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잘재잘

균열 ;

갠봇계 스크립트

매듭이 돌이킬 수 없이 엉키는 기분이 들었다.

베르다미어는 대성화를 손에 들고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었다. 균열에 뛰어들 때마다 어지러워지는 머릿속이 달갑지 않았다. 엔야가 건네준 조각에서부터 읽어낸 기억이 요동쳤다. 서약, 시험, 표식, 피와 기다림.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 무엇을 표시했을까. 그 피는, 분명히… 그는 욕지기가 치미는 듯 해서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도 목구멍을 치받고 나오는 것은 없었다. 아직까지는. 엔야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서 부드럽게 속삭였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내 쪽에 알려주는 거, 잊지 마세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 못했다는 말이 더 어울렸을 것이다. 단단히 뭉치기라도 한 것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움직였다. 날개 달린 개들을 베어내고, 땅을 박차고 나면 스산한 어둠이 그의 발 앞에 입을 벌렸다. 베르다미어는 망설임 없이 신성한 불꽃을 어둠 속으로 던져넣는다. 끝없이 떨어지는 불빛은, 익숙한 현기증을 부르고, 그리고… 그리고.

매듭은 단단히 얽힌다. 그의 뱃속에서 매이고 요동친다. 그가 발 딛은 땅에 서린 기억이 막을 수 없는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그는 그만 아득해지고 만다. 고통이 있다. 무릎이 꺾이고 육신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린다. 베르다미어는 엷은 숨을 길고 길게 내쉬며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하면, 익숙한 손길이 그를 조심스럽게 일으켜 세웠다.

―,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그는 묻는다. 정말로 물은 것인지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는 불분명했다. 손길은 대답하지 않았다.

넌 뭘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는 균열 너머로 끌어올려지며, 잠깐의 의문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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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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