나간 건 비단 자연 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수호신인 모리안 여신도 해당된다.

정리하자면 이러했다. 확실히 충격적인 내용이긴 하다. 인간을 향한 거대한 증오가 책에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사제인 크리스텔에게는 인간이 신의 뜻을 대리한다는 게 착각이라는 뉘앙스의 구절이 더 와닿았으려나.

그나저나 마족 스크롤이 이 이유 때문에 생겨난 거야? 난 들판의 여우를 잡으면 가끔씩 떨어뜨리는 마족 스크롤을 떠올렸다. 모아달라는 의뢰가 있긴 해도 굳이 의뢰를 받지는 않았는데…. 하기야 인간이 자연과 조화롭다고 하기엔 어폐가 있긴하다. 자연이 인간을 해칠때가 있고 인간이 자연을 해칠 때가 있으니.

으으음. 복잡한 이야기의 답을 연구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나는 일단 이 2권을 타르라크에게 가져가기로 했다. 이쯤이면 링 토크에 대한 연구도 끝이 났겠지 싶은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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