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베이스는 얼굴로 치는 거라는 농담, 게타 군은 어떻게 생각해요?”
공식 계정에 새로 올라온 미즈키의 사진을 심혈을 기울여 보정하다가 사요가 물었다. 게타치키는 포키를 우물대며 미즈키의 남은 하반기 일정을 체크하다가 그 질문을 듣고는 얼빠진 목소리로 대꾸했다.
“미즈키 씨 얼굴이 죽여주긴 하지.”
“그쵸, 솔직히 유전자를 남기지 않는 게 아까운 얼굴…. 아니, 하지만 미즈키 씨의 백미는 멜로디 변주와 컨트롤이라고요?”
사요가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바로 말을 바꾸어 미즈키의 베이스 실력을 찬양했다.
드럼의 파워에 가려져 간과하기 쉽지만 베이스도 엄연한 박자 세션이다. 드럼이 비트라면, 베이스는 낮게 음을 깔아주면서 다른 악기의 타이밍을 조율해준다. 그 위에 리드기타가 코드를 잡고, 리드기타가 폭발적인 멜로디 라인을 선사하면 보컬이 노래를 시작한다. 여기에 신디사이저나 서브기타, 피아노나 관현악기 등이 추가되면 더욱 다양한 색조로 노래가 풍성해진다.
이렇게 밴드 이야기를 나눌 때, 이 한마디면 베이시스트와 그의 팬을 뒷목 잡고 쓰러지게 할 수 있다.
‘베이스는 밋밋해서 별로.’
‘베이스 그거 얼굴로 치는 거 아냐?’
일명 베이스 공기화. 간단히 말해서 베이스는 인기가 없다는 뜻이다. 화려한 연주기법으로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다른 악기 세션과 달리 베이스는 음이 너무 낮아서 눈에 띄지도 않고 어필도 쉽지 않다. 그러니 보통 누군가가 베이시스트에게 끌린다면, 일반적으로 외모 아니면 노래 실력 때문이었다. 이러면 또 자칭 ‘고인물’이 나타나 잘생기면 다냐면서 자기들만 알고 있는(그러나 밴드를 좀 판 사람이면 다 아는) 베이스의 매력을 웅얼거린다. ‘베이스는 얼굴로 친다’는 밈은 바로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미즈키가 고전배우 상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사요는 이 말을 미즈키에게 적용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그는 음대에서 클래식을, 무려 첼로 오케스트라부를 전공했다. 그는 합주에서 베이스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고, 따라서 작곡을 할 때 베이스와 다른 음의 조화에 신경을 많이 쓴다. 리듬기타 겸 작사작곡을 담당하는 게게로도 미즈키의 그런 고집과 섬세함을 알기에 베이스 파트를 그에게 일임하는 것 아닌가. 그런 것도 모르고 이와코와 더불어 얼굴마담이라는 소리를 듣다니, 온라인에서 그렇게 손가락을 놀린 자들은 모두 사요의 키보드에 가루가 되었다.
같은 사람을 덕질하는 입장에서 게타키치는 사요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물론 미즈키는 웬만한 탤런트 뺨치는 외모지만, 한번이라도 미즈키의 베이스 솔로를 들어봤다면 얼굴로 먹고 산다는 망발을 할 리가 없다. 얼핏 들으면 정석 중의 정석으로 느껴지겠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심장이 고양되어 ‘방금 내가 뭘 들은 거지?’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게 미즈키의 베이스다. 게타키치는 저런 말을 하는 부류를 깔끔하게 무시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어, 미즈키 씨 타코야키 먹다가 혀 데였나 본데.”
“네? 어디요?”
“아버지 인스타에 올라왔어.”
게타키치의 속보를 듣자마자 사요는 그의 아버지, 게게로의 인스타에 들어가 12초 전 올라온 사진을 픽셀 단위로 훑은 뒤 앓는 소리를 뱉었다. 이미 사진을 다운받은 게타키치는 사진을 확대해 미즈키의 미간 주름 하나하나까지 관찰하고 있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탄식 섞인 한숨이 흘러나왔다.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게타키치였다.
“이래서, 미즈키 씨는 하여튼 너무 무방비해서 큰일이라니까. 아버지께서 코멘트하신 거 봤어? ‘그러게 내가 조심하라고 하지 않았나 미즈키….’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데였다고 혀 내밀고 후후 하고 있으면, 아니 대체 누굴 얼마나 더 홀리려고.”
“제 말이 그 말이라니까요. 저번에도 나베 먹다가 입천장 데여서 볼 부풀리고 후후 부는 사진 올라와서 좋아요가 만 단위로 찍혔잖아요. 물론 건강에 안 좋은 식습관이라 걱정하는 거지만, 우리 심장에도 해롭다고요!”
“이런 걸 24시간 떨어져 있는 틈 없이 보는 부모님이 부러울 지경이야. 이제 마흔 다 되어가는 남자가 이렇게 귀여울 일인가….”
게타키치는 이제 아예 화면에 들어갈 기세이다. 게타 군, 그러다가 침 흐르겠어요. 사요가 고상하게 지적하자 게타키치는 흡, 하고 떨어질랑 말랑 하던 침을 수습했다. 사요가 한참 분위기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나저나 게타 군은 이번 미즈키 생일에 뭘 할 건가요?”
“아, 그러고 보니 투어 콘서트 끝나고 돌아오는 날이겠네.”
게타키치는 흠, 하고 팔짱을 꼈다. 원래 누군가의 생일에는 가족끼리 집에 모여 조용히 축하하는 편이다. 하지만 사요는 그것을 묻는 게 아닌 듯하다. 아마 sns 생일 해시태그 참가나, 생일 광고 따위겠지. 그러나 사요의 입에서 튀어나온 계획은 그것보다 훨씬 큰 규모였다.
“밴드도 메이저 반열에 올랐고, 미즈키 씨 개인 팬도 눈에 띌 만큼 많아졌으니까….”
“저기, 사요 짱. 그건 혹시….”
게타키치는 불안한 기운을 감지하고 물었다. 번거로운 것이라면 딱 질색이다. 아무래도 부모님의 단순주의 성격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탓이리라. 그러나 사요는 물러설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사요는 오래 전에 결심을 했고, 게타키치를 자신의 계획에 끌어들일 작정이었다. 그의 갈색 눈이 아름답게 반짝였다.
“저희, 생일 카페를 여는 건 어떤가요?”
생일 카페. 레이와 시대에 덕질 좀 하는 사람이라면 2D 3D 가리지 않고 한 번 정도 들어보거나 참여해봤으리라. 캐릭터나 배우, 아이돌 등 ‘덕질 대상’의 생일에 맞추어 카페를 대관하고 컨셉에 맞추어 개최하는 오프라인 전시 이벤트.
동인지나 굿즈가 필수인 일반 판매전과 달리 참가자의 부담이 적고 대관료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와 비슷하게 번거롭고 수요를 예측히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무엇보다 항상 문제가 되는 건 바로 상업성 논란. 카페 입장에서는 대관료 외에 매출이 있어야 하므로, 주최와 주인의 합의 하에 음료를 필수로 구매하게 되어 있다. 이것이 그레이존을 벗어나 상업성을 띠는 행사인가에 대해서는 없다는 측과 문제가 된다는 측의 대립이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게타키치의 덕질 성향이다. 그는 온·오프라인 활동이 거의 없는 은둔형 덕후로, 교류가 활발한 사요와 달리 사요 외의 다른 미즈키 덕후와 접점이 없다는 점이다. 앨범은 평범하게 세 장 정도 사들이고, 콘서트나 참가 페스티벌도 큰 문제 없는 이상 꾸준히 다니고, 그 라이브 DVD나 블루레이도 나오는 대로 수집하는 덕후 중의 덕후지만, 그리고 같이 산다는 어드벤티지로 라인과 매일을 사적으로 주고받고 비하인드 사진도 앨범에 잔뜩 있지만, 그것을 오로지 사요하고만 공유하는 숨덕이다.
안 그래도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게타키치인데, 생일 카페를 준비한다며 발품을 팔고 홍보하면서 사람과 부딪치기를 그가 자처할 리가 없다. 역시나 게타키치는 목구멍에 거절의 말을 일발 장전했으나 사요가 먼저 기관총을 꺼내 쏘아댔다.
“공식 사진이나, 개인적으로 찍은 사진을 이용하면 어렵지 않아요! 저희에게 없는 건 다른 홈마에게 부탁해 받으면 되고요. 그리고 최근에는 카페도 선입장이나 수요조사를 통해서 어느 정도 방문객을 예측할 수 있더라고요. 저희는 실존 인물의 사진을 사용하는 거니, 사진 가공과 굿즈비에 기타 소품 등에만 신경 쓰면 되고요!”
“그, 하지만 일정이 촉박한데 지금 대관할 수 있는 카페가 있을지….”
“코조 삼촌에게 부탁하면 될 거예요. 그분은 이와코 씨를 좋아하시지만, 같은 멤버니까 받아주시지 않을까요?”
맞다. 삼촌이 아트갤러리 겸 카페를 운영한다고 했지. 밴드 멤버 행사이고, 조카의 부탁이니 어쩌면 무상으로 빌려줄 지도 모른다. 이래서 인맥이라는 게 중요하구나…. 게타키치는 사요의 막힘없는 PR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리고…, 라며 사요가 수줍게 말을 이었다.
“저 사실, 중학생 때부터 이런 행사를 열어보고 싶어서 돈을 모았거든요. 이거면 충분히 열 수 있지 않을까요?”
사요가 은행 앱을 열어 보여준 금액을 세다가 게타키치는 급히 화면을 껐다. 역시 재벌 3세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걸 다른 사람이 본다면 신변에 큰일이 생기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게타키치는 사요에게 핸드폰을 돌려주며 경고했다.
“사요 짱, 이거 절대 남에게 보여주면 안 돼.”
“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흥분해서…. 아무튼 게타 군, 도와줄 거죠?”
“예? 아니, 난….”
게타키치는 이번에야말로 거절하려고 했으나 사요가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하루종일 미즈키 씨 사진으로 도배된 곳에서, 하루종일 미즈키 씨의 베이스 커버 곡이랑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요?”
미즈키에게 둘러싸여 하루종일…. 순간 게타키치의 눈앞에 어떤 풍경이 그려졌다. 미즈키의 베이스 연주 사진, 환하게 웃는 사진, 화보 촬영 사진 등으로 빼곡하게 찬 하얀 벽, 미즈키가 좋아하는 크림소다를 마시며 작품 같은 그 사진을 구경한다. 카페 안에는 미즈키의 베이스 커버 곡이 연속으로 흘러나오고…. 상상만 해도 얼굴에 열이 몰릴 만큼 흥분된다. 비록 그것을 온전히 소유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즐겨야 한다는 게 성에 차지 않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안 그래도 최근에 투어 준비하랴, 신학기에 적응하랴 미즈키를 거의 만나지 못했으니 대리만족이라도 할까. 설상가상 이번 콘서트 투어는 신앨범 홍보차 진행하는 거라, 끝아면 바로 음악방송과 방송 활동을 뛰어야 한다. 올해는 영영 미즈키 씨를 못 보는 건가~, 하며 우울해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좋은 기회일지도…?
마을을 고쳐 먹은 게타키치가 고개를 들면 사요가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었다.
“같이 해줄 거죠?”
게타키치의 답은 당연히 예스였다. 그렇게 <미즈키 생일 카페 개최 위원회>가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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