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설 타입 10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 - 박문대

밖으로 나갈 때마다 차가운 공기가 박문대의 몸을 감쌌다. 바람이 한 번 불 때마다 공기가 훅 떨어진 게 저절로 느껴졌다. 아, 이제 곧 겨울인가. 아직 크리스마스가 한참 멀었음에도 떠들썩한 거리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 지금은 10월 말이었지. 곧 할로윈이었나? 박문대에게 있어서 할로윈은 그다지 좋은 기념일이 아니었다.

요즘 들어서 다들 챙기는 편이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챙기는 사람만 챙기는 기념일이었다. 박문대도 ‘류건우’시절에 공시하면서 몇 번 마주친 사람들에게 쿠키 두어 개 받아본 적이 있긴 했다. 아니면 박하사탕. 그게 전부였다. 따로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챙긴다고 해서 제게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박문대에게 있어서 할로윈은 먼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 와서는 달라졌다. 문대는 천천히 거리를 돌아다녔다. 다들 요란스러운 분장한 탓에 박문대는 무난하게 지나갈 수 있었다. 흠. 오히려 분장해도 크게 눈치채지 못할 거 같은데. 아주사가 꽤 되었음에도 ‘새로운 세상’ 커버 버전 뱀파이어를 흉내 낸 사람도 몇몇 보였다.

‘……이상하네.’

마음 한구석이 간질거렸다.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님에도 오래된 것 같았고, 꼭 옛날에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음…….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꽤 패기 넘치던 과거를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주사가 끝난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여기저기 여파가 남은 걸 볼 때마다 뿌듯했다.

할로윈 당일이 아닌데도 거리가 이런 걸 보면, 당일에는 어떨까. 박문대는 익숙하다는 듯 거리의 한 장면을 촬영했다. 찰칵. 스마트폰 촬영 소리가 들렸다. 박문대가 찍은 건 어느 한 연분홍색으로 칠해진 액세서리 가게였다. 할로윈 기념으로 자그마한 호박이나 우스꽝스러운 해골 장식이 달린 걸 보며 저도 모르게 웃었다.

[ 너 이런 데 좋아하지? ]

사진과 함께 무뚝뚝한 질문을 체리에게 보냈다. 한가했던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답변이 왔다.

[ 응!! 엄청 좋아해!! ]

[ 근데 내가 여기 좋아하는 거 알았어? ]

[ 여기 엄청 유명하잖아!! ]

활자로도 좋아하는 게 느껴질 줄이야. 박문대는 체리의 톡에 그제야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여기 거리에… 어딘가 유명한 액세서리 가게가 있었다고 들은 거 같은데. 한참 정신이 없을 때 들은 탓에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음. 이렇게 좋아하니 뭐라도 하나 사주는 게 좋으려나. 작게 고민했었지만, 이내 박문대는 고개를 내저었다. 체리라면 문대가 어떤 걸 사줘도 좋아하겠지. 그렇지만 기왕이면 좋아하는 걸 선물하거나, 직접 고르게 해주고 싶었다.

마침 할로윈 당일은 아니어도 그 전날에는 시간이 됐다. 박문대는 재빠르게 스마트폰 화면을 두들겼다. 톡톡. 기본으로 깔린 키보드 자판이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묻혔다. 체리는 무척 기뻐하는 걸 온몸으로 표현했다. 음. 정확하게 말하자면 딱 자신을 닮은 귀여운 강아지 이모티콘을 잔뜩 보냈다. 다양한 종류로 데포르메된 강아지가 기뻐하고 있다. 어떤 건 두 눈이 하트가 되거나, 혹은 짧은 다리로 하트를 만들었다. 이런 건 또 어디서 구한 거람. 그런 생각을 하며 박문대는 천천히 제 취향에 맞는 이모티콘을 위시리스트에 담았다.

*

10월 30일은 주말이었다. 안 그래도 북적거리는 거리에 사람이 미어터질 정도로 많았다. 몇몇 옷 가게에서는 싸구려 옷감으로 만든 코스프레용 분장 세트를 대여하고 있었다. 체리는 거리 입구에서 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오늘 두 사람은 시내 한복판을 활보하고 다닐 예정이었기에 움직이기 편한 옷을 입었다.

가로로 쭉쭉 그어진 줄무늬 상의와 청바지. 체리는 청치마였다. 치마 자체의 폭이 넓지 않았기 때문에 움직이는 게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건 괜한 기우였다. 체리는 놀라울 정도로 잘 움직였다. 보니까 발이 편한 신발을 신고 있었다. 괜히 제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체리는 먼저 거리 입구 근처에 있는 코스프레 대여점으로 향했다. 무슨 옷감으로 만들어졌는지 모를 매끈한 소재의 검은 옷이 잔뜩 보였다. 체리가 열심히 고민했다. 가장 먼저 자기가 입을 옷을 고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박문대가 입을 옷부터 골랐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다 비슷비슷했다. 할로윈에 유명한 귀신은 대개 다 정해져 있다. 남자는 뱀파이어, 여자는 마녀…. 조금 귀엽게 가고 싶으면 흰 천을 뒤집어쓴 유령. 유령의 경우 아이들이 많이 이용하는지 옷이 죄다 작았다.

박문대는 검은 망토를 몸에 둘렀다. 체리는 검은 망토에 흡사 동화책에서 나올 법한 마녀 모자를 썼다. 챙이 넓고, 붉은 리본이 잔뜩 달린 모자는 나름 귀엽게 느껴졌다. 망토 두 벌, 모자 하나를 대여한 뒤에 밖으로 나섰다. 아. 처음에 체리의 조언에 따라 가짜 피도 얼굴에 묻히려고 했었지만…… 번거로워서 그만두었다. 안 그래도 군것질도 잔뜩 할 예정이다. 괜히 가짜 피 때문에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체리는 제 머리 위에 쓰인 모자가 자꾸 흘러내리는지 몇 번이고 고쳐 잡았다.

“모자 너무 큰 거 아냐?”

“그렇지만 이게 제일 귀여웠는 걸!”

“그럴 거 같았어. 아. 이거 조절하는 끈이 있는 거 같은데?”

문득 모자 뒤편에 긴 끈이 보였다. 끈은 느슨하게 묶어진 채 있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금 당겨보았다. 덕분에 살짝 컸던 모자가 딱 맞았다. 우와! 체리가 작게 감탄했다. 박문대는 길게 늘어진 끈을 커다란 리본으로 묶었다. 마침 모자에 자잘한 리본이 여러 개 달려 있었고, 모자와 잘 어울리는 붉은 색 끈이었기 때문에 잘 어울렸다. 음. 나쁘지 않네. 문대는 몇 번이고 리본을 거듭 고쳐맸다.

체리는 그런 박문대를 바라보았다. 자기라면 분명 긴 끈으로 머리를 조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텐데. 거기다 그 끈으로 예쁘게 리본까지 묶어주다니! 문대 진짜 좋아! 이러한 느낌으로 체리는 점차 제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싸구려 검은 망토를 두르고 있음에도 문대 외모가 워낙 잘난 탓에 잘 어울렸다. 박문대는 체리의 리본을 묶어준 후에 시내를 활보했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이전에 박문대가 찍은 액세서리 가게였다. 할로윈을 앞둔 탓인지, 가게는 조금 더 화려해졌다. 심지어 이틀 전부터 기념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좁아 보였던 입구와 다르게 내부는 제법 넓었다. 심지어 2층까지 있었다. 돈을 조금만 더 내면 2층에서 할로윈 기념 액세서리를 만들 수 있다고 점원이 말했다. 체리는 그 말에 문대의 팔을 붙잡고 2층으로 가자고 말했다. 문대는 거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2층으로 향했다.

천천히 계단을 밟고 올라가자, 두 사람과 비슷한 또래의 남녀커플이 많았다. 굳이 커플이 아니라 친한 친구끼리 온 쪽도 많았다. 마침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점원의 친절한 안내에 그대로 액세서리를 만들었다. 목걸이, 팔찌…… 참 종류도 많았다. 박문대는 옷 속에 숨길 수 있는 액세서리가 뭐가 더 좋을지 고민했다. 음. 목걸이가 좋으려나. 대충 목걸이로 정했다. 체리는 문대와 다르게 팔찌와 함께 반지도 골랐다. 반지는 다른 액세서리보다 더 비싼 값을 주고 만들 수 있었다.

목걸이는 줄을 고르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그 뒤에 달고 싶은 장식이 있으면 취향대로 다는 방식이었다. 팔찌도 비슷했다. 반지는 정해진 틀 몇 가지에 원하는 색깔의 큐빅을 박는 게 전부였다. 비즈 액세서리를 만드는 방식과 흡사했다. 사람 취향대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액세서리가 나올 수 있었다. 나름…… 상술로 나쁘지 않네. 체리는 작은 손으로 부지런히 반지에 큐빅을 박아넣기 시작했다. 대부분 노란색이나 핑크색 위주였다. 의외로 색 조합이 나쁘지 않았다.

금방 큐빅이 하트 모양을 이루는 반지가 탄생했다. 체리는 제 손으로 만든 반지를 문대에게 보여주었다.

“짠! 문대, 어때?”

“솜씨 좋네.”

“그치? 이렇게 서로 색깔이 번갈아 가듯이 해보았는데 좋아. 문대도 해볼래?”

“음…… 난 목걸이부터.”

문대는 한참 고민한 끝에 줄을 고를 수 있었다. 줄 종류가 너무 많은 탓에 오히려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같은 장식을 달아도 줄이 다르면 서로 다른 느낌이 났기 때문이다. 문대가 고른 건 얇은 체인 줄이었다. 후크가 달려 줄이 끊어지지 않았다. 넉넉하게 제 목에 두를 수 있는 길이만큼 가져온 후에 장식을 달았다. 마음에 드는 게 있으려나. 액세서리가 든 플라스틱 통을 뒤적거렸다.

마침 노란색 강아지가 혀를 내민 채 웃는 장식이 눈에 띄었다. 이게 좋겠다. 노란색 말고 다양한 색깔의 강아지가 있었다. 심지어 강아지뿐만이 아니라 고양이, 토끼, 다람쥐 등등 유명한 동물은 다 있었다. 사슴 종류나 새 종류가 없는 게 아쉽네. 만약 있었더라면 테스타 애들에게 하나씩 만들어주고 싶었다. 상술에 놀아나는 꼴 같지만, 이런 추억을 만들어둘수록 좋다.

복잡한 장식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문대는 강아지 장식을 먼저 달았다. 노란색 웰시코기를 닮은 놈이었다. 음. 어쩐지 멍한 눈빛을 하는 게 꼭 저를 닮은 건 착각일까? 체리는 신난 듯 여러 색깔의 비즈를 엮어 팔찌를 만들고 있었다. 흠…. 박문대는 그런 체리의 모습을 눈여겨보았다. 오늘은 노란색과 분홍색만 쓰는 걸까? 따로 이유가 있나? ……옅은 파스텔톤 계열이어서 잘 어울리지만. 문대는 옅은 색으로 이루어진 날개를 매만졌다.

그래. 강아지에게 날개나 달아주자. 노란색 강아지니까 날개도 통일해주는 게 좋으려나? 그게 아님… 음. 어차피 날개니까 색깔만 맞추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문대는 그대로 플라스틱 통을 뒤적이며 날개를 찾았다. 하늘색이 제일 적었으며, 분홍색과 노란색은 그럭저럭 수량이 있었다.

어쩌다 보니 뱀파이어 코스프레하고 액세서리만 잔뜩 만들었다. 박문대가 만든 목걸이는 상당히 간단했다. 노란색 강아지가 분홍색 날개를 앙증맞게 달고 있었다. 막상 줄에 꿰어 넣을 때는 몰랐는데, 돌이켜보니 색 조합이 맞지 않았다. 음. 그래도 이미 완성했으니 바꿀 수도 없다. 체리는 반지와 함께 완성된 팔찌를 문대에게 보여주었다. 조금 전부터 곁에서 지켜보았던 탓에 어떻게 생겼는지 대강 알고 있다. 처음에는 무작정 만드는 것 같았는데, 의외로 다 완성하니 괜찮았다. 체리는 망설이지 않고 팔찌를 그대로 문대에게 내밀었다.

“자! 문대, 선물이야.”

“선물?”

“응. 오늘 같이 있어서 즐거워서. 체리는 문대가 바빠서 함께 못 있을 줄 알았거든. 이렇게 좋아하는 가게에 올 수 있어서 좋았고.”

“……좋았다니 다행이야. 그럼 나도 이거.”

그러면서 문대는 조심스럽게 목걸이를 체리의 목에 걸어주었다. 체리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문대의 이름을 여러 번 불렀다. 어, 어? 당황했다는 티가 팍팍 났다. 문대는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체리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보았다. 나쁘지 않네. 괜한 장식을 더 추가했으면 이상할 뻔했다. 박문대는 당황하는 체리의 손을 붙잡았다. 제가 먼저 손을 잡는 건 드문 일이었지만, 이대로 가게 앞에서 죽치고 있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민폐이기도 했고. 체리는 문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으나, 이내 환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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