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마르 오스퇴가르드

영리한 밤까마귀에게

아나히스

※ 1차.

※ 허락 없는 발췌를 금합니다.

영리한 밤까마귀에게

간만에 안부 전한다. 잘 살아있겠지. 남몰래 객사해서 선배 레인저들을 놀래키는 일은 없도록 해라. 또 지금처럼 부득불 감감무소식으로 살다가 선배 레인저가 기어코 먼저 편지 부치는 일을 만들지도 말고. 괘씸하기 이루 말할 데가 없군. 다시 만나는 날에는 쥐어박힐 줄 알아라.

여기까지가 ‘좀 어떠냐’는 말 대신 새로 고안한 인삿말이다. 어때? (이 문장 위로 줄이 직직 그여 있다.) 제기랄, 어떠냐고 물어버렸군. 타성이 이렇게 사람을 좀먹는다니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있다지만 너에게 해당되는 격언은 아닌 듯하다. 그야 네가 나쁜 소식이라고 호들갑 떨 녀석은 아니니까 말이다. 삼 년 정도 네 행방이 묘연하면 여기저기에 네가 죽었는지도 모른다는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닐 테니 귀찮은 일 만들기 싫거든 제깍 편지해라.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를 때는 폭풍 숲으로 보내. 거기 있는 누군가는 전해주겠지.

나는 지금 목장에 있다. 폭풍 숲에서 나와 평야를 닷새 정도 가로지르면 넓은 목초지가 나오지. 거기서 이제 일곱 살 먹은 양몰이견이 양떼를 데리고 노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분명 들었는데 기억이 안 나. 까먹은 걸 보니 그다지 멋진 이름은 아니었을 거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이제 막 어미 젖을 뗀 새끼였는데 전쟁 통에 몰라보게 컸더군. 그 조그맣던 놈이 이제 나를 보면 으르렁댄다니까. 여하간 그 놈을 보니 네 생각이 났다. 뭐 너는 쬐깐할 때도 썩 깜찍한 꼬맹이는 아니었다마는.

습보로 닷새를 버티더니 고바이스가 지친 모양이다. 그놈이 새벽부터 내도록 누워 있는 바람에 모처럼 썩 여유롭다. 그런데 우스운 일이다. 말 먹이 준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하지? 귀찮아하는 놈 갈기를 빗질했다가는 걷어차일 테고 그러니 발굽을 봐 줄 수도 없고 그놈 낮잠 방해하는 일은 벌써 질렸다. 양 치는 일은 이제 나보다 뛰어난 개가 도맡게 되었고 커다란 추수도 다 끝난 참이라 나 같은 놈은 빈둥대며 편지 쓰기밖에는 할 짓이 없군. 웬 놈의 울타리는 이렇게들 튼튼하게 만드는 거냐? 도무지 손 볼 데가 없다.

그런 고로 여기는 폭풍 숲에 있을 때보다 두 배는 더 지루하다. 생각할 시간이 너무 많아. 우울해지기 딱 좋다고. 네가 이 대목에서 남몰래 공감했다는 데 은화 두 닢을 걸겠다. 봐라. 이 편지도 벌써 두 장을 다 채우고 세 장째다. 이러다 극작가라도 되어버리면 어쩌나. 폭풍 숲의 커다란 손실이 되겠군.

네 쪽은 좀 어때. 일손이 부족하지는 않나? 사정이 있어서 다음 달까지는 이 목장에 머무를 건데, 내가 거들 만한 일이 있으면 이쪽으로 편지해라. 다른 조 대장 부려먹을 기회를 주마. 슬슬 손이 저려서 이쯤에서 맺어야겠다.

달의 가호가 있기를.

오스퇴가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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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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