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설 타입 26

명탐정 코난 - 아무로 토오루

세리자와 유이에게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유이와 가깝게 지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유이는 좋아하는 사람을 숨기지 않았다. 아낌없이 애정을 퍼부으며 좋아하는 걸 드러냈다.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즐겁게 웃었다. 정작 짝사랑 상대인 후루야는 썩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유이를 대했다. 그 마음을 보답할 수 없다며.

어쩔 수 없지. 짝사랑은 일방통행이다. 제가 좋아한다고 해서 상대방 또한 반드시 좋아한다는 보장이 없다. 특히 후루야는 신중한 남자였다. 그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 유이는 그런 후루야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렸다. 그를 좋아하는 만큼 그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이건 상상하지 못했다.

유이는 504호라고 적힌 문을 눈에 담았다. 이 문 앞에 선 지 얼마나 됐더라. 오늘까지 포함해서 약 한 달이 지났음에도 영 익숙해지지 않았다. 유이는 도어락 비밀번호를 눌렀다. 삑, 삑삑삑삑삑. 자그마치 여섯 자리나 되는 숫자를 누르고 나서야 잠금장치가 해제됐다.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잡아당겨 안을 보았다. 깔끔하게 정리된 복도와 함께 하로가 꼬리를 흔들면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

“다녀왔어.”

유이는 하로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로는 기쁘다는 듯이 제 자리에서 빙그르르 돌았다. 안쪽에서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로 혼자 맞이하는 걸 보면 아직 후루야가 오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제 집임에도 이상하게 심장이 쿵쿵 뛰었다.

약 두 달 전, 유이는 아주 우연히 후루야의 비밀을 알게 됐다. 후루야는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유이의 직감 앞에서 패배했다. 후루야는 당혹스러우면서도 어쩔 수 없이 유이에게 같이 살 걸 제안했다. 명목상 제 비밀을 누설하지 않도록 감시한다고 했지만, 유이에게는 아무렴 좋은 이야기다. 그렇게 같이 살 집을 알아보고 겨우 이사하게 됐다. 어쩐지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집안을 둘러보았다. 역시 후루야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쉽지만 받아들였다. 레이는 바쁘니까. 유이는 익숙하게 소파에 앉았다. 새로 산 소파는 무척 푹신하여 유이를 부드럽게 받아주었다. 이대로 후루야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까.

그렇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자니 무료했다. 유이는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며 고민했다. 무엇을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유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없었다. 특히 무엇이든 다 잘하는 후루야와 비교하면.

“에이. 레이랑 날 비교하는 건 좀 그렇지.”

그래도 유이는 자기 객관화가 잘 되는 편에 속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걸 구별할 수 있다. 유이는 소파 한구석에 둔 푹신한 인형을 껴안았다. 커다란 곰 인형은 아주 예전에 후루야에게서 선물 받았다. 무슨 경품에서 따왔다고 했는데. 같이 살 집으로 이사 오면서도 도저히 버릴 수 없어서 가져왔다.

곰 인형에 얼굴을 파묻고 생각했다. 최근 들어서 후루야는 무척 바쁘게 지내고 있다. 아침 일찍 나가서 새벽이 되어서야 간신히 돌아왔다. 유이의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굴었지만, 모른 척 넘어가기에는 걱정됐다. 저러다 과로로 쓰러지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후루야는 위태로웠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조금이라도 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유이는 곰 인형을 저 멀리 떼어놓았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밖에서 힘들게 일하는 후루야를 위해 집안일을 전부 해놓는다면? 그렇다면 후루야도 집안일에 시간을 소모하는 일 없이 일 분이라도 더 쉴 수 있지 않을까?

“좋아! 할 수 있어!”

지금까지 집안일은 서로 분담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분담하기로 약속만 하고 후루야 혼자서 전부 했다. 유이는 간단하게 하로에게 밥을 주거나, 혹은 산책을 한 게 전부였다. 유이는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후루야가 신기했다. 매일 늦게 들어오면서 집안일 할 체력까지 있다니. 존경스러웠다.

자신도 할 수 있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후루야는 들어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체념했으나 잠자코 있기에는 유이의 양심이 찔렀다. 후루야가 편히 쉬려면 자신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한 번 생긴 의욕이 유이를 움직이게끔 만들었다. 할 수 있어, 집안일이라면 많이 했잖아. 그리 어려운 게 아냐. 주먹을 꽉 쥔 채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하로는 그런 유이의 행동을 이해한 걸까. 유이의 다리에 얼굴을 비비며 핥았다.

“우선 하로 점심부터.”

유이는 익숙하게 사료를 꺼냈다. 하로를 착하게도 편식하지 않았다. 셀러리는 안 먹었지만, 지금까지 사료를 단 한 번도 남긴 적이 없었다. 사료를 밥그릇에 부어주자마자 허겁지겁 먹는다. 배고팠구나, 잘 먹으니까 좋네. 한참 잘 먹고 있는 하로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금 떨어져서 구경했다. 어느새 사료 한 알도 남지 않은 깨끗한 밥그릇이 보였다.

잘 먹으니까 좋네. 유이는 부드럽게 하로를 쓰다듬었다. 나중에 청소할 때 하로가 얌전히 있으면 간식 줘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다음에는 빨래가 나으려나.”

유이는 그렇게 말하며 제 방으로 향했다. 아침에 나설 때 미처 정리하지 못한 옷이 침대 위를 뒹굴고 있다. 유이는 빨아야 할 옷과 아닌 옷을 구분했다. 흐음, 이건 슬슬 빨아야지. 세탁기 옆에 놓아둔 빨래 바구니 안에 옷을 넣어두었다. 다행히 빨아야 할 옷은 그리 많지 않았다.

슬그머니 유이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베이지색 벽지를 바른 벽 너머에는 후루야의 방이 있다.

“드, 들어가도 되겠지?”

이상한 목적이 있는 건 아니니까. 제 몫의 빨래만 하는 건 비효율적이다. 유이는 후루야가 조금이라도 쉴 수 있도록 집안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유이는 제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평소보다 요란하게 뛰는 심장 때문에 아팠다. 고작 후루야의 방에 들어갈 뿐인데, 이게 뭐라고. 유이는 애써 심호흡하며 진정했다.

후루야의 방에 들어가는 건 처음이었다. 후루야가 들락거릴 때마다 방 내부를 얼핏 본 적이 있었지만. 유이는 슬그머니 빨래 바구니를 문 앞에 두었다. 다소 장식이 많고 아기자기하게 꾸민 유이의 방과 달리 후루야는 지극히 깔끔한 편에 속했다. 군더더기가 없다고 해야 하나. 꾸미지 않았다. 대신 실용적이다. 유이에게는 그런 인상을 주었다.

딱 필요한 가구만 있었으며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유이는 자신의 방이랑 전혀 다른 모습이 신기했다. 후루야의 방은 이렇구나. 하마터면 넋 놓고 구경할 뻔했다. 유이는 재빨리 두 손으로 볼을 찰싹 때렸다. 두 볼이 살짝 붉은 빛을 띄었다.

“난 청소하러 온 거니까! 일단 빨래, 빨아야 할 옷부터 찾자!”

구경하는 모습을 후루야에게 들키면 안 된다. 유이는 재빠르게 방을 탐색했다. 책상이 조금 어지럽다는 걸 제외하면 빨아야 할 옷도, 치워야 할 짐도 없다. 후루야는 늘 깔끔하게 하고 살구나. 다시 한번 깨달았다. 제 손을 거쳐 갈 부분이 없다는 걸 알았을 땐 조금 서운했다. 한편으로 자신도 이렇게 깔끔하게 치워볼지 고민했다.

별다른 수확 없이 빨래 바구니를 들고 세탁기로 향했다. 세탁기 근처에는 빨아야 할 옷이 조금이나마 있다. 그제야 유이는 제가 뻘짓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지…. 보통 빨아야 할 옷은 방에 안 두고, 여기에 두니까. 그래야 빨리 세탁할 수 있으니까….”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아주 당연한 걸 잊어버렸다니. 유이의 뺨을 비롯하여 얼굴에 새빨개졌다. 아, 진짜. 레이가 없어서 다행이야. 만약 있었더라면 유이는 창피한 나머지 며칠 내내 후루야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집에 하로만 있어서 다행이다. 유이는 자세를 낮춘 채 스스로를 탓했다. 부끄러워, 부끄러워! 몇 번이고 그렇게 생각했다. 조금 있으니 괜찮아졌다.

“다음에는 이런 실수하지 말아야지.”

수건은 따로 삶아야지. 세탁기 안에 옷을 넣으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속옷은 같이 빨아도 되나? 평소에는 제 몫만 빨래한 탓에 헷갈리기 시작했다.

유이는 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폰을 꺼냈다. 이럴 때는 검색해야지. 남녀 속옷 같이 빨기. 처음에는 간단하게 요점만 정리했다. 검색하자마자 가장 첫 번째로 뜬 블로그를 꾹 눌렀다.

“뭐야. 같이 빨아도 되네. 다행이다.”

유이는 망설이지 않고 세제를 넣었다. 빨랫통에 물이 조금씩 차오르더니, 이내 빙그르르 돌리기 시작했다. 맞다, 섬유유연제도 미리 넣어야지. 유이는 세제 넣는 공간을 열었다. 제 몸이 있는 쪽으로 잡아당기니 스르륵 열렸다. 섬유유연제는 잊어버릴 수 있으니까. 어림짐작해서 적당히 넣었다.

이제 세탁기가 힘낼 시간이다. 유이는 드디어 제대로 된 집안일을 했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다음에는 청소해야지. 유이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청소기를 찾았다. 청소기는 거실 콘센트 근처에 덩그러니 있다.

“음, 일단 청소기를 돌리는 것보다 이것저것 정리한 뒤에 돌리는 게 좋겠지?”

여러 번 돌리면 귀도 아프고 번거로우니까. 유이는 우선 제 방을 먼저 치웠다. 유이의 방에는 그리 치울 만한 게 없었다. 기껏해야 침대 위에 놓아둔 옷을 정리하는 정도. 유이는 깔끔하게 옷을 갰다. 옷걸이에 걸어둔 뒤 옷장에 넣었다. 옷 몇 벌만 정리해 넣었을 뿐인데, 방이 훨씬 깔끔해진 거 같았다.

내친김에 책상 위에도 물티슈로 깔끔하게 닦았다. 겉으로 보았을 땐 모르고 있었는데 먼지나 조금 쌓여있었다. 우와. 유이는 한 번 닦을 때마다 묻어나오는 먼지를 보고 놀랐다. 이래서 청소를 부지런히 해야 하구나. 여러 번 쓸고 닦았다. 그렇게 더러운 건 아니었지만, 어째 방이 평소보다 반짝반짝 빛나는 거 같았다.

다음에는 후루야의 방이다. 오늘로 두 번째, 아까와 달리 심장이 거칠게 뛰지 않았다. 방에서는 익숙한 냄새가 풍겼다. 후루야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풍기는 어렴풋한 그의 체취. 그러고 보니 그의 방은 그가 오랫동안 머무는 곳이다. 방에 존재하는 모든 건 그의 손을 거쳤다. 그 사실을 자각하자마 다시 부끄러워졌다.

‘이상하다, 내가 이렇게 변태였나?’

어쩐지 들어가서 안 되는 비밀의 방에 발을 들인 거 같았다. 이걸 후루야가 알면 꽤 화내겠지. 멋대로 들어가지 말라고 여러 번 말했으니까. 유이는 머뭇거렸다. 조금 전에 들어왔을 때부터 알았지만, 후루야의 방은 전반적으로 깨끗했다. 책상 위에는 쌓인 종이는 금방 치울 수 있다.

하지만 유이는 서류를 비롯하여 그의 물건을 건드리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에 들은 말이 있다. 타인이 보았을 때 엉망진창으로 보이는 것도, 그렇게 만든 사람은 제 나름대로 규칙이 있다고 했나.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이해되지 않았다. 유이는 괜히 제가 건드려서 어지럽히는 일을 방지했다. 바닥이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쌓인 먼지만 닦아냈다.

깔끔해진 바닥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거실로 나섰다. 거실 또한 겉으로 보았을 때는 깔끔해 보였다. 하지만 구석구석 쌓인 먼지나, 미처 정리하지 못한 게 있다. 하로는 어느새 장난감을 물고 홀로 놀고 있었다. 유이는 하로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털의 감촉이 좋았다.

“그래, 그래. 조금만 기다려. 곧 맛있는 거 줄게.”

“멍!”

제 말을 알아들은 걸까? 하로가 꼬리를 흔들며 얌전히 앉았다. 하로의 두 눈이 마주쳤다. 진짜 귀엽다니까. 유이는 몇 번 더 쓰다듬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속해서 거실을 비롯하여 집안 내부를 꼼꼼하게 정리했다. 먼지가 있으면 닦아냈고, 흐트러진 물건이 있으면 바르게 꽂아 넣었다. 그렇게만 했을 뿐인데 어느새 오후 다섯 시가 넘었다. 창 너머로 하늘이 저녁을 맞이하고 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예상외로 정리하는 게 재밌었다. 만약 하로가 한 번 짖지 않았더라면 후루야가 올 때까지 그랬을지도 모른다. 유이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하로를 보았다. 뭐가 그리 좋을까. 살짝 헤벌쭉 웃는 모습이 귀여웠다.

“진짜 레이가 잘 데려왔네.”

하로는 레이가 데려온 개다. 유기견 출신이었다고 했나. 기댈 곳 하나 없는 하로를 후루야가 반쯤 충동적으로 데려왔다는 말을 들었다. 유이는 후루야의 행동에 칭찬했다. 유이는 강아지는 좋아했다. 늘 강아지를 비롯한 동물이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그런 바람을 알아준 걸까? 하로는 별 탈 없이 잘 지냈다. 종종 유이에게 꼬리를 흔들거나, 배를 발라당 까며 애교를 부렸다.

“그거 알아? 난 레이랑 같이 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 그래도, 그게 싫다는 건 아냐. 이렇게 하로랑 지낼 수도 있고. 툴툴거리면서 계속 챙겨주는 레이를 볼 수 있으니까. 아. 레이가 나보고 못 하게 하는 건 조금 답답하지만!”

저도 모르게 하로에게 하소연하고 말았다. 이제 막 한 달이 됐을 뿐인데 쌓인 게 제법 됐다. 후루야가 해주는 걸 넙죽 받기만 할 정도로 유이는 뻔뻔하지 않았다. 기왕이면 후루야를 돕고 싶었는데 그가 허락해 주지 않았다. 괜히 유이가 후루야 몰래 집안일을 하는 게 아니다.

하면서도 계속 생각했다. 과연 이게 후루야의 짐을 덜어주는 일일까. 제가 잘 해내고 있는 걸까. 어쩐지 자신이 없었다. 후루야처럼 척척 해내고 싶었는데. 아직 자신은 갈 길이 멀었다.

“에이, 투정 부려봤자 바뀌는 건 없어. 청소는 이 정도로 하고 슬슬 저녁 준비해야지.”

청소기를 제자리에 갖다 놓고 부엌으로 갔다. 무엇을 만들지 고민하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후루야가 미리 만들어 둔 반찬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특별히 제가 만들 만한 건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밥솥에는 아침에 지어놓은 게 있다.

이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걸까. 유이는 냉장고 구석구석 찾아보았다. 마침 계란이 눈에 들어왔다. 유이는 계란 세 알 정도 꺼냈다. 며칠 전에 계란말이를 만들다가 실패했었지.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다짐하며 계란말이용 팬을 가져왔다.

계란말이를 만드는 방법은 지극히 평범했다. 계란을 깨고, 잘 저어서 팬에 굽는다. 다 구워지면 이쁘게 말아서 썰면 된다. 이 간단한 조리법을 유이는 잘 해내지 못했다. 잘 저어서 팬에 붓는 건 괜찮았지만, 이상하게 구울 때마다 계란말이가 시커멓게 탔다. 센 불에 만든 것도 아닌데.

예전에도 계란말이를 잔뜩 실패한 탓에 후루야에게 혼났다. 굳이 못 하는 걸 억지로 할 필요가 없다고 달래주었지만, 유이는 기왕이면 잘 해내고 싶었다. 계란말이를 비롯하여 여러 요리를 할 줄 알면 좋다. 여차할 때 스스로 해 먹을 수 있으니까.

유이는 먼저 스마트폰에 검색했다. 계란말이를 맛있게 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그런 얄팍한 기대를 품고 블로그 글을 꾹 눌렀다. 어째선지 모르겠지만 만들 때 애정을 담아서 요리하면 맛있어진다고만 적혀있다.

“아니, 그걸 누가 모르냐고! 내가 그걸 알고 싶어서 검색한 줄 알아?”

블로그에는 아주 기본적인 조리법만 적혀있었지만, 그건 유이가 바라는 내용이 아니었다. 하다못해 무슨 조미료를 넣으면 더 맛있어진다거나, 잘 구울 수 있는 방법을 원했는데. 유이는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퍽 내쉬었다. 요령껏 잘 해내야지. 자신감이 살짝 떨어진 상태로 계란을 깼다.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볼에 넣은 뒤 가볍게 저었다. 노른자가 터지면서 점점 계란물이 노랗게 변했다. 그렇게 한참을 젓고 있었던가. 유이는 소금을 살짝 넣은 뒤 팬에 기름을 두르고 구워보았다. 부디 이번에는 성공해야 할 텐데. 유이는 굽기 전에 불 온도를 확인했다. 좋아, 센 불은 아니다. 유이는 나무에 코팅된 젓가락으로 천천히 팬을 움직이며 구웠다.

막연하게나마 이번에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어쩐지 느낌이 좋았다.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어느 정도 구워졌을 때 유이는 계란을 천천히 말아보았다.

“아! 또 실패했어!”

계란 밑부분이 탔다. 그렇게 오래 구운 것도 아닌데 왜 그런 걸까. 도무지 모르겠다. 유이는 입을 삐죽 내민 채 투덜거렸다. 레이는 잘하는데, 왜 나는 못 하는 거야? 자존심이 상했다.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후루야처럼 계란말이를 잘 만들고 싶었다.

문제라도 알면 좋을 텐데. 유이는 이리저리 머리를 싸맨 채 고민했다. 계란말이가 이렇게 어려웠나. 혼자 살 때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대충 굽고, 탄 부분이 생기면 그것만 버렸다. 그때는 적당히 배만 채우면 됐으니까. 유이는 슬쩍 실패한 계란말이를 먹어보았다. 어쩐지 후루야가 만들 때와 달리 맛이 부족했다.

“그러고 보니 레이는 구울 때 이것저것 넣었지.”

설마 자신이 덜 넣은 게 있나? 유이는 황급히 포털 사이트에 계란말이 만드는 법을 검색했다. 매번 가볍게 훑어본 탓에 유이가 놓친 부분이 제법 됐다. 음, 그렇구나. 맛을 부드럽게 하려면 우유나 설탕 등을 조금 넣으라고. 다시마를 우린 육수도 넣으면 좋다고. 혼자서 중얼거리며 계란말이 만드는 법을 필사적으로 머릿속에 넣었다.

“좋아! 이제 할 수 있어! 계속해 보자!”

다시 냉장고에 계란 세 알을 꺼냈다. 볼을 깨끗하게 씻은 뒤 다시 계란을 넣었다. 껍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조금 남은 우유를 붓고, 소금과 설탕으로 간을 맞추었다. 다시마 육수는 안타깝게도 준비할 시간이 없으니 생략. 마찬가지로 불의 온도를 확인한 후 천천히 구웠다.

부디 이번에는 잘되어야 할 텐데. 유이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계란말이를 뒤집었다.

*

“다녀왔… 응?”

평소였다면 하로가 컹컹 짖으며 맞이해 주었을 텐데, 어쩐지 보이지 않았다. 후루야는 의아하다는 눈으로 내부를 살폈다. 어째 제가 나가기 전보다 정리가 된 느낌이다. 유이의 신발이 있는 걸 보면 자신보다 일찍 왔다는 말인데. 후루야는 제 신발과 유이의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로 향하는 문을 열자마자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저도 모르게 킁킁 맡아보았다. 유이가 요리했나? 후루야는 여러 번 유이에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유이는 겉으로 알겠다고 대답하면서도, 제가 없는 틈을 타서 몰래 했다. 무엇이든 잘 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그 점이 좋았다. 저도 모르게 그런 모습에 끌리게 됐다.

끌리지 않았더라면 같이 살자고 제안하지도 않았다. 후루야는 슬쩍 몸을 틀어 부엌을 보았다. 부엌 식탁에는 엉망진창으로 된 노란색 무언가가 있었다. 접시에 있으니까 먹을 건가? 후루야는 재빨리 음식에서 노란색이 들어갈 만한 걸 떠올랐다. 가장 대중적인 건 계란 요리다.

유이는 어쩐지 슬프면서도 허탈한 모습으로 식탁 위를 응시했다. 아무래도 집에 있는 접시를 다 꺼낸 모양이다. 식탁 위에는 접시로 가득했다. 후루야는 그 짧은 순간에 유이가 무엇을 했는지 파악했다. 검게 탄 자국으로 보아 요리에 실패한 거 같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얼핏 유이의 뒤에 계란 껍질이 쌓여있다.

후루야의 추측은 딱 들어맞았다. 엊그제 잔뜩 사놓았던 계란이 전부 사라졌다. 그 많은 걸 전부 다 요리하는 데 썼다니. 놀라우면서도 신기했다. 이렇게 처참한 실패 현장을 목격했지만, 유이는 결코 요리를 못하는 편이 아니었다. 단지 보기좋게 꾸미는 게 서툴렀을 뿐이다.

유이는 후루야가 왔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냉장고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거대한 몸집에 유이가 깜짝 놀랐다.

“레, 레이? 언제 왔어?”

“지금 왔는데, 이건 대체.”

후루야의 검지가 접시를 가리켰다. 유이는 부끄럽다는 듯 멋쩍게 웃었다. 하, 하하. 그게 있지. 그런 식으로 오늘 있었던 일을 천천히 털어놓았다.

“그냥 내가, 레이랑 같이 살잖아. 근데 매번 레이에게 기대기만 하고 아무것도 해주지 않으니까, 레이가 조금이라도 쉴 수 있도록 이것저것 해보았거든. 빨래나, 청소는 괜찮았는데 계란말이가 잘 안됐어.”

계란말이에 실패했다는 부분에서 얼핏 유이의 얼굴에 눈물이 맺히는 거 같았다. 유이는 금방이라도 울어도 이상하지 않은 표정으로 후루야를 보았다. 가볍게 투정 부리면서도, 실패를 곱씹으니 억울한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종종 유이가 속상할 때마다 내비치는 버릇이었다.

“흐음.”

후루야는 생각했다. 청소라는 목적으로 제 방에 들어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가슴이 철렁였다. 혹여 유이가 제가 짊어진 비밀을 더 알아내었을까 봐. 그러나 유이는 바닥에 쌓인 먼지를 닦아낸 걸 제외하면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이 건드렸다가 후루야가 중요한 걸 찾을 때 힘들 수 있으니까.

어쩐지 기특했다. 이렇게 자신을 위해서, 아무 이득을 고려하지 않은 채 노력했다는 점이 기뻤다. 후루야는 작게 웃으며 유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계란말이라면 언제든지 제가 만들어 줄 수 있다. 하지만 유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다.

“계란말이라면 만드는 법 알려줄 수 있어.”

“진짜?”

“그럼. 이런 걸로 거짓말은 안 해.”

“레이땅, 고마워!”

그제야 유이는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제게 계란말이를 먹이고 싶었던 걸까. 어쩐지 귀여우면서도 놀리고 싶어졌다. 그러나 후루야는 그러지 않았다. 유이는 한두 번 보고 헤어질 사이가 아니다. 기왕 같이 살게 됐으니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작게 투닥거리는 정도야 아무렇지도 않지만.

“레이땅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지.”

“레이땅은 레이땅이잖아.”

“하… 됐어. 일단 이것부터 정리하고 계란 사러 가자.”

“응!”

유이는 신난 듯 활짝 웃으며 싱크대에 쌓아둔 계란 껍질을 버렸다. 후루야는 유이가 껍질을 버리는 사이에 계란말이를 몰래 먹었다. 다행히 간은 잘 된 편에 속했다. 구울 때 요령만 잘 터득하면 되겠네. 후루야는 유이가 맛있게 만든 계란말이를 먹을 수 있는 날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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