みづき

게나조

篝火 by 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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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타로+미즈키

  • 트위터 썰 기반, 환생 설정

“미즈키観月, 뭐 해?”

타나카와 후지가 돌아보며 물었다. 미즈키는 주춤거리다가 바로 몸을 돌려 무리에 합류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말하는 것과 달리 자꾸 뒤를 흘끔거린다. 그보다 반 걸음 앞서가던 타나카와 후지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다가 미즈키의 손을 덥석 잡았다. 미즈키가 기겁할 틈도 없이 친구들은 그대로 미즈키를 들다시피하며 뛰어갔다. 내리막길이라 가속이 붙으며 발이 꼬이려고 했다. 우와아아아악! 마치 무서운 것을 잊으려는 어린애들처럼 세 아이는 비명을 지르면서 단숨에 문방구까지 뛰어내려왔다. 관성이 붙은 탓에 멈추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들은 문방구를 넘어 부동산, 카페, 영어 교습소와 피아노 학원을 지나친 다음에야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질주를 멈추었다. 미즈키는 무릎을 짚고 노랗게 질린 얼굴로 헥헥댔다. 타나카는 턱에 맺힌 땀을 소매로 슥 닦고서 미즈키에게 물었다.

“또 그게 쫓아와?”

추궁이나 비난보다는 걱정에 가까운 어조였다. 미즈키는 유치원 때부터 함께한 소꿉친구들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타나카와 후지의 얼굴이 금방 심각해졌다. 미즈키는 어린 시절부터 이상한 것이 잘 꼬였다. 눈도, 귀도, 가슴팍의 흉터도 모두 이유를 알 수 없는 사고로 생겼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것을 타타리祟라고 불렀다. 네 영혼이 워낙 맑아서 저것들이 시샘하는 거다. 그러면서 경로당의 할머니들은 유치원 아이들에게 너희가 미즈키를 잘 지켜봐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대도시에서 나고 자라 괴담과 거리가 먼 아이들이었지만 그들은 유치원에 가기 전부터 미즈키에게 온갖 사건사고가 꼬이는 것을 부모로부터 듣고 제 눈으로 보았다. 같은 유치원을 나온 아이들은 미즈키를 과보호하는 경향이 있었고, 특히 미즈키의 앞집과 옆집에 사는 타나카와 후지는 부모님까지 극성이었다.

그래도 중학교에 들어간 후로는 잠잠했는데, 1년 만에 타타리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미즈키는 한참 숨을 고르다가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말했다. 이제 괜찮아, 간 거 같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타나카와 후지는 괜찮다는 미즈키의 말을 무시하며 그를 집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들은 혹시나 이상한 게 또 붙진 않을까 미즈키의 집 앞을 한참 서성거렸다. 그래봤자 타타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그들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떻게 해야 미즈키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을까. 타나카가 푹 한숨을 내쉬는데 옆에서 핸드폰을 하던 후지가 화면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의뢰를 해 볼까?”

후지가 보여준 것은 2ch 사이트의 괴담 스레드판이었다. 맨 위쪽에 고정된 최고 인기 게시글은 ‘요괴 포스트’에 대한 내용이었다. 요괴 포스트라면 타나카도 언뜻 들은 적이 있었다. 그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 마을에서 흉흉한 일이 잇달아 일어나 아이들 사이에서 괴담이 유행했다. 그때 타나카의 학우 중 하나가 언급했다. 요괴 포스트 앞으로 편지를 적으면 ‘게게게의 키타로’가 사건을 해결해준다고. 게게게의 키타로라니, 해괴한 이름이라고 생각할 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타나카는 그저 미즈키가 불행 속성을 타고났기 때문에 자잘한 사건사고에 휘말리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바로 그 해 미즈키가 카미카쿠시를 당하고, 왼쪽 눈과 귀가 찢어져 피를 철철 흘리면서 열흘 만에 돌아오기 전까지는.

타나카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후지가 바로 DM으로 사연을 전달했다. 후지가 전송 버튼을 누르는 것까지 지켜본 다음에야 그들은 제 집으로 흩어졌다. 그러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 밤이 깊어질 때까지 미즈키와 채팅을 나누다가 잠에 들었다.

미즈키는 다음날 멀쩡히 등교했다. 간밤에 이상한 것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오히려 너무 깊이 자서 지각을 할 뻔했다고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그런 일을 수도 없는 겪는데도 털어내는 게 빨라서 다행이다. 아니면 평범한 사람은 살면서 한 번 겪을 일을 너무 자주 겪어서 달관한 걸까. 그래도 어제 일이 꽤나 충격이었는지 미즈키는 주변을 두리번댔다. 후지는 애매하게 웃은 다음 미즈키의 옆에 딱 붙어서 등굣길을 올라갔다. 선도부인 타나카는 항상 30분 일찍 집을 나서기 때문에 등굣길을 후지가 늘 챙긴다. 타나카는 미즈키에게 비밀로 하라고 했지만 후지는 당사자의 일이니 말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요괴 포스트에 네 이야기를 올렸어.”

“요괴 포스트?”

미즈키가 얼굴을 찡그리며 반문했다. 자신의 허락 없이 남의 이야기를 올린 것에 화가 난 모양이다. 역시 괜한 오지랖을 부렸나, 하지만 미즈키가 계속 이상한 것에 쫓기면서 사는 건 소꿉친구로서 반갑지 않다. 후지는 요괴 포스트 홈페이지를 열어 미즈키에게도 보여주었다.

“왜, 그 도시전설 있잖아. 게게게의 키타로라고. 여기에 의뢰를 하면 ‘그’ 키타로가 문제를 해결해준대.”

“도시전설이 아니야.”

“엥?”

엉뚱한 대답에 후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걸 믿느냐, 너 내 이야기를 함부로 남에게 해도 되는 거냐, 이런 소리를 할 줄 알았는데 그의 입에서는 전혀 생뚱맞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도시전설이 아니라니, 마치 당사자를 직접 만나본 듯한 말이다. 미즈키는 뜸을 들이다가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틀었다.

“아무튼, 키타로는 진짜로 있어. 요괴 포스트도.”

“뭐, 뭐야. 너 만난 적 있어? 키타로를?”

“몰라, 기억 안 나.”

미즈키는 퉁명스럽게 이야기하고는 신호등이 곧 바뀐다며 먼저 뛰어갔다. 바보가 된 기분으로 후지는 미즈키를 따라갔다.

후지는 그날 하루종일 미즈키를 쫓아다니며 키타로에 대해 추궁했지만 미즈키는 꿋꿋하게 입을 다물었다. 5교시 쉬는 시간에는 제발 그 애기 좀 그만 하라며 미즈키가 폭발하기까지 했다. 타나카도 나서서 미즈키 편을 들었다. 후지, 네가 오컬트에 흥미가 있는 건 알겠는데, 미즈키 좀 그만 괴롭혀라. 졸지에 후지만 억울해졌다. 그치만 미즈키가 먼저 이상한 말을 했는데! 후지는 속으로 끙끙 앓기만 했다.

みづき

그를 만난 건 그날 저녁 방과후 시간이었다. 후지는 도서부 신간 작업으로, 미즈키는 관현악부 정기 연주회 연습으로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 남아 있었다. 타나카는 미즈키와 달리 요괴나 귀신을 보지는 못하지만 감이 좋았다. 타나카는 후지를 놀리려고 가려다가, 어쩐지 그것이 학교에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발을 돌려 음악실로 향했다. 선생님의 피아노 박자에 맞추어 미즈키가 개인 연습을 하고 있었다. 다른 이변은 보이지 않았다.

타나카는 안도하며 미즈키의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역시 미즈키의 첼로는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 단단하고 정석적으로 흐르다가 제 마음대로 변주와 기교가 들어가는 것이, 평소에는 얌전하지만 할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성격과 어울린다. 미즈키는 사이타마현에서 첼로를 가장 잘 켠다. 아직 고등학교 2학년임에도 유명한 음대에서 미즈키를 수석으로 데려가려고 기웃거리는 중이니 그 재능은 두말 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다. 이런 실력을 두고 체질 때문에 사람들이 다칠까봐 그만두려고 했다니, 절대 안 되지. 타나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역시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은 소리구나.”

학교에서도 마을에서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가 바로 왼쪽에서 들렸다. 어라? 타나카가 눈을 반짝 떴다.

“아버지, 조용히 하세요. 아직 연습 중이잖아요.”

뒤이어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타박했다. 성인이라기엔 조금 얇고 허스키한, 동시에 하늘하늘한 느낌이 드는 특이한 미성이었다. 부자 관계인가? 타나카는 고개를 조심스럽게 돌려 낯선 청중을 살폈다. 족히 180은 될 법한 훤칠한 남성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푸른 차이나 칼라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위에는 검정과 노랑 줄무늬가 섞인 조끼를 걸쳤다. 신기하게도 신발은 게다였다. 굽이 조금 있는 게다라 걸을 때마다 달각달각 소리가 날 것 같았다. 그리고 부드럽게 떨어지는 갈색 반곱슬 머리카락 위에는――.

마치 부속품처럼, 새빨간 눈동자 하나가 달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어릴 적 입에서 입으로 아이들이 나르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의 ◇◇◇는 게다 소리를 내면서 다가온다’

‘◇◇◇의 머리에는 새빨간 눈동자가 달려 있는데, 아버지라고 하더라.’

타나카는 저도 모르게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게게게의 키타로….”

도시전설 속 소년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 외형은 누가 보아도 키타로였다.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키타로가 그를 쳐다봤다.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한기가 느껴졌다. 마치 누구길래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느냐고 조용히 추궁하는 듯한 눈빛. 다른 요괴 만화를 보면 감히 인간 주제에 나를 보았다며 저주를 내리는 것들이 있던데, 키타로도 설마? 타나카는 조용히 침을 삼켰다.

그러나 키타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하라는 듯 검지를 입술에 붙이고는, 그대로 손가락으로 음악실 안쪽을 가리켰다. 아, 아직 연습 중이니까 조용히 하라는 건가. 타나카는 키타로의 눈치를 살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키타로는 다시 타나카를 가리키더니 복도 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손짓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자, 키타로는 난처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자, 오늘 연습은 여기서 끝. 내일 보자, 미즈키.”

“네.”

때마침 연습이 끝났다. 선생님이 미즈키의 이름을 부르자 키타로는 눈에 띄게 놀란 기색을 보이며 음악실 안을 보았다. 곧 그는 잔잔하게 미소를 지었다가, 미즈키의 얼굴을 보고는 다시 안색이 흐려졌다. 선생님은 미즈키와 몇 마디 상담을 나누다가(아마 고교 진학 상담이었을 것이다) 앞문으로 먼저 나왔다. 선생님은 타나카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다가 그의 옆에 있는 의문의 남성을 보고 멈칫했다.

“타나카, 저기, 그 분은….”

“아, 저는….”

“아, 아아! 사실 제 사촌 형인데, 휴일이라서 오랜만에 왔거든요. 미즈키는 요즘 뭐 하고 지내냐길래 관현악부에서 첼로를 한다고 하니까 연주를 듣고 싶다고 사정사정을 해서…!”

타나카는 오늘처럼 자신의 순발력과 말빨에 감탄한 적이 없었다. 다행히 외지 사람인 선생님은 타나카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선생님은 키타로와 인사를 나누고 미즈키의 연주 실력에 대해 찬사를 늘여놓은 다음 교무실로 향했다. 선생님의 등에 대고 인사를 한 타나카는 그대로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죽는 줄 알았네에.”

“니가 무슨 사촌 형이 있어.”

“으아아악!”

타나카는 말 그대로 그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첼로를 진 미즈키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타나카를 바라보다가 그의 옆에 가만히 서 있는 키타로와 마주쳤다. 미즈키는 놀란 눈으로 몇 번 입술을 달싹이더니 그를 손으로 가라키며 말했다.

“키타로…, 맞지?”

“응, 오랜만이네.”

“뭐, 뭐야? 둘이 진짜 아는 사이야?”

“내가 키타로는 있다고 했잖아.”

“언제? 언제 만났는데?”

미즈키가 피곤하다는 티를 내면서 대꾸하자 타나카가 어깨를 잡고 흔들면서 채근했다. 키타로는 그들을 말리고 물었다.

“요괴 포스트에 의뢰한 후지 마사오가 너야?”

“어, 아니. 나는 타나카 가네히로고, 후지는 지금 도서관에 있을 걸?”

키타로는 고개를 한 번 기울였다가, 한적한 곳으로 가자고 말했다. 역시 요괴라 다른 사람 눈에 띌 수는 없는 건가. 타나카는 두 사람과 눈알 하나를 구 과학실로 이끌면서 후지에게 연락을 넣었다. 키타로가 왔으니 구 과학실로 오라고.


원래 구 과학실은 일반 학생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지만, 선도부장인 타나카는 불량학생을 적발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모든 교실의 열쇠를 갖고 있다. 그건 권력 남용이 아니냐고 미즈키가 지적하자, 타나카는 그러니까 평소 행실이 중요한 법이라고 이죽였다. 미즈키가 그럼 나는 불량 학생이라는 거냐고 투덜거리던 것도 기억난다. 그런데 지금은 진짜 불량 청소년이 된 거 같은 기분이네. 타나카는 구 과학실 자물쇠를 풀면서 생각했다. 외부인을 학교로 들인 것도 모자라서, 그를 출입금지된 곳으로 부르다니.

후지는 키타로를 보자마자 눈을 반짝이면서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허둥댔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 키타로는 팔짱을 끼고 세 사람이 각자 떠드는 것을 관조하고 있었다. 딱히 키타로가 말리진 않았기 때문에 후지는 셔터를 눌렀다가,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화면에 실망했다.

“역시 요괴는 핸드폰에 담기지 않는 걸까.”

“그렇지만 일반 디지털 카메라나, 필름 카메라에는 유령이 종종 나오잖아.”

“혹시 아직 스마트폰 카메라에 적응하지 못한 걸까?”

타나카와 후지가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키타로는 미즈키에게 손을 내밀었다. 미즈키가 영문을 모르고 그저 바라보기만 하니 키타로가 짤막하게 말했다.

“왼손, 잠깐 줘 볼래?”

“엉? 어.”

순금 덩어리라도 만지듯 미즈키의 왼손을 소중히 잡고, 새끼손가락을 빤히 바라보던 키타로가 갑자기 손가락을 꼬집었다. 아야, 미즈키의 신음에 친구들이 바로 고개를 들고 키타로를 쳐다봤다. 키타로는 살을 꼬집고는 무언가를 밖으로 빼내듯 잡아 당기는 시늉을 냈다. 미즈키는 키타로의 엄지와 검지에 잡혀 제 새끼손가락에서 빠져나오는 가느다란 실을 보았다. 그것은 본래의 색을 추측할 수 없을 만큼 바래 회색빛을 띠었다. 키타로는 후지와 타나카를 불러 그것을 보여주었다. 꼬질꼬질한 실을 보고 타나카가 물었다.

“이게 뭔데?”

“키타로의 머리카락이다. 정확히는 키타로의 요력이 담긴 머리카락이지.”

눈알이 대신 대답했다. 키타로가 설명을 이었다.

“미즈키는 안 좋은 게 잘 꼬이는 체질이라, 내 요력이 담긴 머리카락을 새끼손가락에 감아서 보호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게 힘을 다해서 지금 그게 다시 나타난 거지.”

그러면서 키타로는 미즈키에게 물었다. 그날 이후로, 이상한 게 보이지 않았지? 미즈키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언제인지 말하지 않았지만 친구들은 눈치챘다. 카미카쿠시 당한 그때구나. 키타로는 그들의 표정을 보고는 한숨을 흘렸다.

“너희도 아는구나.”

“뭐…. 워낙 유명한 사건이니까.”

미즈키는 담담하게 말헀다. 그 여름밤, 담력시험이 끝나고 점호를 하는데 미즈키가 없었다. 그때까지 미즈키가 없다는 걸 알아챈 사람이 없다는 것도 이상했다. 선생님들은 혼비백산 해 뒷산으로 올라갔으나 미즈키를 찾을 수 없었다. 담당 선생님은 바로 가까운 경찰서로 찾아가 실종신고를 냈다. 경찰견까지 동원해 인근 마을까지 수색했으나 미즈키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이든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카미카쿠시야, 타타리가 기어코 미즈키를 데려간 거야. 상황은 극단적으로 번져 지역 방송에도 나오고, 일부 사람은 미리 장례를 치뤄야 하는 거 아니냐는 불길한 소리까지 했다. 그러다가 열흘 째 되는 날, 실종된 그 시간에 미즈키가 제 발로 돌아왔다. 왼쪽 귀와 눈에 큰 흉이 진 것 빼고는 멀쩡했다. 어른들이 어디에 있었느냐고, 어떻게 돌아왔느냐고 물었지만 미즈키는 말하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입만 꾹 다물고 있었다.

그 당시를 회상하던 후지가 ‘아!’하고 소리치면서 미즈키에게 물었다.

“혹시 그때 키타로를 만난 거야?”

미즈키는 눈치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때 키타로가 도와줬어.”

“늪 요괴가 납치했지. 요괴에게 홀려 있어서 아마 자세한 것은 기억나지 않을 게다.”

아, 그래서 얘기를 안 했던 거구나. 미즈키 역시 ‘내가 그럤어?’하는 표정이었다. 키타로는 허름해진 제 머리카락을 보면서 말했다.

“10년은 거뜬히 버틸 만큼 담았는데…. 이번에 꽤나 골치 아픈 게 엮였나 보네.”

“많이 심각한 거야?”

미즈키는 겁 먹은 듯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키타로는 그럴지도, 라고 중얼거리고는 조끼를 보았다. 미즈키에게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끄집어낼 때처럼, 얇은 실을 잡듯 엄지와 검지를 붙이고는 조끼에서 황금빛 실가닥을 뽑아냈다. 반짝이는 머리카락은 키타로의 것보다는 두꺼웠다. 키타로가 다시 미즈키의 왼손을 잡고 실을 새끼손가락에 대자, 무슨 마법이라도 걸린 듯 실이 새끼손가락에 감기면서 반지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오오, 후지와 미즈키가 동시에 감탄사를 뱉었다. 키타로가 말했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모야. 이 정도면 당분간은 내 도움이 없어도 될 거야.”

“영모라니?”

“우리 유령족은 죽을 때 영모라는 힘을 실 형태로 남긴다네. 내 아내는 강인한 이였으니 아마 자네도 지켜줄 걸세!”

눈알이 뿌듯해하는 자세로 설명했다. 왜 당신이 흐뭇해하는 건데. 미즈키는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런데, 게게게의 키타로는 불친절한 편 아니었어?”

키타로가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아버지와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고 보니, 라면서 후지도 거들었다.

“키타로는 인간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던데. 요괴 때문에 인간이 피해를 입은 경우에는 도와주지만, 마냥 인간의 편도 아니라고….”

“소문이 다 그렇지 뭐.”

“역시 그런가?”

타나카가 한마디 하자 팔랑귀 후지는 또 수긍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키타로는 세 소년을 바라보더니 두 사람에게 매정하게 말했다.

“타나카, 후지. 미안한데 너희 먼저 가봐.”

“엑? 왜?”

“미즈키에게 따로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그러면서 손을 휘휘 젓기까지 한다. 완벽한 축객령에 후지는 풀이 죽어서, 타나카는 키타로를 한 번 흘겨보면서 구 과학실을 나섰다. 방해꾼이 사라자지 키타로는 팔짱을 풀면서 미즈키와 눈을 마주쳤다. 성장한 키타로는 미즈키보다 훨씬 더 커서 미즈키가 고개를 들어야 했다. 낯선 각도에 키타로는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항상 당신이 나를 내려다보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는데. 역시 다음에 만날 때는 펴소처럼 어린 애 모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키타로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네게 타타리가 잘 꼬이는 이유는, 유령족인 나와 연이 깊기 때문이야.”

“어…, 우리 겨우 두 번 만났는데? 전생의 연 뭐 이런 거야?”

“응. 맞아.”

“에엑?!”

쓸데없이 무겁고 진중해진 분위기를 풀려고 던진 농담이었는데, 미즈키는 놀람과 황당함에 키타로를 빤히 쳐다봤다. 미즈키가 믿든 믿지 않든, 키타로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

“처음에는, 부자 관계였어. 아, 물론 네가 양아버지였지.”


첫 번째 생에서도 당신의 이름은 미즈키水木였어. 한자는 다르지만. 양자와 양부로 만난 우리는 수신 때문에 헤어졌지. 그 해는 유독 장마가 많았고, 그만큼 물이 자주 넘쳤어. 다른 마을에서 일어난 홍수로 집을 잃은 요괴를 도와주다가, 당신을 잃고 말았지. 그때 나와 아버지는 펑펑 울었어. 당신을 만나기 위해 저승에 갔다가, 당신이 환생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어. 그때부터 우리는 다짐했지. 다음에 태어날 당신을 위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로. 요괴와 인간이 서로의 영역을 지키면서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자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뜻을 같이 하는 요괴를 많이 만나서 괜찮았어.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 하나가 있었으니까.

그 다음에도 당신은 미즈키瑞貴로 태어났어. 한 10년 정도 걸렸지. 당신은 한 평범한 집안의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어. 평화로운 시대에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 그 삶에서 당신은 평탄하게 살았지만, 오래 살지는 못했어. 교통사고를 당했거든. 나중에 알게 된 건데, 당신이 사고를 당했던 교차로에는 지박령이 하나 있었어. 길동무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나는 뒤늦게 그것을 성불시켰어. 더 이상 당신과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100년 동안 당신은 瑞稀, 深月, 水稀 등으로 태어났고 채 50을 넘기지 못하고 죽기를 반복했어. 환생 시기도 사망 원인도 제각각이었지. 가장 끔찍한 사인은 쿠마아라시熊嵐, 일본에서 일어난 곰 습격사건을 총체적으로 이르는 은어였어. 알고 보니 진짜 곰이 아니라 곰 형태를 한 요괴가 잡아먹은 것이더라고. 그 곰 요괴를 잡는 데는 꽤 애를 먹었어. 그 곰이 독을 쓰는 녀석이었거든. 유령족도 꼼짝 못 하는 독이라니, 다시 상상하고 싶지도 않아. 그 독에 죽어간 당신을 상상하는 건 더 끔찍하고.

어째선지 당신은 줄곧 미즈키라는 이름이었어. 쓰는 법은 다르지만 읽는 법은 똑같은 ‘미즈키’로. 이따금 당신의 첫 생에서, 우리의 연이 영혼에 너무 깊게 각인되는 바람에 항상 그 이름으로 태어날 수밖에 없도록 인과가 정해진 게 아닐까 생각해. 이제까지는 한 발씩 늦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을 거야. 더 잘못되기 전에 당신을 만났으니까. 그것에 감사하고 있어. 미즈키.


“그, 혹시 내가 죽을 때마다 요괴가 얽혀 있었어?”

키타로의 고백을 전부 들은 미즈키는 혼란스러운 머리로 물었다. 키타로가 복잡한 마음으로 시선을 돌리자 눈알이 대신 설명했다.

“유령족에게 특별한 인간이란 그런 법이다. 요괴들이 호기심에 손을 댔다가 독이 올라서 죽는 게지.”

“아…. 한 번 상처난 곳을 계속 만지면 흉이 지는 거랑 비슷한 건가?”

미즈키가 더듬거리며 예시를 들자 눈알은 그런 거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알만 있는데도 웃는 표정이 상상이 갈 수 있구나…. 미즈키는이제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엉뚱한 생각을 했다.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그를 보고 키타로는 결심한 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와도 가까이 하면 안 돼.”

“엑? 왜? 전생에 내가 아버지였다면서?”

훈훈한 분위기로 내심 끝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키타로의 새로운 폭탄 발언에 미즈키는 전생 운운할 때보다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마음만 같아서는 키타로도, 아버지도, 미즈키와 같이 있고 싶었다. 그의 옆에서 살면서 그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키타로도 아버지도, 결국에는 요괴니까. 요괴와 인간은 서로의 세계를 간섭하지 않으며 서로 모른 채 살아가는 게 제일 낫다는 걸, 100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나오면서 깨달았으니까.

당신을 아끼니까, 당신이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잠깐의 헤어짐도 참을 수 있어. 요괴는 불멸이니까. 50년도 요괴에게는 금방 지나가는 시간이니까.

“나도 요괴니까.”

그 말에 미즈키는 바로 슬픈 표정을 지었다. 여전히 안 그런 척 상냥한 사람이구나. 당신은 모든 생에서 그랬다. 고란해하고, 귀찮아 하면서도 꼭 남의 편을 들어주었다. 남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처럼 아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당신을 오랫동안 보고 싶어. 그 이름이 게속 이어지는 걸 보고 싶어.

“대신 멀리서 지켜볼 게다. 또 나쁜 녀석들이랑 얽히면 우리가 반드시 도와주러 가마. 미즈키여.”

키타로의 머리에서 내려온 눈알이 미즈키의 어깨에 걸터앉아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미즈키는 눈알과 키타로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그, 일주일 뒤에 관현악부 정기 연주회가 있거든? 그때….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보러 와줄 수 있어?”

키타로와 아버지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처음으로 미소를 보였다.

“그래, 꼭 보러 갈게.”

그제야 미즈키도 배시시 웃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미즈키의 미소에 키타로는 다시금 미즈키의 미래를 바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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