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마르 오스퇴가르드

외뿔 염소의 근사한 저녁

까마귀 대장에게

※ 1차.

※ 허락 없는 발췌를 금합니다.

외뿔 염소의 근사한 저녁

품 안에 무기 몇 개 정도 넣어서 다니는 편입니까? 글라디우스 빼고요. 나는 칼집에 하나, 등 뒤에 하나, 품 속에 하나면 충분하다고 보는 파인데, 대장도 그렇습니까? 별로 중요한 질문은 아닙니다. 바닥에 넘어뜨렸더니 글쎄 발목에 검을 숨겼다가 달려드는 놈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까지는 예상했는데 그 뒤로도 고슴도치마냥 비수를 던져대더군. 솔직히 말해서 썩 멋진 꼴은 아니었습니다. 흙바닥 구르는 싸움이 다 그렇기야 합니다마는. 아무튼 그 놈을 눕히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제 살 가까운 곳에 자기 손발을 합친 수보다 많은 비수를 숨겨 다니는 심리는 대체 무언지. 그렇잖습니까? 언제든 뽑기 좋은 곳에 예비해 둔 칼날은 제 살을 찌르기도 좋은 법입니다. 그 놈이 어느 집 지붕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해 봐요. 칼날 스무 개 중 하나라도 뒤집히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게다가 칼날 스무 개라니 무게도 참 만만찮을 겁니다. 난 그 짓이 도대체 살기 위한 발악인지 죽고 싶은 몸부림인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몰라 덧붙이는데, 그 놈을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여하간 대장이라면 날붙이 하나 없는 곳에서도 요령껏 살아남고 있을 테니 커다란 걱정은 않겠습니다.

그래도 묻지 않을 수가 없군.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답장으로 어느 변방을 지나고 있는지 알려준다면 기껍게 읽겠습니다. 마주보고 앉아서 까무러칠 때까지 술 마실 친구가 없으니 여간 심심한 게 아닙니다. 또 이쪽엔 엉터리 맥주를 만들어 파는 놈들이 심심찮게 설쳐대는데, 그것도 짜증스럽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말 오줌 같은 맛이 난다고요. 소 쓸개즙이니 달걀 껍질이니 하는 것들을 왕창 섞어넣고는 이래야 맥주 맛이 살아난다고 개똥도 안 믿을 헛소리를 지껄인단 말입니다. 듣자하니 저쪽 지방에서는 보리 맥아와 홉, 물만 넣고 만든 맥주만 판매하라는 시위를 벌인다는데, 정말이지 동참하고 싶다니까요. 이런 제기랄. 종이가 찢어

졌군. 못 봐줄 정도는 아니니 계속 쓰겠습니다.

요즘 부쩍 불안한 바람이 붑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겠습니다만. 그것보다도 불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고나 할까. 이런 감은 꼭 거짓말처럼 들어맞고는 하잖습니까. 젠장. 다시 전쟁이 나면 차라리 은퇴하렵니다. 내 대신 짐 떠맡을 애송이 대원 하나 점찍어 둬요. 또 내가 이따위 소리를 써제꼈다는 건 우리 둘만 아는 비밀입니다.

이래저래 하고픈 말이 많아서 글이 길어지고 말았는데, 요컨대 당신이 잘 살아있는지, 살아있다면 어디쯤인지, 근시일 안으로 폭풍 숲에 들를 계획이 있는지, 또 그렇다면 권태로 말라 죽어가는 당신 친구를 위해 예정된 날짜를 대략이나마 일러줄 생각이 있는지를 물어보려고 편지 부칩니다. 앞에서 이야기하는 걸 깜빡했는데, 여기서 우연히 당신네 조원을 만났거든요. 이름이 뭐였더라? 칠 년 만에 만났더니 전부 까먹었습니다. 아무튼 그이가 내일 출발할 예정이라길래 가는 길에 네 대장한테 전해 주라고 부탁할 생각입니다. 그 친구도 당신이 어디 있는지 모르면, 뭐. 어쩔 수 없이 이 종이는 염소 먹이로 줘야겠군요.

그럼 조만간 재회하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오스퇴가르드.

추신. 난 성질이 급하니 대답이 긍정일 경우 편지 겉봉에 아무 새 깃털 하나만 끼워서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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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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