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윤종조걸-이치에 어긋남

https://www.youtube.com/watch?v=2q8JH8j8Kvk 이거 듣고 생각난 이야기

연습장 by 슈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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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보니 걔 이름 뭐였지? 하고 누군가가 말했다.

"왜 그 조걸이었던가? 있었잖아?"

그 말에 윤종은 곧 그를 떠올렸다. 있었지. 갈색 머리, 강아지처럼 이리저리 들쑤시고 다니는 활발한 성격의 또래 친구였다. 분명히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점심 먹고 친구들 손에 운동장에 끌려가면 항상 거기 있었다. 축구를 하거나, 술래잡기를 하거나, 아무튼 다같이 즐겁게 하기도 했고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을 나란히 걷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자신이 그를 보았을 때 느낀 감정을 풋풋한 첫사랑이었을 것이다. 윤종은 술잔을 기울이며 그 옛날 기억을 더듬이 가는 사이 동창들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녀석 축구 잘했지."

"오늘 왔나?"

"모르지. 안 왔을려나."

"그런 애가 있었나?"

"근데 걔가 갑자기 생각났냐?"

"아니, 우연히 졸업 앨범을 찾아서 보는데 걔가 어디에도 없더라."

"어? 그래? 중간에 전학 갔나?"

"그래도 중간에 체육 대회 같은 거 하면 사진이라도 남아 있던데 안 남아있더라. 신기하지 않냐?"

"윤종, 넌 기억나냐?"

"아, 기억나지. 얼굴에 흉터 있지 않았나?"

"그랬나?"

"그건 기억 안 난다."

이야기를 들으며 기억을 더듬어 가던 윤종도 곧 기억 속의 그 녀석과 함께 시간을 보낸 것도 운동장 혹은 하교길이 전부인 것을 깨닫는다. 다른 반이었나? 하지만 그렇다면 한 번은 그의 반에 찾아 갔을텐데 기억이나지 않는다. 기억을 못하는 건가? 설마 학생이 아니었나? 윤종의 이어가던 생각은 곧 이야기의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린 이들에 의해서 잠시 뒷전으로 미루었다.

하지만 동창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시 기억이 떠올랐다. 형, 하고 부르던 목소리와 운동을 했는지 탄탄했던 손, 푹신하던 머리카락. 전부 생생히 기억하는데 어째서 장소가 늘 똑같을까. 그 전에 하교길도 늘 교차로에서 헤어졌다. 먼저 길을 건너면서 아쉬워서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고 그러면 멀리 떨어져서 자신에게 계속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졸업을 며칠 앞 두고 교차로에서의 이별이 너무 아쉬워서 길을 건너지 못하고 있었을 때, 입을 맞추었다. 그래, 그게 마지막 만남이었군. 이토록 강렬하고 생생하게 떠오르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걸까.

왜 그 뒤로 보지 못했을까. 그렇게 좋아했는데 없으면 찾을만도 한데 정작 안 보이면 찾지 않았다. 그 이상하기 그지 없는 모순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첫사랑의 기억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윤종은 졸업앨범을 꺼내 그 얼굴을 찾아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동창의 말대로 어디에도 그 얼굴도, 이름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동창생도 기억하는 걸 보면 자신의 상상이나 기억의 오류는 아닐테고 외부인이 학생인 척 한 걸까? 교복까지 입고? 근데 그걸 3년이나 하는데 선생님들에게 걸리지도 않았다고?

생각들이 이어진다. 내일 1월 1일인데 모교에 찾아갈 생각이 들었다. 물론 거기 간다고 해서 첫사랑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그렇게 하고 싶어졌다. 아직 술기운이 남아 있는 몸을 이끌고 윤종은 그대로 침대로 몸을 던졌다.

꿈 속에서 오랜만에 그 얼굴을 본 거 같았다.

"아직 술이 덜 깼나?"

모교의 교문을 보면서 윤종은 작게 중얼거렸다. 1월 1일. 빨간날에 모교를 찾아오다니. 지하철로 다섯 정거장을 보내고 굳이 다시 여기 왔다니.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직 오전인 공기가 차갑다. 추위에 떨면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강풍이 정면에서 불어왔다. 마치 돌아가려는 발걸음을 멈추게 하려는 듯이 정면에서 부는 바람에 걸음을 멈추고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을 때 거기에 있었다.

기지개를 쭈욱 피면서 눈앞의 길을 걸어가는 갈색 머리카락이. 동네 마실 나온 사람처럼 가볍게 입고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환상이나 기억의 오류가 아니었다, 라는 안도와 함께 윤종은 걸어가는 이를 바라보았다. 졸업하고 6년 동안 소식이 끊겼는데 갑자기 말을 걸면 이상하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종은 상대를 향해 말을 걸었다.


그것은 오래된 것이었다. 오래된 건, 인간의 인지에서 벗어난 것, 인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머나먼 것. 그냥 인간의 탈을 뒤집어 쓴 것. 누군가가 불렀고, 여길 지켜달라고 했기에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불러낸 이가 사라졌지만 약속은 남았기에 돌아가지 못 하고 그 자리에 남았다. 불러낸 이가 지켜 달라고 한 성이 무너지고, 마을이 바뀌어도 여전히, 여전히 자리에 묶여 있었기에 심심해졌다. 그것은 심심해졌기 때문에 인간들 사이에 섞였다.

무수한 인간들을 봤지만 그런 인간은 처음이었다.

-너는 그 얼굴의 흉터 어쩌다가 생긴거야?

흉터가 아니다. 인간의 거죽을 뒤집어 쓰다가 생긴 생채기일뿐이었다. 냉장고에 넣어둔 유리병에 금이 간 것처럼 안에 있는 걸 다 담지 못해서 깨졌을 뿐이다. 그렇지만 인간들 기준으로는 흉해서 안 보이게 했는데 그 눈은 그것을 보았다. 그것은 실로 오랜만에 흥미를 가졌다. 같이 있는 시간을 보냈다. 낯설지 않은 이 느낌이 뭔지 몰라서 한참 고민했다.

있지도 않는 인간을 흉내낸 그럴싸한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것이 뭔지 정확하게 정의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것은 어느날 결국 그의 혼을 뒤져보았다. 왜 낯설지 않았는지 알았다. 그다. 자신을 부른 이, 자신을 두고 먼저 가버린 이. 이 땅을 지키라고 했던 이. 그럴싸한 심장이 미친듯이 요동쳤다. 실로 무수한 시간 끝에 그것은 원망을 깨달았다. 그것은 사랑을 깨달았다. 입을 맞춘 그 상태로 눈앞의 그를 자기 안으로 삼키고 싶다고 생각했다. 넌 날 부르고 떠나고 이렇게 다시 돌아왔다. 그럼에도 너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지. 아, 이게 인간이다. 또 놓칠바에 먹어버리자고 생각했다가 그만두었다.

나를 보는 그 눈이 이전이랑 다르다는 걸 알고 그만두었다. 내가 그를 먹어버리면 그는 다시는 내 앞에서 이렇게 웃지 못하겠지 싶어져서 그만 두고 그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거, 걸아?"

그러니까 그렇게 다시 불렸을 때 그 기분. 돌아본 그곳에는 그가 있었다. 뽑아버린 심장이 어디선가 다시 뛰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곧 웃었다. 아, 이번에는 놔주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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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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