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말고
약 치치미즈
어렴풋이 창문 너머로 스며 들어오는 새벽빛에 미즈키는 부스스 눈을 떴다. 아침 여섯 시 삼십 분. 바른생활 직장인이라면 일어나 출근을 준비해야 하는 시각이다. 미즈키는 까치집을 한 채 거침없이 이불을 걷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나 게게로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보나마나 새벽 세 시에 집을 나서 근처를 어슬렁대고 있을 터다. 요괴는 야행성인 만큼 인간의 생활패턴을 맞춰주기 어려움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게게로는 인간 동거인을 위해 인간의 시간에 맞추어 자고 일어나고 식사를 했다. 이 얼마나 기특한 요괴인가.
게게로와 미즈키 사이에 있는 작은 요 위에선 키타로가 자고 있다. 마찬가지로 요괴지만 아직은 어린 키타로는 여타 인간 아기처럼 잠이 많았다. 뛰어다니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떼를 쓰며 울다가도 눈이 가물가물하다 싶으면 그대로 무거운 머리를 콩 박고 세상 모르게 잠에 빠진다. 그래도 미즈키가 출근을 하러 현관으로 나가면 귀신 같이 일어나 퉁퉁 부은 눈을 비비며 잘 다녀오라고 기특하게 인사한다.
평소와 달리 키타로는 당장이라도 어머니 뱃속으로 들어갈 만큼 한껏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미즈키는 피식 웃으며 키타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가 이상한 감각에 몸을 숙여 키타로를 뒷목과 뺨을 더듬었다. 유령족의 체온은 인간보다 낮고 어린 아기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지금 키타로의 피부는 성인 어른만큼이나 뜨겁다. 뭔가 잘못되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미즈키는 키타로의 이름을 부르며 어깨를 잡아 뒤집었다.
“무슨 소란인가?”
때마침 새벽 산책을 끝내고 돌아온 게게로가 미즈키가 출근하기 전까지 선잠을 자기 위해 집안으로 들어왔다. 평소보다 방 안쪽이 소란스러워 의아해하며 문을 열었더니 미즈키가 백짓장마냥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게게로를 올려다봤다. 그의 품에는 키타로가 안겨 있었고, 소중한 아들의 얼굴은 새빨갰다. 누가봐도 병에 걸린 사람처럼.
“키타로가, 키타로가 이상해. 몸이 너무 뜨거워.”
미즈키가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키타로, 눈 좀 떠 봐, 응? 미즈키는 키타로를 흔들어 보기도 하고, 이마에 손을 댔다가 가슴팍과 뺨을 조심스럽게 두드리기도 하면서 어떻게든 아이를 깨우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열에 잠겨 정신이 혼몽한 아이는 으으응, 하고 투정만 뱉을 뿐 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내가 한 번 보세, 미즈키와 달리 침착하게 자리에 앉으며 게게로가 손을 내밀었다. 미즈키는 그에게 아이를 안겨준 다음 방안을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며 중얼거렸다.
“병원, 병원을…. 지금 이 시간에 하고 있는 병원이…. 아니, 키타로는 요괴인데, 그럼 어디로….”
“침착하게나, 미즈키. 요괴병원이라면 내가 잘 알고 있네.”
“요괴도 병원이 있어?”
미즈키가 홱 하고 게게로를 돌아보며 말했다. 게게로는 키타로를 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허공을 향해 휘파람을 불자 뒷마당 나무에서 놀던 까치가 날아와 창틀에 앉았다. 미즈키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유령족은 동물과 소통할 수 있다. 단 일일이 해당 동물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까치에게 무어라 전하자 까치가 날아올라 어딘가로 향했다. 게게로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과 몸짓으로 키타로를 이불에 눕히며 말했다.
“어린 요괴는 때로 자신의 힘을 가누지 못해 열병을 앓기도 한다네. 성장의 증거이니 그렇게 불안해할 필요 없다네.”
“그, 그래….”
전신에서 힘이 빠져버린 미즈키는 터덜터덜 벽 쪽으로 향하더니 주르륵 미끄러지듯 자리에 앉았다. 흡사 쿄코츠에게 당해 넋이 나가버린 사람 같은 몰골이다. 게게로는 그의 옆에 쭈그리고 앉아 어깨를 두드리면서 안심시켰다.
“병원장에게 전보를 부쳤으니 금방 올 걸세. 그러니 너무 걱정하진 말게나.”
“너희의 금방은 도무지 믿을 수 가 없단 말이지….”
여전히 2년 전 키타로를 데리고 유령족이 대대로 살았다는 ‘게게게의 숲’으로 갔다가 두 달 동안 감감무소식이었던 사건을 잊지 않고 미즈키가 또 언급했다. 그때는 내가 미안하다고 했잖은가, 게게로가 눈썹을 팔자로 내리면서 칭얼거렸다.
“자네가 걱정하지 않게 최대한 빨리, 가능하면 오늘 안에 오라고 했으니 늦어도 사흘 안에는 도착할 걸세.”
“그 사이에 애가 열이 끓어서 죽겠다!”
태평하기 짝이 없는 대답에 미즈키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가 게게로의 놀란 표정에 아차하며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미안, 쟤가 저리 아픈 건 처음이라서….”
“괜찮네, 미즈키. 아무리 어린 애라도 요괴는 그렇게 간단히 죽지 않아. 하물며 유령족이라면 말이지.”
게게로가 미즈키의 서늘한 뒷목을 손으로 주물러주면서 달랬다. 얼마나 놀라고 겁을 먹었는지 뒷목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인간은 동물 중에서는 장수하는 종에 속하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고열만으로도 죽을 수 있다는 걸, 게게로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즈키가 이리 예민하게 반응하고 화를 내고 있다는 것도. 그럼에도 제가 벌컥 지른 고함에 자신이 놀랐을까봐 저리 움츠러들고 있다는 것도.
인간은 참으로 복잡하이, 게게로는 뒷목에 얹어둔 손에 힘을 주어 제 어깨 쪽으로 잡아당겨 기대게 했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미즈키는 놀라 몸을 떨었지만 이내 얌전히 몸을 맡겼다. 피부와 피부를 통해 심장 박동이 전해지고 심박수가 전이된다. 느리다 못해 멈춰 있지 않은가 싶기도 한 요괴의 심장이 점차 빨라지고, 반대로 너무나도 빨라 따라잡을 수 없는 인간의 심장은 안정을 찾고 느려진다.
한동안 그렇게 서로에게 기대 앉아있던 아버지들은 키타로가 칭얼거리는 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미즈키가 부엌으로 향하면서 게게로에게 물었다.
“난 수건 좀 물에 적셔셔 갸져올게. 키타로 옷 좀 새로 꺼내줄래?”
“음, 차라리 한 번 씻긴 다음에 옷을 갈아입히고 눕히는 게 어떻겠나?”
“그게 훨씬 낫겠다. 그럼 물 받을 테니까 네가 씻겨줘.”
미즈키는 발걸음을 돌려 욕실로 향했다. 곧 쏴아아, 하고 수도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고, 뒤이어 미즈키가 거실로 나가는 발소리, 전화기 다이얼을 돌리는 소리와 그가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소리가 잇달아 들렸다. 아무래도 아이가 아파 출근이 어렵다고 회사에 연락하는 모양인가 보다. 미즈키는 간곡하게 부탁하는 말투로 한참 실랑이를 벌이더니 ‘알겠습니다’라는 말을 끝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 사이 물이 가득 찼고, 게게로는 미즈키를 대신해 수도꼭지를 잠그며 물었다.
“어떻게 됐나?”
“아, 듣고 있었어? 오후에라도 출근하래. 병원에 데려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말이 안 떨어지더라.”
하긴, 키우는 아이가 요괴라 인간 병원에 데려갈 수 없다고 말하지는 못하니. 미즈키의 고충을 이해하는 게게로는 고개를 끄덕이고 갈아입을 옷을 챙겨 키타로를 데리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 사이 미즈키는 원래 목적이었던 부엌으로 다시 들어가 죽을 준비했다.
땀을 씻어내고 보송한 옷으로 갈아입힌 키타로를 눕히자 미즈키가 아침밥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아직 열이 빠지지 않은 키타로는 밥투정을 부렸으나 ‘잘 먹어야 금방 낫지’라며 미즈키가 달래자 끄제야 우, 하면서 한 입씩 받아먹었다. 막상 먹으니 입맛이 도는지 키타로는 반절이나 먹고 트림까지 했다. 그래도 먹는 걸 보니 훨씬 나아졌나 보네. 도로 잠든 키타로의 머리를 쓰다듬고서야 미즈키는 옅게 웃었다.
소동이 끝난 뒤에야 아버지들은 늦은 몸단장을 하러 몸을 일으켰다. 찬물로 얼굴을 멀끔하게 씻어내고(게게로는 키타로를 씻기고 남은 목욕물에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은 다음 식탁을 차렸다. 한숨 돌렸지만 미즈키의 눈가는 여전히 퀭하니 파여 있었다. 인간이 갑자기 심적으로 몰리면 한순간에 저리 될 수 있구나, 느리게 밥알을 씹으면서 게게로는 생각했다.
게게로는 원체 입이 짧은 편이었고, 미즈키는 정신 없는 아침을 보낸 탓에 입맛이 싹 달아나 식사는 평소보다 일찍 끝났다. 식탁을 치우고 이를 닦은 뒤 아버지들은 다시 키타로에게 돌아왔다. 키타로는 잘 자는 듯 보였지만 이따금 영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칭얼거렸다. 그때마다 뾰족해진 머리카락이 발사되거나, 머리카락이 길어지거나, 파지직 하고 정전기가 튀어 미즈키는 손도 댈 수 없었다. 게게로라고 별반 다를 건 없었지만.
“아들아, 쉬이, 착하지. 아얏, 앗, 아이고. 이건 조금, 악!”
“게게로!”
기어코 키타로가 우앙, 울면서 옹골찬 주먹으로 게게로의 턱주가리를 날렸다. 목이 돌아가면서도 게게로는 감탄의 눈물을 흘렸다. 이와코, 그 혹독한 상황에서도 강한 아이를 키워냈구려….
아프지 말고
미즈키는 이른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가방을 챙겨 출근했다. 아이 아픈 게 무슨 대수냐고 팀장에게 까이게 생겼군, 미즈키는 미안한 낯으로 늦을 수도 있다며, 그동안 키타로를 부탁한다고 말하면서 제 명함을 건넸다.
“무슨 일 있으면 여기 적힌 번호로 전화해. 알았지?”
“으음.”
“…너 혹시 아직도 전화기 쓰는 방법 모르는 건 아니지?”
“내가 그렇게 바보는 아닐세!”
말은 저렇게 했지만 보나마나 새 같은 것을 날릴 게 뻔하다. 혹시 모르니 창문을 열어두고 있어야겠다며 미즈키는 불편함 마음을 안고 출근했다.
느지막한 시간에 출근하니 원하는 자리에 앉아 갈 수는 있었지만, 도착하자마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붙잡혀 잔소리 겸 충고를 들어야 했다. 휴가는 안 되니 오후에라도 출근하라고 닦달하던 것과 달리 팀장은 미즈키가 도착하자마자 어떻게 했길래 아이가 고열로 쓰러지냐고 잔소리를 퍼붓고는, 아이가 아플 때 먹어야 하는 약을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여직원들은 돌아가면서 얼마나 닦아줘야 하는지,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고 어떤 음식은 피해야 하는지 등을 세삼히 알려주었고, 아이가 있는 아버지들은 미즈키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다. 옆자리 동기가 이죽이면서 속삭였다.
“오늘 인기 만점이네, 미즈키 군.”
“지금 일이 손에 안 잡히는 사람에게 할 말이냐.”
미즈키는 한숨을 푹 쉬고는 자켓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키타로를 위해 끊기로 각오했건만, 오늘은 좀 많이 피우게 될 듯하다.
느긋하게 식사를 마친 게게로는 키타로의 머리맡에 앉아 가만히 자장가를 부르며 열에 칭얼대는 아들을 달랬다. 미즈키는 지금쯤 회사에 도착했을까, 팀장이라는 사람에게 한소리 듣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 사람, 미즈키에게 온갖 잔소리를 다 하던데. 마음 같아서는 그 사람의 퇴근길에 나타나 놀래키고 싶지만 미즈키가 ‘사사로이 인간에게 장난을 치면 우라키도 같은 녀석들에게 또 들킬지도 모른다’며 주의를 주었기에 상상에 그쳤다.
게게로는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려 키타로를 안아들고는 잔잔하게 흔들었다. 좌우로 흔들리던 아이는 서서히 칭얼거림을 멈추고 잠에 빠졌다. 게게로는 잠든 아이를 품에 안아 열을 쟀다. 아직 스스로 힘을 조절하지 못해 체온이 오르락내리락했다. 다행히 지금은 유령족 평균 체온보다 높은 정도지만, 이러다가 또 확 치솟을 수 있기에 게게로는 키타로를 눕혀 놓고 대야와 수건을 집어 들었다. 미리 만들어둔 물수건은 수분이 조금 날아가 건조했다. 게게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새 물수건을 만들러 갔다.
넉넉하게 세 장 정도 만들어 키타로에게 돌아오니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까치가 지저귀는 소리 사이로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가 자신이 왔음을 알렸다.
“유령족 나리 계십니까? 병원장입니다.”
게게로는 마당을 가로질러 나가 현관문을 열었다. 요괴병원의 원장이 하얀 가운 차림에 작업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그는 모자를 벗어 훤히 드러난 정수리를 보여주며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잘 지냈습니까?”
“암,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잘 있었지.”
일본에 단 하나밖에 없는, 요괴를 진찰하는 병원의 원장. 마당발답게 게게로는 그와도 친분이 두터웠다. 이와코를 만난 후로는 주로 도시에서 살아 그를 만나러 갈 일이 없었으니, 거즘 50년 만에 다시 만난 셈이다. 요괴 기준으로도 꽤 오랜 시간이기에 그들은 짧은 포옹으로 재회의 반가움을 표했다. 품에서 떨어지자마자 원장은 안경을 고쳐 쓰면서 게게로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거처가 조금 바뀐 거 같은데요.”
집을 둘러보면서 원장이 운을 떼자 게게로가 말했다.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말이지. 지금은 미즈키에게 신세를 지고 있네.”
“미즈키? 처음 듣는 이름인데요. 무슨 요굅니까?”
“요괴가 아니라 인간일세. 저 나구라 마을이라는 곳에서 만났지.”
“인간이라고요?”
원장이 놀라면서 되물었다. 게게로는 가타부터 설명 없이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게게로가 설명하지 않으니 병원장도 뭐라 물어볼 것이 없었다.
유령족, 최상급 요괴이나 인간에게 사냥당해 단 두 명만 남아 있던 종족. 그러나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다른 한 쪽이었던 이와코마저 인간에게 학대당한 후유증으로 죽었고 이제는 부자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아내가 죽고 집을 옮겼다는 이야기는 얼핏 들었다만 설마 인간과 같이 살고 있을 줄은. 병원장은 비위도 좋다며 유령족 사내의 등을 보고 생각했다.
키타로가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면서 게게로가 말했다.
“오늘 자네를 부른 이유는 들어서 알고 있겠지.”
“아이가 영력을 조절하지 못해서라고 했죠. 태어난 지 얼마나 됐습니까?”
“이제 3살이네. 내년 2월엔 네 살이 될 거야.”
“세 살이면 영력이 날뛰어도 금방 가라앉을 텐데요. 굳이 절 부를 필요가 있습니까?”
“음, 미즈키가 심하게 걱정을 해서 말이야. 약 같은 것을 처방해 줄 수 있겠나?”
게게로의 곤란해하는 표정에 원장은 혀를 내둘렀다. 세상에, 천하의 유령족이, 인간과 거리를 두던 그 사내가 같이 사는 인간을 걱정해서 영력을 빨리 진정시키는 약을 처방해줄 수 있느냐고 묻다니. 그의 아내가 본다면 자신의 남편이 드디어 인간에게 마음을 열어주었다며 감격할 광경이었으나 원장은 떨떠름할 수밖에 없었다. 요괴병원을 찾는 이의 반은 인간 때문에 요력이 떨어진 요괴이고 반은 인간에게 다친 요괴다. 요괴를 치료하는 의사 입장에서 인간은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존재였고, 그런 부분에서 사내와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인간과 같이 살면서 아이를 키우더니 인간의 기분을 살피기까지 한다. 원장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워 말을 더듬었다.
“뭐, 일단은, 알겠습니다. 약에 너무 의존하면 스스로 제어하지 못한다는 건 알고 계시겠죠?”
“그거야 물론 알고 있네. 이번만 먹이고 다음부터는 키타로에게 조절하는 법을 가르쳐야지.”
“말로만 그러지 마시고요.”
병원장은 한숨을 쉬며 진료 가방을 열고 아이 옆에 앉았다. 영모로 만든 조끼를 입고 있는 아이는 새근대며 자다가 낯선 기척에 바로 울먹였다. 의사는 아이를 달랜 다음 품에 안고 건강을 확인했다. 도시에서, 인간 옆에서 자란 요괴치고 키타로는 아주 건강했다. 여기에서 ‘건강하다’는 것은 ‘요력이 많다’는 의미다. 보통 인간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요괴는 자연에서 오는 힘을 흡수하지 못해 연약한 개체가 많다. 하지만 태생이 태생인지 키타로는 풍족하다못해 세 살배기가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열병이 올 정도였다.
의사의 품이 불편한지 키타로는 계속 얼굴을 찌푸리며 칭얼대다가 으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동시에 머리카락이 쑥 길어지면서 원장의 목을 졸랐다. 윽, 컥, 원장이 켁켁대자 게게로가 기겁하며 키타로를 품에 안아 달랬다.
“쉬이, 착하지 키타로. 나쁜 사람이 아니란다. 키타로를 고쳐주러 온 착한 의사 선생님이란다.”
“으으응, 으에에에, 미쥬우우.”
아기 특유의 짧은 발음으로 ‘미쥬’를 찾으며 키타로는 팔다리를 허우적대다 다시 게게로의 턱을 때렸다. 정확히 푸르게 멍이 들어가고 있는 그 지점에 주먹이 맞았다. 게게로는 다시 컥, 하고 아파하는 소리를 냈다. 성인 유령족의 턱에 멍을 낼 정도라니, 보통 아이가 아니구나. 원장은 감탄하면서도 게게로의 괴로움을 단축시키기 위해 재빨리 약을 만들었다.
게게로도 키타로를 품에 안고 천천히 흔들면서 달래보려 했으나 그럴수록 아이의 울음소리와 발버둥은 더욱 심해졌다. 이러다간 주변에 있는 다른 요괴까지 불러들이겠다 싶었던 게게로는 결국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했다. 게게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원장에게 말했다.
“원장, 내 실례하겠네.”
“네? 어디 가십니까?”
생체전기와 머리카락 침에 당해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게게로는 거실로 나갔다. 원장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지켜봤다. 게게로는 전화기 앞에 앉더시 소매를 뒤져 작은 종이 조가리를 찾아냈다. 그 종이를 들여다보면서 어설프게 다이얼을 돌렸다. 어디로 전화를 거는가 싶더니, 게게로는 정중한 목소리로 교환원에게 부탁했다.
“미안하네, 혹시 영업부 미즈키와 바꿔줄 수 있겠나?”
집에 없다 싶더니 역시 ‘미즈키’라는 인간 동거인은 출근을 한 모양이다. 같이 사는 아이가 아픈데 직장에 가다니. 무책임하다고 생각하다가 원장은 마음을 바꾸었다. 인간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직장이라는 곳에 가야 한다니, 저 양반이 고생이군.
잠시 말이 끊어지더니 수화기 너머로 그 ‘미즈키’가 전화를 받은 모양이다. 게게로가 바로 울음을 터트리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미즈키이!”
「우왁, 게게로? 무슨 일이야?」
전화를 받은 미즈키는 깜짝 놀라 황급히 물었다. 이 바쁜 시간에 누군가 싶어 전화를 받았더니, 수화기 너머에서 게게로가 울음을 터트리는 거 아닌가. 미즈키는 긴장해 수화기를 양손으로 잡았다. 설마 키타로가 죽을 병에 걸렸나? 아니면 나을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나? 그 의사 양반이라는 요괴가 돌팔이었던 거 아니야? 덜덜 떨면서 게게로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데 수화기 너머에서 키타로가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쥬우!」
“그래 그래. 미쥬야. 키타로, 많이 아파?”
‘미쥬’라는 호칭에 등 뒤에서 키득이는 소리가 들렸다. 저 자식들이, 미즈키는 이마에 작게 사거리 마크를 띄워놓고 키타로가 하는 말을 귀기울여 들었다.
「키타 마니 아파.」
「미안하네, 키타로가 자네를 자꾸 찾아서 어쩔 수 없었네.」
바쁜데 전화 걸어서 미안하네. 게게로가 풀죽은 목소리로 말하자 미즈키도 눈썹에 힘을 풀며 헛웃음을 지었다. 바보 녀석, 미즈키가 게게로를 가볍게 타박했다.
“언제든 전화해도 돼. 애가 보고 싶어하는 데 어떡해 그럼.”
「미즈키이…!」
“키타로, 미쥬 오늘 금방 갈게. 의사 선생님 말 잘 듣고, 약도 잘 먹어야 해. 알았지?”
「우응….」
“약 먹고 밥 먹고 코야, 하고 있으면 미쥬가 집에 있을 거야. 그러니까 아빠 말 잘 듣고 있어야 한다. 알았지?”
「응….」
“그래, 가는 길에 키타로 좋아하는 만쥬 사갈까? 팥 들어간 만쥬, 키타로 좋아하잖아.”
「만쥬!」
만쥬 소리에 키타로가 바로 방긋 웃으면서 손뼉을 쳤다. 바로 기운 차려서 다행이다. 미즈키는 안도하며 의사 선생님이랑 아버지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 말미에 키타로가 수화기에 대고 속삭였다.
「미쥬 사랑해애.」
“응 미쥬도 키타로 사랑해. 게게로, 미안하지만 퇴근할 때까지 키타로 좀 부탁해.”
「걱정 말게나. 이 몸의 특급 서비스를 받으면 키타로도 금방 기운을 차릴 걸세.」
방금 전에 울면서 전화 받은 걸 보면 도저히 신뢰가 가지 않는데. 그래도 이제 키타로가 떼를 쓰진 않을 테니 게게로도 걱정은 덜었겠다 싶어 미즈키는 통화를 마무리했다. 홱 하고 살기를 두른 채 뒤를 돌아보니 미즈키를 흘끔대며 웃던 사람들이 모두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한껏 경직된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와 서류를 펼치자마자 옆자리 동료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미쥬우.”
“뒤질래.”
결국 동료는 미즈키를 놀린 대가로 정수리를 얻어맞았다.
전화를 마친 게게로는 한껏 마음 편해진 얼굴로 키타로를 안고 침실로 들어왔다. 약을 뭉쳐 아이가 먹을 수 있을 만큼 작은 환으로 만들고 있는 원장을 뒤로 하고 아이를 이불에 눕히며 게게로가 단단히 일렀다.
“들었지 키타로야? 약 잘 먹고 죽도 잘 먹고 기다리다 보면 미즈키가 만쥬를 들고 올 거란다. 그러니 얌전히 의사 선생님 말 들어야겠지?”
“우웅.”
역시 ‘미즈키’가 단순한 동거인은 아닌지 방금 전 날뛰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키타로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는 세 개의 경단처럼 생긴 환을 주면서 말했다.
“잠자기 전마다 절반씩 떼서 먹이시면 됩니다. 열이 떨어졌다 싶으면 바로 중단하시고요. 원래는 알아서 조절하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나리께서 부탁하셔서 만들어드린 거라 부작용은 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먹어도 효과가 없다 싶으면 새벽 이슬을 받아 먹이세요. 절대 너무 많이 먹이면 안 됩니다.”
“잘 알아들었네. 수고했네.”
의사는 진찰 가방ㅇ르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게게로는 아이를 재워두고 현관까지 마중을 나왔다. 우너장은 문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게게로에게 솔직하게 물었다.
“어쩌다가 인간이랑 같이 살기로 한 겁니까? 아내가 여러 사정으로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만….”
“미즈키는 아주 특별한 인간이네. 우리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 같은 인물이야.”
“은인 정도입니까.”
원장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더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짧은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조만간 요괴 사이에 유령족이 인간을 반려로 들였다는 소문이 퍼지겠군. 원장은 잎담배를 입에 물면서 생각했다. 그들이 보여준 유대는, 단순한 은인이나 함께 사는 사람 정도로 보이지 않았다.
초승달이 뜬 밤, 키타로를 재우고 한숨 돌리던 게게로는 멀리서 들려오는 구둣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지침과 걱정이 담긴 걸음걸이, 게게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타로를 깨울가 말까 수천 번을 고민하다가, 아들을 위해 만쥬를 사왔을 미즈키를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아이의 어깨를 흔들었다.
“키타로야, 미쥬가 왔다.”
“미쥬 왔어?”
작은 입을 양껏 벌리고 하품하던 키타로가 눈을 반짝이며 일어났다. 원장이 준 약이 효과가 도는지 키타로는 여전히 얼굴이 새빨갛지만 아픔을 호소하진 않았다. 게게로는 키타로의 뺨에 손을 대 체온을 한 번 확인하고는 그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관으로 걸어가자 미닫이문이 드르륵 열리며 평소보다 늦게 퇴근한 미즈키가 들어왔다.
“다녀왔어.”
“어서 오게나.”
“미쥬!”
양아버지를 기다린 건지 만쥬를 기다린 건지 모르겠으나 키타로가 양팔을 뻗으며 반가움을 표현했다. 미즈키는 자연스럽게 게게로에게 만쥬가 담긴 봉투와 서류 가방을 맡기고 구두를 벗었다. 게게로는 키타로를 잠시 내려놓고 미즈키의 짐을 머리카락으로 옮겨 거실에 내려두었다. 그 사이 안으로 들어온 미즈키가 키타로를 안아들며 게게로에게 잔소리를 했다.
“애 아픈데 아직까지 안 재우고 있으면 어떻게. 어디 보자, 키타로. 미쥬 올 때까지 잘 있었어? 이제 안 아프고?”
“키타, 이제 안 아파.”
“진짜? 얼굴이 이렇게 빨간데?”
“으응, 안 아파!”
아프다고 하면 미즈키가 만쥬를 주지 않을까봐 다급하게 아프지 않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더니 미즈키의 품에 얼굴을 폭 파묻으면서 제 친아버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파파, 이상한 거 먹여.”
“이상한 게 아니라 약이란다. 아픈 거 낫게 해주는 약이에요.”
게게로가 키타로의 말을 정정했으나 미즈키는 키타로의 머리를 꼭 끌어안더니 등을 두드리면서 투정을 받아주었다.
“그랬어어. 파파가 계속 쓴 거 먹여서 싫었어어.”
“미즈키이.”
하나밖에 없는 친우도 제 편을 들어주지 않자 게게로가 낑낑대며 무고함을 주장했다. 흡사 비에 맞은 강아지 같은(그의 덩치를 생각하면 강아지보단 늑대에 가깝겠지만) 꼴에 미즈키는 푸하하, 크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키타로를 다시 게게로에게 안기면서 말했다.
“그래그래. 다른 일은 없었고?”
“음. 원장이 왔다 간 거 빼고는 아무 일 없었네.”
“키타로, 또 아빠한테 이상한 거 날리거나 찌리릿하진 않았지?”
했다고 말하면 나쁜 아이라고 혼낼까 봐 키타로는 바로 도리질을 쳤다. 의심스럽다는 듯 미즈키가 눈을 가느다랗게 떴으나 이내 ‘착한 아이네’ 하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는 느리게 자켓을 벗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난 이만 씻어야겠다. 먼저 만쥬 먹고 있어도 돼.”
“오늘 수고 많았다네, 미즈키.”
“오냐, 너도.”
미즈키가 대꾸하면서 팔을 뻗었으나 게게로의 머리에 닿기엔 너무 짧았다. 기민하게 손짓의 의도를 알아챈 게게로가 고개를 숙여 단단한 손바닥에 직접 제 머리를 부볐다. 게게로의 재롱에 미즈키는 다시 피식 웃고 잠옷을 챙겨 욕실로 들어갔다.
하루의 피로를 따뜻한 물에 녹이고 나오니 키타로는 양손에 만쥬를 욕심껏 쥐고 식탁에 엎어져 잠들어 있었다. 미즈키가 앉자 게게로가 만쥬 접시를 손으로 밀어 앞에 놔주었다. 시간이 지나 살짝 눅눅해진 만쥬를 통쨰로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키타로를 만나기 전이었다면 대충 씹고 삼켰을 테지만, 아들이 이상한 것을 배울까 싶어 천천히 고치고 있는 버릇 중 하나다. 한참 씹어 목구멍으로 만쥬를 삼킨 미즈키가 다음 만쥬를 집으며 말했다.
“아까 만져봤는데 열이 좀 내린 거 같더라고.”
“음. 저녁 먹을 때 즈음엔 훨씬 나아졌네.”
“아까 전화는 키타로가 보채서 그런 거지?”
“자네도 바빴을 텐데 미안하네.”
“괜찮다니까. 애초에 내가 먼저 연락하라고 했고.”
미즈키는 게게로를 달래면서도 ‘미쥬’라면서 하루종일 놀린 동기들을 떠올리며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이후 사정을 모른느 게게로는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찬장으로 향했다. 자연스럽게 쟁여둔 술과 술잔을 꺼내면 미즈키는 사양하지 않고 잔을 받았다. 둘 다 피곤한 하루를 보낸 탓에 목만 축이고 두 번째 잔을 붓지 않았다. 미즈키는 한참 잔을 만지작대다가 입을 열었다.
“의사는 뭐래?”
“약을 지어주면서 절반씩 떼어 잠자기 전에 먹이라고 하더군. 자네가 오기 전에 먹여뒀으니 더 줄 필요는 없네. 상태가 호전되면 즉시 중단하라 하더군.”
“다행이네….”
“자네가 걱정하니 약을 달라고 했지.”
말을 덧붙이면서 게게로는 허리에 손을 얹었다. 마치 장한 일을 했으니 어서 칭찬해 달라는 듯한 위풍당당한 자세다. 덩치만 크고 할아버지 말투를 쓴다 뿐이지, 족히 300년을 산 요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다.
“그래, 잘했네.”
미즈키는 다시 웃으면서 잔을 기울였다. 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겠지?”
“그렇겠지. 키타로는 앞으로 계속 자랄 테니.”
게게로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식탁에 얹은 미즈키의 손을 살며시 잡으면서 그를 달랬다.
“그래도 괜찮을 걸세. 나도 노력할 테고, 미즈키는 좋은 사람이니까.”
“정말로 괜찮을까.”
인간과 요괴인데, 라고 말하기 전에 게게로가 확신에 찬 단단한 목소리와 눈빛으로 말했다.
“괜찮을 걸세. 내가 선택한 사람이니.”
그제야 미즈키도 굳은 얼굴을 풀고 조금이나마 웃었다. 미즈키는 제 무릎을 베고 잠든 아기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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