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과 멍청한 이야기
※ 1차.
※ 허락 없는 발췌를 금합니다.
이른 새벽과 멍청한 이야기
그는 뻔뻔스러운 레인저였다가 흔해빠진 각다귀였다가
그건 깊은 밤이라 불러야 좋을지 아니면 지나치게 이른 아침이라 불러야 좋을지 애매한 새벽때였고 힐마르 오스퇴가르드는 식은땀에 절어 잠에서 깨고 말았다 바깥은 검푸른 어둠, 구구대는 올빼미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바람은 스산했으며 벽난로는 언제부턴가 꺼져 있었다…… 잠깐, 벽난로라고?
그래, 멍청아…… 과연 바닥에 널브러진 부지깽이를 발견한다 가느스름한 막대기 끝에 피딱지가 엉겨 있었고—또 무슨 짓을 한 거야?—힐마르 오스퇴가르드는 무심결에 제 뒤통수를 매만졌는데 기대와 다르게 상처가 있다거나 덜 마른 피가 배어나오지는 않았다 불안한 바람이 창가를 두들겼다 어젯밤 그는 주인 없는 오두막(정말로 주인이 없었을까?)을 빌렸고 모처럼 편안한 침대와 벽난로 있는 방에서 잠들었으며 기억나는 일이라고는 그게 전부였는데 도리어 그 탓에 스스로 무슨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단지 꼴통으로 사는 것과 정말 꼴통으로 전락하는 것 사이에는 강줄기 하나만큼의 간극이 있다
난 강도짓은 안 해 돌우물에 대고 맹세했다는 말씀이야……
그런데 정말 그런가? 그가 태어난 이래 불한당 아니었던 적이 존재는 하나?
이 악질 무뢰한 어디까지가 가장이고 어디까지가 본심인지를 구분 못 하게 되었나? 언젠가 그럴 줄 알았다 피로 가득한 전장이 너를 망쳐놓을 줄 알았지…… 그가 발로 애꿎은 부지깽이를 걷어찼다 발가락 뼈가 부러질 만큼 아팠다 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꼴사납게 주저앉아서 발을 부여잡고 있는데 별안간 방문이 열리고 기억 안 나는 얼굴이 얼굴을 들이밀고 전날의 기억을 쑤석거렸다 오스퇴가르드 씨 괜찮으십니까? 방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서요…… 들짐승이라도 들어온 겁니까?
힐마르 오스퇴가르드는 생각했다 이 놈 누구지?
그제서야 발견했는데 부지깽이에 묻은 피딱지라고 생각했던 것은 이제 보니 쇠에 슨 녹이었다 어제 과음하시더라니…… 부지깽이랑 다투고 계셨습니까? 이름 모를 놈의 목소리가 공중을 빙빙 떠돌았다 힐마르는 두 번째 꿈에서 깬다 그렇군 나는 그냥 꼴통이로군…… 그리고 나서 말했다 숲짐승 소리에 놀라 깼는데 알고 보니 화롯불 타는 소리더군…… 영 잠들 수가 없어서 이놈의 불을 꺼 버리려고 했지 그는 태연한 웃음을 입에 걸고 일어났다 이름 모를 오두막의 주인은 그렇습니까? 하고 대꾸한 다음 식은 지 한참 된 벽난로를 물끄러미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고
또
이런 일이 있었다……
힐마르 오스퇴가르드는 어쩌다 보니 극악무도한 강도살인범과 같은 주점에서 술을 마신 적이 있었는데 살인마를 알아본 주민이 알아봤다는 티를 지나치게 크게 낸 나머지 그 안에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 것이다 습관처럼 녹색 망토를 두르고 있었기로서니 이쪽으로 단검이 날아온 것은 그로서도 꽤 억울한 일이었으나 어쨌거나 그 놈을 제압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도시 경비병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주변에서 성난 주민들의 저주가 퍼부어졌다
이 우라질 놈! 너 따위 것들이 세상을 망치고 있어! 남의 것을 훔치고 사람을 죽여 갈취할 줄밖에 모르는 각다귀 같은 새끼들!
그것 참 감미로운 폭언이었다 힐마르는 귀가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어쩐지 입 안이 깔깔해져서 살인범을 깔고 앉은 채 담배를 꼬나물고 불을 붙인 다음 그 놈의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 광장에 매달아 돌팔매질해 죽인 뒤 시체는 들개 먹이로 던져주겠지 그리고 쏟아지는 마물을 닥치는 대로 베어넘기던 일도 떠올렸다 끈적하고 뜨끈한 피를 뒤집어 쓰고 인간과 마물의 시체로 쑥대밭이 된 평원을 돌아다니며 쓸 만한 장화가 떨어져 있는지 찾아보고는 했다 개중에는 아직 가죽 안쪽이 온기로 따끈한 것도 있었다 가죽이 덜 길든 새 장화라도 건지는 날에는 기분이 좋아서 절로 콧노래가 나오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거랑 이게 무슨 상관인데? 그가 대뜸 인상을 썼다 이 새끼랑 무슨 상관이냐고? 이 머저리 같은 놈아. 힐마르는 스스로에게 닥치라고 말했다
주워 쓴 장화도 그다지 오래 가지 못했다 닳도록 바닥을 구르고 산을 오르고 숲길을 헤치고 진창에서 굴렀으니 견딜 리가 만무했다 그는 몇 번이나 구멍 난 장화를 버리고 헌 장화를 주웠다…… 글쎄 닥치라니까. 그는 담배의 마지막 모금을 빨아들인 뒤 불쌍한 살인마의 어깨에 비벼 끄고 일어섰다 놈의 턱을 걷어차 기절시킨 다음 주점을 완전히 빠져나왔는데 도저히 숙소로 돌아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말 여물통에 몸을 끼워넣은 채 잠들기로 했다 멍청한 소란에 일어선 고바이스가 이빨을 보인 채 뒷발을 두어 번 구르는 걸 무시했다 구릿한 동물 살 냄새가 코를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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