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
드물었겠지만 분명히 그런 날이 있었다
준수는 싫었다.
준수는 배가 고팠고, 힘들었고, 아프고, 지쳤다. 왜 이런 짓을 하고 있을까? 자신을 비난하고 몰아세웠다. 한계에 부딪힌 몸은 멍이 들었고 머리를 뚫고 침범한 냉기는 두통이 되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싸늘한 날씨에 준수는 바닥을 긁으며 알 수 없는 환상통에 시달렸고 죽을 것처럼 울었다. 볼품없는 더벅머리를 쥐어뜯다가 푸석한 살갗을 꼬집었고 자다가 비명을 질러서 깼다.
그리고 박창이를 생각한다.
새벽 내내 외면하던 이름 세 글자를 떠올린 목구멍이 따가워졌다.
준수는……
부러진 손톱을 잘랐다. 튀어나간 조각은 햇볕이 앉은 마당으로 날아갔다. 화장실을 정리하고 머리를 빗었다. 물때 낀 타일을 긁어내고 닦는다. 청소하는 내내 락스는 쓰지 않았다. 가진 옷 두 벌 중 후드티 하나를 빨래해 널었다. 새 옷을 꺼내 입고 양치질을 했다. 머리를 빗고 거울을 본다.
준수의 집 거울은 낡은지 오래라 대충 봐도 거기서 거기로 흐리다. 자세히 보아도 다르지 않다. 날 것 그대로도 비추지 못하는 거울 앞에 선 황준수. 질 나쁜 더벅머리가 엉킨 모양, 색깔 짙게 보이는 멍, 덩어리지고 구겨지고 상한 거울 안의 모든 모습, 아무래도……
이게 황준수다. 준수는 자신을 돌이켜보지도, 바라보지도, 그러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지금은 그렇게 했다. 더는 외면하기 힘들었다. 그만둬야 했다. 이 형편없고 흐릿한 모양 안에 가둬두기에 감정은 찬란했고 밤은 너무 깊고 멀기만 했다. 목구멍을 쑤셔 변기에라도 뱉어내야 했다. 그게 준수가 새벽 내내 악몽을 꾸며 노력한 바이다. 그래. 준수의 손이 녹슨 세면대 끝을 움켜쥔다. 베인 듯 서늘하다. 영원히 외면할 수는 없어. 준수는,
배가 고팠다. 침대 밑엔 현금으로 받은 팁이 숨겨져 있다. 준수는 지폐 한 장을 꺼내고, 멈췄다가, 다시 넣었다.
오늘은 그래도 일이 있으니까. 공사장에 오는 밥차는 맛이 기가 막힌다. 안면을 튼 정 씨에게 부탁하면 일당 받기 전 밥값 정도는 빌려줄 테다. 준수는 개미굴처럼 좁은 골목의 그림자에서 기어나왔다. 다른 꿈이라곤 꿀 수 없는 그 좁다란 틈바구니에 사는 준수가 걷기 시작했다. 걸음을 재촉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스스로 멈추면 그만이다. 멈추면……
그러나, 그리고, 전화벨이 울렸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