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설 타입 6

문호 스트레이 독스 - 다자이 오사무

최근 들어서 다자이가 이상했다.

체리는 눈을 날카롭게 뜬 채 다자이가 사라진 흔적을 보았다. 늘 그렇듯 그는 여유로웠다. 상대에게 적당히 좋은 말만 해주다가, 시간이 되면 헤어질 때라면서 황급히 자리를 정리했다. 마치… 바람을 피우는 거 같았다. 불쾌한 감각이 체리를 스쳐 지나갔다.

체리의 자존심은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무시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그런데 이건 누구나 다 그렇지 않아?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했다. 체리가 마음 편히 여길 수 있는 상대는 몇 없었다. 여동생인 유노, 혹은 다자이…. 체리는 의아하게 여겼다. 다자이가 어쩌다 편히 여길 수 있는 상대가 되었더라.

처음에는 질긴 놈이라고 생각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말투와 행동은 절대로 다가가고 싶지 않게끔 만들었다. 마피아 활동하며 어쩔 수 없이 마주친 게 전부였다. 하지만 다자이는 그 짧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번 만남이 끝나는 게 아쉽다는 듯 마치 불쌍한 강아지처럼 굴었다. 그때만 해도 체리는 다자이가 왜 저렇게 구는지 알 수 없었다. 굳이 그의 마음을 헤아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번이고 만남이 지속되자, 결국 다자이는 개인적으로 만날 것을 제안했다. 만약 평소의 체리였다면 응하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다자이가 꾸준히 쌓아온 ‘불쌍한 이미지’는 장시간에 걸쳐 행했기 때문에 제법 먹혔다. 체리는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다자이와 함께 개인적으로 만났다. 만났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때로는 일의 연장선일 때도 있었으며, 때로는 평화로웠으니까.

조금씩이나마 평화에 취할 무렵이었다. 얼마나 되었을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서서히 날이 차가워질 무렵에 다자이는 몹시 분주하게 움직였다. 구태여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누가 보아도 다자이 오사무는 바쁘다. 그게 두 눈으로 확연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체리는 한쪽 턱을 괸 채 그런 다자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애초에 먼저 만나자고 해놓고 때가 되면 가버리는 사람을 어떻게 좋아할 수 있을까. 체리는 제 마음속에 화가 쌓이는 것에 불쾌해졌다. 혀를 찼다. 다자이와 만나지 않아야지. 몇 번이고 거듭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다자이는 절대 체리가 거절하지 못하도록 수를 썼다. 정말 놀라운 사내였다. 저렇게 머리가 좋으면서 왜 저렇게 사는 건지. 참 의문일 정도였다.

체리가 어영부영 다자이와 만났다. 어느새 계절은 가을을 맞이했다. 마피아 내부에서 추운 가을을 예감한 듯 다들 따뜻한 옷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두를 수 있는 목도리나 혹은 장갑 등을 비롯해 다양한 걸 준비했다. 체리는 그 물결에 끼어들지 않았다. 워낙 변덕스러운 인간이었기 때문에, 체리는 제가 내키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았다. 그나마 유노가 체리에게 잘 어울리는 귀여운 무늬가 잔뜩 들어간 목도리를 가져왔다.

다자이와의 만남은 언제나 요코하마에서도 인적이 드문 거리에 있는 카페였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 한 명이 운영하는 소박한 곳이었다. 어떤 의미로 평화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었다. 체리는 쌀쌀하다고 생각하며 다자이와 만나기로 한 카페로 향했다. 문득 거리가 소란스럽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지. 그런 마음에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알록달록했다. 모두 검은 옷을 베이스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었다. 그 치장은 결이 달랐다. 자신이 예쁘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체리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고 보니 문득 이번 달이 10월이라는 걸 떠올랐다. 10월 말에는 항상 늘 죽은 망령이 돌아온다는 날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 얄팍한 상상이 만들어 낸 날임에도 모두 즐겁다는 듯 준비하는 게 체리에게 영 낯설었다.

‘정말 평화롭네.’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체리는 한 발 잘못 내딛으면 죽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암흑 지대에 살고 있다. 체리가 지금껏 멀쩡히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무척 운이 좋은 쪽이었다. 사지 멀쩡하고, 심지어 이능력까지 있다. 타고난 두뇌 덕분에 낯선 환경에서도 쉽게 적응할 수 있다. 이런 건 그 누구도 타고나고 싶어도 타고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체리는 항상 이맘때가 되면 들뜨는 제 동생을 떠올렸다. 무엇이 그리 즐거웠더라. 조금 먹고 살 만 해졌을 때 저도 즐겼을 텐데.

지금의 체리는 그다지 즐기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다. 온갖 괴물로 치덕치덕 분장한 사람을 보며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다. 약속 시간까지 넉넉하게 남았음에도 그는 카페로 향했다. 몇 번이고 좁은 골목을 지나니, 약속 장소가 보였다. 카페 테라스에는 다자이가 능숙하게 찻잔을 든 채 음미하고 있었다. 언제 도착한 거래. 체리가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다자이의 맞은편에 앉았다. 다자이는 체리가 도착하자는 걸 알자 두 눈을 서서히 떴다. 사소한 몸짓 하나가 예술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두 사람 곁으로 다가왔다. 카페 주인이었다. 체리는 언제나 여기서 한 가지 음료만 시켰다. 그나마 체리의 입맛에 잘 맞았기 때문이다. 어찌나 많이 주문했는지, 이제 따로 말하지 않아도 체리가 좋아하는 음료수를 내어주었다. 주인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음, 체리. 왜 그렇게 보나?”

“내가 뭘 어떻게 봤다고.”

“그냥. 어째 오늘따라 기분이 영 별로인 듯 하여서.”

잘 아네.

체리는 그렇게 이죽이고 싶은 걸 억지로 참았다. 달콤하면서도 시원한 음료수가 체리의 입안을 적셨다. 식도로 넘어가는 감각이 꽤 좋았다. 그제야 휴식에 취하는 기분에 빠질 수 있었다. 체리는 목을 축이며 다자이의 반응을 보았다. 다자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톡톡. 검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다자이가 생각에 잠길 동안, 어느새 체리는 제 잔을 다 비우고 말았다. 체리가 마시는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그렇다는 말은 곧 다자이가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는 말이었다. 평소라면 일상에서 꺼낼 법한 화제로 대화를 시작하는데, 오늘은 무슨 일이람. 체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두 번째 음료수를 시켰다. 조금 전 마셨던 것과 다른 음료수였다. 카페 주인이 음료를 내오고, 그걸 절반쯤 마시고 나서야 다자이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래… 혹여 묻고 싶은 게 있다만, 혹시 좋아하는 게 있는가?”

“네가 괜히 사람 불러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만 아니라면 좋겠는데.”

“그렇단 말은 내가 무언갈 하길 바라는 건가?”

그게 왜 그렇게 되냐.

체리는 이런 다자이의 태도가 무척이나 답답했다. 속내를 제대로 털어놓을 생각도 없는 주제에 여지만 잔뜩 준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다자이를 신비한 사람이라고 여겼을 거다. 또한 그 신비한 남자가 자신을 원한다는 생각에 잔뜩 취하겠지. 계속해서 다자이를 원하고, 또……. 체리는 딱 거기까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다자이가 어떻게 생각해도 체리는 그의 뜻대로 놀아나지 않을 거다. 아마, 이 점은 다자이도 알고 있을 거다.

체리는 남은 음료수를 마셨다. 다자이에게 원하는 건 명백했다. 왜 이틀에 한 번씩 저를 이 카페로 부르는지. 또한, 그 목적은 무엇인지. 처음에 만났을 때 다자이에게 여러 번이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다자이는 다소 멋쩍은 표정을 지어가며, 나중에 때가 되면 알려준다고 했다. 그게 언젠데. 욱하며 튀어나온 말에도 다자이는 능청스럽게 굴었을 뿐이다. 자기 혼자서만 여유로운 자태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알고 있다. 체리는 언제든지 다자이를 거절할 수 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거절할 수 있다. 포트 마피아로서 만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개인적인 만남이란 으레 그러했다. 하지만 체리는 제 안에 알 수 없는 기대감이 있었다. 다자이가 제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음을 미리 직감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처음에는 작은 호기심이었지만, 이제는 오기에 가까워졌다.

다자이는 저 멀리 저무는 태양을 보았다. 주황색이 한가득 하늘을 메우더니 이내 어두컴컴하게 변했다. 가게 내부에서 전등이 켜졌다. 마침 할로윈이 가까워졌기 때문에 테라스 주변에 두른 꼬마전구에도 불이 켜졌다. 누군가에게는 다소 유치해질 수 있는 색깔이 주변을 밝혔다.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할로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곧 며칠 뒤에 자신은 거대한 임무를 몇 가지 맡아야 했다. 체리에게, 하나사키 츠보미에게 말할 수 있는 건 이때밖에 없었다.

다자이는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체리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자신을 이대로 내버려둔 채 가버리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잔뜩 담긴 눈빛이었다. 다자이는 그만큼 제가 신뢰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안타까웠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게 반드시 빛을 보는 경우는 없다고 하더니…. 딱 그 상황이었다.

다자이는 약속대로 금방 돌아왔다. 어쩐지 부드러운 천으로 된 망토를 몸에 둘렀을 뿐,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아닌가? 체리는 찬찬히 다자이를 보았다. 다소 불규칙적으로 헝클어진 머리가 깔끔하게 정돈되었다. 어쩐지 평소보다 제 매력을 뿜어내고 있는 모습이 조금 불안해졌다. 체리는 잔뜩 긴장을 한 채 다자이를 보았다. 다자이가 성큼 체리에게로 다가갔다. 다자이는 아무것도 망설이지 않은 채 제 무릎을 꿇었다.

“옛날에 어느 한 흡혈귀가 있었다네. 그는 한 여인을 좋아했으나, 종족의 문제로 미처 고백할 수 없었지. 모습조차 드러내지 못한 탓에 여인은 그 흡혈귀를 알지 못했어.”

“…….”

“하지만 10월 31일. 죽은 망자들이 돌아오는 이 날만큼은 그도 용기 내서 여인에게 다가갈 수 있었지. 흡혈귀 사이에서는 이름이라는 게 무척 중요하다네. 그래, 마치 먼 나라의 기사들이 공주에게 구애할 때 제 명예를 거는 것처럼, 흡혈귀는 제 온전한 이름을 바친 자에게 영원히 묶일 수밖에 없네.”

“…그거 흡혈귀가 무척 불리한 거 아냐?”

“그만큼 상대방의 마음을 잡아주고 싶었다는 거지. 흡혈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기로 했어. 31일이 되자마자 여인을 찾아갔지. 여인은 그저 우스꽝스러운 광대를 보듯 지켜보았고, 흡혈귀는 제 모든 것을 담아 이름을 알려주었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다. 아마 다자이가 즉석에서 지어낸 게 아닐까? 그런 것치고 너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지만. 체리는 제 손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쓰다듬는 다자이를 보았다.

“내 이름, 다자이 오사무. 평생을 하나사키 츠보미를 위해 살아갈 것을 맹세하며.”

그렇게 말하며 다자이는 체리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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