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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 3 - 주성철

주성철에게 있어서 이민호는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실적이 없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필 실적도 어느 정도 있으면서 사고를 쳤다. 괜히 ‘폭탄’이라는 별명이 붙은 게 아니었다. 성철은 민호의 소문을 접했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평생을 여성청소년과에서 보낼 리 없지만, 그래도 제 밑으로 들어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직접 얼굴을 맞댔을 때 어떻게 생각했더라. 꽤 멀끔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누가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런 의문이은 생기자마자 사라졌다. 어차피 타인이다. 성철은 제 밑으로 들어온 민호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생각했다. 제게 방해가 될 만한 요소는 모두 배제해야 했다.

간단한 사무 보조라도 맡겨보았지만, 민호는 도통 말을 듣지 않았다. 계속해서 현장에 나가려고 하고, 명령에는 배쨌다. 그럴 때마다 성철은 어떻게 해야 민호를 다룰 수 있을지 머리를 써야 했다. 당근이라도 던져주고 싶었지만, 현장에 보냈다가 폭력 사고를 일으키는 건 죽어도 보고 싶지 않았다. 성철은 제게 지장을 줄 만한 일은 모두 배제하고 싶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선택한 게 대련이었다. 몇 번 주먹 맞대다 보면 나아지겠지. 썩 나쁘지 않았다. 민호는 저와 대련하길 바랐으니까. 거의 만날 때마다 대련, 대련 이렇게 노래를 불렸다. 어쩔 수 없지. 성철은 그대로 주먹을 맞대었다.

성철에게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안 그래도 지금 거대한 마약 단체 하나를 족쳐야 했다. 꼬리를 잡힐 듯 잡히지 않아서 더 애가 탔다. 이 자식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한참 그렇게 고민하고 있었다. 도무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성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처에 산책이라도 하면 좀 괜찮아지려나.

경찰서 근처에는 볼 만한 게 존재하지 않았다. 조금 더 멀리 가면 작은 공원이 있었지만, 근무 중에 이탈하는 건 영 당기지 않았다. 예상과 달리 영 괜찮아지지 않아, 조금씩 초조해지고 있을 때였다.

"응?"

기왕 나온 거 공원이라도 가볼까,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저 멀리서 익숙한 사람이 보였다. 이민호. 분명 사무 일을 맡긴 걸로 아는데, 왜 밖에 나와 있는 걸까. 성철은 인기척을 죽이고 조금씩 다가갔다. 민호는 모르는 사람이랑 사이 좋게 대화하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사이 좋다는 건 성철의 주관적인 생각이었다.

안 그래도 멀끔하게 생긴 놈이 예의를 갖추자 전혀 알아보지 못할 정도가 됐다. 성철은 민호가 저렇게 예의 바르게 행동할 줄 알았다는 사실에 신기했다. 할 수 있었으면서 안 했다는 건가. 어쩐지 얄팍한 배신감이 슬그머니 피어올랐다. 그러나 성철은 빠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배신감이라니. 애초에 자신은 민호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제 발목만 붙잡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여겼으니까.

하지만 어쩐지 껄끄러운 감각이 제 안에 남았다. 성철은 머리가 좋았지만, 너무 좋은 탓에 낯선 감각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건 대체. 성철은 깊은 숨을 토해냈다. 전혀 개운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스트레스만 잔뜩 쌓인 상태로 성철은 민호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조용히 경찰서 안으로 돌아왔다.

민호가 돌아온 건 약 십 분이 지난 후였다. 성철이 어떻게든 업무에 집중하고자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태연하게 대련을 청했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대련이라니. 인상을 팍 찌푸렸다. 처음에는 한두 번 해주면 알아서 길 줄 알았는데, 민호는 꽤 집요했다. 이 집요함을 수사 때만 써먹었다면 훨씬 더 우수했을 텐데. 성철은 이리저리 따져보았다. 당장 바삐 해야 할 일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 아주 잠깐이라면. 성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해줄게."

흔쾌히 수락했을 뿐이다. 민호의 분위기가 조금이나마 부드럽게 변한 것처럼 느껴졌다. 대련실로 향하기 직전, 성철은 민호를 보았다. 왜 달라졌다고 생각한 걸까? 매번 제게 대련을 청했으니까, 원하는 게 이뤄지면 누구나 좋아할 법한데. 성철은 스스로가 삐그덕거린 이유를 찾아보았다. 딱히 없다. 그럴듯한 이유도 나오지 않았다.

대련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어쩐지 무겁게 느껴졌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고 했지만, 어쩐지 목에 걸린 것처럼 가슴이 쿡쿡 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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