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건서현] 늑대와 예쁜이

발렌타인 데이+초콜렛 플레이+인소st 건현

내 이름은 한세건. 월야고(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이름 진짜 이상하다ㅡㅡ)에 재학중인 평범한 고등학생 ㅡㅡ 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여느 때처럼 부모님과 형은 이미 식탁에 앉아 있었다.

"세건아 오늘은 밥을 좀 먹지 그러니...ㅠㅠ?"

어머니가 내 몫의 밥을 퍼주시려고 했지만 나는 거절(조금 죄송하긴 하다)하고 냉장고에서 바나나, 우유, 계란 등을 꺼낸 다음 단백질 보충제와 함께 믹서기에 넣고 마구 갈았다. 맛은 지독하게 없지만 ㅡㅡ 이게 내 매일의 아침 식사다. 나는 눈을 딱 감고 간 것을 빠르게 들이켰다. 우웩, 진짜 맛없다.

"너 그래봤자 178 정도가 한계일 거라구. 포기하면 편해~"

꼴에 대학생이라고 여유롭게 밥을 먹으면서 키득거리는 형에게 가만히 중지ㅡㅡㅗ를 들어주며 한 손으로 양치를 마치고, 나는 가방을 메고 부모님께 꾸벅 인사를 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현관에서 뛰쳐나오자 꼬리를 흔들며 배웅해주는 나의 귀여운 개 잔다르크 *ㅡㅡ* (다른 식구들은 맹순이라고 부르지만 나한테는 잔다르크다!!!)를 쓰다듬어 주고, 나의 애마ㅡㅡV 야마하 YZ-125에 가볍게 올라탔다.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만끽하며 학교까지 달려볼까 하던 참이었는데...

"요! 굿모닝~ 소울 브라더^0^!"

우리 학교 교복을 입고 레게머리를 한 흑인이 날 보고ㅡㅡ 담장 너머에서 손을 흔든다. 나는 급격히 기분이 나빠졌다.

"누가 네 소울 브라더야ㅡ"ㅡ!"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이 자식ㅡㅡ, 래트라는 놈은 실실 웃으며 더욱 깐죽거렸다.

"브라더! 오늘도 내 알라바마의 흑뱀(!)은 매우 건강하다네^ㅁ^!"

"하나도 안 궁금하니까ㅡ"""ㅡ 좀 꺼져ㅗ!"

"사실 그러면서 궁금해하고 있는 거 다 안다구, 브라더."

그러면서 래트 놈이 자기 벨트를 풀려는(시발!) 시늉을 하기에 나는 오토바이로 확 들이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ㅡㅡ;; 안경을 쓴 남자(이놈의 이름은 몬티다)가 나타나 래트의 멱살을 잡았다.

"바바리맨 짓 하다가 잡혀가면 벌금이 대체 얼마인지 알아! 그리고 자꾸 사고치면 헤카테가 쫓아낸다고 했잖아!"

헤카테란 저놈들을 거둬주고 있는(라곤 해도 저놈들이 억지로 빌붙어 있다는 것에 더 가깝다) 자칭 종합예술가의 이름이다. 내가 보기에는 도저히 재능이 없는 것 같은데... 예술이고 뭐고ㅡㅡ 저놈들 돌봐주는 것도 그렇고 다 때려치우는 게 좋을 것 같지만 뭐 내 알 바는 아니다ㅋ.

"둘 다 아침부터 너무 열내지 마~ 학교도 가기 전에 배고파지겠다!"

그때 또 다른 놈이 나타나 두 사람을 말렸다. 긴 백발을 포니테일로 늘어뜨리고, 교복을 대충 걸치고 야구 모자를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굳고 말았다. 왜냐하면 바로 이놈, 아르곤ㅡ"ㅡ을 이기기 위해서 내가 아침마다 단백질 쉐이크를 만들어 먹고 있는 거기 때문이다!

"아르곤 너 이 자식...!"

"안녕, 우리 월야고 예쁜이? ^_^"

 아르곤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ㅡㅍㅡ 별명을 부른 다음, 래트와 몬티를 데리고 도망쳤다. 아오, 이 자식...! 뱀파이어인데다 다리가 길어서ㅗ 그런지 달리기가 엄청 빠르다. 아 진짜 죽이고 싶다ㅡ"ㅡ.

"거기 서 이 뱀파이어 놈들아ㅡ"ㅡ!"

나는 마구 바이크 속도를 올려 열심히 놈들을 쫒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내 앞에 갑자기 웬ㅡㅡ! 자전거를 탄 소년이 뛰어드는 게 아닌가...! 나는 황급히;; 브레이크를 걸었다.

-끼이이익!

다행히 나는 소년을 들이받지 않고 멈출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도 좋은 아침이에요^0^ 세건 형ㅋㅋㅋ!"

자전거를 타고 있던 놈은 우리 옆집에 사는 서린ㅡ"ㅡ이었다. ...그냥 그대로 확 들이받을 걸;; 이놈은 나보다 1년 후배고 다른 뱀파이어 놈들보다야 덜 짜증나지만 역시 뭣같이 튼튼한 라이칸스로프ㅗㅗㅗ다. 대체 오늘은 왜 이리 아침부터 재수가 없단 말인가ㅡ"""ㅡ. 아르곤 패거리에 이어 등굣길에 ㅗ이놈ㅗ을 만나다니...!

"너 같은 동생 둔 적 없거든? ㅗㅡㅡㅗ."

"그럼 형의 기억을 자극하기 위해 그 노래를 또 불러야겠다."

서린 놈이 사악한 웃음ㅇㅅ<을 지으며 말했다. 그 노래라면...! 놈이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 눈치챈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황급히 달아났다. 하지만 놈은 자전거를 타고 뒤에서 쫒아오며 목청을 높여 노래를 불러대기 시작했다....ㅜ

"나한테 반하지 마라~ ^ㅁ^ 아임 데인저러스 보이~ 아임 챠밍 보이~"

아니나 다를까 놈이 부른다는 노래는 데인저러스 보이 송ㅗㅗㅗ이었다. 하... 

내가 1학년 때, 반에는 온통 뱀파이어ㅗ와 라이칸스로프들ㅗ뿐이고 나만 인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얕보이지 않기 위해 자기 소개를 할 때 '나는 위험 인물이니까 쓸데없이 건드리지 마ㅡㅍㅡ!'라고 했지만 놈들에게 비웃음만 산 것이다. 어떤 놈들은 니가 무슨 위험 인물ㅋ이냐고 처웃으며 예쁜이(시발!)라고 불러대기 시작했고... 그때 중학생이었던 옆집 서린에게 한탄하는 식으로 말했지만 오히려 놈은 낄낄거리며 아예 데인저러스 보이 송이나 만들었다. 놈한테 말하는 게 아니었는데...ㅠ 그때부터 1년이나 지났는데 이놈은 질리지도 않나 보다.

아무튼 달리다 보니 우린 학교에 도착하게 되었고, 나는 오토바이에서 내려 서린 놈ㅗ을 한번 세게 쥐어박아주고 홱 뒤돌아서 교실로 향했다.

"아, 형! 그러고 보니 나 세건 형한테 오늘 특별히 알려줄 게 있는데! ㅇㅅ<"

뒤에서 서린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어차피 시답잖은 개소리ㅗㅗ겠지. 

"뭐, 오늘이 발렌타인 데이인 거? 난 그런 거 신경 안 써ㅡㅡ!"

그렇다. 오늘은 초콜렛을 선물하며 사랑을 고백한다는 발렌타인 데이;;이다. 어차피 나는 단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ㅡㅡ. 뱀파이어와 라이칸스로프들이 우글거리는 학교인데 뭐 초콜렛을 주고 싶은 사람도 없고 받는 건 더 사절이고. 하지만 학교에서는 하루 종일 초콜렛이 보이겠지...;;;

과연 교실에 들어갔더니 아침부터 괴물 자식들ㅡㅡㅗ이 초콜렛을 주고받으며 쌩쑈를 하고 있었다. 옆을 지나가려니 사준 놈ㅗㅡㅡㅗ이 나한테 괜히 시비를 건다.

"예쁜아 안녕? 너도 의리 초콜렛 줄까? ㅋㅅㅋ"

하, 또 개소리를 들었다. 나는 놈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내 자리로 가서 앉았다ㅡㅡ. 등굣길에서부터 이상한 자식들을 만나 시달렸더니 피곤해 죽을 것 같다. 엎드려서 잠깐 잘까 했지만 뒷자리 놈들이 초콜렛을 까먹고 있는지 온통 달달한 냄새가 나서 잠도 안 온다;;;

"너 오늘 옆반에 온 전학생 봤냐?" ㅇ0ㅇ

"응. 엄청 희한하게 생겼던데?" ㅇㅁㅇ

지들은 더 희한하게 생겼으면서 누굴 보고 희한하게 생겼다는 건지... 하지만 옆반이라니까 한 번 슬쩍 보고 올까. 이따 쉬는 시간에... zzz

"한세건, 일어나!"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머리에 둔탁한 통증이 작렬했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 보니, 이런...;;; 실베스테르가 한심한 눈초리ㅡㅡ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1교시가 영어 시간인 것도 모르고 푹 잠들어 버리다니. 나는 책상을 뒤져 교과서를 폈다.

"교과서 108페이지부터 쭉 읽도록."

...그렇게 실베스테르에게 찍혀 수업시간 내내;; 지문을 읽고 질문에 대답하고 연습 문제를 풀고 나서 나는 아침에 들었던 전학생을 찾아갈 생각도 하지 못하고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ㅡㅡ;;; 뭔가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는 것 같긴 했지만, 50분 동안 실베스테르한테 시달리고 나니 일어나기도 귀찮았다.

"너네 반에 월야고 예쁜이가 있다며?"

...하지만 웬 놈이 내 별명ㅡ"ㅡ을 부르는 데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어떤 ㅗ개자식ㅗ이 예쁜이래!"

교실 뒷문을 쳐다본 나는 숨이 멎을 뻔 했다. 아무런 이야기 없이, 얼굴을 본 것만으로도 걔가 그 희한하게 생겼다던 '전학생'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새하얀 피부에 회색 머리카락... 붉은색과 청회색의 헤테로크로미아. 훤칠한 키에 보기 드문 미모의 소년이 낯선 교복을 입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딱 보니까 알겠다. 당신이지, 월야고 예쁜이?"

"어... 그걸 어떻게?"

나는 그가 너무나도 똑바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나머지 당황해서 예쁜이라고 불린 것을 따지는 것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그가 왼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오징어들 사이에 예쁜이가 딱 한 명 있는데 그걸 어떻게 몰라."

"야, 전학생! 너 지금 우릴 보고 오징어라고 불렀냐?"

주변에서 낄낄거리며 구경만 하고 있던 놈들이 오징어 취급당한 것을  알고는 화내며 전학생에게 덤비기 시작했다. 근데 생각해 보니까 저놈도 날 세 번이나 예쁜이라고 불렀잖아? 나도 같이 화내야 하나?

망설이던 차에 다행히 쉬는 시간이 끝났다.

"다음 시간에 보자고."

전학생은 그렇게 말하면서 달려드는 라이칸스로프 놈을 한 손으로 가볍게 바닥에 패대기치고는 가 버렸다. 서... 설마 저놈도 라이칸스로프인가 하는 불길한 예감이... ㄷㄷㄷ...

다음 팬텀의 수학 시간은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정말 엿같았다. 이 인간... 아니 뱀파이어는 돈이 너무 많아서 학교 선생은 취미로 하는 것 같다. 수학 문제를 낼 때 항상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온갖 슈퍼카 이름을 넣어서 만들고... 하다 못해 다른 선생님들은 철수 영희 영수 하는 식으로 쓸 것을 팬텀은 페라리 포르쉐 람보르기니로 넣으며 자기 집에는 실제로 다 있다는 것을 꼭 강조하는... 푼수 뱀파이어 같으니.

평소 같으면 머릿속으로 언젠가 나도 돈을 잔뜩 벌어서 두카티를 모델별로 소장용 전시용 탑승용 세 대씩 살 거라고 이를 득득 갈며 공부했겠지만, 오늘만은 아까 본 전학생 때문에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았다. 첫날 부터 같은 반도 아닌데 굳이 찾아와서 예쁜이라고 불러대는 라이칸스로프 자식이 뭐라고...

아무튼 어느새 수업이 끝나고, 다음은 체육 시간이었다. 체육복을 갈아입으려고 탈의실로 가고 있었는데 서린 놈과 마주치고 말았다. 이 층에는 다 2학년 교실밖에 없는데 이 자식이 뭐하러 왔지...?

"넌 또 여기 왜 올라왔냐?"

"아, 형한테 전해줄 게 좀 있어서요."

그러던 나는 문득 서린의 손에 종이 쇼핑백이 들려있는 것을 보고 바짝 굳고 말았다. 뭐야. 이... 이 자식, 설마 나한테 초콜렛을 주러 온 건가...?

"어이, 예쁜이!"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갑자기 내 어깨를 팡 내리쳤다. 누군가 했더니 미친... 아까 그 전학생놈이었다. 이 자식... 지금 나보고 예쁜이라고 네 번째로 불렀겠다. 난 따지려 했지만,

"형! 어, 그새 세건 형이랑 친해졌어요?"

서린이 친근하게 전학생을 부르는 게 아닌가?

"뭐... 너네 무슨 사이야?"

"서린이랑 아는 사이였냐, 예쁜이?"

그러면서 전학생은 천연덕스럽게 내 허리에 손을 올렸다. 이, 이 자식이... 거기다가 다섯 번째로 예쁜이라는 소릴 했다!

"이쪽은 제 친형 서현이에요. 원래 러시아에서 살다가 한국 학교로 전학왔어요. 아침에 형한테 이거 말해주려고 한 건데."

형제라고? 그러고 보니 얼굴이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전학생 서현 쪽이 좀 더 인상이 나쁘지만.

"근데 형, 내가 소개시켜 주려고 했는데 그 전에 벌써 세건 형이랑 친해졌네?"

"안 친하거든?"

"한눈에 딱 알아보겠던데, 월야고 예쁜이."

내가 분명 안 친하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형제놈들은 낄낄거리며 웃어댔다. 게다가 서현 이 자식, 나한테 여섯 번째로 예쁜이라고 불렀어!

"아, 아무튼 줄 게 있어서 왔으면 그거나 주고 꺼져! 빨리 체육복 갈아입고 운동장 가야 되거든?"

나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는 기겁했다. 이런, 벌써 시간이 3분밖에 안 남았다! 그런데 서린 놈은 쇼핑백을... 자기 형한테 넘겨준다.

"뭘 봐? 서린한테서 체육복 빌린 건데."

"헤에... 설마 이거 세건 형한테 줄 초콜렛인 줄 알았어요? 유감!“

“그, 그런 거 아니거든!”

"발렌타인데이 신경 안 쓴다고 해놓고~ 받고 싶어요? 마리아가 조금 서운해하겠지만 형에게라면 줄게요!"

"됐어!"

아... 착각하고 있던 게 다 티났나 보다. 나는 민망해서 배가 찢어지게 웃어대는 서린을 내버려두고 황급히 탈의실로 뛰어갔다.

...그런데 서현 놈이 체육복을 들고 따라들어왔다. 탈의실 문을 닫고 바지를 벗고 있던 나는 황급히 체육복 바지를 꿰어입었다.

“너, 넌 왜 따라 오냐?”

“나도 체육 시간인데.”

그럴 리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 학교는 운동장이 좁아서 한 반 씩밖에 쓸 수가 없는 걸?!

"다른 반이랑 합동 수업 한다는 이야기 들은 적 없거든?"

"아무튼 나도 옷 갈아입을 거야."

그러면서 서현은 옷을 훌렁 벗고 체육복으로 갈아입었다. 러시아에서 왔다더니 몸이 엄청 하얗다... 아, 아니 이게 아닌데. 나는 억지로 놈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놈이 또 말을 건다.

"야, 예쁜이. 너 혹시 내 동생 좋아하냐?"

"미쳤냐?"

"그런데 왜 내 동생이 발렌타인 데이 초콜렛을 너한테 준다고 생각한 거지?"

"..."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게, 대체 왜 그랬을까. 나도 모르겠다.

"자기한테 월야고 학생들 전부가 반해버릴까봐 걱정하는 데인저러스 보이라서 그런가."

전학생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나는 기겁하고 말았다.

"야, 너! ...서린이 가르쳐줬냐?"

"어."

서현이 히죽히죽 웃었다. 아 미친 서린 자식. 전학오는 자기 형한테 그딴 거나 가르쳐 줬단 말인가. 역시 서린 놈을 가만히 둬서는 안 됐는데...!

그건 그렇고 아무튼 나는 지금 체육 시간이 급하다. 이미 늦었지만 체육 교사 송덕연의 니킥에 맞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뛰쳐나가야 한다. 하지만 또 서현이 날 뒤에서 잡아당겼다.

"야, 나 늦었다니까...!"

"그러니까 너 내 동생 좋아하냐고!"

"아니거든?"

대답을 했지만 서현은 뭐가 못미덥다는 눈초리로 계속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진짜로 네가 내 동생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나한테 초콜렛을 주는 걸로 네 순수를 증명해!"

"아니 대체 왜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건데?!"

"...발렌타인 데이니까?"

"헛소리 하지 마 이 미친 놈아!"

나는 체육복 셔츠까지만 입고 탈의실을 나가 운동장으로 달리면서 점퍼를 걸쳤다. 그런데 이, 이놈은... 위에 '나 미국인 아님' 반팔 티셔츠만 입은 채로 날 쫓아서 뛰쳐나오는 게 아닌가?

"너 대체 왜 쫓아오는 건데!"

"초콜렛 내놔 데인저러스 보이!"

"그 별명 부르지 마 개자식아!"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도망쳤지만 별로 힘들이지도 않고 설렁설렁 뛰어오는 놈과의 거리는 계속해서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아, 시발 망할 라이칸스로프 같으니라고...!

"으아아아아아~!"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다리 근육을 쥐어짜서, 순간적이라도 라이칸스로프를 따돌릴 속도를 내보려고 했다. 하지만...

쾅!

누군가를 들이받고 바닥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젠장... 아프다.

"이, 한세건 너 이 자식... 앞 똑바로 안 보고 다니냐!"

눈을 떠 보니 현관에서 나랑 부딪혀서 주저앉아 바락바락 화를 내고 있는 놈은... 바로 금발 보브컷에 외눈 안경을 낀 뱀파이어 앙리 유이였다. 뱀파이어 주제에 누가 그렇게 허약하고 눈도 나쁘래? 나는 놈에게 사과 대신 중지를 들어줬다.

"쳇, 하여간 저급한 놈 같으니라고."

앙리 유이는 짜증을 내며 바지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었다. 이 자식은 학교도 제대로 안 나오는 주제에 교복은 열심히 나팔바지로 고쳐입고 다닌다.

...그러고 보니 앙리 유이가 왠일로 학교에 왔지? 지금 나와봤자 선생들한테 구박이나 실컷 들을 거고 반겨줄 친구도 딱히 없으면서.

"근데 네가 어쩌다 학교를 나왔지?"

물었더니 앙리 유이는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발렌타인 데이니까!"

"그거랑 너랑 무슨 상관? 너 학교에 애인도 없고 친구도 없잖아. 팬텀도 너 포기했고..."

그랬다. 앙리 유이가 원래부터 제대로 정신이 박혀있는 애는 아니었지만 지금처럼 학교를 띄엄띄엄 나올 정도로 막장도 아니었다. 원래 다른 선생들과 학생들이 다같이 앙리 유이 노답이라고 깔 때도 팬텀만은 끝까지 편을 들어주려고... 했으나, 결국은 앙리 유이의 눈치 없고 독선적인 면에 질려서 포기하면서 더 막나가기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른 거지. 내가 그 점을 지적하자 앙리 유이의 얼굴이 불그락푸르락 하더니 갑자기 가방에서 둘둘 말린 양피지를 꺼냈다.

"그래! 이 학교에 내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하지만... 알고 있나? 오늘 발렌타인 데이에 이 학교 안에 있는 모든 초콜릿에는 엄청난 마력이 깃든다는 것을! 그 마력으로 나는 '아낙스'를 부활시킬 것이다!"

그리고 앙리 유이는 계단을 뛰어올라가 사라져 버렸다. 아낙스? 그게 뭐지? 어디서 들어봤던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초콜릿에 마력이 깃든다니 대체 무슨 소리지. 앙리 유이가 무려 학교까지(!) 나온 걸 보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닌 건지... 나는 도저히 뭐라고 생각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뒷머리만 긁적였다.

"야, 초콜릿."

어느새 또 내 옆에 온 서현이 말했다.

"하여간 이놈이고 저놈이고 아무리 발렌타인 데이라지만 초콜릿에 환장해 가지고는..."

나는 투덜거렸다.

"저놈도 너한테 초콜렛 달라고 하던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이상한 소릴 하긴 하더라."

"...뭐라고 했지?"

"오늘 이 학교 안의 초콜릿에는 엄청난 마력이 깃드니 그걸로 아낙스를 부활시킨다나."

그 말을 듣는 순간 서현의 얼굴이 확 싸늘하게 굳었다. 히죽거리며 웃는 얼굴도 짜증나게 잘생기긴 했는데 정색하니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잘생김이다. 아... 진짜 이게 아닌데.

"아낙스...! 쳇, 눈앞에서 놓치다니! 그놈을 막아야 해!"

"아낙스가 대체 뭔데?"

"설명할 시간 없어!"

그러면서 서현은 앙리 유이를 뒤쫓아 뛰어갔다. 서현 이 자식... 예쁜이라고 불러대고 초콜릿 달라고 억지 쓰면서 따라올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날 짐짝 버리듯이 하고 가버리다니? 나는 몸을 돌려 서현을 따라 있는 힘껏 달렸다.

"체육 수업 안 가냐?"

"어차피 늦었는데 땡땡이치고 널 돕도록 하지!"

"네가 뭘 도울 수 있다고?"

서현이 의심과 불신이 가득한 눈초리로 힐끗 돌아보더니 계속 뛰어갔다. 나는 짜증이 나서 계단을 확 뛰어올라가서 서현의 옷깃을 잡아챘다.

"난 인간이지만 라이칸스로프와 뱀파이어가 우글거리는 월야고에서 지금까지 전혀 기죽지 않고 당당히 살아남았거든? 네 마음대로 도움이 안 될거라 단정하지 마!"

그 순간 서현이 달리던 것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그건 그렇군. 게다가 그놈이 기척을 지운 것 같아.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

"먼저 아낙스가 뭔지, 왜 그렇게 심각한지 말해봐! 내가 학교 구조를 잘 아니 어디로 갔는지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설명하지. 아낙스는 옛날에 맨 처음으로 이 학교를 세운 뱀파이어야! 그는 과거에 수많은 악행을 저지르다 죽기 전에 이 학교를 세웠지. 학생들 중에 누군가가 자신을 부활시켜 주기를 기대하면서 말이야! 사실 나는 처음부터 그를 막기 위해 왔어."

나는 어안이벙벙해졌다. 내가 별 생각 없이 졸업만 하자는 생각으로 다니고 있었던 학교에 이렇게 엄청난 비밀이 있었다고?

"진짜?"

"그럼 내가 뭐하러 거짓말을 하겠나?"

서현이 또 기분이 상한 것 같아서 나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아니, 도통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아무리 발렌타인 데이라고는 해도 초콜릿을 가지고 죽은 사람을 부활시킨다니...?"

"하긴 그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알려준 다음에 절대 하지 말라고 하면 분명 시도하는 놈들이 나올 테니까 안 가르쳐 준 거겠지. 아무튼 그 마법은 실제로 가능해. 단 오늘 하루, 이곳 월야고에서 초콜릿을 매개체로 쓸 때만!"

그러면서 복도를 걷고 있던 우리는 문득 수업이 없는지 한가롭게 한 손에 머그잔을 들고 걸어오는 생물 담당 교사 메시아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 잠깐, 서현의 얼굴을 보자마자 메시아 입가가 실룩실룩 하는 게 영 좋지 않은 분위기인데...?

"네놈 머리 염색을 왜 그 따위로 했지? 발렌타인 데이라고 아주 꼴값을 떠나 본데..."

"뭐라는 거야. 이 학교에 두발 제한 같은 거 있나?"

메시아의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서현이 내게 묻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애초에 여긴 온갖 국적과 종족의 학생들이 모여 있는 월야고다. 한국 인간이라고 해서 특별히 검은 머리로만 다니라는 교칙도 없고.

"그럴 리가. 나도 초록머리로 잘 다니고 있는데."

우리가 과장되게 의아하다는 몸짓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누는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메시아가 히스테릭하게 소리쳤다.

"너! 한세건 말고 옆에 네놈! 원래 갈색이던 걸 갑자기 탈색하고 나타난 건... 역시 발렌타인 데이를 빌미로 마리아한테 찝적대려고 그런 거지!"

그리고 메시아는 머그잔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묶고 있던 머리를 마구 풀어헤쳐 산발로 만들었다. 미친... 완전히 x됐다. 메시아가 우리를 향해 몸을 날리는 순간, 나도 잽싸게 서현을 잡아끌고 뒤돌아서 뛰었다.

"도망치자!"

"거기 서! 이 더러운 사내자식들아! 내 귀여운 동생 마리아를 건드리려 하다니! 용서 못해!"

"아니, 난 오늘이 전학 첫날이라고! 내가 뭘 잘못했다고 도망가야 하지?"

"아무래도 네가 머리 염색한 서린인줄 알고 그러는 것 같은데... 모르겠다. 일단은 피해야 해!"

"서린 이 자식,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서현은 투덜거리면서도 열심히 뛰었다. 나도 그것이 알고 싶다. 서린 자식, 메시아의 나이차 많이 나는 동생이라 학교에서 제일 막나가는 아그니도 안 건드리는 마리아와 대체 뭘 하고 다닌 건지... 아, 아무튼 지금은 그런것보다 메시아를 따돌려야지!

메시아는 꾸역꾸역 5층까지 우리를 쫓아왔지만, 나는 눈앞에서 보란 듯이 남교사 전용 화장실로 서현과 함께 쏙 들어가 버렸다. 마리아 일로 머리 끝까지 화가 난 메시아라면 남교사 화장실로 쳐들어올 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면서 나는 서현과 한 칸에 숨어서 가만히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야! 한세건, 쓰레기 자식! 빨리 나오지 못해?"

다행히 메시아는 화장실 앞에서 발만 구르고 소리만 칠 뿐 들어오지는 못했다. 후,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나는 문득 서현의 얼굴이 지나치게 가깝다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빤히 쳐다보고 있어!

"들이대지 마!"

"어차피 사람도 없는데 굳이 이 좁은 칸 안에 끌고 들어온 거 네 사심 아냐?"

그러면서 서현은 내 뺨을 슥 쓰다듬었다. 손가락이 살짝 닿은 것뿐인데 불에 덴 듯이 뜨거워서 나는 홱 고개를 돌렸다. 이, 이 미친놈이...

"너 피부 진짜 좋다."

서현이 쿡쿡 웃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한다. 앙리 유이를 놓쳐 버렸으니... 어디 짐작가는 장소 없나?"

"...글쎄."

"생각보다 이거 어렵게 됐는데."

서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우수에 젖은 눈빛에 어쩐지 가슴이 두근두근거린다. 으아... 실실 웃으며 예쁜이라고 불러대던 놈이 이러니까 믿기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

아무튼 뇌에 산소도 많이 공급되고 있겠다... 나는 최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앙리 유이, 놈이 있을 만한 곳은... 어떻게 해야 우리가 앙리 유이를 막을 수 있을까...

"매점! 매점으로 가자!"

"매점에 놈이 있을 거라고?"

"그래. 앙리 유이 성격상 스스로 초콜렛을 준비했을 리가 절대 없거든. 빈 교실을 털어서 모으거나 매점 주인 케네스 양을 협박해서 뺏으려고 할 것 같은데?"

"그렇군. 그 마법에는 초콜릿이 아주 많이 필요할 거라고 했어... 큰 냄비 한 개를 가득 채울 만큼의."

"그럼 우린 바로 매점으로 가자."

"늦지 않았을까?"

"최근에 매점이 뒷문쪽에서 지하 1층으로 옮겼으니까 앙리 유이는 모르고 있을 수도 있어!"

"좋아, 그럼 지름길로 해서 더 빠르게 가자!"

그렇게 말하더니 서현은 날 갑자기 번쩍 들어서 옆구리에 끼고 화장실을 나가, 창문턱에 훌쩍 올라갔다.

"미친놈아 뭐하는 짓이야!"

"급하니까. 내 등에 매달려!"
놈은 그렇게 말하면서 이미 한 손과 양 발로 건물 바깥쪽 벽을 짚고 섰다. 으으, 정말 힘세군 이 자식... 내가 서현의 등에 매달리자 놈은 사람 한 명을 업고 있는 것 같지 않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순식간에 1층에 도착했다.

아직 수업 중이었지만 매점으로 들어가자 우리 말고도 학생들이 몇 명 더 보였다. 케네스 양도 학생들에게 뭐라 잔소리하기는 커녕 실실 웃으며 같이 수다나 떨고 있었고. 하긴 이게 우리 학교 수준이지... 우리는 그 중에서 앙리 유이를 찾아보려 했지만 놈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앙리 유이가 여기 안 왔나?"

서현이 물었지만 케네스 양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듯이 되물었다.

"앙리 유이? 그게 누군데?"

놈이 요란하게 하고 다니는 꼴은 꽤나 인상적일 텐데... 하도 학교를 안 나와서 케네스 양도 모르나 보다. 하여간;;

"머리는 금발 보브컷에 외눈 안경을 끼고 교복 바지를 나팔로 개조한 놈 정말 못 봤나? 아님 초콜릿을 대량으로 내놓으라고 하던 놈 없었어?"

나는 급한 마음에 두다다다 질문을 퍼부었지만 케네스 양은 성의없게 들으며 고개를 까딱~ 하다가,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찾아? 혹시 여자친구?"

"그런 거 아니거든!"

하여간 도움이 안 되는 자식...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서현에게 말했다.

"일단 여기서 놈이 오기를 기다려 볼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알 수가 없잖아."

"그렇다고 해서 계속 발로 뛰면서 찾을 수도 없지 않나?"

나와 서현이 그렇게 별 성과없는 말싸움을 하고 있던 중, 매점 문을 열고 또 누군가가 들어왔다. 젠장, 아는 얼굴이다. 교복 셔츠 대신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있는 그 놈의 이름은... 아그니!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아그니는 친구끼리 나눠먹자~ 하면서 반 넘게 뺏어먹는 놈이라 매점에는 잘 안 오는데?

"네가 매점에는 무슨 일로 왔지?"

나는 매점 안의 다른 학생들을 휙 둘러보며 말했다. 그들도 아그니의 등장에 잔뜩 경계하는 눈치였다. 그런 아이들을 본 아그니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왜들 그래, 내가 뭐 뺏어먹기라도 한 것처럼. 오늘은 모처럼 좋은 일을 해서 그런지 목이 말라서... 생수 사먹으러 온 거다. 여기 봐, 나 돈도 가져왔다고!"

그러면서 아그니는 교복 바지 주머니에서 동전들을 꺼내 짤랑짤랑 흔들어보였다. 저것도 아마 판치기 같은 걸로 땄을 테지만... 뭐 그런 것까진 내가 알 바가 아니다. 잠깐, 방금 아그니가 뭐라고 한 거지? 좋은 일을 했다고?

"니가 무슨 좋은 일을?"

내가 대놓고 의심하는 투로 물어보았지만, 아그니는 케네스 양에게서 산 1.5리터짜리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오늘 앙리 유이가 오랜만에 학교를 나왔더라? 초콜릿을 녹여서 뭘 만들어야 한다기에 내 불을 빌려주고 왔지. 간만에 보는 친구를 위해 내가 가끔은 이런 일도 한단 말야!"

그러면서 아그니는 자랑스럽게 가슴을 두들겼다. 나와 서현은 말을 잃어버린 채 서로를 쳐다보았다. 역시 아그니 자식... 좋은 일은 무슨! 아낙스를 부활시키려는 앙리 유이의 음모나 도와 주고!

"잠깐, 그럼 앙리 유이는 지금 어디있지?"

"옥상에. 이 학교에 아무한테도 안 들키고 뭘 끓일 만한 데가 거기 말고 더 있냐?"

그러면서 아그니는 킬킬킬 웃었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다. 아그니에게 불을 빌렸다는 것은... 초콜릿은 이미 다 준비가 되었단 말 아닌가?

"놈이 어떻게 벌써 충분한 양의 초콜릿을 손에 넣었지?"

"아무튼 우린 빨리 옥상으로 가자!"

패닉에 빠진 나를 다시 서현이 짐짝처럼 등에 멨다. 나는 매점을 나가기 전에 황급히 아그니에게 물었다.

"앙리 유이가 옥상에 있다는 거 진짜인가? 왜 그걸 다 말해주지?"

아무래도 역시 수상했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라고 해놓고 막 추궁하는 나한테 곧이곧대로 말해줄 리가 있나? 하지만 아그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다가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야 나 이외에 누가 뭘 성공시키는게 기분 좋지는 않으니까. 너네 지금 앙리 유이가 하는 걸 방해하러 가는 거지? 나는 직접 손을 쓰기 귀찮으니까 너네가 잘 해줬으면 좋겠어. 음, 굿 럭 보이!"

그러면서 아그니는 엄지를 척 들어주었다. 친구 잘 되는 꼴은 못 본다니... 역시 훌륭한 월야고의 쓰레기다, 아그니!

가슴 벅찬 감동을 뒤로 하고 나는 서현과 함께 벽을 타고 옥상으로 기어올라갔다.

"이번에도 업어줘?"

"아니, 올라가는 건 나도 할 수 있어!"

과연 옥상에 가까워지자 엄청나게 진한 초콜릿 냄새가 풍겼다. 이런 젠장할. 제발 앙리 유이의 마법이 성공하기 전이길 빌면서, 나는 힘겹게 옥상 위에 두 발을 딛을 수 있었다.

"호오. 내가 옥상에 있는 걸 어떻게 알고 왔지?"

앙리 유이는 곧 우리를 발견했지만 당황하기는 커녕 흥미롭다는 듯 쳐다볼 뿐이었다. 아그니가 가르쳐줬다고 말해도 별로 타격 안 받겠지...

"바보와 연기는 높은 곳을 좋아하니까 당연히 옥상에 있겠거니 했지!"

그 말을 들은 앙리 유이의 얼굴이 아주 잠깐 울그락푸르락했지만, 곧 놈은 여유로운 자세를 되찾았다. 쳇...

"멍청한 놈들. 너희는 이미 너무 늦었어!"

앙리 유이는 두 팔을 벌리고 웃어대더니 걸음을 옮겨 부글부글 끓고 있는 냄비 뒤로 갔다. 커다란 마법진 안에 있는 검은 액체가 가득 담긴 냄비...

"네가 가진 그 정도의 초콜릿으로는 마법을 완성할 수 없어! 그 양의 세 배는 더 있어야 하지만 우리가 온 이상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을 거야. 헛짓거리 하지 말고 지금 당장 그만둬, 앙리 유이!"

서현이 소리쳤다. 하지만 앙리 유이는 그 말을 듣고는 오히려 더 광기에 찬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크하하하! 네놈들이나 먹는 싸구려 초콜릿 가공품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이것은 내가 아낙스님의 부활에 바치기 위해 특별히 준비한, 합성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순도 99.9% 초콜릿이다! 그러면 이 작은 냄비 하나 정도만으로도 가능하다고!"

"카카오 함량이 중요한 거였다니... 젠장할!"

서현이 달려들려는 찰나 앙리 유이는 마법으로 엄청난 숫자의 벌레떼를 불러냈다. 그 하나하나도 크기가 제법 크고 무슨 독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는 벌 같은 생김새의 벌레들이 모여 앙리 유이와 냄비 앞에 새까만 벽을 이룰 정도의 무시무시한 모습에 서현도 멈칫하고 말았다.

"후후후... 얌전히 내 마법이 완성되는 것이나 구경해라... 이 얼간이들!"

이렇게 된 이상... 하는 수 없지. 나는 '그' 방법을 쓰기로 마음먹고, 점퍼 안주머니에 감춰두었던 에X킬라를 꺼냈다.

"내 벌레들을 그런 스프레이로 죽일 수 있을 것 같냐? 게다가 여긴 옥상이라서 스프레이는 금방 바람에 날아가 버릴 걸!"

"이건 화염방사기다 이 자식아!"

나는 다른 호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키고, 거기에 대고 스프레이를 분사했다. 작기는 하지만 벌레를 태워 죽이기에는 충분한 고온의 불길이 만들어져 벌레 벽은 스르르 허물어져 내렸다.

"이, 이 자식 감히 내 벌레들을... 그걸 가지고 다녔냐 한세건 이 미친 자식!"

"미친놈이니까 지금까지 월야고에서 버틴 거다!"

"그럼 내 차례군!"

벌레 벽이 치워지자 서현이 뛰어들어 초콜릿 냄비를 뻥 걷어찼다.

"안돼에에에에!"

앙리 유이가 비통하게 울부짖으며 달려들었지만 서현은 사정없이 플라잉 니킥을 날렸고 단번에 놈은 기절해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정말... 우리가 그 엄청난 음모를 막아낸 게 맞을까? 나는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몸은 이미 지쳐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런 채로 마법진 위에 녹은 초콜릿의 호수가 퍼져나가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한참동안 지켜보고 있으려니 서현이 피식 웃었다.

"많이 긴장했었나?"

"그런가 봐. 근데 이거 진짜 끝난 거 맞아?"

"맞아. 그리고..."

서현이 녹은 초콜릿 위에 손을 올리는 것을 보고 난 기겁했다.

"그거 안 뜨겁냐?"

"제법 식었어. 음, 이렇게 내 손까지 닿으면 초콜릿의 마력은 완벽하게 못 쓰게 되지."

그러면서 서현은 아예 초콜릿에다가 손을 넣고 휘휘 저어버렸다. 뭐 어쩌려고 하나 싶었는데 내게로 걸어와서는 볼 위에 쓱 발라준다. 초콜릿은... 과연 딱 기분 좋게 뜨끈한 정도였다.

"후... 잘 해결되어서 다행이다. 세계를 멸망시킬 악당을 막아냈으니 화염방사기 몰래 가지고 다녔던 것도 벌 안 받겠지...?"

내 중얼거림에 서현이 의아하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언제 아낙스가 세계를 멸망시킬 악당이랬나?"

"그럼 아니야?"

나는 되물으면서도 화들짝 놀랐다.

"난 그냥 악행이라고만 했거든. 그의 악행은 말이야... 사랑에 빠진 커플들을 죄다 찢어놓는 거였어."

그렇게 말하며 씩 웃는 서현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열심히 막은 보람이 있네, 이거."

그 순간, 서현의 얼굴에 쑥스러운 듯한 웃음이 떠오르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꼭 잡고 일어났다.

"학교 끝나고 고디바라도 갈까? 초콜릿 아이스크림 사줄게."

"지금 그거 데이트 신청?"

"네가 달라면서."

아차, 또 나와버렸다. 충분히 솔직하게 행동 못하는 내 버릇. 나는 하, 이 자식이? 라고 말하는 듯한 서현을 끌어당겨 품에 안고 그대로 거대한 초콜릿 웅덩이 위에 누워버렸다. 으음, 바닥에 부딪힐 때 등이 조금 아프긴 했지만 그대로 내 위에 엎어져 있는 서현의 미소지은 얼굴을 보니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오늘 널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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