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事議論
발할라 주자양명


철학자는 사유와 논쟁을 기본으로 삼는다. 끝없이 넓은 사유로 자신의 사상을 펼치고 전개한 뒤 다른 철학자들과 뜻을 같이하거나, 서로 다른 뜻을 주장하며 논쟁을 이끌어간다. 그 과정에서 각자의 사상이 더욱 정교해지고 보완되는 좋은 결과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철학자들이 ‘철학’만 주요 활동 범위로 삼았던 것은 아니다. 당연히, 다른 활동과 겸하는 학자들도 여럿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군사적인 일에 발을 걸친 학자들도 있었는데 유교의 왕양명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유교 사람들 중 ‘왕양명’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주희가 넌지시 양명에게 던진 말은 양명이 그 자신으로 하여금 주희와의 내적 친밀감을 더 키우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기실 두 사람은 평소에도 붙어다니는 일이 흔했고, 가장 오랫동안 말도 섞은 사이였지만 주희의 말을 기점으로 양명은 주희에 대해 생각하는 자신의 마음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눈치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걸 자네에게 말했던가?”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긴 하지만, 나도 한때 군직軍職에 임명된 적이 있었네. 자네처럼.”
“예?”
양명은 순간적으로 제 귀를 의심했다. 아니, 사실 크게 놀랄 건 없었다. 평소에도 그는 주희와 가끔씩 군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으니까. 또한 그는 알고 있었다. 제 옆에 있는 선학이 생전에 군사와 관련된 주제로 황제에게 상소를 올렸다든가, 배우고 싶어하던 것들 중에 병법도 있었다든가 하는 것은 이미 직접 들었으니 말이다. 헌데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는 말씀이신가. 양명은 다소 의아했다. 물론 당시 남송의 상황을 생각해 보았을 때, 그리고 주희가 이야기해 준 사실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를 고려하면 그렇게 크게 놀랄 사실도 아니었다. 하지만… 군인이기도 했던 양명은 궁금했다. 주자님의 말씀이 사실이면 어떤 업무를 맡으셨는지, 전략을 짜셨다면 어떤 전략을 생각하셨는지 등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양명의 머리를 짧게 스쳤다. 그런 양명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주희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 그런데 나는 자네처럼 반란을 평정하거나 전투에 참여한 건 아니네. 그럼에도 궁금하다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 줄까. 잠시 생각하던 주희는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건 군직까지는 아니지만 이걸로 시작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내가 동안현의 관리로 있을 때 이야기인데, 그때가 1155년 여름이었지. 반란군이 조금씩 고개를 들었던 시기였네. 당연히 동안현도 경계 태세에 들어갔고 그때 감염세(소금의 전매제도, 각 지역의 세수稅收를 관리한다)를 관리하던 관료와 함께 서북의 성곽을 수비했던 적이 있었어.”
반란군, 이라는 말에 양명의 귀가 솔깃했다. 자신도 생전 수많은 반란을 평정한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1519년 6월, 영왕 주신호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주신호는 배를 끌고 안경安慶을 공격했다. 그리고 그 반란을 평정한 사람이 왕양명이었다. 제독군무를 맡고 있었던 그는 반란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접하자마자 곧 30만명의 병력을 징집했고, 주신호의 소굴 남창을 공격하여 주신호를 사로잡았다. 주신호가 급히 군사를 일으켰던 탓인지 양명이 주신호를 토벌하는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결국 황제의 대군이 도착하기 전에 반란이 모두 평정되었고, 양명이 군대를 동원하는 방면에서 주신호의 세력을 소멸시켜 백성과 조정에 대한 피해를 없앴던 일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회상으로 생각났다. …그래, 그랬었지. 하지만 양명은 자신의 방법과 주희의 방법이 같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주희의 이야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귀를 기울이다가, 문득 스치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질문했다.
“반란군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준비가 부족했던 탓인지,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났던 것인지 스스로 자멸하더군. 직접 반란군을 토벌하는 일은 없었네. 다만 그 이후로 병사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 자네도 알다시피 송은 병사들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했으니까. 그래서 궁도장을 만들었고 평소에도 병사들에게 궁술 훈련을 명한 일이 있었네. 반란을 막는 것은 결국 수비에 달린 문제 아닌가. 수비가 무너지면 그 이후로는 어찌할 방도가 없지. 그래서 나는 수비를 꽤 중요하게 여겼네. 금과의 전쟁에서도 나는 우리 군의 사령관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금군을 타도하려면 송군을 나누어서 진격시켜야 한다고 전했거든.”
“…수비, 말입니까.”
양명은 잠시 뜸을 들이다 되물었다. 주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이 제안한 전략을 하나씩 되짚어 기억 바깥으로 찬찬히 끄집어내었다. 그 전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협서와 하남, 회북 등으로 군 병력을 진격시키면 금군은 각 지역으로 부대를 출동하게 하여 대응해야 할 것이고 그 사이에 송은 수만의 정예 부대를 산동 방면으로 진격시킨다. 그렇게 되면 금은 이미 각 지역에서 대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즉시 대처할 여유가 없어서 송군은 산동 일대를 우선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 둘째. 산동 지역을 확보하면 중원 고지(하남, 협서에 있는 황하와 위하 유역)와 연경(북경시)은 탈환하는 것이 용이하고, 중원 일대에서 금군에 저항하는 의병 등의 호응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 대충 이러했었던 것 같네. 그런데 그 사령관의 답변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전략이라고 거절하더군. 나름 유용한 전략이라 생각했건만.”
“듣고 보니 적을 교란하여 병력을 분산시키는 전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자님께서 수비를 중히 여기셨다는 의미가 더 잘 와닿는 전략이기도 하고요. 다만… 주자님께서 고안하신 전략은 저와는 조금 결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제 경험도 말씀드리자면 저는 제 휘하 군사들에게 몇 가지를 엄수하도록 명한 적이 있습니다. 먼저 공개적으로 전쟁 중단을 선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서 사방에 전파하여 적을 현혹시키려는 것이었죠. 또 부대를 해산하는 척 위장하라고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각 부대는 전투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수시로 적의 동향을 살핀 후 보고하라고 했고요. 기회가 오면 병력을 신속히 소집하여 적의 빈틈을 노리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작전을 수행할 때 공포심을 버리고, 이를 위반하면 엄벌에 처한다고 일렀지요. 전투 시 선발대는 적진 와해에 주력하고, 적을 살상하거나 사로잡는 과업은 중무장한 후발대에 일임하도록 했습니다. 이 밖에도 적의 수괴는 살상하되, 살상 자체는 최소화하고 군기를 확립했지요. 저는 군기가 확립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군사 기밀을 누설하거나 탈영하거나, 명령을 위반하는 병사는 전부 참수했습니다. 민간의 재물을 약탈하거나 길에 떨어진 재물을 취득해도 예외가 없었지요.”
참… 참수? 주희는 양명의 이야기를 듣다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양명을 바라보았다. 아니, 물론 군에 있어서 군기를 확립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그렇게까지? 양명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을 계속했다.
“군기는 전투력 증강의 핵심이니까요. 또한 민간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야 그들의 민심을 살 수 있습니다. 저는 병사들이 마을에 주둔하거나 통과할 때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라도 백성의 재물에 손대지 말라고 지시했거든요.”
“내 일찍이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이치가 있다는 말을 했었는데 자네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라도 백성의 재물에는 손대지 말라고 했군?”
주희는 장난스레 내가 한 말에서 영감을 받은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살짝 헛기침을 한 양명은 그렇게 해야만 백성들에게 신뢰받는 군대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라고 대꾸했다. 맞는 말이긴 하지. 주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병사들에게는 엄격하고 백성들에게는 따스한 군을 육성하고자 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자네가 어떤 모습의 군을 추구했는지 알 것 같네.”
“전쟁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결국 백성의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투가 끝날 때마다 어떻게 하면 그 지역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을지 계속해서 고민했으니까요. 사실 저는 포로들의 경우도, 그들이 저항을 포기하면 살상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전투가 끝나면 그들을 보살피기도 했고요.”
“도량이 넓군. 전투의 목표를 올바르게 잡고 있어, 자네는. 어떠한 군직에 임명되어도 잘 해냈을 것 같네. 뭐… 나도 60대에 지방관을 지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가 1193년 12월이었네. 당시 담주지사 형호남로안무사(=호남성 군사사령관)에 임명되었지. 아까 말한 군직이 이것이네. 이때가 이민족이 호남을 침공하던 시기였어서 변방을 지키는 임무를 맡게 되었지. 그렇게 길지는 않았었네. 1194년 5월 초순부터 8월 중순까지였거든.”
“3개월… 조금 더 되는 기간이군요.”
주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군직 경험이 있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더군. 이라고 덧붙인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자네도 이렇게 자세하게 듣는 것은 처음이지?”
“예. 저도 잘은 몰랐던 정보들이라… 주자님께서 말씀해주셔서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건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만… 주자님께서 이학 관련으로 워낙 이름나신 분이셔서 그러신 것도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이학을 집대성하신 분이시지 않습니까.”
“하하, 그런가? 마침 이야기가 나온 김에 병법을 좀 공부해 볼까. 생전에 배우고 싶었던 게 여전하거든. 뭣하면 자네가 알려주는 것도 좋고. 아무래도 자네가 실무 경험이 많지 않은가?”
흥미가 생긴다는 듯 눈동자를 빛내는 주희를 본 양명은 그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기실 주희가 병법에 대해 알고 싶다고 말했을 때부터, 양명 자신도 주희와 함께 병법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했다. 병법에 대한 지식을 확장해서 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도 얼마든지 좋지 않겠는가, 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양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예, 라는 대답으로 수긍했다. 오랜만에 손자와 오자의 병법서를 다시 꺼내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발할라에도 계시기는 하겠지만 직접 찾아뵙기에는… 아무래도 어려운 분들이시라.
그런데 주자님은 왜 주변에 군직을 겸한 사람들이 많습니까? 글쎄. 내가 주전파였어서 그런가. 언제 한번 유교 사람들 다같이 단체전 한번 하는 것도 괜찮겠는데요. 요즘 장난감 총기를 들고 진영을 짜서 모의전투처럼 진행하는 놀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다면 공자님은 심판 하셔야겠는데. 두 사람은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주희는 생전에 희망했던 공부를 곧 후학과 함께하게 되어 기뻤던 것인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양명의 표정도 미묘하게 밝아 보였다.
참고문헌
주자봉사_ 주자사상연구회
하늘天위에는 무엇이 있는가_ 기누가와 쓰요시
칼과 책 ‘전쟁의 신 왕양명의 기이한 생애’_ 둥핑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