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슈팡x다프네 어느 기사의 사랑

오마카세로 작업했습니다. 유백향(@baekhyang_HG)님에게 드리는 글입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큰일났다쿠뽀…….”

신입 배달부 뿌쿠티 삐코가 붉은 우체국 가방을 매고 두 손으로 우편물을 들고 편지의 주인을 찾고 있는 듯싶었다. 정확하게는 처음 조달받은 우편물을 어떻게 배달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가 더 옳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발렌티온가 하녀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다급하게 둘러보고 있었다.

매년 이날이 되면 항상 발렌티온데이로 연인들이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하기 위해 사랑 배달부 모그리를 통해 편지를 주고받는 시기가 찾아왔다. 행사 시기에 맞춘 발렌티온가의 하녀와 집사가 미 케코 야외음악당에서 하트모양의 풍선을 불고 장식하며 완벽한 행사를 위해 쉬지도 않고 뛰어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낮게 부는 바람 결에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있던 다프네의 시선에는 붉은 하트가 띄어진 풍선에 닿았다. 이맘때 즘에는 항상 행사를 열곤 했는데…. 임무의 현장 조사를 위해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 행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깜빡 잊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녀의 인상은 푸른 하늘에 연한 분홍색 꽃들이 수가 놓아진 듯싶었다. 신비로운 색으로 덮여서 양옆으로 가지런히 땋아둔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랑거리며 흔들거렸다.

“이번 신입 배달부가 우편 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더라구요…. 시간이 되신다면 모험가님이 우편 배달을 도와주실 수 있으실까요?”

“전부 배달하는 건 어렵겠지만…. 제가 도울게요.”

“정말 고맙습니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얼마나 진땀을 흘렀는지…. 신입 배달부 뿌쿠티 삐코와 함께 가시면서 우편물의 주인을 찾아 편지를 전달하는 걸 보여주시면 돼요. 우편물 배달을 함께 할 초코보도 동행할 수 있도록 도와드릴게요.”

붉은 모자를 쓴 발렌티온가의 리제트와 발렌티온가의 하녀가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진심을 담아 감사를 표했다. 우편이 가득 찬 우편물의 가방을 들고, 파란 모자를 쓴 초코보가 다프네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듯한 초코보의 깃털은 청결한 상태로 깔끔하게 정돈 되어 있었다. 사랑을 받고 자란 그의 버디와도 닮은…….

다프네는 두 손으로 초코보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다정한 손길을 자연스럽게 받던 초코보는 다프네의 손길에 기쁜 듯이 두 팔을 뻗는 것처럼 날개를 피고 접는 행동을 보였다.

“이번에 새로 일하게 된 뿌쿠티 삐코다쿠뽀.”

배달된 편지를 받은 검은 머리를 한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귀족가의 엘레젠 여성이 걱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편지를 뜯지 못하는 모습에 다프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거냐쿠뽀?”

이상함을 느낀 배달부 모그리가 두 사람을 지나쳐서 편지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며 다프네가 할 말을 대신 해주기 시작했다. 다프네도 뿌쿠티 삐코와 함께 그녀를 쳐다보았다. 대답을 기다리는 듯한 눈빛을 보내자 그녀는 잠시동안 대답하는 것을 주저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세르아 피아에요. 아뇨…. 편지는 제 것이 맞지만…. 제가 저택으로 돌아가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돼요…. 저는…….”

“……그래서, 망설이고 있는 건가요?”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살아갈 수 있겠어요?”

“………….”

“…마음은 확실히 전해야 하지 않겠어요? 당신이 정말 하고 싶은 걸 해요. 사랑은 그걸 해낼 수 있는 힘을 주니까요.”

제 자리에서 깔끔하게 동봉된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그녀의 얼굴이 걱정스러운 듯이 눈썹이 아래로 내려가다가도 이내 입꼬리를 당겨 웃는 표정으로 변했다. 이윽고 무언가를 다짐하듯이 편지와 함께 결의에 찬 눈빛으로 다프네의 작은 손을 꼭 마주 잡았다. 화려한 드레스가 바닥에 끌려서 더러워져도 그녀는 개의치 않은 듯싶었다. 명성과 돈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두 사람이 사랑하고 싶어 하는데. 다프네는 함께 동행한 초코보를 탄 세르아를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다.

“저, 그에게 만나서 말하고 싶어요. 아니! 당장이라도 만나러 갈래요!”

“…그래요, 잘 생각했어요. 제 초코보를 빌려줄 테니 얼른 만나러 가봐요.”

세르아는 떠나는 길에도 감사하다며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프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자신도 그에게 고백했지만 여전히 연인을 만나는 게 쉽지 않은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봤다. 정작 자신도 그녀와 똑같이 대답을 기다리면서도…. 솔직하게 말하라는 조언은 자신이 하기 어울리지 않는 말일지도 몰랐다. 다프네는 고개를 들어 푸르고도 투명한 하늘을 쳐다보았다. 맑은 하늘의 따뜻한 햇빛까지 들어선 맑은 날씨는 눈이 부시도록 반짝거렸다.

“………….”

다프네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뿔의 아이의 얼굴이 보고 싶어져서 두 눈을 찡그리며 숲이 우거진 풍요신 제단으로 걸어갔다. 숲을 지나고, 우거진 나무 사이로 걷고 있으니 나뭇잎으로 가려진 그늘이 그녀를 반겼다. 그녀를 감싸듯 뻗어있는 나뭇가지와 자연의 바람이 새하얀 뺨을 스쳐지나갔다.

뿔의 아이를 기다리고 있던 다프네의 시선에 순수한 영혼을 닮은 푸른 빛을 가진 사내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가 이곳에 있을 리가 만무한데도…. 다프네는 꿈이라도 꾸는 것처럼 두 손으로 눈을 비볐다. 흐릿한 시야에도 분명하게 보이는 그를 닮은 푸른 색채에 두 눈을 끔뻑거렸다. 그래, 이건 꿈이 아니다. 그가 익숙하게 입고 있는 창천 기사단의 의복이 아닌, 새하얀 정장을 입고 찾아온 것이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오르슈팡의 걸음의 보폭이 넓어질 때마다 다프네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는 티끌없이 맑은 표정으로 자신을 처음 반겨주었던 때처럼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맹우! 여기 있었군! 커르다스에서 나의 친구와 함께 오는 것은 쉽지 않아서 시간이 걸렸는데 눈이 그치고 나서야 횡단하는 것이 쉬워졌지만 말이야. 네가 바쁠 거라는 걸 알지만……. 세르아 피아양이 날 찾아와서 내 버디와 함께 옷을 잔뜩 선물해주더군. 너와 함께하는 모든 것들은 다 좋지만…. 이 근처에서 너를 만났다고 했는데 너에게 어떤 말도 주지 않고 찾아와서 놀랐다면 미안하단 말을 먼저…….”

낮고도 다정한 그의 목소리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는 다프네가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업무가 바쁘다는 이유로 얼굴을 보기 힘든 그가 밉기도 하고, 대답도 듣고 싶어 하면서 내심 두려워하는 자신이 싫어지는 마음이 그 순간 울컥하고 터져 나왔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이 눈가가 불그스레 해진 다프네가 상처로 가득한 두 손을 꽉 쥐었다. 울렁거리는 시야와 터질 것만 같은 심장박동이 온몸을 지배해버리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다프네…….”

“나는, 당신에게 제 마음을 고백했는데…. 우리는 사귀는데도 예전과 다름 없이 만나기 더 어려워졌잖아요. 당신은 여전히 그런 표정을 하고, 나를 부끄럽게 만드네요…. 나를 정말…. 사랑하나요?”

“그게 아니야, 다프네. 나는 네가 떠난 이후로도 계속 너를 생각했어. 나는 너를 계속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표현할 용기가 없었어…. 나의 망설임이 너를 불안하게 하고, 슬프게 만든다면…. 기사이자 방패로서 너를 지킬 수가 없어지게 되어버리잖아….”

“오르슈팡…….”

다프네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자각하지 못했다. 계속 목이 메어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오르슈팡은 단번에 빠른 걸음으로 뛰어서 다프네를 끌어안았다.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힘주어서 끌어안은 그의 차가운 손길과 가슴 언저리에서 일정한 박자로 뛰는 심장 소리가 거짓 없는 진실이라고 증명하듯 자신을 향해 뛰고 있었다.

“미안해, 다프네. 너를 오래 기다리게 해서……. 내가 사랑하는 건 너 밖에 없어.”

먼 길로부터 자신을 보러 오겠다고 눈밭을 가르며 찾아온 이의 얼굴이 저리도 다정하다면 이것은 분명 사랑일 것이라고 다프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의 대한 사랑은, 어쩌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큰 힘이 되어줄 존재가 될 것이라는 것을 고맙다는 말 대신 강하게 끌어안은 다프네는 가슴팍에 제 얼굴을 깊게 파묻었다.

해당 포스트는 댓글이 허용되어 있지 않아요


추천 포스트