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대화

게나조

篝火 by 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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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위터 썰 기반, 수신즈키 if

  • 6기 네타 있음

“안녕, 요즘은 어때.”

기이한 광경이었다. 물이 양쪽으로 갈라져 하나는 위에서 아래로, 다른 하나는 반대로 흐르고 있었다. 제대로 흘러가는 쪽은 맑고 투명한 빛이었으나 역류하는 물줄기는 불길하다 싶을 만큼 시커먼 빛을 띠고 있었다.

두 물줄기 위에는 한가한 나룻배가 하나 떠 있었다. 그 배에 서 있는 두 남자는 기묘하리만치 얼굴이 똑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청수에 선 남성은 흑발이고, 탁류에 선 이는 백발에 삿갓을 쓰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잘려나간 귀와 왼쪽 눈을 세로로 찢듯이 가르는 흉터마저 똑 닮았다.

이곳은 저승의 물과 이승의 물이 만나는, 세상 어딘가에 있는 두물머리. 초하룻날 밤, 이승의 수신과 저승의 수신은 이곳에서 만나 지난 달의 업무를 보고한다. 정확하게는 서로의 근황과 어떤 가족의 일상을 공유하기 위한 자리이지만.

이승의 물을 담당하는 수신, 미즈키가 투덜거렸다.

“늘 그렇지 뭐. 이번 달도 홍수가 한 번 났어. 진정시키려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 물줄기가 있어 가지고. 너는 삼도천만 통제하면 되니까 부럽네.”

저승의 물을 담당하는 수신, 미즈키가 고개를 저으며 푸념을 했다.

“그렇지만도 않아. 나는 뱃사공 일까지 하잖아? 이렇게 죽을 수 없다고 난동을 피우는 영혼을 달래는 것도 일이야. 얌전히 가면 어디가 좀 덧나나.”

“저승에 가서도 진상을 대하는 거냐. 너도 고생이다.”

이승의 미즈키가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 눈썹을 내리며 저승의 미즈키를 위로했다.

그래, 두 신은 원래 ‘미즈키’라는 한 인간이었다. ‘미즈키’의 삶은 참으로 기구하여, 어느 날을 기점으로 혼이 천천히 분리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신격을 잃은 수신에게 휩쓸리면서 그대로 명이 다했다.

본디 그렇게 명이 다해 저승으로 가야 하는데, 이변이 생겼다. 폭주를 마친 수신이 죽으면서 ‘미즈키’에게 신격이 계승되었다. 그를 잡으러 왔던 저승사자 역시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염라에게 보고했다. 염라는 고민 끝에 ‘미즈키’의 혼을 두 개로 나누어 검은 쪽은 이승을, 하얀 쪽은 저승을 담당하게 했다. 원치 않은 업을 잔뜩 쌓았기 때문에 지옥에서 심판을 받아야 하지만, 이미 신이 되어버렸으므로 이렇게라도 그 값을 다하게 만든 셈이었다.

이승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저승도 물을 휘저어 곰방대를 꺼냈다. 이승은 저승을 흘깃 보다가 말했다.

“그 차림이라 그런가 더 신 같다. 나도 그냥 기모노로 복장을 바꿀까?”

“됐어. 요괴들이 더 헷갈릴 걸? 그 녀석들은 외관상 가장 큰 특징으로 개체를 구분하잖아.”

“어차피 넌 하얗고 난 검어서 구분 잘 될 걸.”

“이왕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저번에 키타로가 찾아왔더라고. 이승에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키타로. 그들의 생전 양아들의 이름이 나오자 이승의 낯빛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는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저번에 네코무스메가 죽었어.”

“그 애가 죽었다고?”

저승이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그래서 내가 죽었을 때처럼 죽상을 하고 있었군. 저승은 수긍하며 곰방대를 물었다.

그들의 양아들, 유령족의 후예인 키타로는 그가 죽고 얼마 되지 않아 요괴 포스트라는 것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인간과 요괴가 싸우지 않고 사는 걸 원해서라고 했지만 키타로의 친우라고 할 수 있는 네즈미오토코는 은혜갚기라고 설명했다. 그 자식, 자기 때문에 형씨가 죽었다고 생각한다니까요. 이승과 저승은 그 이야기를 전해듣고 마음이 무거웠다. 애석하지만 그의 죽음은 단지 사고에 불과했다. 한때 신이라고 불렸던 요괴가 노해서 일어난 사고.

다행히 키타로와 뜻을 같이 해주는 요괴들이 꽤 있었다. 스나카케바바, 코나기지지, 네즈미오토코와 네코무스메, 누리카베와 잇탄모멘, 그리고 가장 중요한 그의 아버지. 모두 한때 미즈키와 안면을 튼 요괴였고 키타로의 아버지인 게게로와 친하게 지내던 사이라 안심할 수 있었다.

“어쩐지, 저승에 올 리 없는 애의 영혼이 내 나룻배를 타러 왔더라고. 그 애가 아무 말도 하지 않길래 나는 키타로를 대신해 이와코 씨라도 만나러 온 줄 알았지. 그런데 죽은 거였다니…. 대체 이승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저승이 이승을 보면서 타박하듯이 물었다. 이승은 조금 울상이 되어 자신이 흘러다니면서 본 모든 것을 이실직고했다. 예상은 했으나 역시 저승은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머리를 짚으며 “하아~.”하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당장 도끼를 들고 이승으로 뛰쳐 나가 난장판을 치고 싶은 기분일 거다. 그걸 누가 모르겠는가, 하물며 영혼을 공유하는 이승이기에 그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이 세계의 섭리를 다루는 신이다. 신은 언제나 중립을 유지해야 하며 인간사와 요괴사에 함부로 끼어들면 안 된다. 그들의 간섭이 허용될 때는 저울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뿐. 알고 있지만 분한 건 어쩔 수 없다. 그 누가 자식의 고통에 피눈물을 쏟지 않을 수 있을까.

“뭐, 그래도 잘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지금까지 그런 고비가 없었던 게 아니잖아.”

저승은 그런 상투적인 말로 자신의 화를 식힐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분노로 잘게 떨리는 손을 보면서 이승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게게로도 있으니까.”

“그 녀석은 영 믿음이 가지 않는데.”

“야, 그래도 지금은 몸을 되찾아서 키타로보다 강한 요괴가 되었거든? 그리고 의외로 생각이 깊고 신중한 녀석이야. 아직도 인간의 사고를 버리지 못한 우리보다야 대처를 더 잘 하겠지.”

이번에는 이승이 저승에게 잔소리를 했다. 저승은 그 말이 듣기 귀찮은지 ‘네, 네’하고 건성으로 대꾸하고는 다시 곰방대를 물었다. 물거품 같은 담배 연기가 허공으로 번졌다. 젠장, 괜히 분위기만 이상해졌잖아. 이승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화제를 찾는데 저승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치만 조금은 몸을 사렸으면 좋겠네. 저승에서 이와코 씨가 걱정한다고?”

“그렇긴 해. 그러고 보니 이와코 씨, 슬슬 부활할 때가 되지 않았나?”

게게로의 아내이자 키타로의 어머니인 이와코는, 나구라라는 마을에서 인간에게 착취당한 후유증으로 키타로를 낳다가 사망했다. 그것을 미즈키가 거두워 묻어준 덕인지, 사지가 멀쩡히 남은 이와코는 무사히 저승으로 가 요력을 모을 수 있었다. 요력만 충분히 회복되면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 부활할 수 있다는데, 70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저승도 그게 궁금했는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그게 사실, 당장 부활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요력이 회복되었단 말이지? 그런데 이와코 씨가 아직 올라갈 생각이 없으셔서?”

“올라갈 생각이 없다고? 왜? 아들이랑 남편이 있는데.”

이승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저승이 탁류를 휘저으면서 말했다.

“지옥에 떨어진 어린아이들의 영혼이 마음에 걸리나 봐. 그거 때문에 염라 밑에 남아서 이것저것 지옥을 손본다고 계속 부활이 미뤄지고 있어.”

“아하, 저승 공무원으로 취직하셨군.”

이승이 담배를 마시면서 클클 웃었다. 저승도 그제야 안색을 폈다.

“아무튼 그래서 자주 만나는데, 배에서 진상 부리는 녀석은 염라 앞에 가서도 진상이더라. 자기는 아무 잘못도 한 게 없는데 지옥에 끌려온 게 억울하대. 그런데 염라의 거울에 비쳐진 제 전생을 보면 입을 꾹 다문다니까. 그렇게 지옥에서 형벌을 받아도 자기는 억울하다고, 염라가 너무하다고 게으르게 있으니까 이와코 씨도 그런 인간 때문에 속 터진 게 한두 번이 아닌 모양이야.”

“그런 인간을 질리도록 보는데도 아직 인간을 좋아한다는 게 신기하지.”

“그래서 한 번은 대작하면서 물었거든. 대체 무엇 때문에 아직도 인간을 포기하지 않고 있느냐고. 그랬더니 나를 콕 집으면서 ‘미즈키 씨 같은 사람이 있으니까요’라고 하더라.”

“…이 자식. 설마 유부녀를 노리는 건….”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이승이 혐오스러운 것을 본 듯한 눈으로 저승을 바라보자 저승이 억울하다는 식으로 꽥 소리를 질렀다. 저승의 노기에 반응하듯 탁류의 흐름이 거칠어졌다. 이승도 지지 않고 목에 핏대를 세웠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무리 나라고 해도 그렇지 유부녀한테 그러는 건 좀….”

“아니, 나는 이와코 씨한테 친근감만 가지고 있다니까! 절대 남녀 간의 연정이라든가 그런 게 아니야!”

“그게 연심으로 바뀌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는데? 넌 오늘부터 내가 아니야. 너랑 나는 모르는 사이야.”

“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너무하지 않아? 너도 나거든?!”

“내가 너처럼 유부녀를 좋아하는 파렴치한이라니 싫네요!”

청류와 탁류가 거센 파도를 만들어 서로의 멱을 틀어잡듯 사납게 엉켰다. 서로를 집어삼킬 듯 솟구치는 물결 속에서 왁왁대며 한심한 말다툼을 벌이는 수신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결국 지옥의 오니가 우는 소리를 내며 진정시키러 왔다. 아이고 나리, 이러시면 삼도천과 이승의 강에 홍수가 납니다! 그제야 둘은 싸움을 멈추었다. 자신의 감정에 따라 물줄기가 달라진다는 사실은 여전히 익숙하지가 않다. 이승은 괜히 헛기침을 하면서 주제를 돌렸다.

“그래도 염라랑 어떻게 합의가 되었는지 네코무스메는 잘 부활했어. 어린 모습이라서 키타로가 보살펴야 한다는 작은 흠이 있지만.”

“호오, 벌써 육아를 시작한 건가. 곧 있으면 애아빠 되는 거 아냐?”

“아무리 내 양아들이라도 못하는 말이 없으시네요.”

이승이 혀를 차자 저승은 화살을 괜히 다른 사람에게 돌렸다.

“이봐, 아이 모습이라서 그렇지 그 녀석도 이제 일흔이 넘었어. 게게로가 그거 때문에 우는 소리를 하더라. 아들은 아직 운명의 상대를 못 만났는지 성장을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고.”

“아, 하긴 그 녀석도 이와코 씨 만난 다음에 멋져 보이고 싶어서 훌쩍 자랐다지? 하여튼 웃기는 녀석이야.”

이승은 너털웃음을 지으면서도 몰래 생각했다. 만약 짝을 짓는다면 네코무스메가 괜찮겠지. 가장 오랫동안 함께 있었고, 네코무스메도 키타로에게 마음이 있고. 문제는 키타로가 네코무스메한테 그렇고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느냐인데…. 이승과 저승은 생각을 공유한다. 저승은 흘러들어오는 이승의 생각을 읽다가 물었다.

“네가 보기에 네코무스메는 어떤 거 같아?”

“갑자기?”

반응을 보니 이승은 서로 생각과 기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걸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는 모습이 웃기니 절대 알려주지 않을 거다. 갑자기 네코무스메 이야기를 꺼낸 저승이 수상쩍었지만 이승은 순순히 대답헀다.

“좋은 애야.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서툴러서 그렇지 우리만큼이나 키타로가 소중한 애야. 거의 50년 동안 함께하기도 했고, 보아하니 걔도 키타로를 내심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흐음~한마디로 키타로에게 잘 어울리는 애다?”

“뭐 그렇다고도 할 수 있…. 잠시만, 뭐야. 너 방금 내 생각 읽었어?!”

이제야 깨달은 이승이 기겁하며 저승에게 따졌다. 이와코 건으로 살짝 삐져 있었던 저승은 드디어 한 방을 먹인 것이 통쾌해 비식비식 웃다가 폭소를 터트렸다. 그러게 작작 놀렸어야지! 저승이 손가락질하며 놀리자 이승은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자세로 주먹을 쥐었다. 넌 진짜 나중에 보면 뒤졌어. 말로는 그러지만 두 신은 알고 있다. 이승과 저승으로 나누어진 이상 그들은 더 이상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걸. 그것이 인간일 적 그가 짊어진 죄업의 대가임을.

일렁이는 물줄기 위해 빛이 비추기 시작한다. 꿈 같이 짧은 초하룻밤이 지나가고, 새 날이 밝아오고 있다. 서로 몸을 맞대고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던 두 물줄기가 서서히 멀어진다. 이승과 저승은 엇갈리며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갔다. 하나는 지상의 물을 순환시키며 생명을 보살피기 위해, 다른 하나는 저승의 강을 노저으며 망자를 인도하기 위해.

“그럼, 다음 초하룻밤에 보자고.”

이승이 씁쓸한 표정으로 저승에게 작별을 고했다. 저승이 손을 흔들면서 갓을 고쳐썼다.

“키타로에게 좀 전해줘. 요괴 포스트 일이 바빠도 가끔은 어머니랑 내 얼굴 좀 보러 오라고.”

“말도 마. 걔 요즘 나랑 차 한 잔 할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쁘다. 내가 많이 도와줘야지.”

“그래. 그 애 좀 부탁한다.”

초하룻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열린 두 물의 회합은 그렇게 끝이 났다. 다음 번 초하룻밤에는 어떤 이야기를 건네줄까, 두 사람은 기대하며 물줄기에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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