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페토의 아들들

키타미즈

篝火 by 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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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대생공개계정님(@gurimdrawing) 연성 3차 창작, 하단 링크 참조

미즈키의 네 번째 직업은 인형장인이었다.

디지털 세대,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봉제인형이나 로봇보다 스마트폰을 먼저 잡는 시대에 적합하지 않은 직업이지 않나 싶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미즈키는 인형장인이 되기로 했다. 가장 큰 이유는 인간과 섞여 사는 데 지쳤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도시에서의 삶에 회의감을 느끼고 한적한 농촌 생활을 꿈꾸지 않는가. 백 년에 가까운 삶을 산 미즈키도 다를 바 없었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돈도 많이 모았겠다, 그는 이제 인간 사회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미즈키라는 인간은 손을 움직이지 않으면 심심해하는 사람이었기에, 고민 끝에 사람을 마주할 일이 적은 인형장인을 골랐다.

두 번째는 추억을 수선하는 직업이라는 소개가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미즈키의 집에도 어린 키타로가 가지고 놀던 인형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인형 하나하나에 특별한 기억과 사소한 에피소드가 담겨 있었기에 버려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미즈키는 쉽게 비우지 못했다. 키타로가 독립하여 10년에 한 번 집에 올까말까 한 수준이 된 후에는 더욱 그것들을 떠나보내지 못했다. 그렇게 인형은 세월을 따라 낡았고, 책이나 인터넷을 보면서 인형을 연구하고 하나씩 수선하다 보니 이쪽에 관심이 가게 되었다.

어느 집의 젊은 남자가 인형을 잘 고친다더라, 그 소문이 나자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씩 소중한 인형을 들고 미즈키의 집 문을 두드렸다. 직업으로 삼을 생각이 없던 시절에는 그들의 부탁이 난감해 돌아가달라고도 했으나, 인형에 얽힌 각양각색의 사연을 듣다 보니 도움을 안 줄 수가 없어 약간의 보수를 받고 수선해주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역시 백 년을 살았지만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즈키는 난처하게 웃었으나 키타로는 그의 미소가 근 몇 년 동안 본 모습 중 가장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간의 편견과 달리 아직도 인형은 아이들의 친구였다. 게임과 스마트폰이 아이에게 줄 악영향을 걱정하는 부모들은 아이에게 인형을 사주었다. 보통 사람들은 시장에서 아이가 마음에 들어하는 것을 사주었지만, 좀 더 특별한 인형을 선물하고 싶어하거나 가난해 비싼 인형을 사줄 여력이 없는 이들은 미즈키의 인형공방을 두드렸다. 미즈키는 손님의 이야기를 진중하게 들은 뒤 인형을 디자인하고 원단과 색과 실과 속에 채워넣을 재료를 정한 다음 정성을 다 해 한두 달에 한 개씩 만들었다. 이따금 손님들로부터 아이가 좋아한다는 손편지나 근황을 들을 때마다 미즈키는 전과 다른 뿌듯함에 가슴 안쪽이 간질간질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소중한 인형을 수선하거나 특별한 의미를 담은 인형을 만들면서, 어느 새 ‘피노키오 아저씨’라는 별명이 생긴 미즈키에게 특별한 능력이 생겼다.

어느 날처럼 미즈키는 바깥에 전시할 인형을 만들고 있었다. 미즈키는 흰 토끼 인형의 왼팔을 몸통에 꿰매 붙이던 중 무언가가 자꾸 자신을 치는 듯한 느낌에 인형을 내려다봤다. 놀랍게도 인형의 오른다리가 까딱이며 그의 옷소매를 자꾸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미즈키는 작업용 안경을 벗고 인형을 작업용 의자에 내려놓은 다음 그것을 가만히 관찰했다. 곧 인형의 오른다리에 이어 오른팔이 좌우로 흔들리더니, 그것이 직접 고개를 기울여 자신의 왼팔을 내려다보는 것 아닌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인형은 다시 고개를 들더니 오른팔로 자신의 왼팔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 좀 빨리 붙여주세요. 덜렁거려서 신경 쓰여요.”

심지어 말도 아주 유창하게 했다. 고작 세 살짜리 수준의 문장을 구사할 거라 생각했던 미즈키는 입을 떡 벌리고 인형을 바라봤다.

제페토의 아이

아무리 하찮은 미물이라도 정해진 수명을 넘게 살면 기이한 힘을 가진 영물이 된다. 보통은 그 시간을 초월하지 못하고 죽는다는 모순이 존재하지만 그렇기에 모순을 극복한 존재는 일종의 살아있는 신비가 되어 영험한 힘을 얻는다.

인간이라고 다르지 않다. 전통적으로 팔순이나 아흔을 넘긴 노인을 마을 제일 어르신으로 섬기며 중대사를 정할 때 그의 의견을 구한 데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기대 수명에 가깝게, 혹은 이를 넘게 산 그들에겐 과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초인적인 직감이 있다. 혹자는 경험에 기반한 인지 능력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일에도 적절한 조언을 내릴 때가 있다. 그것을 어찌 인간의 힘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유령족의 피를 뒤집어 쓰고, 그 아이를 키우며 자연스럽게 신비에 익숙해진 미즈키는 자력으로 기대 수명을 넘김으로서 완전히 인간의 길을 벗어났다. 그 결과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영력이 생겼고, 그 힘은 미즈키가 만든 인형에 배여 자아와 생명력이 되었다.

“흠, 인형술사라. 실로 오랜만이군.”

눈알아버지는 미즈키의 첫 「인형」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즈키에게 깃든 ‘인형술사’ 능력은 온갖 요력 중에서도 가장 드문 것으로, 무생물에게 생물과 같은 자아를 부여하면서도 자신의 명령에 따르게 만들어야 하므로 매우 희귀한 능력이라고 한다. 「인형」은 고개를 쭉 내밀고 자신을 구경하는 눈알아버지를 빤히 쳐다보다가 물었다.

“그런데 이건 뭐야?”

“내 친구야. 어른이니까 존댓말을 해야지.”

“안녕하세요.”

“그래, 똑똑한 아이로고.”

야무지게 배꼽인사까지 하는 「인형」을 보고 눈알아버지는 흐뭇하게 웃었다. 그때까지 키타로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살아 움직이는 인형은 요괴 포스트 일을 하면서 종종 봤기에 그다지 희한하다거나 신기하다고 느끼진 않았으나, 미즈키의 인형공방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미즈키를 친근한 존재로 대하는 인형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심지어 그 인형은 키타로와 눈알아버지가 방문했을 때, 미즈키의 등 뒤에 딱 붙어 그들을 곁눈질로 관찰하고 있었다. 마치 낯선 사람을 만난 아이가 부모의 등 뒤에 숨어 불청객을 예의주시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키타로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무섭고 낯선 상황이 닥칠 때마다 미즈키의 다리에 매달려 뒤에 숨거나 품에 안겼다. 그러면 미즈키가 웃으면서 그 사람을 소개시켜주고 키타로가 안정될 때까지 그를 숨겨주었다. 괜찮다며 머리를 쓰다듬거나 등을 토닥이기도 했다.

이제 키타로는 그 무엇도 두렵지 않고, 미즈키의 품에 숨지 않아도 될 만큼 자랐다. 그리고 그 품으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그가 소중히 안고 있는 흰 토끼 인형을 보니 이상하게 그것을 뺏긴 듯한 기분이 들었다. 키타로는 그런 자신의 감정에 혼란을 느꼈다. 입을 열면 무슨 모진 말이나 뾰족한 말이 튀어나올지 몰라 키타로는 차라리 어색하더라도 침묵하는 쪽을 택했다. 아직 키타로의 마음을 모르는 미즈키는 진지하게 눈알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앞으로 만드는 인형도 자꾸 생명이 생기면 어떡하지? 개인작도 있지만 제작의뢰품이나 수선의뢰품도 이렇게 되면….”

“음. 샐러맨더 가루라는 게 있다네. 영력이나 요력 등을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가루인데 그걸 손에 묻히고 만든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네. 내 두 자루 정도 구해다 주지.”

“아, 그런 것도 있어? 뭐 효과가 있다면 다행인데.”

눈알아버지와 미즈키의 대화를 가만히 듣던 「인형」이 갑자기 슬픈 표정을 짓더니 미즈키를 올려다보면서 물었다.

“그러면 안 돼요?”

“응?”

“나는 잘못 만들어진 아이인가요?”

대체 어디에서 그런 말을 배운 건지. 미즈키는 눈알과 자신의 말을 곱씹다가 이마를 짚었다. 「인형」이라도 자아가 있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있는데, 이런 존재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게 계속 생기면 곤란하다’라는 식으로 말해버렸다. 그러면 당연히 자신이 실수로 태어났고 잘못 만들어진 존재라고 오해하지 않겠나. 적어도 「인형」이 없거나 듣지 못하는 장소에서 했어야 하는 말이었다. 미즈키는 자신의 안일한 대처에 반성하며 「인형」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어. 너는 언제나 내 첫 번째 「인형」이고 소중한 아이야.”

“고마워요, 파파.”

파파? 아버지를 의미하는 단어에 키타로는 안테나가 설 만큼 강렬한 충격을 받고 그들을 바라봤다. 「인형」은 정말로 감사함을 느끼는 것처럼 온 얼굴로 환히 웃으면서 미즈키를 끌어안고 있었고, 미즈키는 당연하단 듯이 「인형」을 두 팔로 다정하게 안아주었다. 순간 머리 위로 벼락이 꽂히는 듯했다. 인간들이 말하는 ‘간 떨어질 뻔한 기분’이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 무엇인지 키타로는 이제 알 수 있었다.

거긴 내 자리야.

미즈키 품은 내 자리라고.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날카로운 목소리게 제 안에서 비명을 질렀다. 키타로는 화들짝 놀라 제 몸을 더듬었다. 그런 아들의 당혹스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들은 「인형」을 두고 대화를 이어갔다.

“그래서 이 녀석 이름은 지어주었나?”

“음? 아아, 아직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서 말이야. 이왕이면 키타로랑 비슷하게 지어주고 싶은데.”

“제 이름이랑요?”

순간 놀라서 삑사리가 났다. 음을 이탈해 높게 치솟은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미즈키도 놀라 눈을 깜빡이다가 품에 안긴 「인형」을 한 번 들어보이며 말했다.

“그야…, 어찌 보면 네 동생이니까?”

동생?

저게?

내 동생이라고?

말이 도무지 머릿속에 입력되지 않았다. 머리가 동생이라는 단어를 전력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이성의 문제나 성숙함의 문제가 아니라 본능 레벨의 위기감이 들었다. 이대로면 미즈키 씨의 애정을 뺏기고 말 거야. 키타로는 미즈키의 첫 아이로서 그 의미가 남다름에도 키타로는 갑자기 조급해졌다. 그러나 저 「인형」을 쫓아내거나 밀어낼 명분이 없어 키타로는 초조한 마음으로 미즈키와 「인형」을 번갈아 바라봤다. 음, 하면서 고민하던 미즈키가 키타로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그래, 게타키치는 어때?”

게타키치라, 일단은 자신과 비슷한 이름이 아니라 안도했지만 미즈키가 직접 이름을 지어줬다는 점에서 시샘이 났다. 형 뻘인 게타키치의 속마음도 모르고 「인형」은 마음에 든다며 작업대에서 방방 뛰었다. 이 녀석, 위험한 게 많으니 뛰지 말라고 했는데도. 미즈키가 게타키치의 이마에 딱밤을 놓으며 잔소리했다. 아야야, 하면서 이마를 솜뭉치로 감싸는 꼴이 하찮아 보였다. 그 모습에 과거의 철없는 어린애 시절 자신과 미즈키가 겹쳐 보여 키타로는 고개를 돌렸다.

“미즈키, 자네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인형」을 만들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마다 신중해야 하네. 생명을 가진 것을 만든다는 건 곧 신에 가까운 권능이니, 세상 어떤 능력보다도 책임이 막중한 것이야. 이름도 마찬가지일세. 자네가 가볍게 짓는 이름이 곧 그것의 정체를 결정할 테니 절대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면 안 되네.”

“네네, 그 정도야 나도 이 녀석 키우면서 배웠거든.”

눈알아버지의 끝없는 잔소리가 질린다는 듯 미즈키가 키타로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말을 끊었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키타로는 몸이 빳빳하게 굳어버렸고, 그것을 부정적인 신호로 착각한 미즈키가 미안해하며 바로 몸을 떼버렸다.

“어이쿠, 이젠 이렇게 안는 건 별론가?”

어색함을 타파하려는 듯 미즈키가 일부로 과장스럽게 웃었다. 더 안고 있어도 괜찮은데. 키타로는 바보 같이 군 자신이 한심한 동시에 바로 놔버리는 미즈키가 원망스러웠다. 키타로는 스스로 미즈키에게 꿍, 박치기하듯 고개를 기울이며 웅얼거렸다.

“전 좋아요.”

서툰 애교를 부리는 아들을 내려다보고 미즈키는 피식 웃으며 갈색 머리를 힘주어 쓰다듬었다. 녀석, 철든 척해도 아직은 어린아이라니까. 그러게 좀 더 자주 볼 수 있으면 좋을련만. 요괴로서 살아가야 하는 키타로에게 인간의 마을에 와달라고 하는 건 그에게도 좋지 않은 일임을 알기에 미즈키는 약한 소리를 삼켰다.

그리고 그 모습을 게타키치가 바라보고 있었다.

 


 

게타키치는 훌륭한 조수이자 말동무로 성장했다. 미즈키만큼이나 공방의 구조와 연장의 위치를 세세히 꿰고 있는 게타키치는 주인인 미즈키가 말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을 금방금방 찾아 가져왔다. 옛날 옛적 자신이 주말에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으면 옆에서 고사리 손으로 열심히 돕던 어린 키타로가 생각나 미즈키는 하루도 웃음이 마르지 않았다. 게타키치가 진짜 어린아이였으면 보상으로 간식이라도 주었을 텐데, 미즈키는 대신 그에게 새로운 장신구를 하나씩 만들어 선물했다. 게타키치는 작은 체크무늬 보타이로도 만족했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지능을 가져서일까, 게타키치는 이따금 곤혹스러운 질문을 하기도 했다. 특히 그것이 키타로와 관련된 질문일 경우 당혹스러움을 넘어 가슴이 따끔거리기까지 했다.

“키타로는 왜 파파랑 같이 안 살아요?”

“키타로는 왜 자주 안 와요?”

“오늘도 키타로 안 와요?”

주로 키타로의 행방이나 같이 살지 않는 이유 등을 묻는 내용이었다. 미즈키는 차분하게, 키타로는 약자를 돕고 있고 그 때문에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느라 바빠서 잘 못 온다, 원래는 같이 살았는데 이런저런 사건을 겪은 후 요괴로서 살기 위해 곁을 떠났다, 연락이 잘 되진 않지만 그래도 종종 편지를 하면서 서로 안부를 묻고 있다고 시간을 들여 설명했다. 알았느냐고 물어보면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마지막에 꼭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라면 파파를 혼자 외롭게 두지 않을 텐데.”

얘가 왜 이럴까, 기특하지만 한편으로는 키타로를 은근히 나쁜 아이인 양 말하는 태도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역시 자주 만나지 않으니 친하게 지낼 기회도 없어서 그런 걸까. 그럼 키타로가 지금보다 자주 얼굴을 보이면 해결이 되려나. 어디에 물어볼 곳도 없어 미즈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키타로도 어쩔 수 없다고 열심히 그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게타키치만 변한 게 아니었다. 평소에는 5년에 한 번 안부 편지를 보낼까 말까 하던 키타로가 그날 이후로 한 달에 한 번씩 부치기 시작했다. 내용은 주로 의뢰에 관한 것이었지만 이따금 케타키치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그러나 게타키치 이야기를 할 때면 평소의 건조하지만 다정함이 넘치는 뉘앙스는 잘 느껴지지 않고 어쩐지 감출 수 없는 묘한 가시가 돋친 글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그뿐일까, 어쩌다 한 번 공방에 방문하면 미즈키와는 잘만 이야기를 나누면서 게타키치가 나오면 서로 말없이 노려보기만 했다. 미즈키가 일부로 대화를 시키지 않으면 입 한 번 벙긋하지 않을 기세였다.

“자주 좀 와라, 인마. 정신없이 바쁜 건 알겠지만 그래도 오 년에 한 번씩 오는 건 좀 너무하지 않냐?”

둘 사이에 흐르는 깊고 어두운 침묵을 뚫고자 미즈키는 애플파이를 내려놓으면서 일부로 짓궂게 말했다. 차를 잘못 삼킨 키타로는 콜록거리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죄, 죄송해요, 아빠.”

그리고 제일 눈에 띄는 변화 중에 하나. 어느 샌가 ‘미즈키 씨’가 아니라 ‘아빠’로 자신을 부르고 있다. 심지어 조금 눌러 발음해 마치 주장하는 것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한참 옹알이하던 때에도 들은 적 없는 호칭이라 되려 어색하기만 한데 차마 그렇게 부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질 않는다.

“그래, 이전에 오타루에서 만난 인어는 어떻게 지낸대? 게타키치가 그 이야기를 엄청 좋아하던데.”

“게타키치에게도 얘기했어요?”

“응! 히이코 씨였지?”

생글대며 웃는 게타키치와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는 키타로.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겨우 물꼬를 텄더니 다시 기싸움을 하려 드는 아들들 때문에 미즈키의 한숨은 마를 일이 없었다.

얘네가 대체 왜 이럴까. 편파적으로 대한 적은 없는데, 미즈키는 한숨을 쉬면서 재단한 천을 노려봤다. 점점 혼자 하기 벅차다 싶을 만큼 의뢰가 들어와 새로운 조수 겸 둘째 인형을 만들려고 했는데, 그랬다간 지금의 게타키치나 키타로와 같은 사이가 또 생길까 두려워 엄두를 내지 못했다.

 


 

“형제끼리 사이좋게 지내게 하는 법은 없을까요?”

“어머, 미즈키 씨. 아이가 있나요?”

“네? 아, 그게 사실….”

미즈키는 인형을 맡긴 손님과 대화하다가 그 주제를 무심코 꺼내고 말았다. 최근에 아이를 하나 입양했는데, 그 애가 독립한 첫째를 미워하는 것 같다고 했더니 손님이 어떻게 미워하느냐고 캐물었다. 미즈키는 당황하며, 미워하는 건지 아닌 건지 애매하다고 말을 바꾸고 아이가 꺼내던 질문들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손님은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그에게 알려주었다.

“질투하는 거네요.”

“질투요?”

“네. 둘째도 첫째를 만나기 전에는 외동인 줄 알았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자기가 모르는 형이 생기니, 아빠를 뺏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거죠. 첫째는 첫째대로 부모에게 자기 외에 애정을 쏟는 대상이 생겼으니 질투심이 생겼을 테고요. 원래 애들은 좀 그래요. 부모의 사랑이 곧 생존과 직결되다 보니 형제가 생기면 관심을 뺏겼다고 생각하고 경쟁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저는 딱히 누군가를 편애하거나 한 적이….”

“부모가 느끼는 것과 아이가 느끼는 건 별개랍니다, 선생님.”

대학에서 유아교육학을 가르치고 있다는 중년 여성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물었다.

“선생님은 외동이시죠?”

“네? 아, 그렇죠.”

“그건 형제자매가 있는 아이들만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고 부모의 실제 행동과는 별개에요. 그리고 부모는 스스로 중립을 지킨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무의식 중에 차별하고 있답니다. 일부로 아이들 사이에 껴서 대화하고 있다거나 하지 않으신가요? 누군가의 말에 더 힘을 실어준다거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든가.”

바늘 천 개를 삼킨 것 같은 기분에 미즈키는 손을 멈추고 말았다. 돌이켜 보면 은근히 키타로를 변호하면서 그에게 매정하게 굴었다. 게타키치에겐 키타로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 애가 바빠 자주 오지 못하니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가, 키타로에게 편지를 보낼 때면 좀 자주 오면 덧나냐고, 이번에 어디에 새로운 가게가 생겼는데 게타키치와 다녀왔다고 애정을 담은 잔소리를 하거나 동생과의 일상을 낱낱이 적어 날리기도 했다.

“말씀을 들어보니까…. 제가 좀, 첫째에게 이랬다 저랬다 한 거 같네요.”

미즈키는 결국 자신의 육아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키타로 혼자 있었을 때는 몰랐는데 둘째가 생기니 완전 최악의 부모 아닌가. 미즈키는 자괴감에 작업대에 머리를 박고 싶었다. 좋은 어른이, 나아가 좋은 보호자가 되는 건 너무 어려웠다. 심지어 이제 와 새로운 육아 스킬을 배우려니 눈앞이 막막하다.

“부모는 너무 어려운 거 같아요…. 차라리 하루에 인형 백 개를 만들라고 하면 만들 수 있을 거 같은데.”

“당연한 걸요. 사실 저도 아이를 키울 때 여러 시행착오가 많았답니다.”

“교수님인데도요?”

“교수라서 더 그랬어요. 이론을 완벽하게 알고 있으니 애 하나야 완벽하게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중요한 건 내 아이가 어떤 아이인가였는데.”

그렇게 말하는 손님의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들어갔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저쪽도 퍽이나 복잡한 사정을 가진 가정인 듯해 미즈키는 다시 묵묵하게 바느질하는 쪽을 택했다. 손님은 잠깐 눈물을 닦고 미즈키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말씀을 들어보니 형제끼리만 있었떤 적이 아직은 없는 거 같네요. 항상 아버지께서 중간에 끼어 있었죠?”

“아, 네. 둘째가 아직은 돌아다니기 힘들어서 주로 여기에서 만났으니까요.”

미즈키가 맞장구를 치자 교수는 다시 생각에 잠기더니, ‘모두에게 적용되는 해결책은 아니지만’이라며 운을 뗐다.

“잠시 그 아이들끼리만 둬 보는 건 어떨까요?”

 


 

형제 사이가 좋지 않을 때, 대부분의 부모는 중재자로서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시도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아이들은 마냥 어른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고, 독자적인 생각을 가진 생물체다. 그러니 아이들 간의 갈등은 당사자인 아이들이 직접 해결해야 한다. 그 자리를 마련해주고,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그것을 막아주는 것까지가 어른의 역할이라고, 교수는 조언했다. 미즈키는 손님이 떠난 후 며칠 동안 그 말을 곱씹다가 마음을 먹고 키타로를 불렀다.

오랜만에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오자 키타로는 만사를 제쳐두고 미즈키의 인형공방에 나타났다. 미즈키는 오랜만에 온 기념이라며 새 인형을 안겨주었다. 키타로는 손바닥 만한 인형을 영모조끼 주머니에 넣어두고 작업실 안쪽으로 들어가다가 게타키치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멈칫했다. 게타키치 역시 키타로에게 정중하게 인사하긴 했으나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 기류를 무시하며 미즈키는 공방을 둘러보는 척하다가 말했다.

“어, 빵이 없네. 눈알, 나랑 같이 장 좀 보러 가자.”

“음? 굳이 내가 같이 가야 하나?”

아무것도 모르는 눈알은 순수한 의문에 질문했다가 미즈키의 눈빛을 보고 바로 말을 바꾸었다. 어쩔 수 없구만. 눈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키타로의 머리에서 내려와 미즈키의 어깨로 갈아타며 아들에게 고했다.

“그럼 내 갔다 오마. 게타키치와 둘이 잘 지내고 있으렴.”

“네, 네에.”

“게타키치도, 형 말 잘 듣고 있어야 한다.”

“네 파파.”

두 아이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아버지들을 배웅했다. 잠시 후 공방 문이 닫히자마자 남보다 더 어색한 형제 사이에 찬 바람이 불었다. 키타로는 게타키치를 흘끔대며 보다가 먼저 말을 걸었다.

“여기 레몬청은 어디 있어?”

“저기 부엌 위쪽 왼쪽 찬장에 있어.”

게타키치는 손으로 레몬청이 있는 찬장을 가리키려다가 직접 위치를 알려주려는 건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타로가 게타키치를 들어 제 어깨에 올렸다. 키타로의 손이 닿자 게타키치는 놀라 바둥거리다가 어깨 위에 앉은 다음에는 얌전히 있었다. 형제는 힘을 합쳐 레몬청과 찻잔까지 무사히 찾고 난로 위에 물을 올렸다. 물이 끓는 동안 레몬청과 꿀을 담아 두 개의 잔에 똑같이 담았다.

그러고 나니 다시 침묵이었다. 미즈키가 없으니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키타로는 할 일 없이 찻잔만 매만졌고 게타키치는 애먼 스푼을 노려봤다. 어색함을 피하고자 키타로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자 게타키치가 물었다.

“어디 가려고?”

“그냥…. 공방 좀 둘러보게.”

“그럼 내가 안내해줄까?”

게타키치가 의자에서 깡총 뛰어내리며 말했다. 키타로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고, 게타키치는 다시 키타로의 어깨에 올라가 공방 곳곳을 안내해주었다. 아들이 온다고 청소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곳곳에 먼지가 쌓여 있었다. 키타로는 청소함에서 빗자루와 밀대를 꺼내 바닥을 쓸고 간이 침대의 이불을 개우고, 내친 김에 옷장을 열어 옷에 묻은 먼지까지 탈탈 털어 가지런히 걸어 두었다. 오랫동안 미즈키와 살면서 몸에 밴 습관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게타키치는 꼼꼼하게 치우는 키타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파파랑 같이 사는 게 싫어?”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키타로로서는 모욕이나 다름없는 질문이었다. 마음 같아선 미즈키도 게게게 하우스로 데려와 살고 싶었다. 그러나 미즈키는 유령족 아이를 키운다는 이유로 요괴며 주술사의 공격을 심심치 않게 받았고, 인간으로서의 삶을 지키고 싶어했다. 키타로는 미즈키가 안전하기를 바랐고 그의 삶과 의견을 존중하고 싶었기에 고민 끝에 자신이 집을 나와 사는 쪽을 택했다.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 침대에 앉아 베개에 쌓인 먼지를 팡팡 두드려 털어내던 게타키치가 풀썩 앉으며 따졌다.

“그런 게 아니면 왜 이렇게 드문드문 오는데? 한 달에 한 번도 아니고 삼사년에 한 번은 너무하잖아.”

“나는 너처럼 한가하지 않아.”

“나라고 한가하지 않아!”

게타키치가 갑자기 소리를 질러 키타로는 놀라면서 그를 내려봤다. 키타로가 어릴 때는 저렇게 소리 지를 생각을 못했다. 그러면 미즈키가 금방 엄한 얼굴로 ‘떽!’하고 혼을 냈으니까. 자기 손으로 만든 아이라고 훈육을 안 한 건가? 키타로는 서러움을 잔뜩 담아 게타키치를 노려봤다가 그가 훌쩍이는 소리를 내자 표정을 바꾸고 그의 말을 들었다.

“내가 얼마나 바쁜지 알아? 나는 너보다 여길 더 잘 알아. 어떤 실이, 바늘이, 원단이나 재단 도구, 단추가 어디 있는지 나만큼 세세하게 꿰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파파가 작업대에 앉으면 내가 그걸 다 가져다 줘. 그래도 전혀 힘들지 않아. 왜냐하면 그때마다 파파가 기특하다고, 훌륭한 조수라고 칭찬해 주니까!”

게타키치는 분에 못 이겨 씩씩대다가 다시 울먹이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파파는 자주 오지도 않는 너만 좋아해. 맨날 네 소식만 궁금해하고 네 편지만 기다려. 저번에 내가 온다고 했던 날, 그때 급한 일이 생겨 못 간다고 까마귀를 통해 전달했을 때 파파가 얼마나 속상해했는지 알아? 너에게 줄 거라고 핫케이크를 잔뜩 구워줬는데 그걸 혼자 꾸역꾸역 먹었다고.”

처음 듣는 이야기에 키타로는 머리를 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 되어 입을 다물었다. 게타키치는 우는 아이처럼 양손으로 눈가를 가리고 계속 우는 소리를 냈다.

“너는 파파에게 아무것도 해주는 게 없으면서 파파는 너만 좋아해. 나는 네가 너무 싫어. 파파를 속상하게만 하는 네가 너무 싫어.”

“…그치만 너도 장신구를 많이 받고, 항상 미즈키 씨와 잠들잖아.”

겨우 입을 열어 반박하자 게타키치가 쏘아붙였다.

“너도 어릴 땐 그랬을 거 아냐. 파파랑 같이 껴안고 자고, 파파한테 장난감도 선물받았지?”

키타로는 무의미한 말싸움을 그만두기로 하고 그의 옆에 앉았다. 한참 화를 내던 게타키치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중얼거렸다.

“나도 살아 있는 사람이었으면 파파가 더 좋아했을까?”

그건 키타로가 아주 어린 시절 하굣길에서 문득문득 생각했던 것과 같았다. 내가 인간이거나 미즈키 씨가 요괴였다면 우리는 계속 같이 살 수 있었을까? 내가 미즈키 씨가 주워온 아이가 아니라 그가 직접 낳은 아이였다면 손가락질받지 않았을까. 어쩌면 미즈키 씨는 요괴인 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지도 몰라.

키타로는 자신을 원망하는 게타키치를 끌어안았다. 예상도 못한 포옹에 게타키치가 놀라 몸을 움츠렸고 키타로는 서툴게 그의 등을 토닥였다. 인간이나 요괴와 달리 복슬한 천 밑으로 솜이 느껴졌다. 키타로가 떨리는 숨을 뱉으며 고백했다.

“나도 예전에 그런 생각을 했어.”

자신과 전혀 다른 이가 같은 고민을 했다는 고백에 게타키치는 울음을 멈추고 키타로를 바라봤다. 키타로는 게타키치의 등을 토닥이는 데에 집중하며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왜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손가락질 할까. 내가 요괴라서 그런 걸까. 어릴 땐 그런 생각을 많이 했고, 커서는 나 때문에 미즈키 씨가 다치는 게 싫었어. 우리가 다른 종족이라서 계속 함께 할 수 없다는 게 슬펐어.”

“…하지만 파파는 지금 모습으로 백 년 가까이 살았대.”

게타키치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다. 하지만 고작 3년을 산 인형은 알지 못하는 인간의 고집과 가치관이라는 게 있다. 키타로는 고개를 저으면서 설명했다.

“미즈키 씨는 그래도 인간으로 살고 싶어해. 요괴의 방식으로 사는 게 아니라. 너도 파파를 사랑하지?”

당연한 거 아니냐고 대꾸하듯 게타키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래, 키타로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서 미즈키 씨에게 같이 살자고 말하지 못했어. 동시에 요괴인 나는 인간의 삶에 맞추어 살아가는 데에 한계가 있었어. 그래서 우리는 같이 살지 않고, 드물게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살아온 거야.”

떠오르는 대로 꺼내니 말이 정돈되지 않는다. 키타로는 최대한 명료하고 이해하기 쉬운 단어를 골라 게타키치에게 말했다. 다시 숨을 한 번 고르고 키타로는 게타키치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그래도 미즈키 씨가 나를 사랑으로 키우고 한 번도 내가 요괴라서 아쉬워했던 적이 없듯이, 인형인 너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을 테니 생물이 아니라서 덜 사랑한다고 서러워할 이유가 없다고.”

그리고 한참 동안 입술을 달싹이다가 팔을 느슨하게 풀고 게타키치를 똑바로 바라보며 웃었다.

“우리는…, 미즈키의 아이들이잖아.”

울망울망한 눈동자를 깜빡이다가 게타키치가 히, 하고 웃었다. 겨우 울음을 그친 동생을 보고 키타로도 안심의 미소를 지었다. 키타로도 미즈키의 아들, 게타키치도 미즈키의 아들. 만나게 된 경로는 다를지라도 둘 모두 미즈키의 귀하고 사랑스러운 아들들이다. 비슷한 고민을 품고 있고 미즈키 씨는 나를 더 좋아한다고 유치한 심술도 부리는, 여느 형제와 다를 것 없는 아이들. 인형이고 요괴면 어떠랴.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종족따위 눈곱만큼도 신경쓰지 않는데.

“그러면 파파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난가?”

기껏 훈훈한 분위기가 됐다 싶더니 게타키치의 말 한마디에 바로 와장창 소리를 내면서 깨졌다. 대체 왜 결론이 그쪽으로 나는 거지? 키타로는 얼굴에 섬뜩한 그늘을 드리우고 다시 한 번 말해보라고 했다. 게타키치는 전혀 겁먹거나 주눅들지 않고 지껄였다.

“파파가 며칠 전에 그랬다? ‘혼자 있기 외롭지 않아? 동생 만들어줄까?’ 역시 나를 가장 많이 신경 쓰고 있다는 거겠지?”

생각이 바뀌었어. 역시 파파는 키타로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거 같아! 방긋대는 게타키치를 보며 키타로는 조용히 주먹을 말아쥐었다. 게타키치 하나도 눈에 걸리는데, 또 인형을 만들 수 있다고? 신중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조언은 깡그리 잊어버린 건가? 단순히 애정을 더 뺏기기 싫은 것 뿐인데, 자신의 치졸함을 애써 외면하고 싶어 키타로는 이 기분이 드는 이유를 미즈키 탓으로 돌렸다. 괜한 심술에 동생이 생기면 자기가 가장 아끼는 리본 장식을 선물해주겠다는 게타키치에게 쏘듯이 말했다.

“동생이 생기면 미즈키 씨는 걔만 챙겨주느라 너한테 소홀해질걸?”

“아니! 걔한테도 매일 네 이야기하느라 걔도 너 싫어하게 될걸? 그럼 걔랑 같이 너는 파파 마음도 모르고 집에 안 온다고 쑥덕거릴 거야!”

“내가 형이라는데 왜 자꾸 반말을 하는 거야?”

괜한 트집을 잡다 게타키치에게 먼저 맞았다. 솜뭉치라 하나도 아프지 않았지만 괜히 짜증이 나 키타로도 같이 손을 들었다. 한참 바닥을 뒹굴며 먼지 날리게 싸우자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서 미즈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녀석들~. 안 싸우고 잘 있었나?”

“네, 미즈키 씨.”

“잘 있었어요 파파!”

둘은 다급히 싸움을 중지하고 식탁에 앉아 미즈키를 향해 헤실대며 웃었으나 아버지들은 아이의 몸에 묻은 먼지와 엉망이 된 옷매무새며 머리카락을 보고 눈을 게슴츠레 떴다. 역시, 둘이 사이좋게 지내기까진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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