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흑발소년
세리자와 유이에게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유이와 가깝게 지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유이는 좋아하는 사람을 숨기지 않았다. 아낌없이 애정을 퍼부으며 좋아하는 걸 드러냈다.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즐겁게 웃었다. 정작 짝사랑 상대인 후루야는 썩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유이를 대했다. 그 마음을 보답할 수 없다며. 어쩔 수 없지. 짝사랑은 일방통행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수업은 여전히 재미없었다. 공부에 전혀 흥미를 붙이지 못했다. 이미 부모님도, 선생님도 다 포기했는데 굳이 열심히 할 필요가 있나. 턱을 괸 채 멍때리자, 문득 창 너머로 푸른 하늘이 보였다. 날씨 하난 끝내주네. 이렇게 좋은 날에는 나가서 놀아야 하는데. 오소마츠 잠시 주위를 훑었다. 같은 반 아이들은 즐겁다는 듯 저들끼리 웃고 떠들었
포트마피아는 어둠이었다. 저녁노을이 하늘을 가득 메우며 별 하나 보이지 않을 때. 눈앞에 있는 것조차 가늠하기 어렵고,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내일에 대한 막막함. 결코 빛으로 나아갈 수 없는 시궁창의 쥐들이 모인 게 바로 포트마피아였다.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는 곳. 거기에 속한 다자이 오사무 또한 비슷했다. ‘참으로 웃긴 곳이지.’ 시궁쥐라는 걸
“레이땅, 나 왔어!”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카페 문이 활짝 열리며 약속이라도 한 듯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쪽으로 쏠렸다. 유이는 늘 그렇듯 로리타 계열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귀엽다고 해야 하나, 그런 의상이었다.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데 자리 잡고 있었던 코난은 유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무로 형은 아직 안 왔어
# 헤아리는 게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이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저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즐거움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어쩐지 영 익숙하지 않았다. 아쿠타가와와 유노는 이런 상황에서 그저 침묵을 유지했다. 찌푸린 인상은 펴지지 못한 채 무어라고 입을 열었다가 다물기는 몇 번이나 반복했던가. 밝은 빛에서 멀어지기 위해 최대한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했다. 어느새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와 함께 동반자살을 하지 않겠습니까?” 익숙한 목소리가 저 멀리서 들렸다. 덥수룩한 머리카락에 옅은 갈색 코트. 팔과 목을 꽁꽁 둘러싸고 있는 붕대. 목소리의 출처로 추정되는 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여자에게 마치 고백이라도 하듯 부탁하고 있었다. 여자는 대뜸 이런 말을 들을 줄 몰랐기에 곤란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폈다. 혹여 자신을
죽음이란 무릇 만인에게 평등했다. 리본은 비 오는 거리를 조용히 훑었다.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빗소리는 마치 질척거리는 옛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날도 이처럼 비가 왔었지. 리본은 이제 돌아오질 않을 여인을 향해 그리움이 가득한 회상을 했다. 부질없다는 건 알면서도 이상하게 매달리게 됐다. 그녀의 이름은 하나였다. 어느 자그마한 약소 패밀리에 소속되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루토는 유독 하나에게 약했다. 세심히 배려하고 챙겨주었다. 처음에는 많이 서툴렀지만, 나중에 가서는 그럭저럭 괜찮은 모양새가 되었다. 하나는 어째서 나루토가 자신을 챙겨주는지 궁금했다. 무심코 딱 한 번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나루토는 어째선지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오빠니까, 여동생을 지키는 건 당연한 거잖아. 그런 걸까.
#2 이상할 정도로 푸른 하늘이었다. 여느 때와 비교하면 특별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여름에 진입하면서 하늘은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한 푸른빛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햇볕이 점점 더 강렬히 내리쬐고 공기가 조금씩 후덥지근해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아이들은 여름이 오고 있다는 걸 느꼈다. 과할 정도로 제 푸름을 과시하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나는 기이한
아름다운 순간은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저녁노을이 복도 내부를 비추고 있다. 짙은 그림자와 함께 주황빛으로 물든 복도를 보고 있자니 낮의 풍경이 거짓처럼 느껴졌다. 눈을 감으면 낮에 보았던 모습이 이토록 선명하게 그려지는데.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눈을 감았을 때 선명한 푸른빛의 복도와 현재의 주황빛 복도는 확연히 다른 공간이었다. 시간대가 다를 뿐인데,
빈말로 좋은 관계가 아니라고 자부할 수 있다. 모든 게 뒤틀리고 어긋났다. 정상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인간다운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은 그를 볼 때마다 레슬리는 작은 거부감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그를, 나자 로도미사를 밀어내고 있다. 거만하다 못해 모든 걸 제 밑으로 두는 말투도, 행동도. 그 무엇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레슬리는 제가 이상하다
완전하지 않았다. 길가메쉬는 두 주먹을 쥐었다 폈다.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다른 이도 아닌 자기 자신이 이런 처지가 될 줄이야. 어이가 없어진 나머지 비웃음에 가까운 웃음을 토해내고 나서야 진정할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왕의 재보는 꺼낼 수 있다. 아니, 애초에 제 것을 꺼내지 못하면 주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제 몸은 불완
그는 이름 없는 존재였다. 언제 태어났더라? 그는 기억을 더듬었다. 맨 처음 시야에 들어오는 건 부모로 추정되는 자의 얼굴이었다. 그들은 몹시 늙었다. 도저히 갓 태어난 자식을 보았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까지 자신은 여느 생명체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태어나고, 자라고, 끝내 사라지는 그런 삶을. 그러나 그는 잘못 생각하고 있
“맞다, 벚꽃 라임 주스라는 거 알아요?” “…그게 뭔데?” 갑작스러운 질문에 규범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태현은 익숙하다는 듯이 제 스마트폰을 꺼내 보여주었다. 화면 속에는 깔끔하게 단장한 카페가 있었다. 아직 오픈하기 전인지 내부는 커튼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사진은 아침 햇살이라도 받는지 유독 밝고 선명했다. 끄트머리에 교복을 입은 손이나 운동화가
그 순간 자기 자신이 끔찍하게 싫어졌다.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내면에 깊숙이 숨어 있었던 이기심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유메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커다란 두 눈이 조금씩 젖어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려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리본이 아무리 어리광을 받아준다고 해도 그건 ‘유메’를 향한 호의가 아니었다. 자신이 이렇게 리본과 마주할 수 있
최근 들어서 리본이 이상해졌다. 사와다 츠나요시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 서류에서 눈을 떼자, 집무실 한 가운데에 놓인 소파에 늘씬한 남성이 앉아 있었다. 남자는 모든 게 검었다. 머리카락부터 시작해, 모자, 의상, 눈동자까지. 마치 검은색에 잡아먹힌 사람과도 같았다.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겉으로 보았을 때 멀쩡했다. 특별히 문제가 있
밖으로 나갈 때마다 차가운 공기가 박문대의 몸을 감쌌다. 바람이 한 번 불 때마다 공기가 훅 떨어진 게 저절로 느껴졌다. 아, 이제 곧 겨울인가. 아직 크리스마스가 한참 멀었음에도 떠들썩한 거리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 지금은 10월 말이었지. 곧 할로윈이었나? 박문대에게 있어서 할로윈은 그다지 좋은 기념일이 아니었다. 요즘 들어서 다들 챙기는
‘얘네는 할 일이 이거밖에 없나?’ 박문대는 눈을 가늘게 떴다. 멀리서 보면 얼핏 찌푸린 것처럼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선 안 되는 음울한 분위기에 모두 저마다 숨을 삼켰다. 활자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박문대와 체리를 욕했다. 격했다가 차츰 가라앉았다가 격해지는 걸 반복했다. 하루 내내 타인의 욕을 안 하면 입에 가시라도 돋는 일이 생
박문대는 자신이 알코올 중독이라는 자각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마시지 않나? 다들 속이 답답할 때마다 한두 캔 정도는 마시잖아. 만약 이런 박문대의 생각을 다른 멤버들이 알고 있었더라면 모두 기겁했을 일이다. 박문대는 본인의 주량 자체가 아무 문제도 없고,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답답할 때 한두 캔 마시는 것 자체는 문제없었다. 대한민국에
여러모로 바쁜 나날이었다. 박문대는 비스듬한 자세로 스마트폰을 만졌다. 이렇게 좋지 못한 자세로 있어봤자 자신만 후회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쉬이 고치지 못했다. 그럴 정도로 박문대는 여유롭지 못했다. 안 그래도 이번에 웬 이상한 놈에게 시달렸다. 납치당하지 않나, 협박받질 않나. 겨우 한 방 먹일 수 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됐다. 숙소로 돌아온 후 박문대
최근 들어서 다자이가 이상했다. 체리는 눈을 날카롭게 뜬 채 다자이가 사라진 흔적을 보았다. 늘 그렇듯 그는 여유로웠다. 상대에게 적당히 좋은 말만 해주다가, 시간이 되면 헤어질 때라면서 황급히 자리를 정리했다. 마치… 바람을 피우는 거 같았다. 불쾌한 감각이 체리를 스쳐 지나갔다. 체리의 자존심은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무시하는 걸 극도로
“참 재밌는 관계라네.”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이신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괜찮네. 그저 혼잣말이었을 뿐이니. 하지만 자네도 생각해보면 그 둘의 관계가 무척 재밌다는 걸 알 수 있을 테니, 한번 생각해보게.” 모리 오가이의 혼잣말은 마치 누구에게 들려주고 싶었다는 듯 크고 또렷하게 들렸다.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이라면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들을 수
시간은 착실히 흘러갔다. 벌써 포트 마피아에서 나온 지 1년이 지났다. 다자이 오사무는 무심한 눈길로 달력을 훑었다. 전혀 실감 나지 않았다. 여전히 자신은 포트 마피아의 어둠에 평생 묻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이렇게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니. 과거에 자신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면 믿기 못하겠지. 무장 탐정사 직원들은 모두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 다자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저 멀리서 아야네가 절뚝거리며 걷는 게 보였다. 척 보아도 임무에 갔다가 다친 것 같았다. 포트 마피아에서 아야네를 다치게 할 수 있는 게 있는가? 정답은 아니었다. 포트 마피아는 의외로 쓸만한 장기말에 관대했다. 다자이는 초조함을 억누르며 아야네 곁으로 다가갔다. 아야네는 저를 향해 다가오는 인기척에 몸을 확 틀어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무장 탐정사의 상태는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다. 그야 그렇겠지. 란포는 재빨리 생각했다. 이 혼란 속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 아마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혼란에 몸을 맡긴 채 군중 속에 섞여들겠지. 모두가 주장하는 게 가장 옳은 의견이라고 할 거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들은 제 나름대로 처신했을 뿐이다. 무장 탐정
주성철에게 있어서 이민호는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실적이 없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필 실적도 어느 정도 있으면서 사고를 쳤다. 괜히 ‘폭탄’이라는 별명이 붙은 게 아니었다. 성철은 민호의 소문을 접했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평생을 여성청소년과에서 보낼 리 없지만, 그래도 제 밑으로 들어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직접 얼굴을 맞댔을 때 어떻게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