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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별의 조각

흑게미즈

篝火 by 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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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얼터(흑게게) x 환생 미즈키

어찌 이토록 불행해진 것인가.

이대로 죽는 걸까 싶을 때,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비통해하고 원통해하고 진심으로 애달파하는 목소리. 그는 천천히 생명이 꺼지고 있는 나보다도 더욱 원통해하고 있었다. 신기하다, 아무도 나를 위해 슬퍼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는데. 그 누구도 내게 그간 고생했다든가, 힘들었겠구나, 진심을 담아 위로해주지 않았는데. 생의 마지막 순간에야 이런 다정한 사랑을 받은 것이 허탈해 눈물이 날 지경이다. 이렇게나 날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는 대체 어디에서 무얼 찾아 헤매다가 지쳐서 동정받기를 포기해버리고 그것을 혐오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걸까.

내 불행을 무기로 삼은 적은 없었다. 내가 이렇게 구는 건 불우했던 과거 때문이라고 스스로의 못남에 이유를 달고 싶었다던가 그런 목적으로 터놓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만 충분히 가까워졌고 허물을 드러내도 내 곁에 있을 거라며 확신을 준 사람들이 그간 내가 걸어온 삶을 알아주었으면 했다. 그 정도는 스스럼없이 터놓고 서로를 보듬어줄 수 있는 사이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타인의 비극을 먹이 삼아 살아가거나 뜯어먹기를 즐기는 이들이 더 많아서. 그것을 핑계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아서.

물론 나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과거를 끝까지 밝히지 않았을 때만 가능한 관계였다. 그들은 이따금 내가 쫓기듯이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금은 여유를 가져도 괜찮다고, 실패라고 생각하지 말고 한 번 쉰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라고. 하지만 나는 쉴 수 없었다. 적어도 내가 묻힐 2평 남짓한 땅을 얻기 위해서는 죽을 때까지 굴러야 했다. 나는 백도 없고, 도움을 빌릴 곳도 없고, 비빌 언덕이 되어줄 부모나 가까운 이들도 없었다. 그렇게 평생 쉼 없이 걸어왔음에도 내 집은 언제나 좁았으며 좁았음에도 온기는 채워지지 않았다. 헛밥을 먹은 것처럼 나는 언제나 배가 고팠고 외로움은 난치병이었으나 구태여 온정을 통해 채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죽음의 문턱 앞에서 가물한 의식 속에 내게 속삭이는 이 남자는, 내 모든 것을 손바닥 보듯 들여다봤음에도 불쌍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 힘들게 살았다고,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고. 얼마나 소리 내어 울고 싶었느냐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하고 있었다. 마치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다는 이유로 와앙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토록 바랐던 온기에 나는 뺨을 비비면서 잔뜩 어리광이라도 부리고 싶었으나.

어떡할까. 널 괴롭히던 모든 걸 없애주면 될까?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그는 상처받은 얼굴로 자신을 밀어낸 나를 봤다.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끼며 나는 도리질을 쳤다. 연극배우처럼 과장된 표정과 몸짓으로 그는 물었다. 왜냐고.

어째선가, 그들이 밉지 않은가? 자네를 내버려뒀던 이 세상이 증오스럽지 않은 겐가?!

그에게 들려줄 적당한 대답이 없었다. 증오스럽지 않느냐는 그 말대로 한때는 모든 게 밉고 다 함께 멸망했으면 좋겠다는 철없는 생각도 했다. 미흡한 대처와 안전불감증으로 내 부모님을 죽인 건물주가 미웠고, 내게서 한 푼이라도 더 뜯어내려고 손을 내밀었다가 ‘애답지 않다’고 내치던 친척들이 밉고, 이런 과거를 들려줄 때마다 가십거리로 삼고 함부러 내 삶을 재단하던 이들이 밉고, 나를 홀로 내버려둔 이 세상이 밉고, 아무튼 모두 다 미웠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다. 그래선 안 된다….

…그래도 아주 최악은 아니었어.

내가 방치된 건 아닐까 걱정해주던 담임 선생님, 아들이 생각난다며 간식거리를 잔뜩 쥐어주던 슈퍼 아저씨, 왜 혼자 먹느냐며 매 점심마다 내 옆자리를 꿰차던 짝꿍 녀석, 감기가 들었다는 말에 과제와 그날 수업 진도를 알려주기 위해 찾아왔던 반장, 원하던 대학에 붙자 나보다 더 기뻐해주던 선후배, 굶고 다니지 말라며 도시락을 싸주던 조교나 사장님, 관리비는 받지 않겠다던 집주인, 차근히 알아가면 된다며 서두르지 않았던 사수, 퇴근길이 겹친다며 매일 나를 기다리던 동기와 부모님 기일이니 가보라며 유급 휴가를 선뜻 내주었던 팀장님. 내가 눈치채지 못한 곳에 언제나 나를 신경 써 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다만 내가 상처받을 걸 두려워해 그들에게 다가가지 않았을 뿐.

도서관에서 처음 읽고 반한 추리 소설, 겨울 등굣길에 입김을 불면 몽글몽글하게 피어오르던 숨결, 저녁이 되면 이곳저곳 밥을 얻어먹으러 다니던 동네 고양이와 머리부터 한 입에 집어삼키면 퍼지던 붕어빵 속 팥소의 단맛, 비 오는 날 진하게 올라오는 흙냄새와 햇살에 보송하게 말라 따끈해진 이불, 어느 날 짝꿍과 함께 점심시간에 몰래 탈출해 먹은 라멘, 음악실 근처를 지나가면 항상 들리던 첼로와 피아노 소리, 끝내기 골을 넣자 환호하며 내게 달려오던 반 친구들의 웃음소리와 주말 아침마다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것을 떠올리며 어설프게 만든 첫 핫케이크, 학교 근처 카페에서 팀프로젝트를 하다 시켜먹은 메론소다의 톡톡 터지는 탄산과 맑게 개인 가을 하늘, 스미듯이 떨어지는 노을과 홀로 흔들리는 쓸쓸한 그네, 하교 시간 자신의 부모님을 찾아 우르르 뛰쳐나오는 어린 아이들, 푸르게 밝아오는 새벽과 아침 그 어드메의 시간. 퇴근하며 듣던 라디오 방송.

천천히 곱씹어 보면, 세상을 미워하는 만큼 세상을 사랑했기에. 지난 삶의 구석구석에 행복이 스며 있었기에.

어쩌면 세상을 미워하는 것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서.

그러니까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당장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억누르며 간신히 웃었다. 그의 옷이 검은빛에서 푸르른 색으로 바뀌어갔다. 그가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린다.

정말이지, 자네는 변함이 없어….

나는 씩 웃으면서 화답한다. 알고 있어.

“네 덕분에 사랑하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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