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삽니다

아름다운 눈

게나조

篝火 by 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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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체 상해 및 눈알 교환 묘사 주의

너무나 아름다운 눈이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나는 속절없이 사랑에 빠졌다. 저런 하잘것 없는 인간이 갖고 있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홍채였다. 어떻게 저런, 유리알처럼 맑고 파란 홍채가 인간에게 있을 수 있을까. 인간의 눈은 지금까지 구덩이처럼 시커멓게 가라앉은 검정색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저렇게 가을하늘보다 더 짙은 빛으로 반짝이는 것도 존재하는구나. 그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사랑에 빠질 것 같은 자태다. 어떻게 저런 것이 인간 따위에게. 인간 따위가 어떻게 저런 홍채를.

갖고 싶다.

저 눈이 너무나도 갖고 싶다.

저 인간에게서 홍채 한 쌍을 도려내 가지고 싶다. 인간의 신체는 쉽게 상한다니까, 포르말린인가 뭔가에 담아서 썩지 않게 보관해야지. 매일 눈알이 담긴 병을 보면서 아침 인사를 건네고, 사랑의 말을 전하고 싶다. 가끔씩 눈알을 꺼내 혀로 핥고 키스하고 싶다. 인간은 포르말린을 먹으면 죽지만 나는 요괴니까. 아, 아예 저 눈을 내 눈구덩이 안에 넣어 하나가 되면 어떨까! 저 아름다운 홍채가 담는 것이 고작 회색빛에 매연이 가득한 인간 세상이라니, 말이 안 되지. 나는 저 눈에게 더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줄 수 있다. 그것의 광채를 닮은 하늘이나, 깊은 숲속, 형형색색의 새들과 식물, 졸졸 흐르는 맑은 물과 쾌활한 나의 친구들. 그래, 그게 눈에게도 행복할 것이다.

불행한 눈, 아름답게 태어났으나 인간의 것이라는 죄로 저런 냄새나는 인간 무리와 그들의 도시를 담아야 하는 가엾은 눈.

내가 곧 인간의 몸에서 빼주겠다. 그리고 내가 너를 온전히 사랑해주겠다.

아름다운 눈

미즈키가 퇴근길에서 습격을 당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뒤에서 후웅, 하고 바람이 느껴졌다. 그저 지하철이 지나가면서 낸 바람인 줄 알고 무시했더니 수상한 인기척이 느껴짐과 동시에 현기증이 일었다. 보통 컨디션이 급격하게 떨어지면 요괴가 근처에 있다는 신호였기에 미즈키는 키타로가 챙겨준 은호루라기를 불려고 했다.

그러나 호루라기를 불기 직전 무언가가 뒤에서 덮쳤다. 곧 오른쪽 눈을 찌르는 듯한 통증과 함께 무언가가 뽑혀 나가는 충격이 뇌로 전해졌다. 온몸이 아프고 괴롭다고 아우성을 쳤다. 길을 지나가던 몇몇 인간이 비명을 질렀다. 까무러치기 직전 미즈키는 간신히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훅, 불었다. 삐이익―! 요괴의 귀에만 들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거리에 울렸다. 그 소리에 요괴는 화들짝 놀라 왼쪽 눈으로 향하던 손을 거두고 물러났다. 떠났나, 미즈키는 그 생각을 하면서 정신을 잃었다. 오른쪽 눈이 있던 자리에서 다량의 피를 흘리면서.

키타로와 게게로가 도착했을 때 미즈키는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다행히 그 자리에 있던 누군가가 구급차를 부른 덕에 살아남았다. 미즈키는 여전히 의식을 잃고 잠자듯 누워 있었다. 붕대가 오른쪽 얼굴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의사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며 어렵사리 입을 뗐다.

“안구를…, 적출당했습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갑자기 안구가 뽑혀났다고 하더군요. 주변을 철저히 조사했지만 유실된 오른쪽 안구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의사가 떠난 후 키타로는 붕대 위를 손으로 더듬다가 놀라면서 뒷걸음질쳤다. 정말로 오른쪽 눈이 없어요. 키타로는 아버지라면 짐작가는 구석이 있을까 싶어 게게로를 올려다봤다. 그러나 게게로 역시 짐작 가는 바가 없었다. 인간의 신체 부위를 모으는 요괴는 많지 않다. 인간과의 접촉을 꺼리는 이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눈알을 노렸다면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카라스텐구일 확률이 높으나, 그들은 주로 망자의 눈을 훔치지 인간이 돌아다니는 대로에서 급습하진 않는다.

게게로는 병실을 왔다갔다 하며 다른 후보를 떠올리려 했으나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발이 넓은 자신조차 짐작이 가지 않는 요괴라니, 게게로는 끙 앓는 소리를 내면서 의자에 앉았다. 유령족 부자는 간병인용 의자에 앉아 미즈키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 키타로가 고개를 푹 숙이며 자조하듯 말했다.

“저희가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게게로는 손을 뻗어 아들의 폭신폭신한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위로해주려 한 행동이 기폭제가 되었는지 감정 표현이 없는 그 애는 눈물을 퐁퐁 흘렸다. 물기가 배고 갈라진 목소리로 키타로가 말을 이었다.

“호루라기도 있으니까…, 미즈키 씨가 위험에 처해도 금방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키타로는 말을 더 하지 못하고 소매로 눈가를 벅벅 문질렀다. 천에 쓸린 눈가가 빨갛게 쓸렸다. 게게로는 그 흔적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아들을 끌어안았다. 키타로는 온기를 찾는 아이처럼 게게로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직은 작기만 한 등과 어깨를 토닥이고 쓸어내리면서 게게로는 키타로를 위로했다.

“요괴와 인간이 함께 산다는 건 그런 것이란다, 키타로. 인간이 요괴가 있을 곳을 몰아내고 착취하여 우리가 불공평한 대우를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요괴 역시 만만치 않게 인간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때로는 죽음으로 몰고 가지. 그것은 서로의 세계와 규칙을 이해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고, 서로의 사고 방식에 깊은 골이 있어서 그런 게야. 불행하지만 요괴와 인간은 그렇기에 섞여 살기가 어렵지.”

게게로는 ‘섞여 살 수 없다’고 말하려다가 ‘섞여 살기 어렵다’고 정정했다. 그 말은 지금 자신들과 한 집에서 공존하고 있는 미즈키를 부정하는 말이니까. 게게로는 키타로를 더 강하게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그러니 키타로, 이건 너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란다. 물론 앞으로 우리에게 원한을 가진 이가 미즈키를 해코지할 수는 있겠지만…. 설령 그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건 네 탓이 아니란다. 그건 단순히 그 요괴가 인간과 공존할 수 없는 성격이기 때문이고, 애초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타인을 해치는 이는 누구와도 함께 살 수 없는 악인이란다.”

“…아버지 말씀은 가끔 너무 어려워요.”

키타로가 게게로의 가슴팍에 머리를 문지르며 투정을 부렸다. 너도 아비만큼 오래 살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거야. 그나마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진 듯하여 게게로는 키타로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웃음소리를 흘렸다.

하지만 상황 자체는 여전히 곤란하기 짝이 없다. 어서 놈의 정체를 밝혀내 미즈키의 눈을 찾아야 하는데…. 심란한 마음으로 천장을 바라보는데 미즈키가 신음을 흘렸다. 귀가 밝은 유령족은 머리털을 쭈뼛 세우며 몸을 일으켰다. 인상을 쓰며 움찔거리던 미즈키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가려진 오른쪽 시야에 당황하더니, 손을 들어 오른쪽 얼굴을 더듬었다. 붕대를 만지작대던 미즈키는 곧 자신이 당한 일이 떠올랐는지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가 발작을 일으키기 전에 게게로가 팔을 뻗어 그를 꽉 끌어안았다. 머리를 가슴팍에 최대한 붙여서 안아주자 인간보다 느린 심장 박동이 진정시켜주었는지, 가파지려던 호흡이 점점 돌아왔다. 잠깐 고개를 내려 안색을 확인하니 조금 파리하긴 해도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미즈키가 후, 하고 긴 한숨을 뱉으며 게게로를 불렀다.

“…게게로.”

“그래. 나와 키타로가 여기에 있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겐가?”

미즈키는 진정된 목소리로 퇴근길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대로에서 당했다는 부분에서 키타로의 안색이 흐려졌다.

“인간이 많은 곳에서 그런 범죄를 저지를 만큼 정신머리가 나간 요괴는 드문데요.”

“정신머리라니, 어디서 그런 말을 배운 거야….”

키타로의 단어 선정에 미즈키가 자신의 언어습관을 되짚는 사이, 게게로는 진지한 얼굴로 턱을 괴고 생각하더니 불쑥 미즈키에게 물었다.

“눈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라고 했는데, 정확히 어떤 느낌이었나? 찌르는 느낌이었나, 아니면 쪼아대는 느낌이었나?”

“어…. 그런 건 아니었어. 뭐라고 하지? 긴 꼬챙이나 얇은 손가락을 집어 넣어서 뽑아낸 느낌?”

“잠깐, 꼬챙이라고?”

드디어 놈에 대한 단서를 얻었다. 하지만 더욱 골치 아프게 되었다. 정말로 그 요괴라면, 몸을 되찾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게게로에겐 성가신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키타로에게 맡기기에는 아직 어리고…. 반응이 없자 미즈키는 그의 눈치를 살피더니 눈썹을 축 내리며 사과했다.

“미안, 조심했어야 하는데.”

“아닐세. 우리가 방심한 탓도 있었네. 자네 탓은 아니야.”

“하긴, 어떤 요괴가 인간이 득실거리는 퇴근길에 나타나서 습격을 한다고 생각하겠어.”

미즈키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분위기는 전혀 풀릴 기미가 없었다. 미즈키가 다시 게게로의 낯을 살피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게게로, 그 요괴가 누군지 짐작이 가는 거지?”

“어? 음, 그렇긴 하다만….”

“그럼 속시원히 알려줘. 그런다고 내가 널 도와준거나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도는 알자.”

나도 전전긍긍하는 거 싫어서 그래. 미즈키가 웬일로 진솔하게 이야기하자 게게로도 키타로도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떴다. 부자의 반응이 민망했는지 미즈키는 얼굴을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왜, 뭐, 이상한 말을 한 것도 아니잖아.”

“그렇긴 한데…. 이런 곳에서 솔직하게 굴 줄은 몰랐네.”

“미즈키 씨는 툭하면 괜찮다, 아무렇지 않다, 거짓말을 하시니까요.”

“거짓말이라니…!”

나 그렇게 거짓말쟁이는 아니거든?! 미즈키는 반박하려고 입을 벌렸으나 그간 말로 쌓은 업보를 떠올리고 이마를 짚었다. 그렇지, 밥먹듯이 거짓말하곤 했지. 심지어 거짓말로 네즈미오토코를 부려먹은 적도 있었지. 아니 그치만 다 그 상황에선 할 만한 거짓말이었다고? 그리고 아무리 나라도 이런 상황에선 거짓말이 안 나오거든? 차마 입을 열어 항변하진 못하고 미즈키는 꽁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키타로는 미즈키의 변명에는 별 관심도 없다는 듯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래서, 정체가 뭔가요.”

“미안하구나 키타로, 이번 일은 내가 직접 해결해야 겠구나.”

아버지의 일방적인 통보에 키타로는 예상도 못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즈키도 게게로의 말에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키타로가 스무 살이 넘고 요괴 포스트 일을 시작한 후로는 키타로를 믿고 맡기는 쪽이었는데, 그만큼 경험이 부족한 아들에겐 위험한 상대라는 걸까. 미즈키는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대체 뭐길래 그래?”

“백목귀百目鬼. 인간이나 요괴를 홀려 눈을 파내는 요괴라네. 그렇게 빼앗은 눈을 온몸에 두르고 있지.”

으윽, 게게로의 묘사에 미즈키는 바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거북함을 드러냈다. 몸에 백 개의 눈을 달고 사람을 홀려서 눈을 갈취하는 요괴라니, 상상도 하기 싫다. 미즈키가 붕대를 매만지는 사이 게게로가 말했다.

“보통 백목귀가 나타날 때는 달큰한 향이 나는데, 그런 건 없었는가 보군.”

“어어,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선 눈을 뽑아들고 달아났어.”

“흐음, 그것 참 희한한 일이군. 신중한 녀석이기에 그런 우를 범하는 일이 잘 없는데….”

그만큼 미즈키의 눈을 가지고 싶어 안달이 났다는 거겠지. 게게로는 뒷말을 삼켰다. 요괴의 입장에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미즈키의 눈은 유리 공예품처럼 아름다웠다.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인간에게선 볼 수 없는 빛깔이었다. 해가 잘 드는 날에 보면 더욱 투명해보였고, 흐린 날에는 모든 게 어두운 와중에 그 눈빛도 짙어져서 마치 깊은 물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그래, 그가 가진 이름과 어울리는 맑은 눈이었다.

요괴는 아름답고 맑은 것을 좋아한다. 갖고 싶어한다. 비록 그가 걸어온 삶은 진탕이나 다름없지만 그 눈만은 청아하다. 어쩌면 그렇기에 피로 얼룩진 역사 속에서 동정심과 연민을 잃지 않은 것일지도. 여하간, 그 때문에 백목귀가 아니더라도, 미즈키의 눈을 가지고 싶어하는 요괴는 널리고 널렸다. 미즈키의 눈을 칭찬하는 건 예사이고, 몰래 게게로에게 붙어서 미즈키의 눈을 줄 수 없느냐고 묻는 부류도 있었다. 그런 녀석들은 진작 연을 끊어버렸지만.

수소문을 해서 눈색을 바꾸는 약이라도 구해야 하나…. 하지만 그러면 홍채가 탁해진다는데 싫고, 그렇다고 검은 안경으로 눈을 가리고 다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천진하기에 끝도 없이 잔인해질 수 있는 요괴는 곧 음험한 상상을 한다. 아예 아무데도 가지 못하고 어떤 요괴에게도 띄지 않게 집안에 두고 둘이서만 살까….

하지만 그러고 싶진 않다. 미즈키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걸 즐기지 않지만, 그래도 미즈키가 집안에서 가만히 있는 걸 보고 싶진 않다. 봄이 되면 꽃구경도 가고, 여름에는 계곡이나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바다에서 휴가도 보냈다가, 가을에는 단풍을 보고 맛있는 것도 잔뜩 먹고, 겨울에는 눈에 파묻혀서 놀고 싶다. 그러고 싶은 마음이, 미즈키를 안전하게 지키고 싶은 마음보다 더 컸다.

게게로? 갑자기 말수가 적어진 친우에 미즈키가 두려움을 담아 그를 불렀다. 게게로는 불안해하는 어린아이를 달래듯 그의 머리를 쓰다듬은 다음 서슴없이 제 가려진 왼눈으로 손을 옮겼다.

“당분간은 시야가 불편할 테니…. 익숙하지 않더라도 이걸 쓰게나, 미즈키.”

“뭐? 너 지금 뭘…!”

게게로의 기행에 경악할 틈도 없이 붕대가 풀어졌다. 하얀 붕대가 똑같이 하얀 병실 이불 위로 떨어졌다. 게게로가 제 왼눈 위에 손을 올리자, 그의 눈을 닮아 따뜻한 빨간 빛이 딸려나왔다. 동시에 게게로의 왼눈은 빛을 잃고 탁해졌다. 남은 손으로 미즈키의 턱을 잡아 들어올리고는, 텅 비어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있는 미즈키의 오른쪽 눈구덩이에 빛을 조심스럽게 심었다. 으윽, 미즈키가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았다. 버거운 요력이 파고드는 감각에 미즈키는 눈을 찡그리고 싶었으나 붙잡혀 있는 탓에 뜬눈으로 제 안에 차오르는 게게로의 힘을 받아들여야 했다. 마침내 빛이 구덩이 안으로 들어가자, 게게로가 그를 안고 등을 쓸어주었다.

“괜찮네 미즈키, 다 되었네. 이제 잘 보일 걸세.”

하아, 하아. 가파른 숨을 고르던 미즈키는 조심스럽게 눈을 깜빡였다. 시커멓게 가려져 있던 오른쪽 시야가 돌아왔다. 미즈키는 연신 눈을 깜빡이면서 얼떨떨해 하며 물었다.

“이거…, 대체 어떻게….”

“내 눈을 그대에게 옮겨주었네. 뭐 부작용이 살~짝 있을 수는 있겠지만, 유령족 피를 받아들이고도 멀쩡한 자네이니 괜찮겠지?”

“뭐? 눈을? 그럼 넌?”

미즈키가 벌떡 일어날 기세로 경악하며 물었다. 게게로는 그의 어깨를 짚어 도로 눕히며 달랬다. 워워, 말하지 않았던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데에는 한쪽 눈으로도 충분하다네. 키타로가 협탁에 있던 거울을 가져와 미즈키에게 보여주었다. 눈을 옮겼다는 게 정말인 듯 거울에 비친 오른쪽 눈은 게게로의 것처럼 새빨갰다. 빨강에 파랑이라니, 눈이 아픈 색조합이잖냐…. 미즈키는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투덜거렸다.

“기껏 빌려줘서 고맙긴 한데, 너무 눈에 띈다고. 안대로 가려야 그나마 덜 튈 거 같은데.”

“그게 무슨 소린가. 내 호의를 거절하겠다는 겐가?”

“아니아니, 물론 고맙지. 친구에게 눈을 내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요괴랑 인간 모두 통틀어서 너뿐일 거다, 게게로. 그런데 회사에 이러고 갔다간 다들 눈병에 걸린 거냐고 뭐라 할 걸?”

키타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즈키의 편을 들었다. 인간은 눈병이 들면 빨개지는데 전염병도 있어 사람들이 꺼린다고 하니, 아쉬우면서도 일 리 있다고 생각했는지 입술을 비죽 내밀면서 ‘그럼 어쩔 수 없구만’이라고 말했다. 역시 눈 가리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거잖아, 미즈키는 게게로의 속마음을 짐작하고는 살살 달랬다.

“대신 집에 있을 때는 안대 벗고 있을 테니까, 괜찮지?”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미즈키?”

딱 잘라 말하는 듯한 대꾸에 미즈키는 입을 다물었다가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그 백목귀라는 녀석은 어떻게 찾을 건데. 네 성격 상 다른 인간의 눈으로 꾀어낼 거 같지는 않고.”

미즈키가 핵심을 정확히 건드렸다. 타인을 이용하는 걸 싫어하는 게게로의 성격상 누군가의 눈을 얻어다가 미끼로 삼을 리가 없다. 그렇다고 왼쪽 눈을 미즈키에게 준 이상 남은 오른쪽 눈까지 쓸 수는 없을 테고…. 미즈키의 걱정에 게게로는 후후, 웃음으로 대답했다. 그것이야 다 방법이 있지.


“이거면 되겠나?”

“음, 미즈키의 눈만큼 아름답지는 않지만 이 정도라면 백목귀가 홀릴 만 하겠군.”

게게로는 유리 츠구모가미가 만들어낸 유리 세공품을 만족스럽게 둘러보며 웃었다. 그의 손에는 파란 의안이 하나 들려 있었다.

미즈키에게 당부의 말 오십 가지 정도를 남긴 후 게게로는 수소문을 해 유리장인을 만나러 갔다. 이제는 문을 닫은 유리공방에 깃든 츠구모가미는 게게로가 참고용으로 건네준 미즈키의 눈 사진을 보자마자 ‘거 참, 이렇게 깨끗한 눈이 있다니’라며 반한 듯 중얼거렸다. 게게로가 가만히 쏘아보자 츠구모가미는 왜 이것과 닮은 의안을 만들려고 하는지 물어보았고, 게게로는 백목귀가 그를 노리고 있다고 짤막하게 설명했다.

다행히 유리 츠구모가미는 인간에게 악의는 없는지 게게로의 부탁을 군말 없이 들어주었다. 바가지를 쓴 기분이 들긴 했지만 완성된 의안을 보니 맡기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백목귀를 홀릴 만큼 아름다운 눈이긴 했다.

“그래서, 이제 그걸 인간에게 줄 건가? 정성이군.”

츠구모가미가 장비를 갈무리하며 물었다. 게게로는 의안을 소매 속에 소중하게 넣으면서 말했다.

“아니, 그에게는 내 왼눈을 주었네. 이건 내가 쓸 걸세.”

“뭐? 설마 백목귀를 잡을 생각이야 형씨?”

당신이 아무리 유령족이라도 지금 상태로는 조금 힘들지 않나 싶은데. 츠구모가미는 게게로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그의 말대로 여전히 게게로의 요력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만약 그 백목귀가 소문대로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면 게게로가 무조건 밀린다. 흠, 게게로는 츠구모가미의 충고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 츠구모가미여, 혹시 백목귀에 약점에 대해 들은 바가 있는가?”

“그런 게 있었으면 진작 모든 요괴가 눈을 돌려받고도 남았을걸? 워낙 두문불출하는데다 사냥을 할 때는 달큰한 향을 흘려서 상대의 혼을 쏙 빼놓으니, 대처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야. 정보도 턱없이 적고.”

“어쩌면 상황이 조금 다를 수 있네. 미즈키는 그 향을 맡지 못했다고 했으니.”

“그게 무슨 소리야? 향을 맡지 못했다고?”

츠구모카미는 말이 안 된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게게로도 내내 그 점이 마음에 걸렸으나, 요괴도 인간도 언제든 돌발행동을 할 수 있는 존재이니 크게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츠구모가미는 연신 ‘그럴 리가 없는데’하면서 공방을 빙빙 돌았다. 이내 진지한 낯으로 변한 츠구모가미가 게게로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형씨, 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답니까? 예를 들면 바람 소리 같은 게 들렸다든가.”

“바람 소리?”

그러고 보니 미즈키가 그 말을 했다. 지하철이 지나가면서 바람 소리가 들렸다고. 게게로는 침을 삼키면서 츠구모가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달리 짐작가는 요괴가 있는가?”

츠구모가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를 공방 안으로 데려갔다. 그는 손님 이름이 적힌 노트를 펼쳐 넘기더니 한 이름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노부스마, 오래 산 박쥐가 날다람쥐로 둔갑한 요괴야. 원래는 생물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데, 날아다니기 때문에 이 녀석이 나타날 때는 바람 소리가 들려.”

게게로는 노부스마 옆에 적힌 날짜를 확인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미즈키가 습격을 당한 바로 그날이었다. 츠구모가미를 빤히 바라보니 그가 한숨을 쉬면서 이실직고했다.

“그래, 사실 형씨가 찾아오기 며칠 전에 노부스마가 찾아왔어. 인간의 눈을 넣을 수 있을 만한 크기의 유리병을 만들어 달라고 하더군. 웬일로 생피가 아닌 눈을 훔쳤느냐고 물었더니 너무 아름다운 눈이라 가지고 싶었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형씨가 가져온 인간의 사진을 보니까, 그 놈이 훔친 눈이 그 인간 게 아닌가 싶어. 너무 아름다웠거든. 저 눈과 똑같은 유리 의안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들 정도로.”

츠구모가미는 진지한 표정으로 게게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조심해야 해, 형씨. 그녀석 지금은 노부스마지만, 야마치치가 되면 수명 자체를 빨아먹는다고. 자칫하면 눈을 탐해서 인간을 죽일지도 몰라.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게게로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역시 부족하다. 하나로는 안 된다. 다른 하나도 갖고 싶다. 양쪽 눈에 그 아름다운 눈을 끼고 돌아다니고 싶다. 그렇다면 반짝이는 낮에도 활보할 수 있을 텐데!

그 후로도 나는 만족하지 못하고 그 인간의 집 창가를 얼씬거렸으나, 작은 유령족 때문에 감히 침입하지 못하고 나뭇가지에 매달려 그놈이 나갈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어린 유령족은 내 기척을 감지라도 했는지 한 시도 그 집에서 나가지 않았다. 인간이 잠든 밤에도 시퍼렇게 눈을 뜬 채로 창가를 응시하는 게 마치 인간들이 만들어낸 괴담 속 유령 같았다. 어린 주제에 독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애새끼는 애새끼. 곧 있으면 나는 야마치치가 된다. 그때가 되면 저 어린 유령족은 내 라이벌도 되지 않는다. 아주 완벽하게 짓밟아준 다음 보란 듯이 인간의 남은 한쪽 눈도 가져가야지. 그리고 모든 요괴의 부러움을 살 것이다. 완벽하다, 아주 완벽한 계획이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된다. 다음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나는 세상에서 완벽한 요괴가 되어 천하를 호령할 것이다. 대륙 건너에 있다는 벡베어드도, 뉴라리혼도, 유령족도 내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없는 눈을 나는 가지고 있으니까!

아니 그런데 어디선가 자꾸 피냄새가 나는데…. 뭐냐 이 달콤한 냄새는.

게게로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노부스마를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걸려들었구나, 역시 피 냄새에 사족을 못 쓴다더니 금방 집중력이 흐트러져 날아온다.

냄새를 맡고 온 노부스마는 열심히 코를 킁킁거리다가 바닥에 고인 피를 보고 씨익 웃었다. 누군지 몰라도 이곳에서 큰 상처를 입고 도망치는 중인가 보다. 안 그래도 사흘 내리 감시를 하면서 배가 고팠는데, 그날을 위해 충분히 배를 채울 수 있겠구나. 노부스마는 땅에 코를 박다시피하며 피를 마셨다.

“으음? 으으으음?!”

갑자기 입을 타고 전신에 강렬한 전격이 돌았다. 노부스마는 급히 입을 떼려 했으나 온몸에 짜릿하게 전해지는 충격에 힘이 빠져나갔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경악하면서 고개를 들자 피웅덩이를 밟고 있는 사내가 보였다. 한쪽 눈을 가린 백발의 사내는 누가 봐도 병실에 있는 어린 유령족의 친족이었다.노부스마가 몸을 덜덜 떨면서 간신히 외쳤다.

“유, 유령족…!”

“유령족의 친우를 건드렸으니, 이 정도 각오는 했어야지 않겠나?”

게게로는 하나 남은 오른쪽 눈을 형형하게 빛내면서 몸을 굽혔다. 분명 피를 마실 때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노부스마는 그제야 자신이 상대를 과소평가했음을 깨닫고 공포심에 손을 떨었다.

게게로는 그의 오른쪽 눈에 박혀 있는 이질적인 빛을 바라봤다. 요괴의 것이 아닌 인간의 것, 하늘처럼 파란 친우의 눈. 게게로는 그 눈을 가리키며 명령했다.

“이 눈,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게.”

“시, 싫은데. 이, 이걸 어떻게 얻었는데…!”

한 방 먹었음에도 노부스마는 물러서지 않고 악을 썼다. 말이 통하지 않는 요괴로고. 게게로는 안타깝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수풀에서 노부스마도 아는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녀석입니까?”

“요, 요괴병원 원장…?”

저 녀석이 대체 왜 여기에? 노부스마가 의문을 가질 새도 없이 원장은 진료 가방을 꺼냈다. 거기에서 나타난 것은 청진기 등의 가벼운 도구가 아니라, 누가 봐도 도려내고 들어내고 뽑아내기 위한 수술 도구들이었다. 요괴의사는 대충 메스를 들며 게게로에게 물었다.

“이 안구만 적출해내면 되는 거죠? 마취는 잘 되었고요?”

“유령족의 생체 전기를 얕보지 말게나, 원장 양반.”

“자, 잠깐?! 우린 같은 요괴잖아! 이래도 돼?”

노부스마가 빽빽거리며 항의했다. 원장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노부스마를 한 번 쳐다봤다가, 어깨를 으쓱이며 메스를 들이댔다.

“글쎄, 그런데 난 이미 유령족 나리에게서 좋은 물건을 받아가지고.”

꺄아아아악! 뒤뜰에서 노부스마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들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요괴가 며칠 썼던 거라 요력이 뭍어서 한동안은 이상한 충동이 들거나 까닭 없이 두통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이 약을 드시면 됩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미즈키는 원장이 준 가루약 봉투를 받으며 고개를 꾸벅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게게로가 미즈키의 눈을 되찾아왔고, 요괴병원 원장의 집도 하에 안전하게 이식에 성공했다. 나흘 동안 게게로가 미즈키에게 주었던 그의 왼눈은 무사히 주인에게 돌아갔다. 게게로는 어색함에 눈가를 만지는 미즈키에게 물었다.

“내 눈으로 지내는 동안 불편함은 없었는가?”

“말도 마라. 보는 사람마다 눈이 왜 그 모양이라고 묻더라. 진짜 안대를 해야 하나 생각했다니까….”

“그런데 결국은 안 하지 않았나.”

게게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순수하게 궁금하다는 투로 묻자 미즈키는 우물쭈물하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헀다.

“아니, 그래도 예쁜 눈인데 어떻게 가리고 다니냐…. 그냥 눈병 환자로 의심받고 말지.”

게게로의 눈이 수박만큼 커지고, 키타로는 아버지들의 애정공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원장은 게게로에게 받은 것을 소중히 유리병 안에 넣으며 말했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유령족 나리. 요즘은 이런 질 좋은 의안을 찾기도 드문데.”

“아닐세. 이쪽이야말로 내 계획에 동참해주어서 고맙네.”

“아, 맞아. 백목귀는 대체 어떻게 잡은 거야? 너 혼자로는 안 된다고 그랬잖아.”

게게로는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고 있는 미즈키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예의 순진한 미소를 지었다. 백목귀가 아니라 노부스마이고, 제 피를 미끼로 삼았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미즈키가 길길이 날뛰곘지. 가끔은 말하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는 법. 게게로는 그것을 저 거짓말쟁이 인간 친구에게서 배웠다.

“뭐, 다~ 방법이 있네!”

미즈키는 석연치 않다는 표정으로 게게로를 쳐다봤으나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태도로 유야무야 넘겼다.

그리고 입이 가벼운 네즈미오토코에 의해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미즈키가 귀가한 게게로를 붙잡고 백드롭을 시전하는 것은, 정확히 일주일 후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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