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잘재잘

G24 핏빛 달의 이야기

반뜨밤의 밀레시안

- 틸밀레의 신념이나 생각, 주밀레의 이야기 위에 서 있는 밀레시안으로서의 마음가짐이 잘 드러나는 글이기에 백업합니다.

- 대충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정도로 보아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베르다미어의 평소 신조 중 하나는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을 생각하면 미치기 쉽다는 것이다. 그는 몸뚱이에 비해 자신의 정신머리가 얼마나 유약한지를 깊이 알고 있었기에 길게 생각을 끌지 않곤 했다. 따라서 그의 행동 원리는 단순하고도 강력하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가치란 도대체 무엇인가? 빌어먹을 놈의 삶의 가치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냔 말이다. 유약한 삶은 가치가 없는가? 싸우지 않는 삶은 아무런 값 없는 생애인가? 들판에 나가 들꽃을 꺾고 실바람을 만끽하며 주어진 세계를 음미하는 시간은 저 구덩이의 흙먼지만도 못하단 말인가? 고난을 이겨내지 못하는 연약한 자는 살아갈 가치가 없단 말인가? 그가 사랑한 에린은 그따위 규칙을 가진 세계가 아니다. 그는 저 기저에서부터 폭발을 앞둔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분노가 뱃속을 휘저어 두는 것을 알았다. 저울에 달 수 있는 가치가 있어서 삶이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무슨 대단한 업적을 세워야만 숨 쉴 자격을 부여받는 것이 아니다. 그는 빠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숨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살아가고, 세계를 거닐고, 최선을 다해 하루를 보내는 이들에게 어떤 흠이 있기에 죽어 마땅한 희생양 취급당해야 하는가? 고난의 파도에 부서져 나간 자들의 조각은, 그 서글픈 부스러기는 애도하고 되새길 가치조차 없다는 것인가?

베르다미어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분 운운하며 생의 의미를 제 마음대로 짓밟아 버리는 치를 처음 마주쳤을 때 곧장 공격하지 못한 것이 이 순간 가장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누구도 타인의 삶을 '어쩔 수 없는 희생'으로 칭할 수 없었다. '그럴 만하기에 스러졌다'라고도 할 수 없었다. 호의를 권리인 줄 알게 될 거라고? 그런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이들도 분명히 있다. 감사할 줄 아는 자, 염려와 걱정을 건네는 자, 그를 생각하고 기다리는 자. 의지할 줄밖에 모르는 이들이라며 속삭이는 뱀 같은 목소리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사람은 모두가, 제각기 어느 정도는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나. 우리 모두가 보이지 않는 팔을 뻗어 서로를 껴안고, 지탱하고, 잡아주고 있지 않은가? 베르다미어는 검의 손잡이를 고쳐 쥐었다. 남자의 말은 느리게 이어진다. 그대가 세상을 지켜야 할 의무는 어디에 있지? 그는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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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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