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쿠토 신의 신부님(下)

미즈사요

篝火 by 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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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계절은 동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날씨가 점점 으슬으슬해지는 게 확실히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사요는 솜을 넣어 두툼한 하오리를 어깨에 두르고 마당으로 나갔다. 기온이 뚝 떨어지고 서리가 내린 탓에 약초밭에는 더 이상 풀이 자라지 않는다. 인간들의 농사와 달리 하쿠토 신사에는 비닐하우스가 없어 겨울이 되면 모든 약재 관리 일을 접어야 한다. 때문에 첫 서리가 내리기 전에 모든 약재를 수확해 말리고 보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올해는 첫 서리의 기미가 없다가 11월 중순에 갑자기 내린 탓에 모두가 비상사태였다. 다행히 타격이 크지는 않았지만 예년보다 재료가 부족할 거 같다고, 미즈키는 끙 앓는 소리를 냈다.

황량한 마당을 바라보다가 사요는 신사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선생님이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지나가고 있었다. 사요는 무릎을 굽혀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 미즈키 님은 언제 즈음 돌아오실까요?”

“아, 하쿠토 님이요? 그러게요…. 아직 수레꾼들에게서 연락이 없네요.”

이렇게 늦으실 분이 아닌데. 선생님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깥을 보았다. 적어진 약재를 보충하기 위해 미즈키는 힘이 센 수레꾼을 차출해 선계로 향했다. 선계에는 계절이 없어 여름에 나는 것과 겨울에 나는 것이 구분 없이 섞여 자라고 항시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겸사겸사 인간계에서는 키우지 못하는 것들도 얻을 수 있어 편리하다. 사요와 부부가 된 후에도 몇 번 선계의 재료를 구하러 오간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늦는 건 처음이었다.

“그래도 곧 있으면 돌아오시겠죠. 아무리 길어도 열흘을 넘기는 일이 없는 분이셨으니까요.”

“그러면 적어도 오늘 내일 중에는 돌아오시겠네요.”

“네에. 그리고 사실…. 짐작 가는 부분이 있긴 합니다.”

그가 앞발을 까닥여 사요를 불렀다. 고개를 더욱 숙여 귀를 가까이 대자 선생님이 속삭였다.

“아마 술을 드시고 계실 거예요.”

“…네에에?”

예상하지 못한 추측에 사요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선생님을 바라봤다. 미즈키가 술을 즐기는 편임은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식사가 끝나고 약주을 한두 잔 정도 홀짝였으니까. 그런데 귀환을 늦출 만큼 애주가였다고? 사요가 눈을 끔뻑거리니 선생님이 앞발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미즈키 님이 술을 그렇게 좋아하신다고요?”

“좋아하는 수준이 아니라 죽고 못 사는 분이시랍니다. 그나마 마님을 들인 후로 자제하고 있는 거예요. 요즘도 종종 마님이 잠든 후에 몰래 부엌으로 나와 술창고를 뒤적이다가 창고지기들에게 들키곤 합니다.”

이곳에서 산 지 어언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에 사요는 당황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럼 미성년자와 같이 산다고 나름 술을 줄이고 내 앞에선 술을 최대한 참은 건가? 사요는 야밤에 호롱불을 들고 술창고로 살금살금 기어가는 미즈키를 상상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 무슨 술을 마실까 고민하다가, 불침번을 서고 있던 창고지기에게 걸리면 깜짝 놀라 제자리에서 펄쩍 뛰겠지. 딱 한 잔만 마실 거라고 변명하지만 하나도 먹히지 않아 창고지기들에게 끌려나온 적도 있었을까. 아니면 신사의 주인이고 신이라서 창고지기도 말리지 못하고 눈감아 주었을까. 양팔을 붙잡혀 창고 밖으로 추방당하는 미즈키는 어떤 모습일까. 풀이 죽어 귀가 처져 있을까, 아니면 내 술 내가 마음대로 마실 수도 있지 않냐며 잔뜩 화내느라 양쪽 귀가 벌어져 있을까.

서서히 눈이 반짝이는 사요를 보고 선생 토끼는 그의 머릿속에서 펼쳐지고 있을 상상을 엿보았다. 아마 하쿠토 님을 귀여워하고 계시겠지. 인간의 미추 기준은 영물과 다른지 같은 토끼 눈에는 듬직하고 강인한, 믿음직스러운 대장인 하쿠토 님이 아기 토끼처럼 귀엽고 사랑스럽게만 느껴지나 보다. 게다가 아무리 어린 신이라도 하쿠토 님은 무려 천 살이 넘었다. 선대처럼 번아웃이 왔다며 다른 이에게 하쿠토의 이름을 넘기고 갈 때가 되었는데도 꿋꿋하게 신사를 지키며 일을 하는 지독한 워커홀릭. 그런 토끼의 대체 어디가 귀여운 건지.

“그래도 조만간 돌아오시겠죠. 일도 팽개쳐 놓고 술독에 빠져 계실 분은 아니니까.”

“아, 맞아요. 솔직히 저러다가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될 때도 있어요.”

사요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맞장구를 치자 앞마당이 시끄러워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사요와 선생은 마당으로 향했다. 점점 토끼들이 복도와 작업장에서 뛰어나오더니 신사가 토끼로 가득 찼다. 토끼들이 옹기종기 모여 바깥으로 고개를 쭉 뺐다.

떠들썩한 소리는 하늘에서 내려왔다. 곧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미즈키가 가져간 수레가 내려왔다. 가마꾼들이 자주색 비단길을 따라 열심히 수레를 밀고 끌면서 영차영차 소리를 내고 있었다. 수레 뒤에서는 가마꾼이 따라오고 있었다. 나팔꾼이 맨 앞에서 나팔을 불면서 미즈키가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출발할 떄와 다른 점이 있다면 뒤에 하얀 무언가가 따라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용처럼 미끈하고 긴 몸에 뿔이 달려 있었다. 사요는 정체불명의 동물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분은 누구시죠?”

“게게로 님인데요?”

“게게로요?”

“하쿠토 님의 친우에요.”

약재를 구하러 간 이들이 지상에 내려왔다. 토끼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가마와 수레로 향헀다. 수레꾼들은 그들이 가져온 약재를 토끼들에게 나눠주고 약재의 종류와 보관할 곳을 알려주었다. 수많은 토끼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면서도 동선이 꼬이지 않았다. 사요는 멈칫하다가 가마 쪽으로 향했다.

용은 유려하게 날아와 마당 구석에 착지했다. 곧 푸른 구름이 그를 감싸더니 순식간에 인간의 모습이 되었다. 남들보다 훤칠한 키에 백발이 인상적인 모습이었으나, 동그란 눈 때문에 어쩐지 맹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용 역시 가마로 다가오더니 사요를 빤히 쳐다봤다. 가마꾼들이 가마를 내려놓으면서 사요에게 말했다.

“하쿠토 님은 사랑채로 모시고, 따뜻한 물수건과 솜이불을 준비해주십시오.”

“혹시 아프신가요?”

“음, 감기몸살이 단단히 걸려버렸지.”

“네에?”

게게로의 대꾸에 사요는 아연실색해졌다. 선계에는 사계절이 없다는데 감기몸살에 걸렸다고? 그러면 그 전부터 아팠다는 걸까? 사요는 침착하려고 노력하면서 가마의 구슬발을 들추었다. 가마에 앉은 미즈키는 머리를 한 쪽 벽에 대고 가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양팔로 안아드니 몸은 차가운데 머리만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사요는 허겁지겁 기모노 안쪽에 미즈키를 넣고 선생님 토끼와 함께 신사 안으로 향했다. 게게로가 살짝 빠른 걸음으로 그들을 따라갔다.

하쿠토 신의 신부님 (下)

신도 아플 수가 있구나. 사요는 적당히 물기를 짠 수건을 미즈키의 이마에 놓아주며 생각했다. 사요 외에 여러 토끼가 달라붙어 미즈키를 간호했다. 어린 토끼가 전복을 넣어 만든 죽을 가져다주었다. 토끼는 초식동물이지만 필요한 단백질 등의 영양소를 얻기 위해 곤충이나 작은 양서류 등을 먹을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아픈 몸을 회복하는 데에는 전복죽만 한 것도 없다. 사요가 숟가락으로 죽을 조금씩 떠 미즈키의 입 앞에 내밀었으나 아직 비몽사몽한 미즈키는 한 입도 들지 않았다. 나중에 의식을 회복하면 데워서 줘야지, 사요는 상을 물리고 흐트러진 기모노를 바로 해주었다. 나이가 지긋한 유모 토끼가 게게로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증상이 있으셨습니까?”

“천계에 올 때부터 의심이 되긴 했네. 내가 요새는 바쁘지 않느냐고 물었으나 또 별일 없다고 대꾸했지.”

이렇게 귀하고 고운 신부를 들였으면서 별일 없었다니, 원. 게게로가 사요를 슬쩍 바라보며 혀를 찼다. 인간을 반려로 맞이하는 건 요괴와 신 사이에서 별난 취향으로 여겨지니 숨기는 것도 이해는 갔다. 이해는 갔지만 서운함은 별개의 영역이다. 신부가 생겼다고 동네방네 자랑하는 것까지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과 살게 되었다고 친우에게 언질은 할 수 있는 거 아닌지.

“이틀째 밤에 대작하는데 그때부터 갑자기 몸이 안 좋아졌네. 내가 몸을 회복하고 가라고 했지만 미즈키는 식솔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면서 날짜에 맞추어야 한다고 했어. 겨울에 몸이 안 좋아져 하쿠토 신사를 찾는 이들이 많다는 건 내 알지만, 그래도 자기 몸을 먼저 챙겨야 하지 않겠나, 벗이여….”

게게로는 한숨을 쉬면서 미즈키의 이마에 손을 댔다. 인간보다 서늘한 체온이 마음에 들었는지 미즈키가 턱을 갔다 댔다. 단순한 애정 표현이나 환자의 어리광으로 치부해도 되지만 사요는 속 좁은 사람처럼 샐쭉 입술을 내밀었다. 인간의 체온이 이렇게 원망스러운 적은 처음이다.

“그래, 류가의 사요라고 했는가.”

게게로가 사요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물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점처럼 보이던 눈은 새빨간 색이었으나 불길한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사요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신부라고 덧붙이자 게게로가 활짝 웃었다.

“미즈키에게 그대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네.”

“그, 그랬나요?”

그래도 신부가 있다는 말을 했구나. 뿌듯함이 차올라 사요가 웃자 게게로가 더 큰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모, 어릴 적부터 일밖에 모르는 녀석이었어. 이나바노시로우사기의 직책을 물려받게 되었을 때 내게 찾아와서는 ‘나도 사랑이 뭔지 모르는데 인간의 인연을 잘 맺어줄 리 없잖냐!’라며 화를 냈지. 하지만 역시나 잘 해내고 있었어. 그러지 않았다면 자네와 만나지 못했을 테지.”

“아, 사실은….”

사요는 머뭇거리다가 토끼들을 물렸다. 유모 토끼가 시종들을 데리고 사라졌고, 둘이 남자 사요는 용에게 고해성사를 올렸다.

“…제가 미즈키 님께 신부로 받아달라고 했어요.”

“무어라? 인간들 사이에서 우리와 혼례를 올리는 건 불길하다 여기는 걸로 알고 있는데!”

게게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말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사요는 살짝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구태여 그에게 가정사를 설명하진 않았지만 게게로는 곧 눈썹을 축 늘어뜨리며 알 만 하다고 중얼거렸다.

“분명 자네에게 끔찍한 지옥이었겠지. 그간 잘 버텼구나.”

생판 타인에게 잘 버텼다고 들으니 눈물이 팽 돌 뻔했으나 사요는 바로 표정을 수습하고 미즈키를 바라봤다. 여전히 미즈키는 눈을 뜰 기미가 없었다. 사요는 다시 게게로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증상이 악화되었나요?”

“음, 선계에서 완전히 몸을 회복하고 가라고 했지만, 갈수록 몸이 안 좋아졌네. 다른 의원을 불러봤지만 다들 차도만 보자고 말할 뿐 제대로 된 병명을 알려주지 않았네. 거기에 당장 말리지 않으면 상하거나 독이 강해지는 약재들이 있어 귀환을 더 늦을 수가 없었지. 때문에 어찌하지 못하고 돌아왔지. 그 사이 열흘이 지났을 줄은 몰랐군.”

인간계의 시간은 여전히 감이 안 잡한디네…. 게게로는 어째선지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게게로의 말에 의아한 부분이 있어 사요는 눈을 깜빡였다.

“저기, 선계의 의원이 더 뛰어나지 않나요? 일반적으로는?”

“딱히 그렇지도 않다네. 우리는 애초에 병이 걸리는 일이 없다네. 선계의 의원들은 대체로 인간을 많이 치료해 그들로부터 신앙을 얻어 신이 된 자들이지. 때문에 동물 모습의 신이나 요괴는 잘 다루지 못한다네.”

게게로는 손가락으로 미즈키의 턱을 긁어주었다. 새 옷으로 갈아입힌 지 30분밖에 안 됐는데 다시 땀으로 옷이 축축하게 젖어가고 있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사요는 중얼거리고 옷을 벗겨 온수로 적신 수건으로 닦아주고 새 유카타를 꺼내 입혔다. 다행히 막 귀가했을 때보다는 숨소리가 안정적이다. 게게로가 뜸을 들이다가 설명을 이었다.

“어쩌면 과로로 영력이 부족해져서 그런 것일 수도 있네. 이곳에 정수가 얼마나 남아 있나?”

정수는 요력이나 영기를 굳혀서 만든 일족의 환이다. 주로 흉수나 악귀를 정화했을 때 나온 기운을 체에 거르고 깨끗한 약수에 씻은 다음 조청을 섞어 햇빛 아래에 말려서 만든다. 기력이 허해져 골골거리는 인간이나 요괴에게 한 알을 먹이면 금방 기운이 쌩쌩해질 만큼 효력이 좋다. 하지만 재료가 재료인지라, 하쿠토 신사에서도 끽해야 일주일에 두 번 밖에 못 만들 만큼 귀한 약이다.

사요도 하쿠토 신사에 들어오고 한 달 동안은 종종 먹었다. 인간이 신의 기운에 노출되면 기운이 펄펄 끓어 오히려 쇠약해진다고 해서 미즈키가 먹였다.

사요는 일주일 전에 정리한 장부를 복기하면서 대답했다.

“아마도 여섯 알 정도는 남아 있을 거예요.”

“그러면 일단 한 알을 반으로 갈라 먹여보도록 하지.”

사요는 토끼를 불러 정수를 가져오라고 명했다. 귀한 약 이름이 나오자 토끼가 귀를 파닥이며 놀랐지만 이내 수긍하고 창고로 향했다. 토끼가 물러나자 사요는 게게로에게 속삭였다.

“사실, 선생님께선 술 때문에 늦는 거일 수도 있다고 얘기하셨거든요. 그래서 발갛게 취해서 오실 줄 알았는데.”

“으음? 술?”

게게로의 동그란 눈이 더 휘둥그레지더니 별안간 웃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이고 끌끌대던 게게로는 금방 선생님 토끼의 추측을 긍정했다.

“하긴, 몸이 무거운데도 술은 포기 못한다며 청주를 찾았으니, 어쩌면 몸살에 술독이 겹친 것일 수도 있겠구려.”

“그, 술독은 괜찮은 건가요?”

“미즈키의 정신이 온전했다면 ‘이런 건 약주로 풀어야 한다’면서 또 마셨을 지도 모르지.”

“정말 술이라면 죽고 못 사시는 분이셨네요. 못 말려.”

사요가 볼을 부풀리며 괜히 미즈키의 볼을 검지로 꾹 눌렀다. 선계에서 많이 아팠는지, 겨울이라 더 토실해야 하는 살이 쏙 빠져서 푹 하고 누르는 대로 꺼졌다. 핼쓱해진 모습을 보니 더 안쓰러워 사요는 울상을 지었다. 항상 믿음직하고 자신의 잠자리를 지키시던 분이 어째서 이렇게 될 때까지 자기 몸을 내버려둬선…. 사요와 미즈키를 내려다보던 게게로가 물었다.

“그대 앞에선 마시지 않았던가?”

“네? 네. 거의 안 마셨어요. 물론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마셨던 거 같은데, 적당히 취흥이 오를 정도로만 드셨어요.”

오호, 하고 게게로는 흥미롭다는 소리를 내더니 되물었다.

“그러면 담배도 안 피웠나?”

“담배요? 전혀요. 담배 냄새조차 안 나셨는데.”

사요가 덩달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하자 게게로는 매우 놀라며 알려주었다.

“어찌 그럴 수가…. 분명 자네를 만나기 전에는 하루 다섯 잎 정도는 우물거렸던 거 같은데.”

“다, 다섯 잎이요?”

인간으로 치면 하루 다섯 개비 정도일 테니 그리 꼴초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애주가에 애연가라니. 미즈키가 신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었으면 주변으로부터 간암과 폐암으로 빠르게 죽고 싶느냐는 질타를 들었을 수준이다. 정말이지 신이라 다행이네요. 사요가 눈썹을 모으면서 투덜거리자 게게로는 토호호, 하고 웃기만 했다.

“그렇군. 그렇게 술이랑 담배를 즐기던 벗이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걸 끊어버리더라니. 그랬군, 자네에게 못 볼 꼴을 보여주기 싫어서였던 거였어.”

정말이지 많이 신경 쓰고 계셨구나, 마음에도 없는 혼인이었는데. 사요는 땀에 젖어 엉킨 털을 매만지며 가장 소중한 것을 바라보는 눈으로 미즈키를 내려다봤다.


하쿠토 신사로 돌아오자 미즈키는 다행히 빠르게 회복되었다. 신사에 돌아온 지 하루 뒤 몽롱한 눈을 뜬 미즈키는 사요가 주는 대로 얌전히 죽과 건초, 약을 받아먹었다. 미즈키는 입맛이 없다고 투정을 부렸으나 그럴 때마다 사요가 빨리 나아야 한다면서 계속 죽과 건초를 입에 쑤셔넣었다.

다행히 열은 금방 떨어졌으나 기력 회복이 관건이었다. 정수가 남아 있지만 몸에 기력이 텅 비었을 때 먹으면 오히려 독이기에 최대한 컨디션을 회복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래도 회복을 도우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요와 토끼들의 정성을 무시할 수는 없었는지 미즈키는 얌전히 밥과 약을 받아먹고 하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냈다. 이따금 정말로 괜찮아졌다며 일을 하려고 했으나 그때마다 신사의 모두가, 그리고 게게로까지 합심해 나서서 말렸다.

이러다가 욕창이 생기겠어, 병상에 누운 지 일주일이 되어가던 날 미즈키가 뿍 소리를 내면서 한 말이었다. 오로지 화가 났을 때만 울음소리를 내는 토끼의 특성을 잘 아는 사요는 드디어 미즈키가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워커홀릭 기질이 있느 것치곤 오랫동안 얌전히 누워 있었다. 사요는 고민하다가 신사에 있는 담요란 담요는 모두 가져와 미즈키의 몸에 둘렀다. 미즈키가 얼떨떨한 낯으로 사요의 손을 쳐다보며 물었다.

“뭐…, 하시는 건지 물어도 됩니까?”

“너무 누워 있어서 온몸이 찌뿌둥하시다면서요. 바깥 공기라도 쐬러 나갈까요?”

새빨간 털실 목도리와 털실 귀도리까지 씌워주면 외출 준비 끝이다. 미즈키는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중무장 상태가 된 몸을 내려다보곤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요는 거은 토끼를 양팔로 안아 몸을 일으켰다. 앓는 동안 살이 많이 빠져 한 달 전과 비교도 안 될 만큼 가벼워졌다. 오히려 너무 가벼워져서 이곳에 미즈키가 없는 것 같았다.

토끼들의 눈을 피해 복도를 걸어가 뒷마당으로 향했다. 툇마루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니 밤 사이 얼핏 내린 눈 탓에 땅에 흰 기운이 돌았다. 와아, 하고 감탄을 뱉은 사요가 입김을 뿜으며 말했다.

“올해 첫 눈이네요.”

“많이 내려야 다음 해에 재배가 잘 된 텐데, 걱정이네요.”

“어머, 바람 쐬러 나온 건데도 일 걱정을 하시는 거예요? 정말 못 말리겠어요.”

“뭐, 어쩔 수 없죠. 저는 이곳의 관리자니까요.”

칼바람이 불었다. 카마이타치가 지나가는 모양이다. 미즈키가 코를 한 번 훌쩍이고는 갑자기 사과를 했다.

“미안합니다. 걱정을 끼쳐서.”

“미즈키 씨는 왜 후임을 정하지 않았나요? 일이 힘들면 선대처럼 선계로 훌쩍 가버리면 되잖아요.”

“어떻게 그럽니까. 여기에 이렇게 많은 토끼들이 있는데.”

미즈키는 그럴 수 없다며 하하 웃고는 말을 이었다.

“…신이 떠난 신사는 급격하게 황폐화되고, 종과 식신은 이지를 잃고 평범한 요괴나 금수가 됩니다. 제가 일을 그만두면 이 많은 토끼들이 같은 길을 걷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선대처럼 다른 믿을 만한 토끼에게 이나바노시로우사기의 이름을 주고….”

“글쎼요. 믿을 만한 녀석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미즈키는 다시 코를 훌쩍이더니 고개를 들어 사요와 눈을 맞추려고 애를 쓰며 말했다.

“아마도, 당신을 만나려고 그랬나 보죠.”

사요의 얼굴도 미즈키의 얼굴도 새빨개져 가는데, 사랑의 훼방꾼이 불쑥 등장했다.

“실로 좋은 그림이구먼, 미즈키.”

“야…!”

“게, 게게로님…!”

미즈키가 바로 귀를 양쪽으로 벌리고 게게로를 협박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게게로는 한창 청춘인 남녀의 풋풋한 연애를 훔쳐보는 노인처럼 기모노 소매로 입가를 가리고 후후후, 하고 웃었다. 게게로는 이죽이면서 미즈키에게 물었다.

“어떤가. 이렇게 고운 아가씨를 만나서 달콤한 사랑을 하는 기분은?”

“몰라! 나한테 묻지 마.”

“미즈키, 사요 양 섭섭하게 그런 말을.”

게게로는 차인 사람처럼 눈썹을 축 늘어뜨리고 최대한 불쌍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뭐랄까, 신으로 여겨지는 용인데도 철부지 남자애 같은 느낌이랄까. 게게로의 도발에 미즈키는 당장이라도 튀어나가 단단한 앞발로 그를 한 대 때릴 것처럼 버둥거렸다.

“얌마, 이리 와! 지금 뭐가 어째?”

“미즈키, 설마 단지 동정하고 연민하는 마음으로 이 아가씨를 신부로 받아들인 건 아니겠지?”

정곡을 찔리자 미즈키는 더 이상 반박하지도 발버둥치지도 않고 귀만 축 늘어뜨렸다. 아니, 그건 그 뭐냐, 미즈키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지만 게게로는 맹해 보이는 눈의로 가만히 두 사람을 응시하기만 했다. 그렇게 날카로운 눈매도 아닌데 무표정하게 응시하고 있으니 마치 귀신 같다. 미즈키가 변명을 찾지 못하고 우물거리자 사요가 입을 열었다.

“아, 저는 괜찮아요.”

“사요 양,”

“저도 어떻게 보면 신을 이용해서 제 처지를 벗어나려고 했는 걸요. 그리고 음, 미즈키 씨는 천성이 다정하셔서. 저는 괜찮아요. 이곳에서 지내는 데에 불만 없어요.”

“…뭐, 두 사람이 이대로가 좋다면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네만.”

사요의 답에 게게로는 어깨를 으쓱였지만 미즈키는 가슴에 납덩어리를 단 것처럼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마디라도 쥐어짜 보고 싶었지만 사요는 바로 등을 돌렸다. 이러다 감기가 더 심해지겠어요. 사요는 미즈키의 뜨끈한 이마에 손을 대더니 침상으로 돌아갔다. 미즈키는 어쩔 줄 몰라 멀어지는 게게로를 보기만 했다. 애석하게도 그의 친우는 해답을 알려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늘도 사요는 미즈키의 옆에 누워 잠을 청했다. 이미 신사의 불은 꺼진 지 오래인데 그 누구도 잠에 들지 못하고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미즈키가 조심스럽게 눈을 도르륵 굴려 사요를 살폈다. 사요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호흡소리는 깨어있는 사람의 것이었다. 낮의 대화가 신경 쓰이는 건 어느 쪽이든 다르지 않았다.

“미즈키 님, 주무세요?”

사요가 허공에 말을 걸었다. 미즈키는 애써 모른 척 눈을 감았다. 미즈키가 정말로 자고 있다고 판단했는지 사요는 중얼거렸다.

“음, 솔직히 게게로 님의 말을 들었을 때 조금 서운했어요. 미즈키 씨가 다정한 분인 건 알지만, 정말 그 뿐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미즈키는 순식간에 대역죄인이 되어 할말을 잃었다. 고작 열아홉 살 된 인간에게 저런 말을 듣다니 연애를 관장하는 신으로서 최악이다. 사요는 가슴팍 위에 얹은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말을 더듬었다.

“음, 제가 먼저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니까…. 이제 와서 이런 말 하는 거 저도 비겁한 줄은 아는데…. 모르겠네요. 제가 너무 이기적인 사람 같고….”

“이기적인 게 아닙니다.”

자는 척해야 한다는 것도 까먹고 미즈키는 다급히 사요의 말을 잘랐다. 사요가 피식 웃더니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거 봐요. 미즈키 씨에게 저는 그냥 돌봐주고 달래줘야 하는 어린애에 불과하잖아요.”

“아니, 저는….”

미즈키는 사요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려다가 포기했다. 어느 정도 그렇게 생각해온 게 맞긴 했으니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미즈키는 사요의 처지가 딱하다고 생각했고, 그래도 반려로 데려오는 것은 영 껄끄럽다고 속으로 선을 딱 그었으니까. 미즈키의 귀가 처량하게 축 내려갔다. 쏟아지려는 눈물을 급히 닦는데, 미즈키가 한숨처럼 말을 흘렸다.

“…저는 사랑한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어째서요? 다정한데다 근면하시고 꽤 장난스러운 면도 있으시잖아요. 그리고 무려 사랑의 신인데요?”

“엄밀하게는 인연을 점지해주는 신이지, 사랑의 신은 아닙니다.”

미즈키는 앞발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흡사 사람이 착잡할 때 하는 마른세수 같은 동작이었다.

“이런 말 하면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전 사랑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살려고 아득바득 일만 했는데 그런 걸 어떻게 압니까. 연을 점지해줄 때도, 네. 그냥 이래저래 계산해서 무난히 잘 지낼 것 같은 사람들을 이어줬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보지 않고서요.”

한 번 말문이 터지니 걷잡을 수 없이 추태가 튀어나온다. 세상에 난 지 채 스무 해도 되지 않은 인간에게 무슨 못 볼 꼴인지, 미즈키는 한심해하면서도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미즈키는 앞발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더 깊은 굴로 들어가려는 토끼처럼.

“그러니까, 제 말은, 그래서 미안하지만 저는 당신을 사랑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괜찮아요, 미즈키 님.”

사요가 손을 뻗어 미즈키의 동그래진 등을 쓰다듬었다. 털이 곤두설 만큼 놀랐지만 미즈키는 위로 펄쩍 뛰어오르거나 사요의 손을 물진 않았다. 1년 간 한 방에서 살면서 익숙해진 온기가 미즈키의 등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기묘한 기분이었다. 예전에는 자신이 사요를 위로해주려고 쓰다듬어도 된다고 했는데, 지금은 사요가 자신을 쓰다듬어 위로해주고 있다.

“미즈키 님이 사랑하는 데 서툴다면 제가 그만큼 미즈키 님을 좋아하면 되니까요.”

“그, 하지만 방금 전에는….”

“죄송해요, 그냥 어린애의 투정이었다고 생각해주시면 안 될까요?”

사요는 미즈키의 등에 얼굴을 묻으며 부끄러움에 새빨개진 얼굴을 가리려고 애를 썼으나 귀는 차마 숨길 수 없었다. 인간보다 시야각이 넓은 토끼에게는 달아오른 귀가 훤히 보였다. 겨울을 맞이해 더 풍성해진 털에 묻혀 웅얼거리는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이성 간 사랑이 아닐 뿐이지 미즈키 님은 충분히 저를 아껴주고 계시잖아요. 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요.”

사요가 팔을 뻗어 미즈키를 끌어당기듯 안았다. 사요의 품은 토끼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따끈했다. 미즈키는 본능적으로 따뜻한 온기를 찾아 사요의 품으로 파고들어갔다. 사요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럴 때는 미즈키 님도 영락없는 토끼 같아요.”

“아니, 이건 뭐랄까 그냥….”

“괜찮아요. 귀여우신 걸요.”

“…대체 인간들은 왜 이런 아저씨 토끼를 귀엽다고 하는지.”

미즈키는 또 푸릉대면서 한숨을 뱉었다. 그 영문을 모르겠단 태도가 우스워 사요는 부드럽게 웃었다.


오늘은 사요가 태어나 스무 번째로 맞이하는 묘월 보름날의 묘시. 미즈키의 신부가 된 날이기도 하면서, 정식으로 미즈키와 식을 올리는 날이기도 하다.

하쿠토 신의 혼인을 축하하기 위해 전국에서 토끼가 몰려왔다. 토끼들은 머리와 등에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 하쿠토 신의 제단 앞에 내려놨다. 우습게도 제약의 신이라 그런지 선물이 하나같이 약재였다. 머리가 맑아지는 약, 눈이 좋아지는 약이며 간질이 낫는 약, 심지어 피부가 고와지는 약도 있었다.

손님은 토끼만 있는 게 아니었다. 하쿠토 신의 도움을 받은 이들, 그와 친분이 있는 이들, 그의 은총으로 연을 맺은 부부들이 몰려와 그의 장가 가는 날을 축하하러 왔다. 그 중에 신부 측 손님은 없었지만 아무도 의문으로 삼지 않았다. 그야 하쿠토 신의 신부님은 인간이었고, 그 신부님의 집안은 이 혼인을 반기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신부는 서운해하거나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자리를 빛내기 위해 곳곳에서 몰려온 신랑의 하객을 성실하게 맞이했다.

“축하하네! 역시 자네들은 잘 될거라고 생각했다네.”

게게로가 눈물을 글썽이며 사요에게 거대한 선물 상자를 주었다. 이것은 인어의 눈물이고 이건 용의 발톱, 또 이것은 바케네코의 수염…. 역시나 게게로의 선물도 죄다 약재로 쓰이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상자 아래에 있는 또 하나의 상자를 열어보자 인간 신부를 위한 금붙이와 화장품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요는 호화로운 선물에 입을 벌렸다가 상자를 닫으면서 곤란한 낯으로 말했다.

“이, 이렇게 대단한 건 필요없는 걸요.”

“우리의 성의라고 생각해주게나. 신부를 위한 선물이 하나라도 있어야지.”

다정한 음색에 눈물이 핑 돌 뻔했으나 울면 화장이 번진다고 귀신 같이 장난을 치는 게게로 탓에 쏙 들어가고 말았다. 사요는 작은 주먹으로 게게로의 등을 때린 다음 신랑 쪽 방을 보았다. 창호지가 두껍고 불을 켜두지 않아 안쪽이 보이지 않았다. 혼례를 올리기 전엔 서로의 얼굴을 보이면 안 되는 규칙 때문이었다.

선생 토끼와 검은 토끼가 잰걸음으로 달려왔다. 마님, 이제 준비하셔야 합니다. 사요는 고개를 끄덕이고 뒷문으로 몸을 돌렸다. 이따 식장에서 뵈어요, 게게로에게 인사한 다음 사요는 숨을 골랐다. 이제 혼례가 끝나면 두 사람은 정식으로 부부가 되어 영원을 약속하게 된다. 다사다난하진 않았지만 소소한 에피소드가 많은 2년이었다.

곧 신랑신부 입장이 있다. 사요는 허리를 세우고 가슴을 폈다. 8겹으로 중무장한 시로무쿠가 무거웠지만 마음은 들떠 갑갑한 줄 몰랐다. 인간인 사요를 배려하기 위해서일까, 토끼들은 모습을 바꾸는 약을 먹고 인간으로 둔갑해 사요의 양팔을 잡고 이끌어주었다.

곧 문이 열리고, 사요는 얼굴을 후리소데로 가린 채 토끼들의 안내에 따라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반대편에서 신랑의 기척이 느껴졌다. 슬쩍 고개를 들어 살피니 그는 검은 토끼 모양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앞에서는 화사한 신랑신부를 보고 박수가 쏟아져나왔다. 미즈키이, 하고 게게로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 그 옆에 있는, 아내로 보이는 여성이 그를 향해 손을 흔들어준다. 사요는 후리소데 너머로 그들을 흘긋 바라보곤 미소를 지었다.

신랑과 신부가 서로 얼굴을 보고 인사하는 순서가 되었다. 사요는 팔을 내렸고, 미즈키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가면을 옆으로 치웠다. 눈을 들고 마주하자, 왼쪽 눈과 귀에 흉터가 있는 단정한 남성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진 눈에 비해 올라간 눈썹이 무르면서도 강인하다는 대비되는 인상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눈 아래 도톰하게 올라온 애굣살 탓인지 장난스러운 모습도 얼핏 보였다.

사요가 너무 빤히 바라봐서 부담스러웠는지 미즈키는 파란 눈을 슬쩍 옆으로 돌리며 물었다.

“…혹시, 상상하던 모습과 다르시다면,”

“아니에요.”

또 이상한 소리를 할까 봐 사요는 허둥대다가 그만 미즈키의 손을 잡아버렸다. 맞절을 올리기도 전에 피부가 닿자 곳곳에서 비명 소리와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 이게 아닌가? 현대식 결혼이 더 익숙한 사요는 하객과 사회자의 반응에 당황해 얼어붙었다.

그것을 감싸준 사람은 미즈키였다. 그는 부드럽게 손을 빼내곤 팔을 들어 그대로 사요를 안아버렸다. 이번에는 더 큰 비명이 흘러나왔다. 유모 토끼가 체통을 지키라고 옆에서 잔소리를 하고 있었지만 미즈키는 모두 가볍게 무시하고 하객을 향해 웃으며 외쳤다.

“이나바노시로우사기의 신부, 사요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는 포옹을 풀며 사요에게 속삭였다.

“감사합니다. 제 곁에 와주셔서.”

사요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방긋대며 화답했다.

“고마워요, 절 신부로 맞이해주셔서.”

제약과 사랑의 신, 이나바노시로우사기. 통칭 하쿠토 신.

그러나 정작 사랑을 몰랐던 상처투성이 워커홀릭 토끼는, 비슷한 상처를 가진 소녀를 신부로 맞이해 사랑에 눈을 떴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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