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트

bcuz by 하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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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교시가 국… 야, 근데 오늘 국어 조 짜서 뭐 한다 그러지 않았어? 아파야겠다. 보건실 갈래. 방금 등교한 거 아냐? 좀 그래? 응. 그럼 그냥 결석한 걸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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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삶에 비추어 보건대, 뭐가 됐든 무자 붙은 건 잘못이 맞다. 예를 들면 뭐… 무식이라거나, 무지라거나, ……. 말하다 보니까 기분이 좀 나빠졌는데 아무튼. 내가 이걸 언제 딱 느꼈냐면, 1학년 1학기 기말고사 끝나자마자.

일 다시 일 중간고사 끝나고는 친하게 지내자며 말도 붙여주던 애들이 기말고사 성적 나오자마자 아는 척도 안 한 건 분명 우연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건 백 퍼센트 내 성적에 원인이 있다. ……. 아, 그럼 내 잘못이네. 결론이 왜 이 따위지.

2등급 받던 태이한이나 7등급 받는 태이한이나 같은 사람인데 왜 예전에는 나랑 놀아줘 놓고 이제는 무시해? 라고 물어보기에는 자존심이 존나게 상해서 일단 보류했다. 그렇다고 다시 성적을 챙기기엔 동기가 사라져 버린 게 문제지만. 동기만 사라졌으면 다행이지, 신경 쓰이는 일이 생겨서 공부 같은 건 할 여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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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념은 치우고. 아지트(사격장 뒷편 벤치)에 가만히 앉아 생각을 좀 했다. 난 뭘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잘 하는 거, 당장 생각은 안 나는데 있긴 하겠지. 그럼 문제는 이게 아니고. 하고 싶은 거, 있었는데 사라졌다. 근데 이 세상에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사는 사람이 어딨어. 그럼 이것도 문제는 아니고. ……. 그럼 대체 문제가 뭐지?

아, 머리 아파. 담배 한 대만 피우면 안 되나. ……. 근데 어디다 뒀더라. 시발, 교실 책상에 올려뒀나? 어쩌고 저쩌고 세상 모든 신님들 제발 아니게 해주세요. 저 진짜 착하게 살잖아요. 저 진짜 불쌍하잖아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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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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