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치미즈] 유령 책방

글 쓰는 곳 by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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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살고 있던 동네에는 수상한 소문이 붙은 책방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골목길에 있던 그 책방은 가뜩이나 햇볕이 잘 들지 않는 탓에 어두침침하고 스산한 분위기의, 마치 뭐랄까요. 그래요, 유령의 집 같은 느낌이었죠. 그래서였을까요. 동네 아이들은 그 책방을 사람 잡아먹는 유령 책방이라고 불렀습니다. 실제로 그 책방에 들어간 사람이 없어졌다는 끔찍한 이야기는 없었지만요.

저는 그때 당시 밖에서 친구들과 뛰어노는 것보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였습니다. 그렇다고 공부를 잘했던 건 아니지만, 아무튼요. 그런 제게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았던 걸까요? 저는 그 책방으로 향했습니다. 무섭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궁금했어요. 해가 쨍쨍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날이었어요. 책방이 있는 골목길로 들어선 순간 방금까지 그렇게 더웠던 것이 거짓말 같을 정도로 온몸이 오싹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골목길의 안과 밖이 전혀 다른 세계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엄청난 객기를 부린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책방의 문을 열어버렸으니까요.

문을 열고서 알아차렸는데, 책방의 문에는 풍등이 달려있었습니다. 덕분에 문을 열자마자 딸랑, 하고 울린 소리에 지레 겁을 집어먹고 말았죠. 나 참, 그럴 거면 책방의 문은 어떻게 열었던 거람. 문이 열리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습니다.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밖으로 나오고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알 수 있을 정도로요.

“어린 손님이라니, 드문 일이네. 안녕, 꼬마야.”

“아, 안녕하세요…….”

책방에서 나온 사람은 키가 큰 남자였습니다. 그 사람은 저희 아빠보다 키가 컸어요. 저를 내려다보던 눈은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도 반짝이는 호숫가의 색을 닮았습니다. 참으로 신기했어요. 그런 색의 눈을 가진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얼굴 생김새로는 아빠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데 머리카락은 마치 시골에 계시는 할머니처럼 새하얀 색이었어요. 왼쪽 눈에는 선명한 흉터가 있었고, 마찬가지로 왼쪽 귀 또한 확실히 평범하게 둥근 모양은 아니었습니다. 사람 잡아먹는 유령 책방이라더니 혹시 이 아저씨가 사람을 잡아먹는 유령이었을까요. 뒤늦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까지 무슨 일이니?”

아저씨의 말에 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냥 오고 싶었을 뿐이었으니까요. 우물쭈물하고 있는 저를 보며 흰머리의 아저씨가 물었습니다. 아이스크림 먹을래? 라고요. 졸지에 저는 모르는 아저씨에게 아이스크림을 얻어먹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엄마께서 아시면 크게 혼이 날지도 몰라요.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건 함부로 먹지 말랬지, 라고요.

잠깐 기다려달라는 아저씨의 말에 저는 책방 안을 둘러보았습니다. 여러 개의 책장에는 처음 보는 책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어요. 앞서 말했다시피 저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무섭다는 생각은 온데간데없이 저 책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리에 가득했습니다. 참으로 용감했네요, 어렸을 때의 저는. 높은 곳에 있는 책을 꺼내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적당히 팔이 닿을 것 같은 곳에 꽂혀있는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 책은 평소 제가 봐왔던 책들과는 전혀 다르게 생겼어요. 표지에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았거든요. 짙은 빨간색 표지에 검은 글씨로 날렵하게 책의 제목만 적혀있었습니다. 이 책을 누가 썼는지는 적혀있지 않았고요. 저는 한 글자, 한 글자 책의 제목을 읽어보았습니다.

‘가샤도쿠로 기담…….’

가샤도쿠로.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어요. 책의 첫 장에는 가샤도쿠로가 무엇인지에 대해 쓰여 있었습니다. 가샤도쿠로는 엄청나게 커다란 해골의 모습을 한 요괴라고 해요. 그림도 같이 그려져 있었는데요. 솔직히, 징그러웠어요. 알아보기 힘든 한자가 있어서 술술 읽히지는 않았지만 저는 어느새 그 책을 읽는데 푹 빠져있었어요. 주인아저씨가 가까이 다가온 줄도 모르고요.

“꼬마 아가씨가 읽기에는 좀 징그럽지 않으려나?”

“헉……!”

“아, 미안. 많이 놀랐니?”

주인아저씨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던 것은 저는 갑자기 들린 아저씨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에 아저씨는 미안하다며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거렸죠. 그러다 제 팔이 닿지 않던 곳에 꽂혀있던 책을 하나 꺼내주었어요.

“이 친구는 좀 괜찮으려나?”

아저씨가 펼쳐준 책에는 ‘잇탄모멘’ 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확실히 가샤도쿠로보다는 생긴 것이 좀 덜 무섭기는 했어요. 하지만 잇탄모멘 또한 요괴라는 점은 가샤도쿠로와 마찬가지였어요. 주인아저씨는 책을 대신 넘겨주며 잇탄모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것은 책에는 쓰여 있지 않은, 아저씨만의 이야기였어요.

잇탄모멘이 하늘을 나는 모습은, 마치 커다란 히모카와 면이 팔락거리며 날아다니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습니다. 넓적한 우동면이 하늘을 날아다닌다니, 정말 웃긴 이야기잖아요? 아저씨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생동감이 넘쳤어요. 마치 잇탄모멘을 직접 본 사람이 들려주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 덕분에 저는 그다음 날부터 매일 같이 유령 책방으로 향했습니다. 주인아저씨, 미즈키 아저씨에게 듣는 요괴 이야기가 너무나도 재밌었으니까요.

유령 책방에 오는 손님이라고는 저밖에 없었어요. 미즈키 아저씨는 그 사실을 딱히 개의치 않아 했습니다. 애초에 책방에 있는 요괴들의 책은 판매용이 아니래요. 아저씨는 순전히 이 책들을 모아두기 위해 책방을 차린 것 같았습니다. 미즈키 아저씨에게 요괴 이야기를 듣게 된 지도 열흘째 되던 어느 날 저는 미즈키 아저씨에게 물었어요.

“이곳에는 어떻게 이렇게 요괴들에 대한 책들이 많은 거예요?”

제 말에 미즈키 아저씨는 그저 평소처럼 상냥하게 웃으며 대답해 주셨죠.

“내 친구들 얘기거든.”

어떻게 요괴와 인간이 친구가 될 수 있어요? 라는 물음은 차마 하지 못했습니다. 상냥하게 웃고 있던 미즈키 아저씨의 표정이, 이상하게 제 눈에는 어딘가 서글퍼 보였거든요. 어쩌면 마음 한구석에서 정말로 미즈키 아저씨의 말을 믿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즈키 아저씨가 마치 책에 쓰인 요괴들을 정말 만나본 적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이유는, 정말로 그들을 만나봤기 때문이라고요.

 


유령 책방은 저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소중한 곳이었습니다. 저만의 아지트였어요.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도요. 중학교에 들어가고,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된 저는 예전처럼 매일 같이 유령 책방에 갈 수는 없었지만 틈만 나면 미즈키 아저씨를 만나러 갔습니다. 이제는 아저씨도 저를 무척이나 편하게 대해주셨어요. 공부도 안 하고 맨날 이런 곳에 놀러 오면 쓰냐는, 엄마랑 똑같은 말씀을 하셨을 때는 조금 얄미웠지만.

여러모로 미즈키 아저씨에게는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초등학생 때에는 공부도 많이 도와주셨어요. 중학교 때에는 아저씨도 이제 늙어서 요즘 애들 배우는 건 잘 모른다고 하셨으면서도 같이 교과서를 봐주시며 함께 공부를 해주셨어요. 그러다가도 요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할 때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저는 아저씨가 들려주었던 요괴 이야기 중 네코무스메 이야기를 가장 좋아해요. 상냥하고 강한 여자아이는 분명 소녀들의 동경일 테니까요.

“너 또 거기 가니?”

“응, 오늘은 시험도 끝났으니까!”

“넌 참 별난 취미가 있다. 난 거기 근처에도 가기 싫던데.”

“그래 보여도 좋은 곳이야. 아저씨도 엄청 친절하신걸.”

“너 설마 그 아저씨한테 반한 거야?”

“뭐? 무슨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아저씨랑 나랑 나이 차이가 몇 살이나 되는 줄 알아? 물론 아저씨가 잘생기긴 했지만…….”

농담도 참. 친구의 말에 저는 그렇게 웃으며 가방을 챙기고는 곧장 유령 책방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무심코 책방으로 향하던 길에 방금 친구들과 한 이야기가 머릿속을 맴도는 거예요. 점점 책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하게 속이 울렁거렸어요. 마치, 무언가를 알고 싶지 않은 것처럼. 그리고 겨우 책방에 도착한 저는 왜 그런 기묘한 기분이 들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시험은 잘 봤고?”

미즈키 아저씨를 처음 본 후로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미즈키 아저씨는 처음 봤을 때 그 모습 그대로라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거든요. 미즈키 아저씨를 처음 봤을 때도 저희 아빠보다 어리게 보였다는 걸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 얼굴이 10년이 지나도 그대로일 수 있을까요.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죠. 미즈키 아저씨는 정말로 요괴를 만나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 생각이 지금은 바뀌었습니다. 어쩌면, 미즈키 아저씨는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그런데 이상하게 무섭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보통 그런 의심이 들면 상대가 무서워지잖아요? 하지만 오히려 다른 호기심이라고 할까요. 의구심이 두려움을 이겼던 것 같아요. 요괴들을 친구라고 부르는 미즈키 아저씨는 왜, 이런 구석진 곳에서 친구들의 이야기를 모아두고 혼자 살아가는 걸까요. 왜 그 친구들은 미즈키 아저씨를 찾아와 주지 않는 걸까요. 미즈키 아저씨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저는 전혀 모릅니다. 제가 아저씨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이상한 책을 수상하게 많이 가지고 있는 책방의 주인인 것밖에 없어요. 그렇지만 그 오랜 시간을 함께하면서 미즈키 아저씨가 그들을 무척이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다른 누구도 아닌 저는 알고 있습니다.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저를 보고 아저씨는 제가 시험을 망쳤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다음 시험은 잘 보면 되지 않겠냐고 위로해 주시는 목소리가 너무 상냥해서 저는 무심코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그 뒤로 또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어엿한 어른이 되어 직장인이 되었고, 미즈키 아저씨는 여전히 유령 책방의 주인아저씨였죠. 아저씨는 역시나 처음 만났을 때 그 모습 그대로였어요. 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했습니다.

아저씨를 만나고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으니, 책방에 있는 모든 책을 읽어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제 제가 읽지 않은 책은 한 권밖에 남지 않았어요. 그 책은 늘 미즈키 아저씨가 쓰는 책상 위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왜 그 책방에 있는 책들에 작가의 이름이 적혀있지 않은 건지 알았습니다. 책방에 있는 책들은 전부 다 미즈키 아저씨가 직접 쓴 책들이었거든요. 그림 진짜 못 그렸다고 한 책도 있었는데, 미즈키 아저씨가 직접 그린 건 줄 알았더라면 그런 말은 절대 하지 않았을 거예요.

제가 읽어보지 못한 마지막 책은 지금도 아저씨가 계속 쓰고 있는 미완성의 책이었습니다. 짙은 남색의 표지에 쓰여있는 제목은 ‘유령족’이었습니다. 저는 어렴풋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 책이 완성되면, 제가 그 책을 읽게 되면 미즈키 아저씨를 두 번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 거라는 확신이. 그래서 저는 유령 책방에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미즈키 아저씨와 헤어지는 게 싫어서요. 참 어린애 같은 이유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미즈키 아저씨와 처음 만났을 때의 저는 고작 여섯 살의 어린 소녀였는걸요.

하지만 결국 이별은 찾아왔습니다. 유령 책방이 없어진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우리 동네 골목길에 있던 그 기분 나쁜 책방이 드디어 없어진대. 제게 그런 말을 해준 건 누구였을까요? 그것은 딱히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날 일을 마치자마자 유령 책방으로 달려갔어요. 불이 켜진 책방을 보고 저는 벌컥 문을 열었습니다. 그곳에는, 아아, 정말 다행스럽게도 미즈키 아저씨가 계셨어요.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미즈키 아저씨는 변함없이 상냥한 얼굴로 저에게 인사를 건네주었습니다.

“손님이 찾아오셨구려.”

재회의 기쁨도 잠시, 미즈키 아저씨의 곁에는 처음 보는 남자가 서 있었어요.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도 덜렁 유카타 한 장만을 걸친, 미즈키 아저씨와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백발의 키가 큰 남자였죠. 한쪽 눈을 가리고 있어서 그런지 남자에게서는 참으로 독특하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 남자가 입고 있던 유카타의 색이 이상하게 눈에 밟혔는데,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어요.

“아…… 유령족!”

“음? 인간 아가씨가 나에 대해 어찌 아는겐가?”

미즈키 아저씨가 아직 완성하지 못한 책. 제가 읽어보지 못한 마지막 요괴, ‘유령족’ 책의 표지와 완전히 똑같은 색의 유카타를, 그 남자가 입고 있었습니다.

“게게로!”

미즈키 아저씨는 당황하며 게게로라고 불린 남자를 자신의 등 뒤로 치우려고 했지만, 미즈키 아저씨보다 한참이나 큰 게게로 씨가 미즈키 아저씨의 등 뒤에 숨겨질 리가 없었죠. 이래저래 미즈키 아저씨에게 하고 싶은 말도, 묻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제 마지막 질문은 굉장히 뜬금없는 것이었죠.

“미즈키 아저씨가 제일 좋아하는 요괴는 누구인가요?”

그 말에 미즈키 아저씨는, 정말이지, 예전과 변함없는 상냥한 얼굴로 제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유령족일까나.”


 

며칠 후 유령 책방은 없어져 버렸습니다. 마치 그곳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조차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마치, 요괴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죠.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결국 유령족의 책은 읽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 책이 지금은 완성이 되었을지, 아니면 여전히 미완성일지는 모르겠지만. 아, 어쩌면 완성이 되어도 저는 읽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다른 사람의 사랑 편지를 훔쳐보는 건 역시 실례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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