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치미즈] 다정한 거절
설정 날조 多
“미즈키, 자네는…… 인간이기를 포기할 수 있는가.”
오늘도 텐구에게서 좋은 술을 얻어왔다네, 하며 자연스럽게 술자리로 자신을 초대한 이가 자못 진지한 표정을 하며 묻는다. 그런 표정을 할 때의 그는 도통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제껏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그들의 표정을 살피고 분위기를 읽는 것만큼은 제법 특기라고 자부할 수 있는 미즈키였지만, 눈앞에 있는 이가 그야말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일까.
“그게 무슨 뜻이야? 제대로 설명해봐.”
미즈키는 허겁지겁 그를 재촉하기 보다는 이제껏 그래왔듯 가볍게 툭하고 말을 뱉는다. 정작 말을 걸어놓고는 묵묵히 앞을 보고 있던 그가 슬며시 고개를 틀어 미즈키와 눈을 마주한다. 아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은 취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명백하게 슬픈 빛을 띠고 있었다.
“최근 자네의 몸 상태가 안 좋은 것을 알고 있다네, 벗이여.”
“…….”
“틀림없이 자네라면 그 사실을 숨기려고 하겠지. 나도 알고 있었어. 그래서 나도 먼저 말을 꺼내는 게 조심스러웠다네.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지금도 여전히 망설여져.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면 분명히 싫어할 테니까……. 하지만 미즈키, 더 이상 자네의 피 냄새가 숨겨지지 않아.”
“……그렇게 많이 티나?”
더 이상 숨기는 것도 무리인가. 미즈키는 가볍게 웃으며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는 그의 말을 순순히 인정했다. 애초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죽음이 보인다고 했던가. 그의 눈에는 자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아주 많이 보이고 있으리라.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그에게 사람의 마음속을 읽을 수 있는 그런 능력은 없었기에 어떻게든 자신의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숨기려했는데. 냄새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래서야 요괴라기보다는 짐승 아닌가.
“키타로도 눈치 챘을까.”
“그렇겠지. 내 아들은 똑똑한 아이니까.”
그렇지, 미즈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겨우 두 살이 된 아이는 역시나 태생이 달라서 그럴까, 다른 인간의 아이와는 전혀 달랐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는 아이다. 아직은 보호자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
몸 상태가 좋지 않음을 느끼게 된 것은 보름 전의 이야기로, 그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피로가 쌓여 그런가보다 하고 여기저기 아파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미즈키는 딱 보름 전 피를 토해냈다. 그것도 제법 많은 양을. 그 때가 되어서야 자신의 상태가 생각보다 훨씬 좋지 않다고 판단한 미즈키가 병원으로 향했던 날, 그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그런 일이 겪고도 어쩌면 이만큼 산 게 기적일지도 모르지.’
이렇게 피를 쏟아내는 것이 처음은 아니어서 그랬을까. 손바닥을 진득하게 물들인 검붉은 피를 보고도 미즈키는 제법 침착했다. 의사에게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는 여전히 침착했다. 어쩌면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걸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몸이 좋지 않다는 것, 나아가 수명이 얼마 남지 않다는 것을 남자에게 숨긴 것은 응당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자야말로 그 마을에서 너무나 많은 일을 겪었고, 목숨만큼이나 소중히 아끼는 것을 잃었다. 인간보다는 한참을 오래 사는 종족이니만큼 자신이 그의 곁을 먼저 떠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으나, 그저 막연히 지금은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기에 숨겼다. 이런 식으로 들키게 되는 것은 예정에 없던 일이라 다소 난감해진다. 아아, 나치고는 너무 허술했어. 미즈키는 자조하며 옆에 있던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일단 그건 그렇다 치자. 그러면? 인간이기를 포기할 수 있느냐는 말은 무슨 뜻이야.”
“일단 그건 그렇다 치면 안 되는 것이지. 미즈키, 자네는 나를 어디까지 서운하게 만들 셈이야.”
“네가 의사도 아니고 내 몸이 망가진 걸 어떻게 고쳐. 미리 말해두겠는데, 네 탓은 절대 아니니까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
“할 수 있다면? 자네의 몸을 고칠 수 있다면 자네는 그리 하겠나?”
“그게…… 인간이기를 포기한다는 거야?”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붉게 물든 벚꽃나무 아래에서 미즈키는 본의 아니게 유령족의 피를 뒤집어썼다. 유령족의 피를 갑작스럽게 많은 양을 억지로 주입 당한 인간은 산송장이나 다름없어지지만, 미즈키의 경우 직접 수혈을 당한 것이 아닐뿐더러, 아주 잠시뿐이었더라도 선조들의 영모로 짜인 조끼를 걸친 몸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 날 자신을 도와 이와코와 키타로를 지켜준 인간이다. 어쩌면 선조들이 그 또한 지켜주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허나 미즈키는 중간에 그 조끼를 벗어 이와코에게 입혀주었다. 그 탓에 이도저도 아닌 상태가 되었으리라.
“미즈키, 유령족이 될 생각이 있는가.”
“유령족이…….”
“아마도 완전하지는 않겠지. 허나 다른 인간들과는 확실히 달라지게 돼. 늙지도 않고, 쉽게 죽지는 않을게야. 그러니 미즈키. 미즈키… 제발, 인간이기를 포기해주면 안되겠는가?”
이렇게 자네를, 자네까지 잃을 수는 없어. 어느새 커다란 눈알 가득 눈물을 한껏 쏟아내며 울기 시작한 남자를 보며 미즈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는다. 너 진짜 울보구나. 그 목소리가 어쩐지 너무나도 다정하고도 평안해서―
“나는 인간으로 죽고 싶어, 게게로.”
그가 거절을 말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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