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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당신밖에 모른다
사요가 그 사람을 알게 된 곳은 아버지의 회사가 후원하는 한 지역축제였다. 그가 속한 밴드가 행사 객원가수로 참석해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그 밴드는 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지도가 낮아서, 사요는 그들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사요를 무대 가까이로 데려가더니, 튜닝 중인 사람 하나를 가리키며 소개해줬다. 음대 재학 시절 서포트해주던 녀석이다, 원래 클래식 전공인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졸업하자마자 밴드를 하겠다고 저렇게 됐다, 그건 아쉽지만 재능 있는 녀석이니 조만간 크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랑을 했지만 솔직히 사요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집안 문제로 당시의 사요는 나이에 맞지 않게 회의적인 아이였고 세상의 반짝임이나 사랑따위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간 행사장, 그곳에서 처음 들은 그들의 노래와 즐거운 얼굴로 기타를 연주하던 그 사람. 노래가 좋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모습이 유독 빛났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었다. 동시에 사요는 그가 부러웠다. 저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전력으로 하면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는 얼굴로 웃고 있는 그가 부러웠다. 그를 닮고 싶었고, 무언가를 싶게 사랑하는 감각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사요는 아버지를 졸라 그가 참석하는 행사 무대를 돌고 있었고, 밴드의 앨범을 모으고 줄기차게 콘서트를 다니고 있었다. 그의 음악을 이해하고 싶어 관심없던 분야를 공부하고 밴드를 연구했다. 그가 연주하던 것이 평범한 기타가 아니라 중저음을 담당하는 베이스라는 것도 그 무렵에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그런 사요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으나 아버지는 하나뿐인 딸에게 좋아하는 것이 생겼다는 사실이 기뻤는지 여러 번 그를 데리고 행사장에 직접 방문했다. 그렇게 사요는 그의 완벽한 팬이 된 것이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처음으로 맞이한 봄에 사요는 새로운 인연을 만났다. 바로 그 사람, 사요의 베이시스트와 살고 있다는 클래스메이트. 타나카 게타키치라는 남고생이었다.
♥
기억나지 않는 어린시절부터 게타키치는 미즈키를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대학 후배 겸 밴드 일원. 아버지는 툭하면 미즈키와의 첫만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같은 음대지만 클래식과 경음악으로 전공이 달라 접점이 없었다는 점, 어느 날 아무도 쓰지 않는 풋살 경기장에서 통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던 모습에 빠졌던 것, 밴드 멤버로 섭외하려고 두 달 동안 쫓아다녔던 일화까지.
그때마다 미즈키는 그만하라고 옆구리를 발로 찼으나 게타키치는 몇 번을 들어도 그 이야기가 좋았다. 계속 들어서 머릿속에 새겨넣고 싶었다. 아버지의 그런 노력이 없었으면 게타키치와 미즈키도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 게타키치가 아버지 밴드의 베이시스트 미즈키에게 빠지는 건 당연지사였다.
미즈키의 낡은 빌라가 지진으로 반파되자 그는 부모님의 회유를 이기지 못하고 같이 살게 되었다. 미안하다, 아저씨가 빨리 집을 구해서 나갈게.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즈키가 말했을 때, 게타키치는 서운해서 눈물로 베개를 적셨다. 나는 당신이랑 계속 살고 싶은데. 당신과 한 방을 나눠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데. 여기게 아예 뿌리 내려주었으면 좋겠는데. 그 기도가 먹혔는지 미즈키는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영부영 세 가족의 집에 군식구로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에 올라와 처음으로 맞이한 봄날에 게타키치는 미즈키 열성 팬 하나를 만났다. 이름은 류가 사요, 대학 시절 미즈키를 후원하던 기업가의 딸이자 그의 급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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