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퀘박스 건현] Espresso

세건이한테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듣고싶어서 고군분투하는 서현이

*리퀘박스 '세건이한테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듣고싶어서 고군분투하는 서현이'로 썼습니다.

*커피글을 좋아해주신 신청자 분께 감사드립니다!

"커피 한 잔."

서현은 그렇게 주문을 마치고 입을 꾹 다물어버린 눈앞의 남자를 띠꺼운 얼굴로 노려보았다. 지금 장난하자는 것도 아니고, 나름 구색맞춘 카페인 이곳 아르쥬나까지 와서 그런 주문을 하면 대체 어쩌라는 건데?

한국에서도 커피전문점이 대중화된 지 오래되었다. 특히나 아르쥬나는 고객의 대부분이 젊은층으로, 음료의 온도부터 재료까지 많은 것을 고객의 선택에 맡기는 카페의 특성을 어려워하거나 거부하는 손님은 없었다. 우유가 들어간 커피를 마실 것인가, 휘핑크림이 잔뜩 올라간 커피를 마실 것인가, 초콜릿이나 카라멜 소스가 들어간 달콤한 커피를 마실 것인가...

그걸 모를 리가 없는 한세건이 주문을 이런 식으로 하는 이유를, 서현은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나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내가 뭘 좋아할 지 맞혀봐. 넌 내 마음을 잘 읽으니까 할 수 있잖아?

유치하기 짝이 없는 수작이었다. 라이칸스로프의 왕자에게 감히 저지를 짓이 아니다. 하지만 그 유치함이 서현의 마음에 쏙 들었다. 똑같이 유치한 수작으로 갚아 주면 그만이니까.

"자."

"..."

서현은 세건의 앞에 커다란 머그잔을 턱 놓았다. 잔의 1/3도 채우지 못하는 까만 액체가 안에서 찰랑거리는 것을 본 세건의 얼굴에 흠칫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아르바이트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알지. 정말 아무것도 안 넣은 에스프레소 그대로를 즐기는 손님은 별로 많지 않아."

당신 취향이 에스프레소가 아닌 거 알고 있어, 당신이 솔직하지 못하니까 나도 쓴맛을 보여주고 싶은 거야 하고 말하면 보다 쉬울 터이다. 하지만 서현은 일부러 일을 비비 꼴 수 있는, 문명 사회에서나 가능한 여유 부리기를 좋아했다.

그는 다른 컵에 뜨거운 물이 가득 담아 머그잔 옆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걸 내 마음이라고 치고, 여기다 물을 당신 마음만큼 타서 마셔."

내리깐 채 두 개의 잔을 보고 있던 세건의 눈이 한순간 서현을 올려다보았다. 이런,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는 얼굴을 들킨 것 같다. 서현은 황급히 표정을 수습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세건의 오른손이 느릿하게 물컵을 기울여 내용물을 따랐다. 머그잔 안이 아니라, 서현의 손등 위에.

"앗, 뜨거! 뭐하는 짓이야?"

손을 잽싸게 빼 버려서 뜨거운 물에 많이 데지는 않았다. 그보다도 서현은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세건에게 부아가 치밀었다.

"내 마음."

세건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에스프레소가 담긴 머그잔에는 입 한 번 대보지 않고 휙 돌아서서 가게를 나가 버렸다. 승리의 삐딱한 미소를 짓고서.

순순히 어울려 주지 않을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딴 식으로 나올 줄은... 하지만 진짜 너무한 자식이다. 좋아한다고 말을 안 해주니까 이런 식으로라도 유도하는 건데 어떻게 한 번을 안 넘어가 주냐?

서현은 이를 갈며 자기 손으로 남은 물을 마저 머그잔에 확 부었다. 잔이 넘칠락 말락 할 때까지.

아 진짜 내가 문명인이니까 참는다, 더 좋아해서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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